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에 대한 체코의 법적용의 예

법원이 샤만(shaman)을 정신병 치료명령

지난 6월 38명이 음독을 시도한 명상집회의 지도자 뻬뜨르 호보뜨가 12월에 보흐니쩨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11월 28일 프라하 지방법원이 판결을 내렸다.

정신병 의사들이 호보뜨의 건강상태 검사 결과에 의해 결정을 하였다. 지난 3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상태가 좋아졌다고 정신병 의사들이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의사들은 뻬뜨르 호보뜨가 석방되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를 권면하였다.

호보뜨는 6월에 프라하 찰스대학 체육학부 강당에서 “원시림의 마법사들의 자유하는 자기 체면술”의 명상을 참석자들에게 “자기 자각과 명석몽-꿈을 꿀 때 어느정도 자각을 하는 것”을 약속하였다. 그는 그 명상을 돕기위해 참석자들에게 페루산 마약 종류의 차 Ayahuyasca를 준비하였다. 차를 마신후 물론 약속된 의식의 “높은”단계 대신에 몇 몇 사람들이 혼수상태가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음독으로 이상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당시 구호대원 가운데 한사람이 말했다.

참석자에게 명상 참가비로 1600꼬룬-2000꼬룬을 받은 호보뜨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샤만의 인쇄화된 교리가 없는 것을 비난 받게된 것이다. 왜냐하면 샤만은 자신이 시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비주의 전문가 뻬뜨르 리들이 말했다. 후에 분석가들이 차의 성분에 높은 환각상태를 유발해서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아트로핀, 스코폴라민과 독이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서 누구도 죽지않았다. 뻬뜨르 호보뜨는 10-20년 형이 가능한 독극물 사용법 위반과 공공사회의 위협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8월말 조사를 끝낸 것은 검사들에 의하면 당시 호보뜨는 처벌을 받을 수 없었다. 조사 이전에 정신적인 조사에서 뻬뜨르 호보뜨는 심각한 정신분열증세를 보였다.

11월 28일 프라하 지방법원의 배심원 재판관 하나 후바츠꼬바가 전문가들의 의견서를 검토하였다. “수감 치료 결정은 호보뜨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나 법에 저촉되지않는다. 건강상태가 바뀌고 긍정적으로 호전되는 경우 치료 의사가 법원에 알려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재판관이 말했다.

호보뜨와 그의 변호사는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처벌을 받은 사람은 죄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것은 단지 불행한 사고였다. 몇차례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한 어린 시절부터 우주적인 비젼을 경험한것과 관련해서 어쩌면 나는 미쳤다. 부처나 예수의 미친 것에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보뜨가 말했다.

체코에서의 자녀교육

자녀 교육을 함께 생각합시다

 

들어가는 말

해외에서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하다. 특히 체코에서는 자녀들을 영어교육이 가능한 학교에 보내거나 아니면 체코학교에 보내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 부모들 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교육적인지에 대한 질문은 한번쯤 토론의 여지가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토론은 이 글에서 피하기로 하고 오늘은 자녀를 체코학교에서 교육을 시킬 때 부딪치는 교육적인 문제를 생각나는 대로 일단 세가지를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교육철학 부재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해외에 나오면 제일먼저 다가오는 문제가 자녀교육이다. 그리고 최근에 한국에서 해외 이민의 주요 이유가 자녀들의 교육이라고 한다. 자녀들에게 영어나 다른 세계적인 언어를 어려서부터 익힐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은 부모들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마음만으로 해외 이주를 결정하기는 쉽지않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중요한 동기는 한국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 학교교육과 국가의 교육정책을 불신하는 부모들이 해외에서 자녀들에게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대체 교육기관이지만 우리 부모들 역시 해외의 자녀교육에 대한 교육철학은 물론 정보와 준비가 잘되어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에서 교육한 자녀들의 막연한 성공사례들을 가지고 내 자녀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녀들의 입장에서 학업의 어려움들을 부모들이 지나쳐 버리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교육이란 단지 언어의 학습만이 아니다. 인성교육과 민족과 국가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일까지 포함된다. 부모가 자녀들의 올바른 가치관을 지도 하기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자문을 해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그대로 드러날것이다. 자녀들이 겪는 문화충격이 무엇이며, 사춘기의 아이의 특징이 무엇이며, 사춘기의 특성들이 타문화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며, 타문화 속에서 아이들의 가치관, 사회성, 국가관 그리고 민족관의 형성 등 어느 하나 부모들이 연구와 고민없이 대답 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둘째, 체코어로 공부하는 아이들의 심리적인 충격

