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후스(Hus) 화형과 바티칸

나눔터 제 4 호 (2000년 3월 5일 발행)
[살며 생각하며] 후스(Hus) 화형에 대한 바티칸의 사과와 명예회복

    1990년 교황 바울 2세가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를 방문하면서 계획되어 그 후 오랫동안 준비된 후스에 대한 바티칸 심포지움에서, 1415년 로마카톨릭에 의해 화형을 당한 얀 후스에게 99년 12월 17일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체코 언론들은 교황의 발표가 교회의 사과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단지 “죽음 앞에서 도덕적인 용기를 잃지 않았던” 인간의 죽음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사과와 함께 카톨릭교회의 차원에서 뒤따라야 할 실질적인 후스 개인의 명예회복에 대해 교황이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스의 가르침에 토대를 두고 있는 체코개혁교회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결과라 생각이 된다.

    체코 로마카톨릭교회와 개혁교회들은 후스의 개인 명예회복보다 그의 유산을  카톨릭과 개혁교회들이 교회적인 과제로 공유함으로써 후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를 대신하려고 하는 것 같다.

    체코의 양대교단인 로마카톨릭교회와 체코형제개혁교회의 두 지도자는 2000년의 문턱에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높은 도덕적인 차원을 요구하는 후스의 가르침과 후스의 화형에 대한 역사적인 교훈으로서 신앙에 의한 대립을 거부하고 교회들이 일치해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함께 완수해 갈 것을 결의하고, 이를 위한 교육으로  양대교단이 공동으로 체코교회 역사 교과서를 발간하기로 하였다.

    체코 로마카톨릭교회, 체코형제개혁교회(교단)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교세를 이루고 있는 소위 후스파 교회(교단)에서 최근 중요한 결의들을 하였다.  후스파 교회는 “체코슬로바키아  교회”라는 이름으로 1920년에 세워졌고 1971년에 “체코슬로바키아 후스 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교단이 세워진 것은 1920년대의 체코 민족주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1 8년 오스트리아로부터 체코민족이 해방이 되고 체코슬로바키아 1공화국이 건설될 무렵 “반(反) 로마카톨릭”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것은 로마카톨릭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와 밀접한 관계인 것에 대한 민족주의의 경향이었다.  이때 많은 체코인들이 로마카톨릭을 떠나 새로운 교단을 만든 것이 이 후스파 교단이다.  우리들이 잘 아는 체코슬로바키아 초대 대통령 마사릭도 로마카톨릭 교회에서 나온 이 교단 교인이다.  교단 설립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이 교단이 80주년을 맞이하는 2000년을 기해 금번 8차 회의에서 중요한  선언을 하였다.

    체코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무신론주의자들은 체코인들의 조상인 후스파 개혁자들에게 오늘의 교회가 빚을 진 것이라고 고백을 했다.  이 빚을 갚기 위해 체코 로마카톨릭교회를 포함하여 모든 교회들에게 열린 교회로서 함께 연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겠다는 결의를 하였다.

    체코 로마카톨릭교회와 개혁교회들의 일련의 다짐과 계획들을 보면 무언가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후스의 유산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와 그 의미를 찾는 것으로 후스의 명예가 진정으로 회복되는 것일까?  교황의 사과와 함께 카톨릭교회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명예회복에 대한 주장과 역사적인 평가로 후스의 명예가 회복된다는 것을 후스는 어떻게 생각할까?

    후스가 원하는 것은 체코교회들이 오늘의 후스로 다시 태어나 이 땅에 진리를,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목사 이 종 실)
 

[살며 생각하며] “윗 교회”, “아랫 교회”

나눔터 제 3 호 (2000년 1월 2일 발간)
목사  이 종 실
 
[살며 생각하며] 나의 새천년 새해의 꿈 “윗 교회”, “아랫 교회”

