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신자들의 삶의 스타일

  • 한인 예배 (2003년 06월 29일)
  • 출 20:1-11
  • 설교자: 이종실

030629 (삼위일체 둘째주일)
본문: 출애굽기 20장 1-11절
제목: 십계명, 신자들의 삶의 스타일

<본문>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설교>
체코개혁교회는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 이 세가지를 끊임없이 그 시대에 따라 해석을 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전통이 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함께 읽은 본문은 출애굽기의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이란 말에서 저와 여러분들은 대체로 엄격히 지켜야 할 율법, 율법을 엄수하려는 바리새인,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신 예수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는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여기에는 저와 여러분들이 십계명에 대한 오해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우리 인간이 지키지도 못할 것을 부담스럽게 안겨준 하나님의 명령으로 우리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지킬 수 도 없는 명령을 주신 이유는 우리 인간 모두가 죄인임을 깨우쳐 주기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구약의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있다고 가르치고 그리고 배우고있습니다.

십계명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8절에 십계라는 말이 나옵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여기서 십계는 언약의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은 십계를 지켜야될 법, 엄수해야될 명령 이라고 하지 않고 언약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언약의 말씀을 계약의 조문으로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서로 약속을 하여 맺어진 계약입니다
다시말씀드려 십계명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맹세한 것이 아니라 두 편이 서로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의 앞날을 책임질 것과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기로 쌍방간에 약정을 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고있는 십계명의 첫째계명이 3절에 나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첫째계명은 2절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것은 십계명의 서론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첫째계명으로 생각하는 십계명의 서론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명을 주면서 서론으로 만약에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켜 행하면 나는 너희를 구원할 것이며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의 계명보다 앞서고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
하나님의 은혜가 계명보다 앞섭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따라 살아야 하는 까닭은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베풀어 주신 말할 수 없이 크신 그 은혜에 응답을 하는 것입니다.

내편이 되신 하나님,
홍해를 갈라 안전하게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더위를 잊게 하시는 하나님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와 어둠을 물리쳐주시는 하나님
방향 모르는 사막에서 구름과 불기둥으로 길을 안내해 주시는 하나님
목이 마를 때 반석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는 하나님
굶주릴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하나님
노예의 삶에서 자유의 삶으로 이끌어주신 하나님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려는 응답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십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그 대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십계명의 이해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자들의 삶의 스타일입니다.
대사관의 공무원들은 공무원들로서 삶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애국애족의 열정을 품어야 되는 공직자의 윤리가 있습니다.
그 윤리가 공무원의 삶의 스타일입니다.
군인들은 군인으로서의 절도와 명예를 드러내는 삶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사업가들은 상업상의 윤리가 삶의 스타일입니다.
학생은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의 윤리와 삶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목사는 성직자의 윤리와 그에 걸 맞는 삶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 신자들은 신자들의 신앙윤리와 삶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의 삶의 스타일은 술과 담배 안하고 세상 노래와 춤 추지않고 말소리나 행동거지로 경건의 겉 모습을 잔뜩 꾸미는 것으로 많은 분들이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삶의 스타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노력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한번은 서기관이 예수께 질문 하였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마가복음 12:29-31절에 나옵니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은 분명히 십계명의 전반부와 후반부와 관련되어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함께 읽은 십계명의 전반부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십계명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 기록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까?
성경의 오늘의 말씀에 명백한 것은 그것은 단지 감성적인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전반부는 우리가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3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올바르게 섬기며 하나님이 아닌 것을 신성시하거나 절대화하지않고 그것을 하나님 곁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역사 이래로 숭배의 대상을 신성화 하고 절대화하였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인간이 하늘과 자연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떤 시기에는 민족을, 어떤 시기에는 국가를, 어떤 시기에는 군사력을, 어떤 시기에는 경제력을, 어떤 시기에는 이데올로기를, 어떤
시기에는 인간의 이성을, 어떤 시기에는 예술과 문화를 어떤 시기에는 과학기술을 인간은 신성시하고 절대시하였습니다.
결국 인간이 신성시 하고 절대시 하는 것들이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시작한것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명령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선언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악의 세력에 빼앗기기를 원치 않는다는 강력한 선포입니다.
우리가 원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권능과 그 손에 넘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 아닌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는 것입니다.

