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

  • 한인 예배 (2001년 12월 08일)
  • 요 1:19-28
  • 설교자: 이종실

01/12/08 (대강절 두번째 주일)
본문: 요한복음 1: 19-28
제목: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

<공동기도>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례 요한 처럼 자기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세상이 메시야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설교>

가는 아름다운 부부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눅 1: 5-6)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이들은 하나님의 저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 사람들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으로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징이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자녀가 없는 것은 재앙이었으며 수태하지 못하는 여자와 후손이 없는 남자는 실패한 삶, 저주 받은
삶이었습니다. 자녀가 없는 삶은 고통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고통입니다.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하던 레아가 그의 아들을 낳았을
때 수태를 하지못하던 야곱의 여인 라헬의 고통입니다. 마침내 아들 요셉을 낳았을 때 그녀는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셨다. 하나님이 나의 수치를 씻으셨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라헬의 이 고백 속에서 단지 아이를 갖지
못한 이유 때문에 당했을 억울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억울하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을 겪은 여인들의 한들이
천지를 진동할 때 그 여인들의 태 속에 곧 다가올 새로운 시대가 요동을 치고있었습니다.

이것은 자녀 없는 부모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의미뿐 아니라 억울하게 수치와 부끄러움을 겪고 있는 하나님의 의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음서 가운데 특히 누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요한의 이야기와 병행시키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수태하지 못하는 엘리자벳의
남편 사가랴에게 요한의 수태를 알렸고, 처녀 마리아에게는 직접 예수탄생을 알립니다. 늙어 수태를 한 친척 엘리사벳을 보고 천사의
처녀 수태 예고를 받아들인 마리아가 어느날 해산이 가까운 엘리자벳을 방문합니다. 마리아가 찬양을 하고 사가랴도 찬양을 합니다.
비록 할례를 받는 난지 8일이 지날 때 까지 아들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탄생 전에 이미 요한과 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많은 병행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병행되는 이야기들이 요한과 예수가 누가
그리스도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병행되는 이야기 요한을 통해서 더 분명히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시말씀드려 그리스도의 탄생 불과 몇 달 앞에 태어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기다림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어떻게 기다리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공회원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통하여 요한에게 질문을 합니다. 첫번째 질문이 “네가 누구냐?”입니다. 네가 과연 그리스도냐?는 매우 단정적인 질문입니다.


질문에 대해 성경은 “요한은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드러내어 말하다”란 말은
“고백하다”는 뜻입니다. “숨기지 아니하다”란 말은 “거절하지 아니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에 대한 완벽하고 진실한 고백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자신은 아무 자격이 없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외국인 눈에 비치는 한국인의 모습은 근면하고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일등에 대한 애착이 많은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외국기자는 “한국에는 일등은 많고 이등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외국인의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우리나라 교육현장을 돌아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어느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좀 극단적인 표현으로 모두 1등을 만들려고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교육이란 모두 1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게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것입니다. 자신의 역량이 무엇인지 장점이 무엇인지 알게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할 때 타인을 인정할 수 있어 비로소 전체가 조화를 이루게됩니다.

철학의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명제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며칠전 여성도 성경 공부반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WEC 이라는 유수한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이
선교단체가 선교사를 파송하기전 훈련을 하는 데 그때 가장 강조하는 훈련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 보다 6개월 형 되는 사람입니다. 예수는 목수의 가문인 반면 요한은 제사장의 가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아니더라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상당한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 아이가 장차 무엇이
될꼬?”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관심은 듣고 잊어버리는 매일 일어나는 뉴스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지워 지지않는 요한의 탄생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던 요한이 조그만 긍정했어도 얼마든지 그리스도로 인정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꼭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보면 모르냐” “꼭 내입으로 언급해야 너희가 알겠느냐?”는 식으로
이야기 했어도 그는 최소한 한 종파를 이루어 지도자로 군림했을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드러내어
숨기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아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를 잘아는 사람을 선택하여 자기를 긍정하게 하는
도구로 쓰십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의 특징은  겸손입니다. 그 겸손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해서
일꾼삼으십니다. 모세가 “나는 입이 둔하여 적합한자가 아닙니다.” – 자기 부정을 했을 때 하나님은 말잘하는 아론을 동반하여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로 세워 애굽에 보냈습니다.