자녀의 입장에서 일단 언어의 문제이다. 언어습득에 있어서 어린아이들은 성인들 보다 외국말을 빨리 배우겠지만, 아이들의 언어습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차, 연령의 차, 학습환경 등을 전혀 고려하지않고 어린아이들은 외국말을 빨리 배운다는 신화를 부모들은 경전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영어나 독어 불어와 같은 세계언어가 아닌 체코어를 습득하는데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영어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경우 부모는 아이의 학습을 어느정도 도움을 주며 지도할 수 있다. 이것은 낯선 언어를 배우는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아이의 학습효과는 그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체코어로 학업을 하는 아이들의 경우 심리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부모들이 체코어를 함께 공부하지 않을경우 아이들은 체코어로 공부해야되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더구나 또래 아이들이 영어로 공부하는 학교에 다니는 경우 세계적인 언어를 배우는 것을 제쳐두고 소수민족의 언어를 배우는데서 오는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다. 체코어로 공부해야되는 당위성과 분명한 목표가 아이에게 제시되지 않으면 체코어로 공부하는것에 흥미를 잃게될것이다.


셋째, 체코학교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

체코의 한인 이주 역사가 일천하여 체코학교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제한 되어있다.
복잡한 체코학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한글자료가 아직 구비되어있지않다. 5년제 초등학교와 9년제 초등학교 그리고 4년제 김나지움(고등학교)과 8년제 김나지움, 사립학교와 국립학교의 차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립학교들의 종류, 사립학교의 단점과 장점, 아이의 장점을 조기에 발굴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특별 활동 학교들, 그 학교를 이용하는 방법, 예술과 체육계통의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의 종류, 입학방법, 다양한 특성을 가진 국립 초등학교들, 이공계열과 사회과학계열 그리고 계열 구분이 없는 김나지움의 구분의 기준과 그 특성들, 김나지움 입학전형 방법, 아카데미로 불리우는 전문학교들, 특별한 분야들을 전공을 하는 중등학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학교를 선정하는 방법은 물론 처음 체코에 왔을 때 학교에 입학시키는 방법, 체코학교들의 교육철학과 방법에 대한 이해,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측정하는 방법, 학생의 학교생활 태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체코학교의 규칙들, 초기에 체코어를 지도하는 하는 방법, 학업을 지도하는 방법, 외국학생들에 대한 학교법 등 기초적인 학교정보는 물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마저 모두 개인화되고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나가는 말

체코학교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을 돕기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은 체코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부모들이 만나서 자녀들의 경험과 어려움들을 가감없이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서로 돕는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 문화속에서의 자녀 교육에 대해 함께 지혜를 모으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자녀들이 공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국의 유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일일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19차 공동체 가족회의

제 19차 공동체 가족회의

일 시: 2001년 11월 25일 오후 7시
장 소: 꼬빌리시 교회 세미나실

<결의 및 토의사항>

1. 각 가족 대표 1인으로 하는 \"공동체 회의\" 형식의 대안으로 목회자, 총무 그리고 신임 총무가 협의하여 제안한 안 \"운영위원회 회의\" 에 대해 토론 후 그대로 받기로 결의하다.

\"운영위원회 회의\"는 각 부서 회의를 걸쳐 올라온 안들을 심의 조정 및 재정결의를 하며 공동체 전체회의는 분기별로 한다. \"운영위원회 회의\" 구성은 목사 총무 서기 회계 2인 각 부 부장과 찬양대 대장으로 한다.

각 부서는 선교부 교육부 봉사부의 기존 부서를 유지하며 부원조직은 선교부 – 40대 이상 남성도, 교육부 – 2-30대 남녀성도, 봉사부 40대 이상 여성도로 한다.

2. 회계 인선 방법을 토의 한 후 12월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재론키로 하다.

3. 11월 회기 말 재정잔액은 1) 강단 십자가 인테리어 2) 체코교회 재정자립을 위한 지 교회 상납금 50,000꼬룬 3) 알바니아에서 행방불명된 뚜츠꼬바 양을 위한 헌금 10,000꼬룬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잔액은 차기 회기년도 교회활동을 위해 이월키로 하다.

4. 기타 토의 사항

1) 바자회, 교인신상카드구비, 신입교우 교육, 한국어 강좌, 봉사활동에 교우들의 참여기회 부여 등에 대해 의견을 개진

2) 쁠젠 오픈 하우스 사역은 교회의 분열없이 더 좋은 변화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기도 요청.

3) 이제 문이 열린 체코선교는 선교의 모델을 개척하는 단계이므로 체코교회와 함께하는 우리 공동체의 사역은 매우 의미있는 노력이다. 우리 교회의 사역의 영향으로 브라닉교회에서 베트남인들 선교와 예배가 시작되었다.

