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001년 2월 인구 조사

나눔터 제 12 호 (2001/03/04 발간)

    10년마다 시행되는 “인구조사” 문제로 찬반토론이 사회일각에서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이번 인구조사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어 “개인정보 보호법”에 저촉의 여지가 있기에 논쟁이 촉발이 되었다.
이러한 인구조사를 준비하고 있는 정부는 낡은 통계의 갱신과 올바른 국가정책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조처라고 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 조사에 의한 정보들이 상업적으로 남용될 가능성과 지나친 사생활의 간섭을 우려하고 있다.

    “체크 통계기관 (Cesky statisticky urad – CSU)” 이 수많은 조사요원을 동원하여 수집한
자료들은 6천4백만 꼬룬(한화 약 21억 7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개인 회사인 델탁스(Deltax)로 보내져 전산작업과 분석을
의뢰하였다. 문제점은 인구조사의 위탁 회사가 개인회사라는 점 그리고 위탁을 의뢰한 “체크통계기관”이 “국가안전기관”에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의뢰한 회사가 인구조사 사업에 타당한지 여부를 묻는 승인을 요청하지 않은 점이다. 위탁 받은 델탁스
회사의 입장에서는 법조문을 문자 그대로 따르면 어떠한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개인 정보 보호법”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국민의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체크의
법과 제도 사이의 이러한 모순들은 새로운 법이 제정될 때마다 이와 비슷한 혼선을 빚었다.  얼마 전 새로운 교통법이 제정되고,
외국인에 대한 비자 법이 변화 되었을 때 우리 모두들이 경험하고 있고 경험했던 혼란스럽던 일들을 체크 국민들도 늘 상 그렇게
겪으면서 사는 것 같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어디에서나 국민을 위한다는 “인구조사”가 오히려 민초들을 괴롭히고 불안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인구조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출애굽기 1장에서 애굽 왕 바로가 인구조사의 결과로
애굽인과 히브리인들을 비교할 수 있게 되어 결국 점점 번성하고 강해지는 히브리인들을 탄압하게 되었다. 사무엘하 24장은 다윗
왕의 인구조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을 도모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진노케하여 애매한 백성들이 재앙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이야기에 헤롯의 통치수단으로 호구조사가 있다. 해산을 코앞에 둔 마리아 같은 산모들에게 조차 예외가 없었을
만큼 강압적이고 권위적이었다. 국민의 사생활이 침해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는 뒷전으로 하고 인구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벌금 일만
꼬룬을 물어야 하는 제도에서 우리 한국인에게 그리 낯설지않는 사회곳곳에 스며있는 관료적인 사회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인구조사의 개인정보 남용의 염려로 일어난 비등한 여론에 대해 금번 인구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교회재산반환 협상과 교회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을 둘러싼 교회와 국가간의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교회들의 의도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 추호도 아님을 필자는 믿고싶다. 인구조사의 과정에서 나타난 사람과 사람간의 세워진 높은 불신의 장벽과  관료적인 사회의
그늘진 인권에 대해 성경에 의해 흘러나오는 한줄기의 목소리가 못내 아쉽다.

                                                                        목사 이종실

                                                          ●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 체코 형제개혁교단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 교회 목사

[살며 생각하며] 2000년 체코 성탄절기의 소고

나눔터 제 11 호 (2001년 01월 07일 발간)

    체코 성탄절기 풍경에 관해 글을 쓰면서 앞에 2000년을 의도적으로 붙여본다. 필자가 체코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93년도 11월 24일 부터이지만 그보다 한해 전인 1992년 겨울 성탄절인 12월 25일 직전에 프라하를 일시 방문한적이
있었다. 냉전시대에 직접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저 “철의 장막” 뒷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새벽에 도착한 프라하 중앙역은 중심지인 바츨라프 광장과 멀리 떨어져 있지않아 쉰 새벽 푸른 빛을 띈 잿빛 겨울 속의
중세도시를 만끽하였다. 바츨라프 광장, 무스텍(Mustek) 지하철 역 입구쪽에 간이 무대와 함께 하늘을 찌를듯한 키 큰 소나무
한그루를 세워놓고 거기에 커다란 종이 상자들을 별로 화려하지 않는 포장지로 싸서 군데군데 매달아 놓은 것이 프라하의 얼굴
바츨라프 광장의 성탄절 장식 모두였다.

