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양식

  • 연합 예배 (2003년 06월 01일)
  • 출 16:1-15
  • 설교자: 이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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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출 16,1-15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찌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명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설교>
부활의 승리의 기쁨은 언제나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승천으로 이 땅에 남은 자들에게 다시 두려움이 전염병처럼 번져갑니다.
그들은 교회의 전통에서 읽혀지는 요한복음의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뒤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닥쳐올 박해를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결과는 우리가 기대한 편안함과 행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망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 3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3절)

지금 원망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지금 원망하는 그들은 애굽을 탈출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노예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출 2:23)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자유하게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해방시킨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들이 원망하기 시작하던 날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1절)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의 은혜를 체험한 것이 이제 꼭 한 달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불과 한달 전에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애굽 군대가 그들을 추격할 때에 그들 앞에 나타난 홍해바다는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다에 길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막다른 길을 뚫어 계속 나아갈 길을 열어주셨고 그들의 절망을 뚫고 나아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은 그때 자신들의 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낌없이 찬양하였습니다.
15장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한 찬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들은 주님께 노래하였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 15:1-2)

원망을 하는 사람들이 캠프를 친 곳은 샘물 곁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 15:27)
광야에서 이보다 더 좋은 캠프장소는 없습니다.
그 장소를 그들이 스스로 찾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 장소로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다시말씀드려 주님이 그들을 샘물로 인도하였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풍성함이 넘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원망을 하였을 때 그들은 그와 같은 체험들을 하였을 때였습니다.
샘물로 목마르지 않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같은 입으로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 그들은 말하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는 모습입니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우리들이 오늘날 교회의 발걸음을 생각하고 그리고 우리자신의 매일의 삶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와 비슷한 배은방덕하고 부끄러운 사고방식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 아침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찬양하고 주의 만찬의 샘물 곁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예배를 마치고 교회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방식이 우리들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 대해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말합니다.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8절)
주님은 분명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동시에 주님은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이 들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원망할 때마다 주님이 그 원망도 들으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무엇을 하셨습니까?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8절)
우리가 애굽 땅에서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말한 백성들을 여호와께서 계속 살리십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한 것이 사실대로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저녁이 되자 메추라기가 날아와 장막 주변을 덮었습니다.
아침에 이슬이 장막에 내리고 그리고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으로 덮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만나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린 양식이었습니다.
그들이 광양에서 여행한 40년 동안 그들은 이 하늘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온전한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대로 그들은 의롭고 경건하고 신실한 백성들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존재 상태는 애굽에 있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양식을 받을 마땅한 권리가 있지않았습니다.
그들이 받은 것은 오직 은혜때문이지 은혜이외의 어떤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혀 가치 없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은총을 보여주신 것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12절에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그들의 위를 만족하기 위해 양식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목적은 녀희가 내가 주 너의 하나님임을 알게하는 것입니다.
이 양식을 받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말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은혜가 넘치는 여호와와 생명의 관계로 살게 되어 그를 사랑함으로 그를 두려워 함으로 그를 신뢰함으로 그를 따름으로 살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가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거기서 양식을 주는 이유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광야로 인도되지않았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야 없이 교만한 인간이 그들을 진실한 삶으로 해방시키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신명기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 40년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신 8:2-3)

매우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양식을 주신 이유가 그들은 양식으로 단지 살게 하기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매일의 말씀으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단지 양식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복종할 명령을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만나를 저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도록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각 사람의 식량대로 거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양식 그 자체가 아니라 양식을 주는 분 그 분 여호와께 초점을 맞추게 하여 날마다 복종하며 그를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에 참된 삶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가치도 없는 백성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되어지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을 위해 광야의 여행은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려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위해 겪어야만 하는 커리큘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자신들을 성장케하고 훈련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광야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향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주님은 이 광야의 여행 길을 우리 홀로 가게 하시지 않습니다.
(아멘)

일어나 걸으라

  • 연합 예배 (2003년 05월 04일)
  • 행 3:1-12
  • 설교자: 이지 슈토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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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3, 1-12a

<본문>
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개역한글판 행 3장)

그리스도 부활이후 우리들은 이스라엘 이야기를 새롭게 읽는 것을 배우고 놀라는 것을 배웁니다.
성령이 교회를 세웁니다. – 이것은 유일한 성령의 기적입니다. – 새로운 공동체가 세워지고 이스라엘 성전은 예언자들의 예언으로 채워집니다.
사도들에 의해 증언된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전없이 나타날 수 없었고, 교회는 이스라엘 없이 세워질 수 없습니다.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며 사도들의 대표들이 공개적으로 그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으로 가야만합니다.
만약에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야곱 – 이스라엘이 기억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기도를 시작할 수도 희망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가 이것을 잊어버릴 때 교회의 증언과 모든 민족들을 위한 여호와의 이름을 교회는 타락시키게 됩니다.

