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여전도회 임원회, 선교대회 시 체코 선교 보고대회 갖기로

여전도회전국연합회가 오는 10월 2일 열리는 제25회 선교대회에서 체코 선교10주년을 맞아 여전도회원들을 대상으로 보고대회를 개최하게 될 예정이다.

여전도회전국연합회(회장:이명원)는 지난 13일 임원회를 갖고 여전도회에서 파송한 체코의 이종실 선교사로부터 체코 선교 보고를 받고 △체코 슬로바키아 선교 10년 평가와 향후 10년 전망 △한국교회 동유럽 선교정책 평가 및 새로운 비전 제시 △중앙유럽 선교센터 사역의 방향제시 및 협력 등을 위해 선교 보고대회를 갖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종실 선교사가 ‘체코&슬로바키아 선교와 전망’, 체코 신학자 중 한 명이 ‘동유럽 변화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할 예정이다.

이종실 선교사는 이날 임원회에서 “여전도회전국연합회의 파송을 받아 체코에 간 지 만 13년이 지났는데 중앙유럽연구센터 설립이라는 큰 결실이 맺어졌다”며 “중앙유럽연구센터는 현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 생겨났다는 점에서 주변 선교사들에게 동유럽 선교를 담아내고 또한 선교적 재창출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평가받았으며 한국교회에 선교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02월 20일

표현모 기자 hmpyo@kidokongbo.com

[선교보고]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 출범과 그 소회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 출범과 그 소회

1월 23일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감격과 흥분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와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해하는 선교란 눈에 드러나는 어떤 활동들을 수반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가 천년이 넘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종교개혁을 하며 복음을 위해 목숨도 바쳐보고 심지어 기독교를 부인하기도 하는 사회주의를 경험하였고 그리고 기독교를 거부하는 이들과 대화를 하며 사회주의 안에서 기독교 교회를 새롭게 건설해 보려고 노력한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이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선교현장입니다. 그들을 배우고 따라가기에도 버거울 만큼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들 속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들의 생각의 뿌리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13년간 저의 삶은 날마다 희망과 좌절이 교차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선교적 경험이 있고 한국교회의 선교의 방향타를 잡고 있는 선교 동원가들도 이 현장을 보고 설명을 듣고서야 제가 고민하고 씨름하는 선교가 무엇인지 이해할 정도이니 다른 일반 목회자와 교인들이 저의 선교활동을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현지교회와 함께하고 그들을 열린교회로 만들어가는 작업을 왜 외국 선교사 목사가 해야되며 그것이 왜 선교인가? 쉽게 납득이 가지않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이해해야되고 사회주의의 경험을 이해해야되고 교회와 국가의 특수한 관계를 이해해야하고 그로 인해 형성된 체코 슬로바키아 교회들의 특성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체코 슬로바키아 선교의 방법이 현지교회와 함께 해야되고 열린교회로 만드는 작업이 체코 슬로바키아 선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은 너무나 길고 긴 시간과 열정을 요구합니다.

그동안 수없이 체코와 슬로바키아 교회를 향해 선교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확신에 차서 들었던 깃발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저 홀로 든 깃발이었습니다. 수 없이 깃발을 들고 설명도 하였지만 반응이 없었습니다. 뒤 돌아보면 제가 들었던 깃발들은 체코 슬로바키아 사회와 교회를 점점 이해해가는 과정이었을뿐 이 땅을 향해 들 수 있는 깃발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묘하게 저를 움직여가셨습니다. 결정적인 것이 제가 의지하고 소망이었던 삐섹의 호이까 목사님과 꼬빌리시의 슈토렉 목사님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는 크게 좌절하였습니다. 내가 들어 올렸던 선교 깃발을 진심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두 분이었습니다. 저의 인생 모두가 그 속에 생명을 잃어 소생할 수 없는 절망으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 좌절을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두 분이 계시지 않았기에 저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교회와의 협력 선교 방식을 접고 다른 방식을 택하든지 아니면 이 방식이 옳다면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가 태동한 것입니다. 함께 일할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찾았습니다. 선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깃발을 들었습니다. 슬로바키아에서 까뜨까 수하 목사, 밀란 유릭 교수가 동참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체코교회협의회 회장이 참여하였습니다. 그 분의 적극적인 참여가 놀라울 뿐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자 마자 그 날 밤 참석자들 모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중선연 동지들에게, 오늘 모임에서 협력의 희망을 보았고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제가 첨부한 짧은 글 체코교회의 선교의 모습에 대해 여러분들의 피드 백은 제 소중할 것입니다 파벨 체르니>

그 분이 자신의 교단 전도와 선교 총무를 모시고 왔습니다.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참여를 원하는 관심있는
분들이 더 계십니다.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갈 것입니다. 제가 용기를 잃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꼬빌리시의 우리 교우들이 기도와 함께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면을 빌려 감사를 드리면 앞으로도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역은 모든 선교활동들을 담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국 선교사가 일하다가 떠나면 없어지는 그런 일이 아니라 체코 슬로바키아 동유럽 교회들의 역사에 남을 그런 사역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깊은 관심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광과 감사를 우리 하나님께 올립니다. 할렐루야! (이종실)

