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92013.06.18)

2013년 6월 18일 오늘의 말씀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편 30편 11절)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지라
(누가복음 13장 12-13절)
묵상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오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오직 기독교인만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기독교인은 자연인이 알지 못하는 용기를 획득한다.
이 용기는 더 두려움 더 무서운것을 배움으로 획득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우리의 실존이 절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성도들에게 절망은 “불신앙”의 다른 표현입니다.
인간의 육신과 존재는 질병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질병을 두려워하는 것은 질병이 주는 공포의 음성을 듣기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죄로 병든 자신의 존재의 음성을 듣기때문에
마음에 분노와 불안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죄로 병든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인생의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병든 인생의 경험의 음성을 듣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마음의 질병들은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오늘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나를 “죽음에 이르게하는 병”으로 이끄는 사탄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소망과 치유에 이르게하는 나의 주인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싸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요.
염려와 두려움을 집착하게 만드는 질병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요.
염려와 두려움과 좌절로 이끄는 인생의 경험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요.
나를 좌절하게하고 절망하게하고 두려워 염려하게하는
나의 삶의 환경과 조건과 상황에 내 마음을 더 이상 빼앗기지 마십시요 
오직 우리를 창조하시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길 원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의 음성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음성만이 우리의 슬픔을 춤과 기쁨으로
우리의 실패를 성공으로, 우리의 두려움과 염려를 확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우리 주님으로 부터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재화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내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맡겨버립시다.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살리던지 죽이던지 하게하십시다.
기도
1
이제 내 마음과 나의 삶 모두를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더 노력할 조그마한 힘 조차 없습니다.
당신의 십자가 그늘아래 나는 쓰러져 있습니다.
나를 살리던지 죽이던지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간절히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립시다.
2
어제 하루를 돌아보십시다.
주님과 얼마나 깊이 동행하는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자신을 성찰해 보십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로 물든 내 마음의 소리에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니 감사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낙심과 불안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1.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크고 신실하심을 기억하십시오.
– 하나님께서 내게 여전히 베풀고 계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십시오.
2.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 마음의 답답함과 원통함을 하나님께 토로하십시오.
– 하나님을 대신해 내 영혼을 향해 설교하십시오.
낙심과 불안의 상황 속에 있습니까?
슬픔으로 숙여진 고개를 들고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납게 요동하는 마음을 추스르고 이제 소망의 닻을 하나님께 내리십시오!
* 설교전문 첨부.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6.15)

2013년 6월 15일 오늘의 말씀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느헤미야 9장 17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누가복음 11장 4절)
묵상
기독교 복음이 세상의 문화로 가장 뿌리깊게 정착된 것이
6일간 일하고 하루를 쉬는 달력인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 성도들에게 주간단위의 달력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살지 않도록 늘 회상을 시켜줍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늘 기억하며 살지못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때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놀듯이
우리들의 세상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듯이 
우리 그리스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
혼탁해진 우리의 영혼을 다시 새롭게 깨끗함을 받습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와
얼마나 우리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 않았는지
한주동안 우리에게 행하셨던 아버지의 일들을 
얼마나 기억하지 못하였는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기위해 희생의 십자가 사랑을 베푸셨지만
우리가 얼마나 죄의 종노릇하며 살려고 하였는지
우리가 얼마나 고집스럽고 교만하고 패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버지 집에 돌아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로소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못난 나를 향한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큰지깨닫게 됩니다.
어떤것도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끊을 것이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을 머리와 가슴으로만 아는것이 아니라
이 아버지의 사랑이 내게 능력과 힘이 되기 위해서
내가 해야될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하심을 온전하게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이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라 클럽입니다.
내일 거룩한 주님의 날에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아름다운 모임이 되기를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
1
바른 믿음을 세우기위한 마음의 갈망이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발견하는 거룩한 예배 모임이 되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하십시다.
2
어제 하루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 주님과의 동행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점검해 보십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6.14)

2013년 6월 14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열왕기상 19장 11-12절)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3장 37절)
묵상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무엇을 듣고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듣고 계시는 것이 분명 <주님의 음성>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선동소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다른 목소리를 <주님의 음성>으로 착각하고 있는 
교인들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혼탁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교인들에게 잘못 가르치는 거룩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오죽했으면 이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기위해 
내가 듣고 있는 음성이 <주님의 음성>인지 확인하기 위해 
오늘 우리들은 개교회주의와 교회성장주의에 매몰된 한국교회에서 듣고 배운 모든것을
다 무너트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완전히 신앙의 초짜처럼 복음으로 돌아가 
하나 하나 확인하며 새롭게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있는 것이
크고 강한 바람 소리인지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소리인지
지진 소리인지
불타는 소리인지
우리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스스로 검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고요하며 세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고 듣고 있는 모든 소리를 다 제거해 버리고
진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신자들 뿐 아니라 
복음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제거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매일 새롭게 시작하듯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의 삶이 이와같아야 합니다.
기도
1  
예루살렘 성전에 가리워 복음을 알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하여
우리주님은 이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주님의 음성을 헷갈리게 만드는 모든 것을 버리게 하옵소서
주님의 음성인줄 잘못 알고 잘못듣고 보고있는 것을 버리게 하옵소서
내 교만과 아집과 주장을 버리게 하옵소서
나는 죽고 내 안에 십자가만이 살아나 오직 주님의 복음의 소리만 듣게하옵소서
십자가와 함께 십자가의 음성을 들으며 십자가로 승리하는 신자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십시다.
 
2
어제 하루를 돌아보십시다.
침상에서 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예수님 생각했습니까?
하루 일용할 양식을 섭취하면서 예수님 생각 했습니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했습니까?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때, 이 때는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을까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전혀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갑자기 생각난 적이 있었습니까?
그 사건 또는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하루 일을 마치고 침상에 들어가 수면상태로 들어가기전 예수님께 감사했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6.12)

2013년 6월 12일 오늘의 말씀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시편 111편 1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며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장 16절)
묵상
<정직한 마음>이 오늘 새벽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정직>의 잣대는 무엇일까?
시편이 언급한 <통회하는 심령> <상한 심령>이 
<정직한 마음>과 관련이 있을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모두가 똑 같은 경험을 하게됩니다.
다름 아닌 <회개>입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깊게 성찰하고 깨닫게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마음이 정직한 마음이며
그 마음들이 모이는 모임인 교회는 지상의 천국일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자기 자신이 이 모임의 일원임을 하나님께 감사하게됩니다.
요즈음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소위 <좋은 교회>를 찾아 교회를 옮겨 다닙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이기심>입니다.
마음의 기준을 하나님 말씀에 두고, 내가 <큰 바위 얼굴>이 되지않는 한 
이 지상에서 <좋은 모임과 회중>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것입니다.
이미 우리 각자가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룩한 성전이 되지 못하는 한 
그는 어디에서도 <좋은 교회>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즈음 우리 기독교 교회의 흔들리는 가치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아진 인간의 모든 생각과 교만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아래로 내려오는 용기와 결단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고 행복이 시작됩니다.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 보다 높은 마음들은 거짓이며 불행의 씨앗입니다.
기도
1
하나님 보다 높아진 모든 마음의 생각과 판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용기를 내어 회개하길 원합니다.
입술의 회개만이 아니라 삶의 모습까지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다시 제 자리로 돌리겠습니다.
주 성령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2
어제 하루를 돌아보십시다.
얼마나 어떻게 예수님 생각을 했습니까?
어제의 시간 모든 순간들을 회상하시면서
뒤돌아 보는 이 시간이 
나를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하는 오늘이 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