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3.28)

2013년 3월 28일 오늘의 말씀

내가 세울 정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가 팔을 휘둘러 뭇 백성을 재판하겠다.
(이사야 51장 5절, 표준새번역+공동번역)

내가 고난을 받기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장 15절)
묵상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을 제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키는 부활절 전 목요일입니다.
이 날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것을
기억하여 “세족목요일” 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Holy Thursday라고 합니다.
사순절 시작은 “재의 수요일”이라하여 참회로 시작합니다.
잿더미 위에서 재를 몸에 뿌리며 참회를 한것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오늘이 참회가 끝나는 날이고, 참회가 끝나면 
참회자들에게 “푸른 나뭇가지”를 주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푸른 목요일” 또는 “정결 목요일 (Sheer Thursday)” 부릅니다.
체코어로 “푸른 목요일”이란 뜻의 “젤레니 츠뜨브르떽”이라고 합니다.
오늘 “푸른 목요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은 
바로 유월절 식탁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은 날을 기념하는 축제 절기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음식은 출애굽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노예생활의 고통을 상징하는 쓴나물(양고추냉이), 누룩없는 빵 무교병, 포도주,
유월절 양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을 상징하는 정강이 뼈, 삶은 계란, 
고센땅에서 흙벽돌을 만들던 작업을 연상시키는 하로셋(진흙) 소스 등입니다.
이 음식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유의 상징이 
유월절을 있게한 “어린양” 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의 유월절 식탁에서도 
“어린양”이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22장 오늘 본문의 다음에 나오는 16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는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어린양” 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으심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만찬은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교회는 예수님의 이 만찬을 지금까지 성만찬으로 시행하며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눅 22:19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누구나 죄의 노예로부터 구원을 얻게되었습니다.
기도
주님,
나의 희망은 
오직 당신의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 그늘 이 외에
내가 머무를 곳이 없습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서
당신과 나와 하나이기에
당신을 아는것은 나를 아는 것이요
나를 아는 것은 당신을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아브라함 처럼
야곱 처럼
모세 처럼
욥 처럼
다윗 처럼
선지자들 처럼
베드로 처럼
예수님을 만난 죄인들 처럼
바울 처럼
당신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
우주 보다 도 더 광대하신 당신이
스스로 십자가 안에 자신을 가두어 두셨기에
미천한 죄인이
당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게 은혜이며 감사입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2013 부활절 아트워크숍을 마치고




지난 토요일 꼬빌리시 교회에서 있었던 2013 부활절 아트 워크숍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체코와 한국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콩고와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 부활절을 맞이하는 기쁨을 나누며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예배와 함께 시작된 아트 워크숍은 생강빵 장식하기, 부활절 달걀 장식하기, 부활절 장식품 만들기,  POMLAZKA(부활절 회초리) 만들기 등의 4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만들면서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으며, 때때로 서로 협력하며 친구가 되었답니다.

다양한 재료를 미리 준비해 주시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체코 공동체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함께 참여하셔서 도와주신 부모님들,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을 만든 친구들 모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 위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부활절 아트 워크숍 <일시> 2013. 3. 23. 토. 오후 2시 – 5시

                           <장소> 꼬빌리시 교회

                           <프로그램> 생강빵 장식하기, 부활절 달걀 장식하기,

                                     부활절 장식품 만들기,  POMLAZKA(부활절 회초리) 만들기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3.27)

2013년 3월 27일 오늘의 말씀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시편 50편 1절)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땅에서 경고하는 사람을 거역하였을 때에
그 벌을 피할 수 없었거든,
하물며 우리가 하늘로 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면
더욱더 피할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 12장 25절)
묵상
인간은 대자연의 세계의 일부이지만 
대자연의 법칙대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자연의 법칙에 속하지 않은 인간만의 고유의 독특성이 있습니다.
같은 인간일지라도 바닷가에서 또는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면서
“움직이는 해”를 볼 수도 있고, “움직이는 지구”도 볼 수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는 “움직이는 해”를 보고 천동설을 주장했고
코페르니쿠스는 “움직이는 지구”를 보고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같은 자연을 자유롭게 자신의 관점의 체계로 
사물을 보고 경험을 달리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세계를 인간은 모든 논리의 법칙을 가지고
들여다 보았지만 결국 그 중심코드는 “신”입니다.
신을 배제하고 보느냐 인정하고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미 2세기에 한 신학자가 “믿으면 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같은 인간이면서 믿음의 소유 여부에 따라
대자연과 인간들의 삶의 군상들과 그 역사로 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다른 음성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대자연과 인간 군상들의 삶과 그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 내면의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우리의 삶이 모두 제자리를 잡게되고 
참된 평안을 누리게됩니다.
기도
주님,
제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믿음이 있으면
당신이 “사랑”임을 알게되고
다른 증거들이 필요없음을 느끼게됩니다.
그러나
때론 당신을 볼 수 없는 어두운 밤을 만나
저의 믿음이 연약해지면
저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음성으로
보이지 않는 당신을 보여주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3.26)