공동체를 섬기는 분들 인선

두 해동안 공동체의 궂은 일을 돌보던 총무 강동주 집사님과 서기 신 호 성도님들이 임기가 만료되어 11월 18일 주일예배후 총무 서기 인선을 위한 투표가 은혜스럽게 마쳐졌습니다. 신임 총무에 송종식 집사님 그리고 신임 서기에 박경준 성도님이 인선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찬양대\"가 조직되고 찬양대 지휘에 심재화 집사님 그리고 대장에 권영봉 집사님이 맡아 수고하시게 되었습니다.

미련한 자들의 슬픔

  • 한인 예배 (2001년 11월 25일)
  • 마25:1-13
  • 설교자: 이종실

01/11/25 (삼위일체 후 스물네번째 주일)
본문: 마태복음 25장 1-13절
제목: 미련한 자들의 슬픔

<공동기도>
세상을 사랑하시어 구원의 복음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믿는 다고 하지만 복음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없어
불안해 하는 우리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미련한 자들의 슬픔이 우리들의 슬픔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13절)

<설교>

년 전 저의 아이 김나지움 입학시험 발표를 보기위해 학교를 갔습니다. 체코 학교는 합격자 발표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학교 현관 유리에 A3용지 한 장이 붙어있고 사람들이 거기에 옹기 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합격자 명단인 것을
알았습니다. 수험생 백 여명의 성적이 1등부터 차례로 모든 과목의 점수와 총점을 밝힌 성적 리스트가 현관에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30등 학생 이름과 성적 밑에 빨간 밑줄이 똑 바로 그어져 있었습니다. 빨간 줄 아래 이름들은 불합격입니다. 합격선 위 아래
학생의 성적차이는 불과 0.01이었습니다. 억울한 불합격생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체코학교는 “odvolani”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억울하게 불합격된 학생의 학부모나 가르친 선생님들이 합격 청원을 하면 심의를 해서 입학을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한국에서
입학시험을 떨어지면 이차 삼차 아니면 재수를 해서 원하는 학교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떨어지면 두 번
다시 치르지 못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억울하게 불합격되었다고 하소연 해도 관용이 없는 시험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천국
입학시험입니다. 오늘 본문의 천국비유는 특히 신자들인 우리들에게 정신이 번쩍 나는 이야기입니다. 천국에 합격한 줄 알고 넋 놓고
있다가 떨어진 사례입니다.

천국은 혼인잔치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 결혼 풍습은 팔레스틴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부장 사회로 결혼예식은 신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신부와 신부의 들러리들이 결혼식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신랑과 신랑 일가친척들은 신부의 가족과 신부의 가격을 협상하고 있습니다. 딸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의 정도에
따라 협상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딸을 크게 사랑하는 가족은 딸을 잃게 되는 것을 마음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한 가족들의
마음을 보여 주려면 흥정은 자연히 어려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이나 물건의 가치에 대한 흥정이 아니라 양가 집안의 관계성과
상호 존중과 존경을 세우는 협상입니다.

신부의 가격을 결정해야 신랑과 그의 일가친척들은 신부와 그녀의 들러리들을
데리고 혼인식과 잔치에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흥정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늦어져 밤까지
지연되고있다. 요즈음 시대 같으면 전기와 가로등이 있어 문제가 없겠지만 그 당시는 들러리들이 등불과 횃불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들러리들의 역할은 길을 밝히고 그 불빛은 결혼식의 분위기를 연출하게 될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들러리들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 4절까지 말씀입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로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태 25장 1-4절)


러리들이 10명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외모로 누가 지혜로운 들러리인지 누가 어리석은 들러리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10명의
아리따운 들러리 처녀들은 하나같이 옷 단장을 하고 머리를 깨끗이 손질하고 얼굴에 분을 칠하고 장식을 달아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등불은 모두 밝게 켜져 있습니다. 그들은 신랑이 오면 언제든지 바로나가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신랑과
그의 일행이 오는 일이 점점 지연이 되자 모두들 기다리는 것에 지쳤습니다. 지혜로운 처녀들도 미련한 처녀들도 모두 하나같이
기다리기에 지쳤습니다. 벽에 기대어 졸고 자는 그들의 모습을 만약 여러분들이 둘러본다면 누가 어리석고 누가 현명한지 구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장한 옷들이 구겨질까봐, 머리가 흐트러질까봐 조신하며 피곤한 몸을 잠시 기대고 졸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마치
즐거운 혼인잔치 참예의 단꿈을 꾸는듯 하였을 것입니다.

