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02)

2013년 10월 2일 오늘의 말씀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자 니라
(잠언 14장 21절)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누가복음 6장 36절)
묵상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고 실천하여
그의 사랑을 본받고 완성해 가는 노력을
인생의 중요한 과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 크리스천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개인적인 인격의 차원에서 완성시켜 나가는 것에 대해
관심이 머무르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가운데 사람의 성품은 좋은데
이기적인 모습을 공동체 속에서 드러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개인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동시에 노력해야 온전하게 완성되어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에 대해 관심이 없는 성도는 
자기를 성찰해야 합니다.
사회의 가난한자 불쌍한자에 대한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자기중심적인 사랑으로 제한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향하여 독일 신학자 본 회퍼는 
“값싼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부부 관계에서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부부간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내가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것입니다.
제일 어렵고 상처를 주는 관계가 사실은 부부관계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살피지않고 책임감으로 유지되는 부부관계는 
한 순간에 무너지고 파경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타적인 사랑을 세워가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형제 자매들의 모든 수고와 헌신이 있기에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수고와 헌신을 서로 감사할 수 있고
격려하고 동참하는 노력이 자기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켜 나가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가난과 재난과 불행을 당한 이웃들을 위해
교회 공동체가 관심을 가질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과의 연대하는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자손들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믿음의 유산입니다.
이와같은 유산이 많을 수록 우리의 후손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자기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당장에는 좋아보일것 같지만 그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이 일에 앞장을 서게되면 
그들이 모이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단체에 불과하게됩니다.
이타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이 많을 수록 
복있는 자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다함께 기도 하십시다
1
이타적인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부족한 모습을 스스로 깨닫고 고칠 수 있도록
성령이여 나를 도와 주옵소서
2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해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소서.
3
경제적으로 질병으로 여러가지 삶의 문제로 
고통받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사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이루어질줄 믿으니 감사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
그 교회를 눈에 보이는 교회 가운데 세우는 노력을 하게 하시니 감사
이 모든 일이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하시니 감사
오직 복음의 능력을 믿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역사를 보게 될 줄 믿으니 감사  

긍휼의 삶 (2)

긍휼의 삶은 서로 고통을 함께하며 사는 것입니다.
긍휼의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사는 길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돌보며 사는 삶입니다.
둘째로, ‘평범하고 적당한 자리’을 떠나 이동하는 삶입니다.
셋째로, 인내로 기도하며 행동하는 삶입니다.
앞서 가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 교회와 세상에서 긍휼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설교전문 첨부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01)

2013년 10월 1일 오늘의 말씀
(엘리사가 사환에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열왕기하 6장 16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2장 3절)
묵상
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위해 비밀작전을 펼치지만
번번히 비밀이 새어나가 이스라엘 군대가 사전에 대비를 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아람 왕은 비밀 누설자를 색출할것을 명령하였고
비밀 누설자는 내부 소행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였음을 알게됩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먼저 자신들의 계획을 사전에 알아차리는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해 많은 군대를 보내 그가 살고 있던 성을 
물샐틈없이 에워쌓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엘리사의 사환 (게아시)가 아람 군대를 보고 놀라
엘리사를 깨웁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사환의 눈을 열어 아람 군대 숫자보다 더 많은
불과 병기를 들고 아람 군대를 포위하고 있는 천사 군대를 보게합니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엘리사의 이야기는 2천년 기독교 역사 안에서 
그리고 오늘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권력과 힘보다 더 크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성도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보게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려하지 않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많은 크리스천들 조차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지위고하, 학벌유무를 막론하고 너무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많은 한국교회가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 목사 개인의 능력과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한 마켓팅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도 복음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지위와 능력과 인맥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로는 믿으면서 실제 삶은 믿음과 동떨어지는 현상의 원인입니다.
성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는 온전히 기도하며, 더 효과적이고 복음적인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두시고, 
우리들이 그 마음의 소원을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일하십니다. (빌 2:13)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판단하는 성도는
모든 이들이 비판하는 잘못된 교회의 길을 자신도 따라가게되고
결국 자신도 신앙의 회의에 봉착하게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도 우리는 많은 판단과 선택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곧 바른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믿지못하고
자신의 마음과 경험에 맞는 판단과 선택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잘못 알고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 혼탁한 길을 벗어나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1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소서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있는 믿음 주옵소서
진리가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수백년 동안 
온갖 희생과 환난을 당하면서도 바른 믿음을 지켜온
체코 개혁자들의 믿음을 우리가 갖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땅과 세상을 복음을 새롭게하는 
비전으로 사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십시다
2
우리 형제 자매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기도하십시다.
3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하십시다
체코와 한국교회를 새롭게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믿음의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구역성경공부 모임을 부흥케하시니 감사
하나님의 능력을 이 새벽에 보게하시니 감사
진리가 승리함을 믿고 우직하게 살게하시니 감사
남을 구원하면서 자신은 오히려 버림받는 어리석음을 늘 경계하게 하시니 감사
한국에서 유럽 복음화에 대해 잘 발표하고 돌아오게 하시니 감사

긍휼의 삶 (1)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의 삶으로 부르십니다.
긍휼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로 다가가 거기에 자리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고통을 다 없애버리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고통을 함께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 역시
고난 중에 있는 이들과 그 고통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을 체험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자기를 제쳐 두고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우십시오.
자신을 잊을 정도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십시오.”
이 긍휼의 삶으로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응답하기로 결단하고 주의 은혜를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설교전문 첨부.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9.19)

2013년 9월 19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시편 116편 1절)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장 8절 하반절)
묵상
시편 116편 기자는 이 찬양을 
인생의 밑바닥에 처해있을때 불렀습니다.
죽음의 올가미가 그를 얽어매고
스올의 고통이 엄습하여
고난과 고통이 쓰나미 처럼 덮쳐올때
그가 불렀던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특별한 체험이라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스러운 환난 속에서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고 계십니다.
삶의 두려움과 고통에 짓눌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강물 속에 빠지면 질식하여 물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고통만 느낄 분입니다.
그러나 강물은 도도히 바다를 향해 흘러갑니다.
오늘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 속에 매몰되면 
소망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삶의 큰 흐름을 보지못하고
삶의 두려움과 고통에 질식되어 허덕거리며 순간 순간을 살아갈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 기자처럼
우리는 고통의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인 소망을 바라보십시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의 간구를 듣고있다”
“너가 간구하기 전에 너에게 필요한 것을 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불안한 내 삶의 뿌리를 자꾸 부여잡으려 하지 마십시다.
내가 생각하는 체면과 인생의 계획들을 용기를 내어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십시다.
그래야 소망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아버지 십니다.
기도
1
나의 믿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내 삶의 두려움과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내 인생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십시다.
2
우리의 꼬빌리시 형제 자매들, 고국의 가족들과 친지들이
오직 우리의 현실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된것이 참 감사한 일임을 
이 새벽에 새롭게 느껴지게 하시니 감사.
어린 자녀를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
체코 자녀들과 함께 우리 자녀들이 교리공부를 할 수 있게하시니 감사
꼬빌리시의 자녀들이 체코사회의 기둥같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게 하실 줄 믿으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