죄 용서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탄생

  • 연합 예배 (2002년 12월 01일)
  • 막 1:1-8
  • 설교자: 이종실

02/12/01 (대강절 첫번째 주일)
본문: 막 1:1-8
설교: 이 종 실 목사
제목:

<본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설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헬라어 에반겔리온을 체코어 성경은 에반겔리움 그리고 한국어 성경은 복음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체코어 에반겔리움는 헬라어 단어의 의미에서 그리 거리가 멀지않지만 한국어 번역은 원래의 뜻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을 복음이라고 하는 헬라어 에반겔리온은 행복한 소식 또는 기쁜소식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에반겔리온은 복된 소식 또는 기쁜 소식보다 더 깊은 뜻을 갖고있습니다.
에반겔리온은 중요한 전쟁에서 승리한 후 들려오는 낭보와 관련되어있습니다.
에반겔리온 단어는 적들을 패배시키고 승전가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위대한 황제와 장군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주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는 마가의 서두는 승리의 팡파르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이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기때문입니다.
어떻게 예수의 죽음이 승리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이 이 복음서를 읽을 때 마가가 우리에게 도전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이 승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주의 길을 평탄케함을 의미합니다.
마가는 이사야 40장에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사 40:3-4)

이사야 40장에 주의 길을 예비하는 곳은 광야입니다.
광야는 인간 소외의 상징입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서로 교통 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불안 갈등 분노 잔인 혼란 테러 전쟁은 사람이 서로 교통하는 길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광야의 주의 길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로 나아가고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입니다.
건설되고 있는 이 길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이 불안 갈등 분노 잔인 혼란 전쟁의 인간관계가 단절된 세상으로 들어가심을 의미합니다.
그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로 부터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렇게 거칠고 그렇게 황량하고 그렇게 무서운 광야를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통과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단지 오신 것 만이 아닙니다.
그는 목적과 함께 왔습니다.
죄의 용서가 그 목적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 소통하지 못함으로써 인간세상이 길 없는 광야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마다 신 같은 존재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 되려고 하고 자신이 스스로 법이 되려고 합니다.
죄는 인간을 자기 중심의 독재체재를 만들고 군림하게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인간이 자신의 법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법을 폐기시키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우상, 자신의 법을 추구하면서 결국 자신을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킵니다.

죄는 우리를 속여서 심지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한 말과 잘못된 행위를 하게합니다.
승리의 선포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죄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구약에 따르면 피의 대가 없이 용서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성서의 예언이 성취됨을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행위 안에서 발견합니다.

비록 분명하지 않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테마는 오늘 복음서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에 대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오순절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연상합니다.
성령이 임하자 사람들이 술에 취한듯 황홀경에 빠져 방언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이 언급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세례는 그의 고난과 죽음과 관련되어있습니다.

10장에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간청을 합니다.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받게될 세례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경험입니다.

승리의 선언인 에반겔리온은 이와 같은 성령 세례의 토대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서로 다가가도록 준비하기위해 건설되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신 같은 존재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으로 자신의 길들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죄 용서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이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것 이것보다 더 분명히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단을 체코형제 개혁(또는 복음) 교회라고 부릅니다.
체코어로 에반겔리츠까 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복음 중심의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초점이 맞추어진 의미로 이해되고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에반겔리츠까 즉 복음적인 이란 말이 신학 성향의 특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어 저는 한국교회에 우리 교회를 프로테스탄트 즉 개혁교회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개혁교회란 타락한 교회에서 에반겔리온(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교회를 에반겔리츠까 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에반겔리츠까 교회는 단지 기쁘고 복된 소식만을 전하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 관계가 단절된 삭막한 광야 같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기쁜 소식 – 에반겔리온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로서의 우리의 사명은 단지 좋은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긴 성도들의 승리의 소식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길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죄의 용서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며 그리고 마지막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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