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마사릭(T.G Masaryk) 신드롬

나눔터 제 5 호 (2000년 4월 2일 발행)
[살며 생각하며] 마사릭(Thomas Garrigu Masaryk) 신드롬

마사릭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지난 3월 8일 전후로 체코 전국이 마사릭 이야기로 가득찼다. 마사릭은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1차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매우 실천적이고 폭넓은 학문을 겸비한 정치가이자 철학자이다. 마사릭과 그의 가족 묘지가 있는 란스끼 자멕(Lansky zamek)에서 그의 150주년 행사가 열렸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이 자멕을 보기 위해 행사가 시작되는 9시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이미 군중들이 운집하였다. 이날 행사를 기해 란스끼 자멕에 마사릭의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그 첫 손님이 하벨 대통령이었다. 10월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이 박물관과 자멕은 아마 앞으로 프라하의 명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 같다.

3월 8일 프라하뿐 아니라 부르노(Brno), 프제로프(Prerov), 미에르닉(Melnik) 그리고 쁘로스띠에요프(Prostejov)등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곳곳에 마사릭의 동상과 흉상이 세워졌다. 뿐만 아니라 마사릭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에 대한 연구 발표,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사릭 탄생 150주년 기념일을 기해 정치가들은 저마다 마사릭의 유산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민당(KDU-CSL)과 시민당(ODS)은 마사릭을 비판하고 있으나 기민당은 마사릭의 반카톨릭주의로 마사릭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고, 마사릭의 인간과 고립된 활동에 대해 시민당의 비판은 하벨을 비판하기 위한 마사릭 비판으로 들린다. 과거에 마사릭에 대한 역사를 교과서에서 지워버린 적이 있는 공산당(KSCM)이 사민당(CSSD)과 마사릭 후예 경합이 붙는가 하면 자유연합(US)은 “나의 신앙고백은 마사릭의 신앙고백”이라고 주장할 만큼 마사릭을 존경하는 사람을 자신의 당수로 선출하였다. 또 하벨은 자주 비정당 인물이었던 마사릭과 비교되고 있다. 정치가들은 의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사릭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그의 이야기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인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체코 정치인들의 마사릭 신드롬은 자신들의 정치철학의 부재를 감추어 보려는 안간힘으로 이 이방인에게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제 몇 해를 이땅에서 살면서 아직도 이 사회의 속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필자가 결코 남의 집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들을 등에 업으려는 우리 정치가들과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비록 아전인수일지라도 전직 대통령의 철학과 정치사상을 인용하는 체코 정치가들이 좀더 순진하고 애교가 있어 보인다. 그 또한 마사릭 덕분이라면 체코 정치인들은 참으로 복있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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