이사야가 “나는 입술이 부정합니다.” – 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입술을 제단의 숯불로 깨끗게 하시고 그를 말씀 전하는 선지자로 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죄인입니다.” 했을때 예수께서는 그를 택하여 “사람을 취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을 택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 연약함 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대인의 격언가운데 “네 혀에게 ‘나는 알지 못한다’는 말을 가르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의 겸손은 겸손을 가장한 교만입니다. 철저히 그리스도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구원의 은총을 기다리는
죄인이라는 고백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의 태도일 것입니다.

다음은 21절 과 22절에 나오는 두번째 질문입니다.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사냐?” 이에대해 요한은 “나는 아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요한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합니다.

“나는 아니라”고만 대답하고 자신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 요한에게 질문자는 계속 추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 역시 계속해서 처음에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다음에는 “나는 아니라” 마지막으로 “아니라” 부정을 하고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의 부정에 대해 그들은 요한 스스로 자기 증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 너는 너 자신을 무엇이라 하느냐? 

“나
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요한은 대답하였습니다. 자신을 세번 부정한 후에 한 자기 긍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긍정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기능적인 자기 자신 이었습니다. 자기 인격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PR하는
것이 아니라 부속품 같은 자기의 존재를 증언하였습니다. 요한은 스스로 그리스도와 비교하여 자신을 한 인격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도구인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자신이 소리라는 것은 요한의 겸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앞에서 자기 자신들을 드러내는 것이아니라 그리스도의 소리를 세상에 아름답게 내는 기능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처음에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인간-세상은 조화로왔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자기자신을 알고 자기 기능을 알고 자기 자신에 충실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역할을 인정하는 겸손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에게 인간 자신의 자기이해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네
가 어디있느냐?” 하나님이 인간 아담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가인역시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합니다. 하갈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바른 답을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서 질문하신다면 여러분들은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기 자신을 잘 알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소리로 철저히 자기를 그리스도의 뒤로 감춘  세례요한의 대답이 여러분의 대답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기쁨이 이 대강절에 여러분의 생애를 지배하시길 빕니다.

<설교후 기도>

님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선구자로 단지 그리스도의 소리로 자신을 규정하며 주의 오심을
기다리던 요한 처럼 우리들의 삶이 오실 메시야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죽고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놀라운 역사 일어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펀글] 성경책 & 체코학생들

* 아래의 글은 나눔터 사이트 <현우&체크>에서 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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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현우(twister@nanumto.net)
조회 : 4 게시일 : 2001-12-10 00:46:58
제목 : 기독교 와 체코 고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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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 & 체코학생들 몇주전에 참 재미있는 일이 학교앞에서 일어났어요.

미국 선교사들이 학교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나눠준 일이지요. 미국선교사들을 본 학생들은 놀라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또 의아해 하는 표정을 보이기도 하더군요.

저는 학교에 일찍 등교하는 편이어서(그래도 수업 20분전에 도착하니까!) 다른 친구들 얼굴 하나하나를 잘 살펴 볼 수 있었어요. 제가 프라하에 살면서 가장 궁금하던 점이 풀리는 순간이기도 하였구요. 그 궁금한 점이 뭐냐구요? 기독교 역사가 1000년이 넘는 나라의 학생들에게 성경을 나눠주면(전도를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그런데, 친구들이 받은 신약성경책을 처음 페이지를 보자마자 성경을 쓰레기 통에다 집어던지는것이 아니겠어요?! 전 너무 놀래서, 왜 그런는데? 그러니까, 친구들이 하는말이, “전도를 하고 싶으면 하느데,왜 많은방법중에 꼭 이런 방법을 써야 하니?” 하고 되묻는 것이었어요. 그것은 바로 성경 처음 페이지에 “하나님을 믿어야 천국갑니다” 그 외 등등의 문구들이 쓰여있었던 거에요.