    저 멀리 마주 보이게 서있는 바츨라프 말 동상과 균형을 잡고 서있는 성탄절 나무와 장식 그리고 주위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잔뜩 찌프린 안개 낀 잿빛 겨울날씨,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다가 갈수록 스믈스믈 뼈속이 시려오는 추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담요로 둘둘 말 듯 추위를 막기위해 투박스럽게 옷을 입고 거리를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무표정한 사람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없어도
간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들… 이처럼 꾸밈이 없는 거리의 풍경들로 자연스럽게 성탄절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에
그때 그 광경들은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아직 나의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체코 성탄절을 일곱 번 경험하면서 하나 특징적인 것은 점점 빨라지는 성탄절 분위기이다. 체코 성탄절 분위기는 주로
12월 25일 4주전부터 시작된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 두세 주 앞당겨 상점에서 성탄절 장식을 하더니 금년에는 한 주가 빨라진 한
달 전인 11월 초부터 백화점들이 앞다투며 성탄절 장식을 하였다. 성탄절 대목을 노리는 상술을 체코라고 피해갈 수 없다. 어쩌면
체코인들에겐 상술(商術)의 성탄절은 이전에 맛보지 못하던 새로운 성탄절 분위기일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변화의 성탄절
속에서 체코인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그 득실을 따져보게 된다.

    금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체코인들의 생활의 새로운 경향하나가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일년간 꼬기꼬기
모은 돈을 가족들을 위해 성탄 선물을 사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성탄절 이브때 몇번 체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가족간의 사랑과 인간미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성탄절 절기내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선물을 개별적으로 준비하여 집안에 놓여있는 성탄절 장식나무 밑에 갖다 놓는다. 그리고 성탄절 전날밤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수북이 쌓인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성탄 선물은 주로 선물을 받는 대상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입한다. 노트 몇 권, 책 몇
권, 장난감, 찻잔, 양초와 같은 값비싼 물건들이 아닐지라도 모든 가족들 개별 선물을 사려고 하면 한 사람에게 적은 부담은
아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최소한 휴가를 다녀온 여름이후부터는 성탄절 선물을 사기위해 각자 조금씩 조금씩 저축을 한다. 그런데
이제는 전체인구의 약 삼분의 일이 신용카드를 이용해서 성탄선물을 산다는 통계가 나왔다.

    의미와 상징으로 마음을 담았던 성탄절 선물도 이제는 퇴색되었다. 아이들이 제일 선호하는 성탄절 선물은 모바일
전화기라는 통계가 나왔다. 이동통신 전화상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양도 기능도 구형이된 전화기들을 이용한 값싼 상품들을 성탄절기를
앞두고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이처럼 성탄선물도 그 가격이나 종류가 예전같이 않다. 성탄절 선물은 신화와 꿈을 대신해서 인간의
욕구와 소비로 그 내용을 채워가고 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 계절이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가감없이 드러나게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부추기는 상술의 성탄절을 거부해 보자. 그리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야
할 주위의 정겨운 성탄절 행사들을 찾아보자.

목사 이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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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 체코 형제개혁교단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 교회 목사 

[살며 생각하며] 나눔터 한 돌을 맞이하며…

나눔터 제 10 호 (2000년 11월 11일 발행)