4절에 두번째 계명으로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두번째 방법은 우상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 두번째 계명을 들으시면서, 나는 우상을 만들지 않으니 이 계명을 나는 지키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4절과 5절의 본문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우상이란 숭배의 대상이 되는 형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고대에 신의 형상은 신의 거주지를 의미하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상상력과 소유와 권력 아래에 신을 두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신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원죄이고 에덴동산의 타락이며 하나님 창조의 파괴였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상상력에 따라서 표현한 하나님의 형상 앞에 절할 때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현존안에 있지않습니다.
사실 신 없는 것에 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의 소유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않습니다.
1994년 프라하 한인교회에 목회할 때 한 분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 감사헌금을 드리면서 그 봉투에 “하나님, 이제부터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하나님을 나의 심부름꾼으로 만들지 않겠습니다” 적었습니다.

우리가 신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소유로 삼는 특권이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5절에 이 것이 매우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다른 신에 넘겨주길 원치 않습니다.
만약에 자신의 백성이 완전히 당신의 것이 되지않으면 우리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번째 방법이 7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컽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주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술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예는 고대사회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인간의 본성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려는 근본적 갈망이 있습니다..
달리 말씀드리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자신의 힘을 원한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일컬어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에서 하나님이 우리들과 어떤 관계를 원하시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개인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나와 너의 개인적인 관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나와 너의 관계성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고 나와 그것의 관계로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받아들이며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으로서의 마지막 네번째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8절)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십니다..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라고 말씀입니다.
우리는 칠일중의 하루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의 스타일입니다.
만약에 칠일의 하루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생애에 우리가 진정으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언제 고백할 수 있습니까?
밥을 먹지않고 보약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켜갈 수 없습니다.
안식일은 우리의 인생의 시작과 끝과 그 길을 깨닫고 우리에게 참된 삶을 불러일으키는 날입니다.
밥이 몸을 건강하게 하고 질병을 이기게 하는 것으로 의식을 하며 밥을 먹을 때 감격해 하면서 밥을 먹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니까, 배가 고프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어야 되는 줄 알고 먹습니다.
어떤 때는 밥이 맛있고 어떤 때는 돌을 씹듯 맛이 없고 그렇지만 하루 식사는 거르지 않습니다.
생각 없이 의무적으로 떠넣는 밥숟가락 때문에 우리들의 육식이 힘을 얻고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몸이 아프거나 쇠약해지면 의사를 찾고 약을 찾고 보약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루세끼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운동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입니다.

안식일이 하루 밥 세끼 먹는 일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것 하면 영적으로 건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이것 못하면 영적으로 약해져서 온갖 시험이 병균처럼 득실거리게됩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지 않으려는 신자의 응답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안식일의 안식은 국어사전에 “편히 쉼”으로 설명되어있습니다.
영어로 Sabbath 라고 합니다.
이 sabbath 라는 단어의 어원은 stop 이라고 합니다.
움직이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일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쉬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멈출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들 앞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쉴 수 있습니다.

<짚차와 짐을 머리에인 어떤 할머니>.

우리가 쉬며 거룩하게 하나님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할 때에 쉬지않고 일하는 것은 차를 타고도 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할머니와 같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저희들은 십계명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계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설교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이웃을 사랑해야하는데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된 나머지 계명을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이 시간 한번 우리들이 신자로서 어떤 삶의 스타일을 갖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나를 구원하시고 지금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에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나 여호와는 너의 하나님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일방통행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이 시간 눈을 감고 침묵하면서
나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을 바라봅시다.

나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가?
나는 하나님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나의 것인가?
나는 하나님을 너와 나의 개인적인 관계성 안에서 이해하는 가?
나는 하루를 하나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키는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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