체코는 기독교 역사가 1000년이 넘는다지만, 교인들의 숫자는 국민인구 10%도 않되지요. 저는 기독교가 체코 역사에 남긴 악날한짓의 결과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구나 하고 알게되었답니다. 정말 무섭더라구요.

프라하에서
현우&체크

제 2회 바자회를 마치고

작은 자에게 냉수한그릇 대접한것이 우리 주님께 한것이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기도와 봉사로 수고하신 모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작년에 헌옷들을 모아 했던 바자회를 금년에는 음식바자회로 준비하였습니다.
교우들이 잡채와 김밥을 나누어 맡아 각각 준비하고 만두는 모두 모여 함께 빚으면서 푸짐한 음식들을 준비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수고는 물론 이곳에서 구하기 힘든 모든 재료들까지 각 가정에서 준비하셨습니다. 몇 분들은 아무래도 음식이 적다고 생각하셨는지 맡은 할당량을 초과해서 음식을 장만하셨습니다.

체코교우들의 참여에 모두 놀랐습니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우리들 뿐 아니라 체코교우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 각기 다른 종류의 음식들을 장만하였습니다. 각양 각색의 성탄절 과자들, 처음 구경하는 체코 빵들 그리고 다른 음식점에서 맛보지 못할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체코교우들이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잡채는 순식간에 팔리고 처음대하는 만두와 김밥은 일단 맛을 본 후에 몇 개씩 더 사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음료수는 식혜와 현미녹차는 단연 으뜸이었고 어떤 체코분들은 콜라를 파는 것을 보고 한국전통 콜라를 달라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이날 식혜는 음식솜씨에 일가견이 있는 정남례 집사님의 작품이었습니다.

교회당 한켠에 한국전통 놀이 기구 <투호>를 설치해서 모두들 어울려 즐겼으며 전임 총무였던 강동주 집사님은 대사관에서 한국소개 책자를 구해와 한국을 알리는일에 수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은퇴를 하셨지만 프라하성 1급 정원사로 일하셨던 체코교우께서 <성탄절 별> 나무, 분재, 성탄절 장식나무 등을 흔쾌히 바자회에 출품 하셨습니다.

우리 체코 한국 교우들 뿐아니라 외부 손님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오후 2시에 슈토렉 목사님의 간단한 인사 말씀으로 시작되어 오후 4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판매대금은 12,000꼬룬이며 이 대금은 보흐니쩨 정신병원 장기입원환자들의 성탄절 선물 구입에 사용될것입니다.

바자회를 마치고 체코 한국 교우들이 어울려 구석 구석 청소를 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들 돌아가는 교우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2001년 12월 2일

오늘은 스믈 네번째 맞이하는 에큐메니칼 예배였다.