다른 편집진들의 작업 일정에 지장을 주지않기 위해 밀린 숙제 하듯 매월 나눔터 원고 쓰는 일이 벌써 한해가 되었다. 부족한 내용 이지만 함께 읽어준 독자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그 동안 지면을 통해 여러 가지 경험을 나누어주신 분들에게, 특별히 물심양면으로 격려와 지원을 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지난 한해 동안 나눔터에 대한 분에 넘치는 관심과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에 마음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 일은 몇몇 사람의 공명심에서, 그렇다고 체코의 한인사회를 위한다는 사명의식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또 필자가 목사이기에 전도의 열정에 넘쳐 한 사람의 교인 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하는 목회 사업(?)으로 시작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물 설고 낯선 타국살이를 자신의 실존에 접붙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해외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고국을 떠난 타국살이는 단지 고향을 떠난 타향살이의 설움의 감정뿐 아니라 삶의 존재방식에 대한 변화까지도 겪어야만 한다. 마치 한국과 같이 소수 민족의 작은 나라, 소수 민족의 독특한 언어와 문화와 역사가 있는 나라 체코는 대부분 교민들이 떠나는 날을 내다보며 살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체코는 대부분의 체코의 한국인들에게 목적지를 향하여 그냥 지나 가야만 되는 간이역과 같은 곳이다. 떠날 날이 기약된 체코의 타국살이를 자신의 실존에 접붙히는 방법은 결국 치열한 자기싸움밖에 없다. 이 싸움은 매 순간 삶의 방식에 대한 고뇌와 결단을 요구한다.
나눔터 발간으로 필자는 체코의 체류기간을 단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려는 인생의 동반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눔터는 이 인생의 동반자들의 조그마한 몸짓에 불과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내고 자신들의 생활비와 용돈을 쓰면서 간이역 같은 체코의 삶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보듬어 보려는 몸짓이다.

때론 허물과 실수도 있지만 나눔터로 삶을 나누려고 몸부림치는 모든 분들을 위해 이시간 사도의 기도로 기도를 올리고 싶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서 1장 9-11절) 

[살며 생각하며] 직장여성 가정여성

나눔터 제 9 호 (2000년 09월 03일 발행)

1997년에 교단선교협정 관계로 필자가 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장 및 그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총회장 부인인 즈덴까 스메따노바가 “체코사회의 여성 문제”란 주제로 호남신학대학교 여성지도자반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강의는 학문적인 논리 대신에 공산독재시대와 자유주의 시대를 걸쳐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체코사회의 여성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이야기 식으로 풀어 청강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어난 그녀는 남녀가 평등하고 독립적인 “사회주의 여성관”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탁아소에서 아이를 맡아 길러주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사일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남성들과 평등하게 발휘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는 희망을 소녀시절에 꿈꾸었고 그리고 그 시대가 도래할 것을 믿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직업을 갖고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돈도 벌고 여가를 즐기며 만족한 생활을 하였으나 사회주의 제도는 결혼생활에서 가사의 일들로부터 그녀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지 못하였다.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거리가 멀어 차라리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편하였고 탁아소 제도 역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만큼 도움이 되지 못하여 당시 결혼 여성은 가사일과 직장일 이중고에 시달렸다.”고 그녀는 술회하였다.

“4년간의 육아 휴가 법”이라는 제도적인 장치가 1989년 민주혁명 직후 제정된 것을 미루어 볼 때 사회주의 아래에서의 결혼 여성들의 고충이 컸음을 우리들은 간접적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혁명이후 직장 여성에 대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영 회사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개인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회사들은 언어능력과 컴퓨터 사용 능력이 있는 젊은 여성을 선호하게 되고 반면에 경력이 있는 중년, 장년층 여성들은 직장에서 점점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89년 민주혁명 이후 맞게 된 이러한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최근 정부자료가 공개가 되었다. 1988년에 대학졸업여성은 남성 봉급의 평균 81.4%를 받았으나 10년 후인 1999년에 64.9%로 떨어졌다.

우리 나라와 달리 체코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의 직장문제는 일부 여성의 문제가 아닌 전체사회문제의 긴급한 현안일 수밖에 없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정부의 법 제정 추진이나 법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의들 모두는 직장 내 여성차별을 본질적으로 해결하자는 의견에는 한치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가정과 여성’이라는 가부장적인 인식이 일반적인 우리사회에서는 체코 정부가 추진하는 “직장에서의 남녀평등의 법”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직장 내에서 여성차별의 문제를 제거하려는 체코정부와 사회의 노력을 보면서 체코선교를 위해 7년 전 떠나온 정들었던 총회에서 함께 근무하던 여성직장동료들이 차(茶)심부름과 설거지 사역(?)의 부당함을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하소연하던 그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목사 이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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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 체코 형제개혁교단 꼬빌리시교회 한인 공동체 목사
 

[살며 생각하며] 체코인들의 여름 휴가

나눔터 제 8 호 (2000년 7월 6일 발행)

7월, 드디어(?) 휴가의 계절이 돌아왔다.

