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 성경책 & 체코학생들

* 아래의 글은 나눔터 사이트 <현우&체크>에서 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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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현우(twister@nanumto.net)
조회 : 4 게시일 : 2001-12-10 00:46:58
제목 : 기독교 와 체코 고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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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 & 체코학생들 몇주전에 참 재미있는 일이 학교앞에서 일어났어요.

미국 선교사들이 학교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나눠준 일이지요. 미국선교사들을 본 학생들은 놀라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또 의아해 하는 표정을 보이기도 하더군요.

저는 학교에 일찍 등교하는 편이어서(그래도 수업 20분전에 도착하니까!) 다른 친구들 얼굴 하나하나를 잘 살펴 볼 수 있었어요. 제가 프라하에 살면서 가장 궁금하던 점이 풀리는 순간이기도 하였구요. 그 궁금한 점이 뭐냐구요? 기독교 역사가 1000년이 넘는 나라의 학생들에게 성경을 나눠주면(전도를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그런데, 친구들이 받은 신약성경책을 처음 페이지를 보자마자 성경을 쓰레기 통에다 집어던지는것이 아니겠어요?! 전 너무 놀래서, 왜 그런는데? 그러니까, 친구들이 하는말이, “전도를 하고 싶으면 하느데,왜 많은방법중에 꼭 이런 방법을 써야 하니?” 하고 되묻는 것이었어요. 그것은 바로 성경 처음 페이지에 “하나님을 믿어야 천국갑니다” 그 외 등등의 문구들이 쓰여있었던 거에요.

체코는 기독교 역사가 1000년이 넘는다지만, 교인들의 숫자는 국민인구 10%도 않되지요. 저는 기독교가 체코 역사에 남긴 악날한짓의 결과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구나 하고 알게되었답니다. 정말 무섭더라구요.

프라하에서
현우&체크

제 2회 바자회를 마치고

작은 자에게 냉수한그릇 대접한것이 우리 주님께 한것이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기도와 봉사로 수고하신 모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작년에 헌옷들을 모아 했던 바자회를 금년에는 음식바자회로 준비하였습니다.
교우들이 잡채와 김밥을 나누어 맡아 각각 준비하고 만두는 모두 모여 함께 빚으면서 푸짐한 음식들을 준비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수고는 물론 이곳에서 구하기 힘든 모든 재료들까지 각 가정에서 준비하셨습니다. 몇 분들은 아무래도 음식이 적다고 생각하셨는지 맡은 할당량을 초과해서 음식을 장만하셨습니다.

체코교우들의 참여에 모두 놀랐습니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우리들 뿐 아니라 체코교우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 각기 다른 종류의 음식들을 장만하였습니다. 각양 각색의 성탄절 과자들, 처음 구경하는 체코 빵들 그리고 다른 음식점에서 맛보지 못할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체코교우들이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잡채는 순식간에 팔리고 처음대하는 만두와 김밥은 일단 맛을 본 후에 몇 개씩 더 사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음료수는 식혜와 현미녹차는 단연 으뜸이었고 어떤 체코분들은 콜라를 파는 것을 보고 한국전통 콜라를 달라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이날 식혜는 음식솜씨에 일가견이 있는 정남례 집사님의 작품이었습니다.

교회당 한켠에 한국전통 놀이 기구 <투호>를 설치해서 모두들 어울려 즐겼으며 전임 총무였던 강동주 집사님은 대사관에서 한국소개 책자를 구해와 한국을 알리는일에 수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은퇴를 하셨지만 프라하성 1급 정원사로 일하셨던 체코교우께서 <성탄절 별> 나무, 분재, 성탄절 장식나무 등을 흔쾌히 바자회에 출품 하셨습니다.

우리 체코 한국 교우들 뿐아니라 외부 손님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오후 2시에 슈토렉 목사님의 간단한 인사 말씀으로 시작되어 오후 4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판매대금은 12,000꼬룬이며 이 대금은 보흐니쩨 정신병원 장기입원환자들의 성탄절 선물 구입에 사용될것입니다.