처음에 신비스러운 마음에 많이 모이던 예배에 예배참석인원이 좀처럼 늘지않는다. 어린자녀를 가진 몇몇 한인교우 가정은 거의 이 예배에 참석을 하지 못한다. 활기없는 예배에 통역 리시버를 사용하다보니 자연히 어린자녀들이 예배를 어려워한다. 예배가 진행되면 될 수록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배의 진행의 문제가 아니라 체코교회의 예배 전통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적인 토론을 필요로 한다. 체코 개혁교회의 예배 전통은 예배의 성서적 신학적인 바탕위에 세대간의 만남의 장으로 중시되고 있다. 그래서 한인 교우들의 어린자녀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예배는 체코 교우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않는다. 떡과 잔은 받지않을지라도 성만찬에 부모와 함께 참가하는 어린이들, 자녀와 부모가 나란히 앉아 드리는 예배가 강조되는 체코개혁교회는 체코 교회의 역사와 사회상황에 뿌리를 두고있어 자녀들을 피교육의 개체의 경향이 강한 우리 한인교우들의 교회교육에 대한 관점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많은 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체코개혁교회의 예배 분위기로 시작을 하던 에큐메니칼 예배가 회를 거듭할 수록 한국교회의 예배 분위기와 점점 더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이번 주일에 찬양대가 봉헌시간에 특송을하였다. 체코교우들이 처음 경험하는 예배 분위기이다. 이것에 대한 아직 체코교우들의 반응을 알지못한다. 그러나 아랫동네 리벤 교회 교인이면서 보흐니쩨 호스피체 수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체코교우가 찬양대 찬양에 감동을 받고 보흐니쩨 병원에서 콘서트를 해줄것을 요청하였다. 예배후 찬양대는 12월 12일 수요일 오후 4시 수요예배와 함께 콘서트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오늘 시편 22편 찬송가 대신 \"오소서 오소서 평화의 임금\" 한국찬송가를 불렀다. 가사를 체코어로 완전히 번역하였다. 그리고 한국 찬송가 130장 역시 가사를 체코어로 번역하여 함께 찬양을 하였다.

두명의 유아세례와 두명의 성인세례가 있었다. 얀 꼬츠까, 마데이 꼬츠까, 프란띠쉑 바츨라프 슈또우라츠, 바르보라 야나 마레쇼바 이다. 그중에 여자 어린이 바르보라 야나 마레쇼바의 어머니는 낙심자 였다. 개신교 교인이면서 그녀는 교회는 일반 사회의 기관가운데 하나로 생각하여 오랫동안 교회를 떠났던 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교회당의 종소리를 아침 저녁에 들으면서 불현듯 교회의 첫사랑을 기억하게 되어 자신의 딸의 유아세례를 준비하면서 교회를 다시 나오기 시작한 분이다.

이종실 목사의 설교 그리고 한인교우들의 찬양대 특송과 예배중에 자주 불려진 한국찬송가 등으로 예배의 균형을 위해 이종실 목사와 슈토렉 목사가 늘 공동으로 집례하던 세례식은 오늘 슈토렉 목사가 모두 집례하였다.

UBF 선교사 가족들이 참여하여 성경읽기 순서를 맡았다. 이 예배는 특정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체코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예배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을 하여 처음부터 \"체코 한국 에큐메니칼 예배\"라고 이름을 붙였다. 앞으로 함께 예배드리기를 원하는 분들이 주체적으로 예배를 만들어 가도록 공간을 열어가는 것이 새롭게 주어진 또하나의 과제가 되고있다.

오늘 귀한 손님 한분이 왔다. 찰스대학 언어학부 한국학과 미리암 뤼벤스타이노바 교수님의 딸인 끌라라 뤼벤스타이노바 양이 예배에 참가했다. 끌라라는 후스신학부 3학년에 재학중인 신학도이다.

오늘 라띠보르스끼 수석장로님이 손녀딸의 유아세례에 참여하기 위해 오늘 교회에 출석을 하지 못했다. 교회소식은 1) 오늘 봉헌은 알바니아에서 실종된 우리 체코청년교우를 수색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돕는데 사용된다. 2) 12월 23일 예배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실황중계된다. 방송시간에 맞추어 오전 9시에 예배가 시작된다. 3) 12월 25일 성탄절 예배는 체코-한인 교우들의 연합예배로 드리고 설교는 슈토렉 목사와 이종실 목사가 공동으로 한다. 4) 어제 바자회 수입금이 12,000꼬룬이 넘었다. 이 수입금은 보흐니쩨 정신병원의 장기 입원환자들에게 성탄절 선물 구입에 사용된다. 선물은 우리들이 일방적으로 구입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필요로하는 물품을 주문받아 구입해서 우리들의 사랑의 마음과 함께 전달될것이다.