체코 땅을 밟은 뒤 처음 맞이한 7, 8월은 너무나도 생소했었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면 있을 여름성경학교, 중고등부 수련회, 청년부 수련회와 같은 여름행사를 준비하느라 온 교우들이 부산을 떠는 한국교회와는 대조적인 체코 교회의 7월은 내게 불안과 죄스러운 마음을 안겨주었다. 7월에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지내도 되는 것일까? 스스로 죄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체코 목회자들은 경력에 따라 받게 되는 3주에서 5주 정도의 연가를 어김없이, 하루의 착오도 없이 챙긴다. 그래도 교회가 문제가 없을까? 오히려 바라보는 내가 불안하였다. 체코 목회자들은 3-5주의 대부분 휴가를 7,8월에 사용한다. 목회자들의 휴가가 집중되는 여름에 설교자를 구하기 쉬울 리 만무하다. 그래서 장로님들 몇 분이 돌아가면서 목사님 대신 설교를 맡는다. 교단 총회에서 목회자 없는 교회를 위해 설교를 포함한 예배 인도를 안내하는 예배 지침서가 매년 발간된다. 장로님들은 그 지침서에 준해서 예배를 준비하면 된다. 그래서 장로님들의 개성(?)있는 설교로 왈가왈부하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예배에 은혜가 없다느니, 형식적인 예배라는 등의 교인들의 타박도 들을 수 없다. 하기야 교인들도 7, 8월에 2-3주 휴가를 떠나거나, 아니면 신선한 햇볕을 더 따끈하게 맞이하기 위해 여름철에는 주말마다 가족들과 시골 별장에 나가 시간을 보낸다. 이 무렵 주일날 교인들이라 해야 여기 저기 다니시기 불편하신 노인들이 전부이다. 7, 8월 여름철에 교회문이 닫히지 않고 그래도 매년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7, 8월 여름 휴가철의 교회의 풍경은 사회 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화가 우선이냐? 복음이 우선이냐? 열정에 찬 질문은, 휴식을 모르고 그래서 왜곡된 휴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삶을 먼저 생각해본 후에 던지기로 하자.

체코인들의 평균 연간 휴가 일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70 년대에 16.2일, 80 년대에 17.1일, 90 년대에 17.7일 그리고 새로운 노동법에 따르면 2001년부터 평균 25일의 연간 휴가를 즐기게 된다. 휴가 일수는 서유럽 국가들의 수준에 육박해 가지만, 89년 이후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면서 예전처럼 휴가 날짜를 임의대로 정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체코인들 대부분은 방학 기간에 자녀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길 원하고 있으나, 고용자들은 피고용인들의 휴가가 7, 8월에 집중되어 회사 또는 공장 운영에 차질을 빚는 것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체코 사회의 하나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온 가족이 함께 보내는 7, 8월 휴가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체코인들의 여름 휴가는 진정 재충전(recreation)의 기간이다. 천식과 알레르기를 예방하기 위해 바다를 찾기도 하고, 식견을 넓히는 해외여행을 한다. 아니면 시골 별장과 주말 농장에서 그 동안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서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식물과 꽃을 가꾸며, 가까운 연못에서 멱을 감고, 자전거를 타거나 숲 속을 거닌다. 자연 속에서 여유를 찾는 체코인들의 휴가와 휴식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며, 이제는 체코 사회의 큰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쯤에서 한번 우리의 휴가 문화를 생각해 보자. 휴식 없이 일하는 부지런함만을 미덕이라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잃어 버린 것은 무엇일까?

며칠 전 한국에서 항공 우편으로 배달된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이만재 카피라이터의 ‘풍경’이란 글을 보았다. ‘먹고 마시고 놀자’는 간판으로 뒤덮인 산하(山河)의 풍경을 보면서, 소비적, 낭비적, 향락적으로 변질되고 왜곡된 우리의 휴식 문화에 대해 그는 예언자(預言者)적인 일성(一聲)을 발(發)하였다.

“그렇게 많이들 먹고, 그렇게 많이들 마시고, 그렇게 많이들 자빠져 놀아도 그 삶이 내내 온전할까?”

목사 이종실(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 목사 겸 꼬빌리시 교회 한인 공동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