바자회를 마치고 체코 한국 교우들이 어울려 구석 구석 청소를 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들 돌아가는 교우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2001년 12월 2일

오늘은 스믈 네번째 맞이하는 에큐메니칼 예배였다.

처음에 신비스러운 마음에 많이 모이던 예배에 예배참석인원이 좀처럼 늘지않는다. 어린자녀를 가진 몇몇 한인교우 가정은 거의 이 예배에 참석을 하지 못한다. 활기없는 예배에 통역 리시버를 사용하다보니 자연히 어린자녀들이 예배를 어려워한다. 예배가 진행되면 될 수록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배의 진행의 문제가 아니라 체코교회의 예배 전통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적인 토론을 필요로 한다. 체코 개혁교회의 예배 전통은 예배의 성서적 신학적인 바탕위에 세대간의 만남의 장으로 중시되고 있다. 그래서 한인 교우들의 어린자녀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예배는 체코 교우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않는다. 떡과 잔은 받지않을지라도 성만찬에 부모와 함께 참가하는 어린이들, 자녀와 부모가 나란히 앉아 드리는 예배가 강조되는 체코개혁교회는 체코 교회의 역사와 사회상황에 뿌리를 두고있어 자녀들을 피교육의 개체의 경향이 강한 우리 한인교우들의 교회교육에 대한 관점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많은 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체코개혁교회의 예배 분위기로 시작을 하던 에큐메니칼 예배가 회를 거듭할 수록 한국교회의 예배 분위기와 점점 더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이번 주일에 찬양대가 봉헌시간에 특송을하였다. 체코교우들이 처음 경험하는 예배 분위기이다. 이것에 대한 아직 체코교우들의 반응을 알지못한다. 그러나 아랫동네 리벤 교회 교인이면서 보흐니쩨 호스피체 수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체코교우가 찬양대 찬양에 감동을 받고 보흐니쩨 병원에서 콘서트를 해줄것을 요청하였다. 예배후 찬양대는 12월 12일 수요일 오후 4시 수요예배와 함께 콘서트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오늘 시편 22편 찬송가 대신 \"오소서 오소서 평화의 임금\" 한국찬송가를 불렀다. 가사를 체코어로 완전히 번역하였다. 그리고 한국 찬송가 130장 역시 가사를 체코어로 번역하여 함께 찬양을 하였다.

두명의 유아세례와 두명의 성인세례가 있었다. 얀 꼬츠까, 마데이 꼬츠까, 프란띠쉑 바츨라프 슈또우라츠, 바르보라 야나 마레쇼바 이다. 그중에 여자 어린이 바르보라 야나 마레쇼바의 어머니는 낙심자 였다. 개신교 교인이면서 그녀는 교회는 일반 사회의 기관가운데 하나로 생각하여 오랫동안 교회를 떠났던 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교회당의 종소리를 아침 저녁에 들으면서 불현듯 교회의 첫사랑을 기억하게 되어 자신의 딸의 유아세례를 준비하면서 교회를 다시 나오기 시작한 분이다.

이종실 목사의 설교 그리고 한인교우들의 찬양대 특송과 예배중에 자주 불려진 한국찬송가 등으로 예배의 균형을 위해 이종실 목사와 슈토렉 목사가 늘 공동으로 집례하던 세례식은 오늘 슈토렉 목사가 모두 집례하였다.

UBF 선교사 가족들이 참여하여 성경읽기 순서를 맡았다. 이 예배는 특정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체코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예배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을 하여 처음부터 \"체코 한국 에큐메니칼 예배\"라고 이름을 붙였다. 앞으로 함께 예배드리기를 원하는 분들이 주체적으로 예배를 만들어 가도록 공간을 열어가는 것이 새롭게 주어진 또하나의 과제가 되고있다.

오늘 귀한 손님 한분이 왔다. 찰스대학 언어학부 한국학과 미리암 뤼벤스타이노바 교수님의 딸인 끌라라 뤼벤스타이노바 양이 예배에 참가했다. 끌라라는 후스신학부 3학년에 재학중인 신학도이다.

