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14)

2012년 1월 14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84편 11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장 6절)
묵상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해와 방패되십니다.
해가 없으면 우리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이 식물을 심고 물을 주며 길러도
해가 없으면 식물은 자라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우리에게 그런 분이십니다.
인간은 죄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죄는 하나님 보다 높아지는 인간의 모든 마음들입니다.
성경의 바벨탑은 하나님 없는 인간문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문명은 죄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모든 인간의 노력은 죄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떠날려고 하는 인간의 속성은 죄 그 자체입니다.
죄는 사탄의 무기입니다.
그러나 이 죄로 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은 예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인간의 모든 죄보다 더 크고 강합니다.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모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보호하고 구원하는 방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됩니다.
우리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직한 마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을 환하게 비추어줍니다. 
기도
주님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안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새롭게 깨닫는 하루가 되게하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에게 닥쳐올
파도같은 모든 삶의 문제와 염려 속에서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되시며 산성되심을 체험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2013년 성경읽기에 동참하려는 성도들이 계셔서 감사
나 자신이 교회이며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하셔서 감사
오직 십자가 사랑만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결단을 주셔서 감사
13주년 행사에 식탁으로, 케이크로, 과일로, 찬양으로 섬긴 섬김들을 감사
모든 섬김들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인 헌신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사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 가는 우리교회를 인해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12)

2013년 1월 12일 오늘의 말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장 27절)
묵상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두 종류의 교회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 (가현교회)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비가현교회)
눈에 보이는 교회는 기관으로서 조직되어 지상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는 본질적인 의미로서의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기관으로서 지상에 세워진 눈에 보이는 교회 
예를들어 우리교회인 꼬빌리시 교회같은 경우입니다.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가 좋은 교회냐 아니냐의 판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본질에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조직의 관점에서 교회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마치 가족과 같습니다.
손가락 크기가 모두 다르듯이 
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자식들도 모두 다릅니다. 
성장과정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일의 성취도 다르고
하는 일들도 다릅니다. 모범생이 있는가 하면, 문제아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은 찢어지지 않습니다.
가족은 하나입니다.
한국개신교 교회와 그 구성원들의 취약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한국사회 자체가 지역공동체 기반이 형성될 수 없을만큼
거주이동이 빈번하고, 대가족에서 핵가족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
공동체의 개념이 와해되고 개인주의적 경쟁사회로 치닫고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 공동체가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관점에서
사회의 정신적 영적 비전을 제시해야 되는데
오히려 개인주의적 경쟁의 사회구조를 가속화시키는데 기여를 하였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꼬빌리시 교회를 목회하는 저의 목회적 과제이며
목사로서 해야될 영적투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세우시며 우리에게 주신 숙제였습니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본질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기독교 성도들의 
신앙의 잘못된 가치관의 회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내주하시는 성령님께 진실되게 귀를 기울이면
한국교회와 그 성도들을 향하여 
성령님께서 그 길을 계속 조명하고 계신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그 성령님의 조명을 따라 
걸어가느냐 아니냐의 순종의 문제입니다.
이 길을 걸을때 오는 영적 기쁨과 만족을 
우리 모두가 함께 체험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고있지만
그런데 우리 기독교 성도들이 그 비판을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교회의 비판앞에서
비판 받는 교회를 떠나던지
아니면 교회를 이루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것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자세일 것입니다.
주님,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 탓입니다.
내 탓입니다.
주님,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동하지 못할때
누군가가 그래도 아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동하고 있는 성도가 있음을
알게하시고
내가 자기 만족에 빠져있을때,
누군가가 그래도 아직
고통스러운 영적 투쟁을 하고 있는 성도가 있음을
알게하시고
내가 기도하지 않고 있을때,
누군가가 그래도 아직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 성도가 있음을
알게하시어
그래서 당신이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교회를 
아직까지 붙잡고 계심을 깨닫게하옵소서.
주님
지상에 눈에 보이는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은
내 탓입니다.
내 탓입니다.
하나님 나라로서 교회의 본질이 
우리 교회 안에 드러날 수 있도록
나와 성도들을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상에 세워진 교회로 인해 감사
지난 13년간 꼬빌리시 교회를 통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영적씨름을 하게 하심을 감사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때마다 겸손을 배우게 하셨으니 감사
겸손은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임을 깨닫게하신것도 감사
목사로서 나의 일이 나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임을 고백하게하신것도 감사
그래서 일의 성공과 실패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케하시니 감사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에게 큰 비전을 보여주시니 감사
이를 위해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임을 알게하시니 감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주셨으니 
그 비전이 이루어질 줄 또한 믿게하시니 감사
2012년 성실하게 성경일독을 하게하신 교우들이 계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11)

