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쁠라띠스 – 전 후스 개혁 시대의 과거가 깃든 공간

12. 쁠라띠스 – 전 후스 개혁 시대의 과거가 깃든 공간
(Platýz – areál s předhusitskou minulostí)

17세기 루돌프 2세의 궁정원이었던 플라텐슈타인의 플라타이스(Plateise z Platteneteinu)가 건물을 기초한 이후, 또한 나중에 앙피르 양식(프랑스 제정 양식:역자 주)과 고전주의 양식으로 재시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앞 건물 안 안뜰 공간 속에 본래의 르네상스 양식은 잘 보존되어있다. 그리고 몇몇 창고 안에는 오래 전의 구시가 성벽 기초석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있다. 그 당시 프라하 지형도에 의하면 중세 그 장소에 고딕식 집이 있었다. 그 집 주인들은 후스 개혁 시대의 멀지 않은 벽 속의 마르띤 교회와 또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양종 성찬 교회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체코 개혁의 과정들을 암시하는 또 다른 묻혀있던 기념물들을 상기시킬 수 있다. 첫번째 지역 여행에서 이미 여섯번째 순서이다. (2, 5, 7, 9, 10회)

15세기 초에 오래된 고딕식 집 주인은 구시가 시장(市長)이자 엿기름 만드는 이였던 스트지브로의 얀 브라다띠(Jan Bradatý ze Stříbra)였다. 이 사람은 1419년 후스주의자들 리스트에 등록한다. 반 후스개혁 전쟁 때에는 프라하의 성배 주의자들 편에서 싸운다. 1426년에는 우스띠 나드 라벰 전투에서 십자군에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 때에는 이 집에서 두 후스개혁파의 우두머리가 모여 주요한 회의를 연다. 온건파를 이끈 사람은 성 일리 교회의 프지브람의 얀(M. Jan z Příbramě)이고, 급진파 주동자는 영국 옥스포드 뿌리를 따라 ‘파인 잉글리쉬’라 불리우는 뻬뜨르 빠이네(M. Petr Payne) 였다. 리빠니 전투 패배 (30.5.1434) 이 후에는 벽 속의 마르띤 교회의 행정원까지에게도 신뢰를 얻었던 끄볘뜨니체의 홀레츠(Holec z Květnice)가 집을 소유한다. (교회 천정 아치 부분의 그림 비교) 쁠라따이스 기사는 1586년 집을 매입하여 르네상스 양식으로 집을 개축한다. (그의 이름으로부터 연유하여 나중에 사람들은 이 건물을 쁠라띠스라 부른다.)

쁠라띠스로 프라하 개혁 유적지 여행 첫 부분을 마감하도록 하자. 쁠라띠스 벽으로부터 나로드니 트지다(Národní třída)를 지나 10월 28일 거리(ulice 28. října)로 가서 바츨라프 광장의 무스텍 역으로 가자.

(첫 부분을 모두 돌아보는 데에는 25-35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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