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24)

2013년 10월 24일 오늘의 말씀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호세아 13장 5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마태복음 13장 32절)
묵상
성경은 자주 광야를 언급합니다. 
광야와 하나님의 백성, 두개의 이미지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광야는 고난과 시험과 시련을 의미하는 장소입니다.
하갈이 자기의 아들과 함께 광야로 도망을 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광야를 지나갔습니다.
예수님도 마귀에게 이끌려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호세아는 광야는 깨달음의 장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광야에 있는 나를 아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경험적으로 볼때, 우리 인간은 가장 힘들고 어려움을 겪을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전 광야에서 40년간 지날때
하나님이 가까이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그 광야에서
하나님을 불평하고 의심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우리 인간은 이처럼 하나님의 현존을 깨달으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신뢰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처럼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눈은 광야에 높이 들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믿음과 불신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혜를 따라 
약속의 땅, 부활의 소망을 끝까지 바라본다면,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믿음과 불신 사이를 늘 오가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2. 출타중인 교역자들을 위해서
3. 출타중인 교우들을 위해서 
4. 제10차 부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위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좋은 날씨여서 감사
이슬람 선교의 기초를 다지는 일들에 평생을 헌신하는 일꾼들이 있어서 감사
체코 슬로바키아 선교의 전문성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되어 감사
돈으로 세워진 사막의 제국에서 하나님을 더 뚜렷하게 생각나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23)

2013년 10월 23일 오늘의 말씀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창세기 18장 27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누가복음 11장 10절)
묵상
인간은 처음 부터 하나님께 모든 것을 원했습니다.
에덴에서 모든 것을 가졌으나 
딱 하나 하나님이 금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결국 맛을 보게됩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한 첫 대화가 변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의 아들 가인도 하나님의 질문에 변명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모든 것을 원하는 인간은 자신의 잘못
즉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은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 처럼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누리지 못하는 것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내 유산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 집에서 누리지 못하는 것을 찾아 
아버지 집을 떠나게됩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성경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닮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 위의 모든 것을 더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있는 곳은 소돔과 고모라 였습니다.
모든 것을 누리고 더 많은 것을 원해 제 멋대로 살아가던 
그 도시의 사람들도 하나님께 또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의미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의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가?>
질문하시며 그것을 확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민들의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달리
그들의 행위는 악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고 아브라함이 간청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계획까지는 바꾸지 못했지만
그 도시에 사는 조차 롯의 가족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도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것은 아브라함 처럼
하나님앞에서 나는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우리는 하나님께 바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아는 문제는
나의 삶의 존재 방식과 방향성을 결정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는 허망한것 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모든 것을 원하나 
부모는 자녀들의 나이와 신분에 걸맞지 않는 모든 것을 
허락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두바이에서 지금 저를 포함하여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중동에서온 다른 네분들과 함께
모두 다섯 사람이 어떤 의제없이 
한국교회와 그 선교를 위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대화 가운데 제가 해방을 느끼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를 누르고 있었던 선교의 결과에 대한 마음의 짐들로 부터
해방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선교를 하기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누구인지
왜 무엇을 위해서 살고있는지 
이제 잠시 멈추어 뒤돌아 볼때가 되었습니다.
방향성을 재조정하고 <여정>을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으로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됩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내 존재의 방향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향하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이 되게하옵소서
2. 출타중인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요. 
3. 교역자들이 모두 출타중인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좋은 만남을 주셔서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21)

2013년 10월 21일 오늘의 말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장 27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 상반절)
묵상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의 마음을 바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을 두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되고, 
그 뜻을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갖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 약속에 집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자신의 영을 넣어 두려는 많은 시도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하나님의 시도에 
신실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될 것입니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아프고 불편하고 신경이 쓰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에 박히면 
자신의 뜻대로 살던 습성이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순종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늘 꾸준히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고 배반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결국 인간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가 2천년을 흐르게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하나님의 영에 귀를 기울이고
그 영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숙고를 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을 열고 내 안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영의 실체를 
깊이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가을의 정취가 더욱 심오하게 될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우리 인간의 삶을 참되게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더 깊이 깨닫는 하루가 되게하옵소서.
2.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3. 이 대회 개회예배에 맞추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도하며 베를린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북한을 통과해서 부산까지 운행하는 평화열차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4. 이종실 손신일 류광현 세분 목회자들의 출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5. 다음 주 예배와 설교하실 파루쉬 학장님(국제침례신학대학) 설교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6. 청년들의 학교생활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9월 감사기도에 동참하게 해주셔서 감사
우리교회가 체코교회와 체코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해주셔서 감사
짧은 체류기간이지만 진지한 청년들을 많이 보내주셔서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18)

2013년 10월 18일 오늘의 말씀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편 139편 3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장 6절)
묵상
신앙생활은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의미를 어제 “꼬빌리시 새벽묵상”에서
말씀드렸습니다.기억하시나요? ㅎㅎㅎ
“자신의 죄로 부터 구원을 찾는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살아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각자 저마다 자기 자신의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립니다.
일제 시대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독립투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이처럼  늘 언제나 선과 악이 뚜렷한 상황이 아니어서
각자의 삶의 의미와 노력들이 존중받으며 지켜지는 것이 쉽지않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의 뜻과 노력들은 소중하게 여기면서
타인의 삶과 노력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주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더 나아가 배우고 본받고 함께 이루어보려는 마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로 부터 침해와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심하면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가까운 예로는 친구관계, 부부관계 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상의 경험은 
절대 가치관의 파괴의 포스트모던 사회의 경향과
물질주의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족과 지역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반사회적 경향은 안타깝게도 교회 공동체에도 영향을 주고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물결은 오히려 우리에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깊은 영적교제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있습니다.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스스로 찌르는 무기가 되고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영혼들이 됩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연약하여 상처를 받아야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탕자인것을 깨닫게되고
다시 아버지를 생각하게됩니다.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시고
나의 모든 행위를 잘알아 나를 권면하시는 아버지를 보게됩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음성을 듣게됩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은혜로 충족한 인생이 되게하옵소서.
2.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되게하옵소서.
3. 우리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염려를 잊으라고 하시지않고 감사함으로 간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힘을 얻으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17)

2013년 10월 17일 오늘의 말씀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시편 130편 8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장 4-5절)
묵상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찾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행복과 안정과 건강과 축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생활에 따라오는 선물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바라보아야할 달을 보지않고 
손가락 끝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은 자신의 죄로 부터 구원을 찾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안에 있는 죄가 모두 사라져 
다시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아는 그 순간 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신 무한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깨닫는 순간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두개의 법이 내 안에서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 싸움의 과정에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줄까”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죄의 법에 늘 굴복을 하지만 패해하지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 죄의 법에 굴복한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들여
우리는 날마다 오뚝이처럼 새롭게 일어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서의 우리의 삶이 끝이 아닌것을 알기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오늘 이 하루를 바라보는 오늘이 아니라 
다가올 마지막 심판의 날을 바라보는 오늘을 삽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중요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의 날이 되며, 
하루의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하나님을 바르게 믿어 오늘 하루를 구원의 날, 은혜의 날이 되게하옵소서. 우리가 매일 찾고 갈망해야 하는 것이 구원의 은혜임을 알게해 주옵소서
2. 우리 형제 자매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삶의 위기의 고통을 겪는 형제와 자매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우리 형제 자매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를 한번 방문하고 우리 교회의 사역을 소중히 여겨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