오늘 라띠보르스끼 수석장로님이 손녀딸의 유아세례에 참여하기 위해 오늘 교회에 출석을 하지 못했다. 교회소식은 1) 오늘 봉헌은 알바니아에서 실종된 우리 체코청년교우를 수색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돕는데 사용된다. 2) 12월 23일 예배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실황중계된다. 방송시간에 맞추어 오전 9시에 예배가 시작된다. 3) 12월 25일 성탄절 예배는 체코-한인 교우들의 연합예배로 드리고 설교는 슈토렉 목사와 이종실 목사가 공동으로 한다. 4) 어제 바자회 수입금이 12,000꼬룬이 넘었다. 이 수입금은 보흐니쩨 정신병원의 장기 입원환자들에게 성탄절 선물 구입에 사용된다. 선물은 우리들이 일방적으로 구입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필요로하는 물품을 주문받아 구입해서 우리들의 사랑의 마음과 함께 전달될것이다.

제네바 회의 참석기

제네바 회의 참석기

2001년 6월 5일부터 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 존 녹스센터에서 “재 유럽한인교회 선교협력 증진을 위한 협의회”가 열렸다. 이번 협의회는 세계개혁교회연맹의 선교와 일치국, 존녹스 센터 그리고 유럽교회협의회의 공동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유럽의 한인교회들 대표, 미국장로교 한인대표, 재일대한 기독교회 한인대표, 한국의 각 교단 대표들 그리고 유럽의 한인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있는 유럽교회의 대표 등 총 55명이 참가하였다. 슈토렉 목사와 나는 체코개혁교회협의회의 추천으로 이 회의에 초청을 받아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 협의회는 유럽의 한인교회들이 교파주의를 극복하고 유럽교회들과 일치하여 21세기에 유럽에서 복음을 함께 증언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유럽의 한인교회 역사는 50년이 넘었지만 이번 회의는 유럽의 한인교회들이 처음으로 유럽교회 대표들과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새벽기도회, 예배, 오전 패널토의, 오후 그룹토의, 전체토의의 회의순서가 매일 반복되었다. 패널토의는 유럽의 한인교회대표들이 각각 자신의 교단의 유럽이주 역사와 현재 상황을 설명과 미국 한인교회와 일본의 한인교회들이 각각 미국교회와 일본교회들과의 일치와 협력에 대한 경험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두개의 한인교회들의 경험은 이번 협의회의 목적에 비추어볼 때 매우 중요한 사례보고였다. 사례보고는 배당된 시간 안에 한 체코 교회일치의 과정에서 느낀 체코교회의 경험을 더 자세히 듣는 기회가 되도록 슈토렉 목사가 발제를 주로하였다. 회의는 한국어 영어와 독일어를 사용하였다.

이번회의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였던 두 교회 가운데 하나는 우리 디아코니아 자동차 구입에 함께한 스톡홀름의 임마누엘 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 꼬빌리시 교회였다.

이번 회의를 통해 교회론적 선교론적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를 교회되게하는 비젼은 무엇인가? 교회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 도전은 이민과 다인종 공동체의 현장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 이민 공동체가 이민교회들을 향한 유럽교회의 정책은 무엇인가? 유럽교회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민족 형제 자매들에게 어떤 종류의 환영을 하고 있는가? 한인교회와 유럽교회가 선교적 과제를 공유할 수 있을까? 유럽 기독교인들과 한인 기독교인들이 함께 대처할 수 있는 유럽사회 안에서의 도전들은 무엇인가? 유럽 내에 현존하는 한인 기독교인들의 현존이 다른 이민 공동체들의 현존과 선교적으로 어떻게 관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제기되는 질문에 체코교회와 한국교회가 함께 걸어가는 꼬빌리시 교회는 이미 많은 응답을 하고 있다. 특히 꼬빌리시 교회는 “파트너십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교회”이다. 제도적인 교회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기체적인 관계의 교회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가 던진 많은 질문들은 동시에 앞으로 우리 꼬빌리시 교회가 걸어가야할 길을 보여주고있다. 이 질문들은 우리를 더욱 본질적인 교회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슈토렉 목사님이 운전하는 차로 편히 다녀왔다. 회의가 제기한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것인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돌아왔다.