제네바 회의 참석기

제네바 회의 참석기

2001년 6월 5일부터 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 존 녹스센터에서 “재 유럽한인교회 선교협력 증진을 위한 협의회”가 열렸다. 이번 협의회는 세계개혁교회연맹의 선교와 일치국, 존녹스 센터 그리고 유럽교회협의회의 공동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유럽의 한인교회들 대표, 미국장로교 한인대표, 재일대한 기독교회 한인대표, 한국의 각 교단 대표들 그리고 유럽의 한인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있는 유럽교회의 대표 등 총 55명이 참가하였다. 슈토렉 목사와 나는 체코개혁교회협의회의 추천으로 이 회의에 초청을 받아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 협의회는 유럽의 한인교회들이 교파주의를 극복하고 유럽교회들과 일치하여 21세기에 유럽에서 복음을 함께 증언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유럽의 한인교회 역사는 50년이 넘었지만 이번 회의는 유럽의 한인교회들이 처음으로 유럽교회 대표들과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새벽기도회, 예배, 오전 패널토의, 오후 그룹토의, 전체토의의 회의순서가 매일 반복되었다. 패널토의는 유럽의 한인교회대표들이 각각 자신의 교단의 유럽이주 역사와 현재 상황을 설명과 미국 한인교회와 일본의 한인교회들이 각각 미국교회와 일본교회들과의 일치와 협력에 대한 경험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두개의 한인교회들의 경험은 이번 협의회의 목적에 비추어볼 때 매우 중요한 사례보고였다. 사례보고는 배당된 시간 안에 한 체코 교회일치의 과정에서 느낀 체코교회의 경험을 더 자세히 듣는 기회가 되도록 슈토렉 목사가 발제를 주로하였다. 회의는 한국어 영어와 독일어를 사용하였다.

이번회의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였던 두 교회 가운데 하나는 우리 디아코니아 자동차 구입에 함께한 스톡홀름의 임마누엘 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 꼬빌리시 교회였다.

이번 회의를 통해 교회론적 선교론적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를 교회되게하는 비젼은 무엇인가? 교회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 도전은 이민과 다인종 공동체의 현장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 이민 공동체가 이민교회들을 향한 유럽교회의 정책은 무엇인가? 유럽교회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민족 형제 자매들에게 어떤 종류의 환영을 하고 있는가? 한인교회와 유럽교회가 선교적 과제를 공유할 수 있을까? 유럽 기독교인들과 한인 기독교인들이 함께 대처할 수 있는 유럽사회 안에서의 도전들은 무엇인가? 유럽 내에 현존하는 한인 기독교인들의 현존이 다른 이민 공동체들의 현존과 선교적으로 어떻게 관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제기되는 질문에 체코교회와 한국교회가 함께 걸어가는 꼬빌리시 교회는 이미 많은 응답을 하고 있다. 특히 꼬빌리시 교회는 “파트너십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교회”이다. 제도적인 교회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기체적인 관계의 교회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가 던진 많은 질문들은 동시에 앞으로 우리 꼬빌리시 교회가 걸어가야할 길을 보여주고있다. 이 질문들은 우리를 더욱 본질적인 교회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슈토렉 목사님이 운전하는 차로 편히 다녀왔다. 회의가 제기한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것인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돌아왔다.

회의는 한인교회와 유럽교회가 함께 참여하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음 회의 계획과 준비권한을 위임하고 마쳤다. 9월에 모인 추진위원회에서 일년에 두 차례 소식지 발간과 스톡홀름의 임마누엘 교회와 프라하의 꼬빌리시 교회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그리고 회의의 공식적인 이름을 “Korean Churches Together in Europe” 그리고 2003년에 “신앙 축제”를 준비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