[선교보고] 중앙유럽 선교연구센터 설립 배경

중앙유럽 선교연구센터 설립 배경

저는 개인적으로 선교의 토대는 이해하기(understanding)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13년 동안 저는 체코교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체코기독교에 대해서 공부를 하였고 뿐만 아니라 지역의 개 교회들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목회적 비전을 가지고 나름대로 교회의 문제를 인식하며 그것을 극복해 보려는 목회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저는 체코교회가 나의 교회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때로 그들이 자신들의 목회와 비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함께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활동은 특별히 일차적으로 우선 지역의 개 교회들을 목표로 하여 마치 종친회와 같이 폐쇄적인 교회를 소위 선교 프로그램을 통해 열린교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체코와 슬로바키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는데 반듯이 걸어가야 하는 첫걸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함께 교재하며 일했던 목회자들 가운데 신학을 막 졸업하고 열정이 가득찼던 몇몇 젊은 목회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전을 섬기는 교회에서 실천을 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포기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비전 마저도 접어버리고 변해버리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때로는 교회의 전통, 보수적인 교회생활, 교회의 재정문제 등에 의해 교회에서 목회자의 활동이 제동이 걸리는 경우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우 잘 협력이 되던 두 분 목회자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 지역의 개교회에서 폐쇄적인 교회구조를 열린교회로 바꾸는 모델을 시도했던 목표를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일하고 있는 동역자들과 친구들이 지치지 않고 자신들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연대의 필연성을 숙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 다빗 유레흐 목사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이야기 나누면서 단체의 태동을 보게된 것입니다.

체코교회가 아주 제한된 선교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전도와 선교는 체코기독교 안에서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지리적 차이가 있습니다. 1910년 에딘버러에서 국제선교컨퍼런스 총회 때 부터 복음과 선교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이 나타난 이후 기독교 교회는 자신의 사명과 과제를 깊이 숙고하게 되었습니다. 1910년 에딘버러 총회 이후의 선교개념이 아직 체코와 슬로바키아 교회 안에서 충분히 이해되거나 논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가 세가지 분야의 과제를 갖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첫째; 체코 슬로바키아 교회들에게 선교신학을 소개하는 일입니다. 두번째; 선교신학적 해석이 가능한 내용을 포함한 체코 슬로바키아 신학자들의 저서나 논문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외국 선교신학자들이 체코 슬로바키아 교회의 선교신학을 이해하도록 도우며 그들의 글을 다시 체코와 슬로바키아 교회들에게 소개하는 일입니다. 셋째; 지역 개 교회들의 목회 디아코니아 전도 사역을 지원하며 아직 특별히 다른 활동이 없어 교회의 특별한 활동 즉 자신의 지역사회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활동이 필요한 다른 교회들에게 그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조직하고, 돕고 확산시키는 일입니다.

* 위의 내용은 1월 23일 전체 모임에서 이종실 목사가 발재한 내용 입니다.

[기고글] 성공적 모델 분석 통해 효과적 방향 제시 기대

2007년 2월 3일 기독공보

선교특집/ 한국교회 해외 선교, 이렇게 업그레이드하라

협력 선교
성공적 모델 분석 통해 효과적 방향 제시 기대
이 종 실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고장난 레코드처럼 해외 선교에 대해 똑 같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똑 부러지는 대안 없이 계속 지적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선교지에서의 선교사들의 협력문제이다. 새로운 해결책이라고 내어놓으면 오히려 또 다른 문제만 야기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선교부(이하 선교부)가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지 선교회의 활성화’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적절하게 제시하였지만 접근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선교부의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오른쪽 상단에 80개국 5백18가정 9백49명의 파송현황이 나온다. 조금 관심을 가지고 선교부 직원현황을 보면 총무를 포함해서 고작 여섯 명이다. 직원 한 명당 선교지 최소 12개국 약90가정 1백55명 선교사들을 담당하는 셈이다. 게다가 선교부 각종 회의까지 담당해야 한다. 그들의 업무는 가히 살인적이다. 선교사가 더 파송 될수록 선교부 직원들도 허리가 휘겠지만 선교사들의 선교지 상황은 더 악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선교부가 원치 않더라도 행정편의주의로 갈 수 밖에 없고 그 결과는 선교사들에게 선교부가 선교비 창구 통일로 재정(선교비)과 인사권(파송)을 독점하고 있는 권력기관으로 나타날 여지가 있으며 그렇다면 이것은 또 다른 선교지의 갈등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선교부가 관심을 가지고 업무의 온라인화와 함께 내놓은 기존의 국가 단위에서 몇 개의 국가를 함께 묶은 수정된 현지 선교회 정책에서 불행하게도 행정편의주의를 읽을 수 있다. 선교부가 인적 자원을 충당해서 선교부 주도로 면밀하게 선교현장을 연구하고 지도와 관리를 하던지,아니면 현장의 문제를 현지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선교사들에게 위임을 하려면 차라리 선교지 바닥에서 현지 선교회 정책이 올라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재 선교부의 현실 상황에도 맞고 그리고 교단이 해외선교의 큰 틀을 유지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선교는 지역교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우리교단의 해외선교 정서에도 오히려 가까울 수 있다.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현지 선교회의 바람직한 모델들이 나오고 있다. 선교부는 이 모델들의 태동 과정과 시행착오 그리고 극복 과정을 분석해서 다른 선교지와 공유하고 확산하도록 돕는 통로역할만 하여도 그것으로 정책적인 선교 현지 지도가 가능하다.