회의는 한인교회와 유럽교회가 함께 참여하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음 회의 계획과 준비권한을 위임하고 마쳤다. 9월에 모인 추진위원회에서 일년에 두 차례 소식지 발간과 스톡홀름의 임마누엘 교회와 프라하의 꼬빌리시 교회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그리고 회의의 공식적인 이름을 “Korean Churches Together in Europe” 그리고 2003년에 “신앙 축제”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세례 요한의 질문

  • 연합 예배 (2001년 12월 02일)
  • 마 11:2-6
  • 설교자: 이종실

스믈네번째 에큐메니칼 예배
주일: 대강절 첫번째 주일
본문: 마태복음 11장 2-6절
설교: 이 종 실 목사

<본문> 

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설교>
요한은 자신의 제자를 예수에게 보내어 질문하게 합니다. 대강절 첫번째 주일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의 질문은 당신은 나보다 더 위대한
분이십니까?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 요한은 이 질문을 했을까요? 의심때문입니까?

아마도 요한은 하나님이 보냈을 사람에 의해 감옥으로부터 풀려나기를 희망했을는지 모릅니다. 요한은 둘은 같은 주인을 위해 일한다는 사인을 예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질문에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습니다. 예
아니오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요한에게 가서 말하기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절룸발이가 걷고 문둥병이 깨끗하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자들 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예수는 옛 예언이 지금 성취되고 있는 증거를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감옥으로부터 풀어줄 것을 언질하지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하나님이 세상에서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로 요한은 희망을 갖게될 것입니다.

소경이 보고 절룸발이가 걷고 문둥병자가 치유되고 죽은자가 살아나고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을 선포하는 이사야 35장을 인용한 것은 흥미롭습니다.

복된 소식을 말하는 이사야 61장을 예수님은 인용할 수 있었을것입니다.

“그가 나를 보내심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의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의 종에게 말씀하신 이사야 42장을 인용한 것도 아닙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라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사야는 갇힌 자를 옥에서 풀어주는것에 대해 말하지만 예수님은 요한에게 자유함과 해방이 온다는 말을 하지않습니다.
 
요한은 감옥에 있습니다. 그의 소명은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설교와 세례로 그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길을 죽음으로 준비해됩니다.


한은 세상의 권력자의 손에 죽음으로써 예수의 길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의 계획 요한의 갈망 요한의 꿈들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메시지는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갈망 하나님의 꿈이
실현될것입니다. 요한은 그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죽음은 여기 모든 사람들의 큰 적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끝입니다.


옥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죽음은 모든 꿈과 계획의 끝입니다. 감옥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소식을 기다리며 사라진 우리의 희망과 꿈과
함께 우리 자신의 감옥에 우리들은 그렇게 앉아있습니다. 불행할때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좋지않는 일들은 행복할 때에 우리들이 저질렀던
잘못에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할 때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로 가졌던 자신들의 경험들을 잊어버리는 인간의 경향입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복할때가 좋지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건강 소유 행복 그리고 평화 이것들은 좋은것이며 필요한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단지
감사하는 믿음을 우리는 배워야하고 우리는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님의 현존과 동등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에게 문제는 우리가 이들을 가지고 있지않을 때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소유하고 싶어
만족하지 못하고 슬퍼함으로서 우리는 고통스러워합니다. 우리가 좋았던 그 시절을 갈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별로 편안하지 않을 때
우리들은 분명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온전히 존재하심을 믿는 것을 배웁시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복음을 듣는 한에서 우리는 행과 불행의 어떤 상황에소도 하나님의 현존을 확신하게 될것입니다.

요한에게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복음은 하나님이 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여러분과 제가 원치않고 기대하지 않아도 오고 계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