드로가 앞장서서 교회당으로 가고 요한이 함께 성전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기독교 증언의 효과에 대한 희망이 깊은 일치안에서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베드로 전통의 교회를 서방교회 그리고 요한 전통의 교회를 동방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여기 꼬빌리시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게다가 야곱의 약속을 기대하는 것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사람 (전통적인 교회들과 그들의 설교자들과 선교사들) 없이 우리들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혁교회 전통의 공동체의 변화를 추구하지않는다면 그리고 중세교회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리고 사도들의 교회의 모습이 없다면 우리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예배는 역사를 소재로하는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불과할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정으로 자신의 백성을 찾았습니다.

이미 예언자들의 희망이 성취되는 시간이 임했습니다.
누가는 화가처럼 끌어당기는 놀라운 힘으로 하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자를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세웠을 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성전으로 갈 때 그당시 거기에 사람들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옮겨두어 거기서 그들이 구걸을 하게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죄로 여겼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죄가 많았고 그래서 성전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질병은 이스라엘의 희망이 성취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었습니다.
범위를 넓혀 생각해보면 이 병자 한사람은 전체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앉은뱅이가 사람의 마음을 끌게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다.
아직 섬기는 공동체가 존재하기때문입니다. – 매일 일하는 신실하고 인내심있는 디아코니아 즉 섬김이 있기때문입니다.
이 섬김을 우리 교회의 삶으로 보여주십시다.
우리는 교회당으로 갑니다. 우리들의 희망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당 주변에 섬기는 공동체가 생겨납니다.
그래도 저는 성전이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은 곳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까렐 다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은 많은 돈을 그들 대장들에게 갈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난과 교회의 대대로 전해지는 질병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모두 성전의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늙은 구걸하는자의 희망은 약을 살 수 있는 돈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희망은 다른 곳으로부터 옵니다.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교회당안에도 있어야 합니다.
여기로 앉은뱅이를 데리고 와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활이 증언이 없는 곳 그리고 자선을 위한 문이 열려있지않는 곳 그리고 디아코니아 섬김과 봉사의 마음이 열려있지않은 곳 그곳은 벌레처럼 그냥 왔다 갔다하는 여행자들만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소비적으로 교회를 출입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도 않고 그래서 위대하신 여호와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약한자 도움을 갈구하는자 죄인들을 교회로부터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문을 닫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유대인들과 모든 민족들을 위한 메시아 왕국의 표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눈 먼자가 보고 귀먹은 자가 듣고 앉은뱅이가 걸을“ 디아코니아 의 모든 봉사를 통하여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에서 가난한 자는 가난하게 되고 앉은뱅이는 온 육신과 영혼이 불구가 되고 죄인들은 교회당에서 쫒겨나게됩니다.
병자들은 죽어가고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하게 되고 찬양의 기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자신의 앉은뱅이를 돌보지 않는 교회를 도우소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 앞에 놓여 있는 앉은뱅이를 기다립니다.
신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합쳐질 수 없는 것을 연합시킵니다. 이미 오래전에 역사적으로 분열된 것을 예를들어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를 로마 카톨릭교인들과 개혁교도들 건강한자들과 병든자들을 연합시킵니다.
모든이들이 연합되어야 합니다. 앉은뱅이의 다리가 강해진 것 처럼 그렇게 연합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의 설교자들의 관심과 장로님들의 관심이 연합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러한 교회를 이루어 그곳에 세상을 섬기고 돌보는 자리가 준비된 그런 교회를 우리는 이룩해야 합니다.
노인분들이 등을 기대고 앉는 의자처럼 우리 교회를 세상이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평온해야 합니다.
한 존경할만한 주석가가 서커스에서 어릿광대처럼 재주를 넘었다고 통합에 대해 글을 썻습니다.
공중에서 뛰어넘고 회전하다가 두다리로 착지를 합니다.
부활한 예수가 회복시켜준 이들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미친사람들로 가득차지않을 때 여행자들에겐 쓸만합니다.

리는 지금 교회당에 사무실, 찻집, 기도실을 늘리고 울타리 없는 정원을 만들어 기도를 원하는 사람이 올 수 있도록 그리고 한국인들
디아코니아 체코인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넉넉히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넓히는 일을 추진할 것입니다.