예상치 못하게 신랑이 오는 시간이 지연되자 졸고 자며 긴장이 풀어져 있는 한 밤중에 “신랑이 온다. 맞으러 나오라.” 누군가가 소리를 쳤습니다.
처녀들은 졸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 그 순간 혼돈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 처녀들의 등불에 기름이 떨어져 연기가 나더니 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순간 까지 10명의 들러리 처녀들에겐 결정적인 차이점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러리들의 책임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신랑이 도착했을 때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다섯 들러리들은 그들의 등불에 여분의 기름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계획하지도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빈 등불에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기름이 없어지자 불이 꺼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단 한가지 책임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랑을 마중
나가는데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랑과 무리들이 도착하자마자 예식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름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미련한 들러리들은 신랑의 행진을 맞이할 불이 없었습니다. 시골 농가 마을의 문화상황에서 이 미련한 들러리들의
행위는 신랑과 신부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식당에 저녁을 초대해 놓고 지불할 돈이 없다고 하는 황당한
경우입니다. 뒤늦게  기름을 구하러 나가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콘서트가 시작되면 극장의 큰 문은 닫힙니다. 누구도 입장이
허용되지않습니다. 결혼행진과 예식과 잔치는 그들의 등불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함께 결혼 예식을 기다리다가 그만
참가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들러리의 이야기는 마지막 때의 심각한 상황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를
주라 고백하여 천국 행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의 일부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마지막 때의 상황을 우리는 지금
보고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공의로 우신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합니다. 누구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빛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분이 없는 들러리들 사이에 심판의 순간에 구분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열심이 있고 도덕적으로
신실하고 순수해도 마지막 때에 시험에 통과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든것은 우리들이 진정으로 준비되어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는 도전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등불에 기름이 채워져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등불의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들러리 처럼 치장을 하고 등불을 들었다고 모두 들러리라고 말할 수 없듯이
예수를 믿는다고 모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들의 실존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주님께 복종된 존재를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그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 안에 결단성 있게 거하고 그의 빛을 받고 그의 가르침으로 살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존경하며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며 더욱더 성장하고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믿음으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름은 우리들의 더 깊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이 성장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복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그 은총이 우리를 훈련해서 우리로 하여금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준다”(딛 2,11-1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인 이 복음은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성장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 자신들을 냉철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받아들인 복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과 영혼에 깊이 들어와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의고사를 한번 치러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양심과 영혼이 그
증인이 될 것입니다.

짧은 기간동안 거룩하게 귀하게 보이기는 쉽지만 우리의 믿음이 오랫동안 한결같이 지속되는
것은 쉽지않습니다. 진리는 우리들의 삶의 오랜 과정에 의해 드러나게 됨을 오늘 이 비유는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기다림”으로 묘사하고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재림이 2천년이 지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오심은 이미 준비되었고
방심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장 27-28절)

사도 바울은 우리들은 모든 은혜를 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고전 1,7)  이처럼 복음을 진정으로 받아 들인 사람들은 기다림이 그의
소명이 됩니다. 이 기다림은 무작정 넋 놓고 기다리는 낭비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상관없이 산꼭대기에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만하며 하늘만 바라보는 수동적이 기다림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로마 군대에 체포되기 며칠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확신을 시켜 준비된 자로 기다릴 수 있게 하기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미래에 다가올 고난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천국 무대는 즐거운 혼인잔치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슬픈 장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예수님의 오심은 좋은 소식이지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가까운 친구의 기쁜 재림을 조금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우리들의 마음의 깊은 갈망과 기쁨의 완성입니다.

거짓 들러리들이 쫒겨나고, 인생의 질투와 무자비함들이 사랑에 의해 정복되고, 거짓말과 비난들이 진리 앞에서 밝혀지고, 잔인함과 폭력들이 평화로 정복되는 그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망과 한탄과 다툼과 분쟁들을  시시비비로 가려내고 악을 악으로 갚으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정의롭고 신실하고 선한
세상의 주인으로 나타나 약속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그의 나라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임하는 그날을 바라보고 인내하여 악을 선으로
승리하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리던 그 날에 우리들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거나
아니면 “저주 받을 자들아 나를 떠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것입니다. 저주 받은 자들이 항변을 합니다. “우리는 주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눅 13, 26)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복 받을 자여 나아오라” 아니면 “저주 받을 자여 나를 떠나라.”

<설교 후 기도>

님, 오늘은 교회 달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주일이 되는 날입니다. 이시간 주님의 재림의 때를 생각하며 나는 미련한 자인지 슬기로운
자인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그 은총이 우리를 훈련해서 우리로 하여금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준다”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아직도 복음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한 나 자신의 독한 품성과 세상적인 행실들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회개합니다.
진정으로 구원의 생명의 복음을 우리들의 영혼깊이 받아들이는 저희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마지막 주님의 때가
우리들에게 혼인잔치의 기쁨의 자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복 받을 자여 나아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모두 들을 수 있는 사랑하는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우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