2013년 3월 26일 오늘의 말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다니엘 2장 20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고린도전서 1장 20절)
묵상
인간은 누구나 마음 속에 “잃어버린 에덴”을 찾고있습니다.
철학자들 과학자들 예술가들은 물론 
평범한 서민들 조차도 그 마음 속에 “에덴”을 찾고있습니다.
에덴은 안정을 보장해주는 인간의 완전한 미래입니다.
에덴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스스로 에덴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에덴이 “바벨 탑”입니다.
바벨 탑은 오래전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철학자들과 과학자들과 예술가들 정치가들 경제가들
자본가들 기술자들이 지혜를 내어 “잃어버린 에덴”을 
건설하려고 하지만 에덴과 거리가 먼 “바벨 탑”이 되고맙니다.
왜냐하면 에덴을 잃어버린 순간 
인간의 상상력은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창조적인 창의력”을 부르짖지만 소유욕에 눈먼 인간은
창조적인 창조력을 이미 상실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우리의 “잃어버린 에덴”입니다.
과학자들이 우주의 원리를 다 밝혀낼 수 있어도
아내의 마음을 몰라 이혼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우리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실한 신뢰와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믿음은 “잃어버린 에덴”을 스스로 찾고자하는
자기포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기도
주님
당신은 
이세상에 현현하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저희가 온전히 당신과 같아질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의 행적을 보면서
당신의 지혜를 배우길 원합니다.
당신의 지혜대로 사는 것이 저희의 믿음이며
당신의 지혜대로 되어갈 줄 믿는 것이 
저희의 생명입니다.
당신은 진실로
저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저희의 소망은 오직하나
당신의 지혜를 배우며
당신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하루 일상이 당신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3.25)

2013년 3월 25일 오늘의 말씀

줄로 재어서 나에게 주신 그 땅은 나에게 기쁨을 주는 땅입니다.
참으로 나는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시편 16편 6절, 표준새번역)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께 유산을 상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분들입니다.
(골로새서 3장 23-24절, 표준새번역)
묵상
시편의 이 축복은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우리의 소망을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두게합니다.
이것은 이 땅의 일을 비하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이 땅의 모든 일을 땅의 일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일로 여기게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유산의 기쁨은 이 땅의 모든 일에서 발견됩니다.
교회당 예배 모임이나 성도들간의 주중 모임이나 만남뿐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모든 책임들과 관련된 일들과 그 만남들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유산의 기쁨을 발견하게됩니다.
우리 성도는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유산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
당신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길 원합니다.
당신의 십자가 사랑은
내 눈을 열어
만물을 새롭게 발견하게 합니다.
위대하고 큰 것을 소망하는 나의 눈은
작고 보잘것 없는 것에서
당신의 창조의 경이로움의 희열을 봅니다.
당신앞에서 정직한 백성으로 사는 것의
기쁨과 그 뜻을 알게합니다.
열매의 달콤한 과즙이 아닌
씨앗이 품은 생명에 
내 입에서 침이 흐르게합니다.
당신의 십자가 사랑은
같은 세상 안에서
다른 당신의 세상을 발견하게합니다.
당신의 십자가는
언제나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하고
나를 새롭게 출발시키는
사랑의 플랫폼입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나의 죄를 이기는 능력임을 깨닫게하시니 감사
고난주간이 있어 주님을 더욱 묵상케 하시니 감사
온 교우들이 십자가 사랑을 깨닫기를 간구하게 하시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