누가는 모든 연약한 자들을 위해 아름다운 말씀을 전합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걸으라
여기서 일어나라는 말씀은 부활을 증거하라는 뜻이며 걸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 다시말씀드려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삶을 살으라는 뜻입니다.
앉은뱅이는 성전 거기서 어떻게 기뻐하며 베드로와 요한을 도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리를 절고있는 건강하지 못한 교회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하나된 교회로 회복된 모습을
보는 것, 모든 전통의 기독교의 하나님을 보는 것 그리고 그들이 모여 하나됨을 기뻐하는 찬양을 듣는 것은 앉은뱅이에 대한
디아코니아 섬김과 봉사의 매일의 사랑이 부활의 공동체를 유지시켜주는 곳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났던 모든 것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 을 놀라고 감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절기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스스로 가질 수 없고 그리고 우리들이 지금까지 간직하였던 모든 희망에 대항하는 희망을 회복시킬 변치 않는 도구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오늘날 그가 우리들을 서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주님의 식탁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시간 이후에 다리를 절고 놀라고 그리고 죽음을 대면하여 우리가 보았고 들었던 것에 의지하고 있을 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주님의 식탁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Amen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성가단 체코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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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성가단이 5월 26일 부터 31일까지 체코를 방문합니다.
형제개혁교단 디아코니아(교회사회봉사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자선음악회를 갖습니다.
5월 26일 프라하 도착
5월 27일 저녁 6시 체코-한국 기독교인들의 문화가 있는 만남

5월 28일 저녁 7시 프라하 콘서트
장소 살바또르 교회 (Salvatorska 1, 프라하 1 – 구시가광장)

5월 29일 삐섹 벨리바 선교찻집 방문

5월 30일 저녁 7시 30분 브르노 콘서트
장소 얀 아모스 꼬멘스끼 교회당

5월 31일 폴란드

 

5월 에큐메니칼 예배후 체코교우들과 한국전통놀이 그리고 돼지불고기 바베큐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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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식사준비 하신 여러분 모두 수고가 많았습니다.
날씨도 우리들의 모임을 축하하듯 쾌청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주 이런 친교모임을 가졌으면 하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체코교우들은 맛있는 집에서 구운 후식과 보리차음료(?)를 준비해주셨고
저희교우들은 먹고도 남을 풍성한 야채와 맛있는 고추장 양념 돼지불고기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체코교우들 모두들 맵다고 하면서도 처음보는 그 맛…
교회관리하시는 예자벡 장로님은 바베큐틀을 그대로 교회정원에 두자면서 언제 다시 한번 더 맛볼 기회를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입니다.

[체코사회] 체코인들의 직장관

체코인들은 직장 때문에 이사를 원치않는다.

직장에 따라 이사를 하는 것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유럽연합국들과 다른 유럽연합가입후보국들에 비해 체코공화국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과 사회의 통계기관의 야로미르 꼬띠꼬바에 의하면 체코공화국에서 다른 유럽연합국들과 비교할 때 노동력 이동이 매우 낮았다. 그리고 다른 유럽연합가입 후보국 가운데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체코의 장년층들은 직장 때문에 자신의 삶의 뿌리를 변경시키는 이사를 하지 않겠다는 통계조사가 나와 주목을 받고있다. 직장 때문에 이사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직장을 찾기를 원하고있다. „직장을 바꾸면 떠돌이가 된다. 그리고 직장을 바꾸는 일은 계속된다.“ 꼬띠꼬바가 말하였다. 젊은 세대는 직장에 따라 이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젊은 세대는 직장 때문에 이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돈을 더 받는 것을 원한다. 그들은 대체로 가족이 없다. 그들은 대체로 4번쯤 친구들과 함께 세를 얻은 뒤 그 후 독채로 세 들어 산다.“고 그녀는 말한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체코 노동자들의 이동은 폴란드와 비교할 때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있다. 폴란드의 경우 대학 졸업자의 상당 부분이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있다. „폴란드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경험에 기대를 할 수 있지만 한편 이들이 폴란드가 유럽연합에 가입되면 다시 돌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위험도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노동력 이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체코에서는 없다고 한다. 분석자료는 대체로 24세까지의 남성 젊은이들이 여성들에 비해 직장에 따라 이주하는 것을 가장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직장으로 인한 이주에서 실업자들과 학생들의 고소득 그리고 장기 고용계약이 가장 많은 이유였으며 결혼에 의한 거주와 직장도 있었다.

꼬띠꼬바는 직장 때문에 체코인들이 프라하 이사가 가장 높다고 하였다. 학업 이후에 그대로 남아있는 대학졸업자들에게 프라하 이주가 자연스럽다. 그리고 프라하 이주는 실업률이 높은 지방의 사람들이 많다. 남 체코의 경우 30키로미터 안에서 다른 직장을 찾고있으며 북 모라바의 실업자들은 자신의 지역 안에서 직장을 찾을 수 없다. 이것이 프라하에 모라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이유라고 그녀는 지적하고 있다.

(리도베 노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