지적되는 선교 현지의 선교사들의 협력을 저해하는 원인들 즉 경쟁적 선교활동과 중복투자의 문제, 선교사 재배치 문제,선교사 사역과 재정의 투명성 문제, 같은 선교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하고 그로 인한 선교정책의 혼선,선교사들의 바른 관계를 어렵게 하는 타문화에 오래 노출된 선교사들의 인성과 실존 그리고 영성의 문제,현지인 또는 현지 교회와의 관계의 문제,선교신학적 차이의 문제 그리고 선교사의 바르지 못한 선교동기 등의 문제들의 조속한 해결은 선교사들에게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어 있음을 선교사 자신들은 알고 있다.

[살며 생각하며] 멜 깁슨의 복음

나눔터 35호 (2004년 3월)

멜 깁슨의 복음

죽음을 기억하며 인간의 죄를 깨닫는 “재의 수요일” 즉 기독교의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는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는 날에 미국과 캐나다 전역 4,000여 개 극장에서 개봉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 리얼한 폭력
장면으로 최근에 세간의 관심을 끌고있다.

유대인 단체는 “영화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비판을 한다. 그리스 정교회 수장인 흐리스토둘로스 대주교 역시 십자가 처형의 폭력 장면들이 반유대주의를 다시 유발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 1977년 “나사렛의 예수”란 명작을 직접 만든 감독 제피렐리(81)는 피와 유혈싸움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영화로 평을 하며 이 영화가 “쏟아진 피가 유대인들의 잘못이라는 것 말고 관람객들 특히 젊은이들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이겠는가”고 반문했다.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의 증오를 선동하는 이런 영화는 이스라엘에서 상영금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기존의 예수 영화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이적 등을 거룩하게 묘사한 뒤 단지 고난과 죽음은 부활이라는 클라이맥스를 위한 긴장으로 묘사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수난”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이 그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완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영화라고 평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상반되는 의견을 이끌어낸 영화의 폭력장면을 한번 직접 본 사람들은 “참혹한 영상이 2시간 7분 동안 끊어지지
않았다.” “잔혹한 폭력 앞에 고결한 예수는 없었다.” “가장 잔혹한 새디스트 집단에 의해 학대 당하는 한 인간을 묘사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뒤에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정도였다.”라고 말한다.

그 동안에 예수를 주재로 하는 많은 영화들이 있었다. 1992년도의 영국 버밍험에서의 경험이니 10년이 넘었다. 예수를
주제로 한 영화를 모아 20세기 이후 최고의 종교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알려진 하비 콕스 (Havy Cox, 1929. 5. 19 -)가 영화 속에 나오는 예수의 모습이 각각 다른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B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외국 학생들과 복음서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에 대해 토론을 한적이 있다.

영화 속의 전통적인 예수의 모습은 온순하면서 저항적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직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예수의 모습은 “몬트리올 예수”에서 완전히 무너진다. 수염이 없고 젊고 힘이 넘치며 저항적인 예수를 상상케 한다. 그리고 “마지막 유혹”에서의 예수는 신 같은 존재가 아닌 유혹을 받고 또 그 유혹에 빠지는 고민을 하는 그런 우리 인간과 같은 모습이다. 이와 같이 영화 속의 예수의 모습이 각각 다른 것은 영화가 상영되는 그 당시의 사회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하비 콕스의 주장이다.

이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한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 멜 깁슨(Mel Gibson)은 왜 가장 수난 받은 예수의 마지막 생애 12시간을 2시간 7분짜리 영화로 만들었을까? 왜 수난 받아 고통 당하는 예수의 모습을 그토록 생생하게 재현하였을까?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성장하였고 그곳에 있는 카톨릭 학교를 다녔다. 전통적인 라틴어 미사를 지금도 주장하며 성경본문 그대로의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이번 영화는 이러한 그의 보수적인 신앙과 무관하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영화를 영어 자막 없이 아람어와 라틴어만으로 상영하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영상을 통해 인간의 죄를 스스로 감당한 예수가 실제로 고통을 받았던 것을 보여주길 원하였다. 그는 어거스틴이 참회록을 쓰던 그 마음으로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영상으로 옮겼다고 한다.

영화 제작의 동기가 단지 개인의 신앙의 체험과 영화의 작품성이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 “수난”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영상은 선악을 구분하여 폭력, 테러, 갈등, 전쟁, 분쟁을 스스로 정당화 하는 우리 인간을 향한 복음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신을 대신 하거나 신을 부정하려는 인간 세상에 보여주는 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