2013년 1월 11일 오늘의 말씀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놓으리로다
(이사야 26장 19절)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묵상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땅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땅 마저도 불에 타 검은 색으로 변하였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바벨론의 포로들이 되었습니다.
이때의 상황을 이사야는 26장에서 더 처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었다.
다시 살지 못할것이다.
사망하였다.
일어서지 못할것이다.
주께서 벌하셔서 그들을 멸하셨기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다.
(이사야 26장 14절)
그들은 멸절되었습니다.
몸만 죽은 것이 아니라 모든 기억까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징계는 희망의 시작입니다.
주님이 완전히 파괴하고 멸절한 그 곳에서
주님이 새로운 희망을 손수 일으키십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미운 자식에게는 떡하나 더주고
아끼는 자식에게는 회초리를 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구원의 역사를 완수해 나가시기 위해
당신이 선택한 백성에게 책임을 묻고 회초리를 드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아들에게 우리 인류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십자가의 회초리를 직접 드셨습니다.
얼마나 혹독했는지 사람들은 예수가 <저주를 받아 싫어 버린바 되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밖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를 십자가에 완전히 죽여야 하나님이 우리를 살립니다.
참된 희망을 위해서 우리는 세속에 물든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죽여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망울을 사랑하십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망울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그 눈망울을 바라보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매일 다시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 귀를 기울이면 
성령께서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모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세상의 모든 염려가 사라집니다.
나도 모르는 담대함이 생깁니다.
세상의 판단과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일장춘몽의 허무한 꿈과 같은 것임을 알게됩니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새 희망이 내 안에서 생겨납니다.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용솟음치게 됩니다.
기도
주님,
오늘 이사야의 예언이
나의 찬양이 되게하시 감사합니다.
매일 나는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네
내 영혼만 소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병들고 지치고 고단한 삶에 찌든 
내 육신까지 힘을 얻으리라
희망이 사라져 티끌처럼 
땅 바닥에 누워버린 내 영혼과 육신이
십자가를 바라보니
새 노래가 내 영혼에서 흘러나오네
티끌처럼 산산히 부서진 내 영혼이
주의 은혜의 이슬로 다시 힘을 얻고
주님이 당신의 형상을 따라
나를 새롭게 창조하시네
나는 죽음의 땅에서 다시 일어서네
죽음의 땅이 나를 억압하지 못하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린 손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니 감사
자원하여 13주년 예배를 준비하는 성도가 계시니 감사
우리 교회가 지난 13년동안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반성하고 회개하고 순종하게 하시니 감사
감사하니 감사가 깨달음임을 알게하시고 더 감사하게 하시니 감사
하나님 말씀대로 믿으면 믿는대로 될줄 믿어지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10)

2013년 1월 10일 오늘의 말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역대하 19장 7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누가복음 15장 1-2절)
묵상
유대왕 여호사밧은 마치 바다의 파도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왕 아합과 동맹을 맺어 백성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사법제도개혁을 시도하여 국정의 안정을 꾀하였습니다.
사법제도는 사회의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것이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크고 작은 모든 판단과 결정이 
오늘 말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판단과 결정은 불의함과 치우침과 
뇌물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와 <뇌물>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의 역사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뇌물>을 받고 성직을 주는 <성직매매>와 같은 
교회 타락이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뇌물>을 받으면 판단의 <불의함>과 <치우침>이 
있을 수 박에 없습니다.
공의롭지 못한 교회 재판 때문에 
교회의 분규가 법정 재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들은 많이 보고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사법 시스템으로서의 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의 판단력은 바로 우리 성도들의 판단력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의 욕망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교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만큼 열심있는 신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력은 하나님의 통치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렇게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았던 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꼬빌리시 성도 여러분,
우리의 판단력이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신앙이해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인정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부족하고 결함과 한계가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신앙의 왕초보 처럼
언제나 우리는 스스로 믿음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잃지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들을 
당신의 오른손으로 붙잡으셔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펼쳐나가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쓰임받는 우리와 우리 교회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 성도들의 판단과 결정이
하나님의 통치행위와 관련있음을
알게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흐려진 판단력
우리들의 욕망에 이끌린 결정들
우리들의 이기적인 당파심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앞에서 불의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장신대 신대원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방문을 감사
방문자들 모두 프로그램을 만족할 수 있어서 감사.
이를 위해 뒤에서 도운 손길들로 인하여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8)

2013년 1월 8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예레미야 14장 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묵상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으 절규를 듣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유다가 멸망하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굳게 믿고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의 파괴는 충격이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의 절규 가운데
<그래도>라는 단어가 우리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신실하신 우리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한 일들의 실패와 좌절을 경험
하였다면,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예레미야 선지자 처럼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마치 
젖먹는 아기를 어미가 돌보듯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시고 택하여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성장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자기의 계획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한 일들이
나의 생애 가운데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철저한 회개를 피해갔던 때까 얼마나 많았습니까?
주님,
이러한 나의 모습은
내 뼛 속, 세포 속 까지
당신에 대한 교만과 거부로 가득채워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
내 뼛 속, 세포 속 까지 
당신의 사랑이 스며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합니까?
그러나 당신의 사랑이 죄악으로 가득찬 내 골수 세포 속
곳곳까지 스며들기까지 내 생애 모든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도
<그래도 당신은 내 안에 계신다>는 고백으로 
끝까지 당신을 의지하고 신뢰하겠습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받들려는 봉사자가 있음을 감사
구역성경공부로 다시 모이게 하신것 감사
구역성경공부를 통해 부흥을 체험하는 우리교회될 것을 믿으며 감사
구역성경공부 인도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실것을 믿으며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