    작년 한해 체코형제개혁교단 소속의 30여개 교회를 방문하여 설교와 교인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중에 지난 10월에 방문한 “프세띤”교회는 저에게 인상이 깊었습니다. “프세띤”은 프라하에서 동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슬로바키아 국경 부근에 있는 조그마한 도시입니다. 오랜 옛날에 루마니아로부터 매우 호전적인 부족이 정착을 하면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체코에 몇 안되는 중앙광장이 없는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전국을 제패한 이 도시의 아이스하키 클럽은 시민들의 긍지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설교를 하러 가기 전에 항상 그 도시와 교회의 역사 그리고 목회자들에 대해 사전 지식을 습득하였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은 프세띤에 형제개혁교단 소속 교회가 두 개가 있는데 주소가 같은 거리 이름에 번지 수만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방의 소도시의 거리는 길어야 100m도 채 되지 않기에 같은 거리에 두 개의 교회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교회가 대문을 같이하는 울타리 안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교회당이 세워진 곳이 산비탈이기에 조금 산 위쪽으로 있는 교회가 “윗 교회” 그리고 아래쪽에 있는 교회가 “아랫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교회 모두 다 1700년대 말에 세워진 이곳 교회 역사에 의하면 소위 “관용의 교회”(카톨릭의 관용으로 개혁파들이 자신의 교회당을 갖게 되었다는 뜻)들이었습니다. 카톨릭이 개혁파들의 교회당을 허락할 때에 길거리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고 교회당에 십자가를 세우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윗 교회”와 “아랫 교회”는 십자가가 없는 예배당이었습니다. 후에 “아랫 교회”는 수리를 해서 교회탑을 세우고 교회종도 달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한울타리 안에서 ‘윗 교회’ ‘아랫 교회’로 나뉘어 각각 자기 예배당을 갖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윗 교회”는 칼빈의 장로교 전통교회이며, “아랫 교회”는 루터의 전통 교회입니다. “윗 교회”는 주로 가난한 계층들로 구성되었고 “아랫 교회”는 부유한 교인들이었습니다. “윗 교회”는 주일날 예배참석 인원이 200명이 넘었고 “아랫 교회”는 60명 정도 모입니다. “윗 교회” 교회당은 고풍스러웠지만 낡았고 “아랫 교회”의 교회당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손질을 해서 새것처럼 보였습니다. 예배 시간이 같아서 윗 교회 교인들도 아랫 교회 교인들도 아랫 교회 교회당 종소리를 듣고 모여들었습니다. 두 교회는 구성원도, 신앙 전통도 달랐습니다. 그 동안 많은 갈등들이 있었을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장로교, 루터교의 각각 다른 교단으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한 교단 안에서 자신들의 갈등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날 저는 윗 교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은혜가 넘치고 감격스러운 예배였습니다. 모라바 사람들의 정서가 우리 한국 사람과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예배 후 악수를 나누기 위해 교회당 출입문에 서 있는데 눈물을 닦으며 나오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농사일에 거칠어지고 두툼하게 느껴지는 손들이 힘있게 저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오늘 정말 내가 설교를 했는가?” 의심을 했습니다. 오후에는 윗 교회, 아랫 교회 교인들 100여 명이 교육관에 앉아 한국 교회에 대한 저의 강연을 듣고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집에서 직접 구운 과자와 빵들을 나누면서 이야기가 끝없었으나 열차 시간 때문에 아쉬운 시간을 마감해야 했었습니다. “윗 교회” “아랫 교회” 목회자들이 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프세띤에 와서 자신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들의 지역과 활동들을 보면서 교회 성장을 위해, 지역 선교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조언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역전까지 나와서 전송하는 “윗 교회” 부부 목사들(부인도 안수받은 목사임)의 흔드는 손처럼  프라하로 돌아오는 6시간 열차 여행 내내 “윗 교회, 아랫 교회” 이 두 단어는 갈등과 분열로 상처투성이인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윗 교회, 아랫 교회! 당신들은 교회 성장을 위해서 지역 선교를 위해서 이미 화해와 조화의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는 세상의 빛과 소금들입니다. 당신들의 믿음과 삶이 이미 지역 주민에게, 아니 이 한국인의 가슴 까지 전달되고 있습니다.

    새천년 새해에 저도 “윗 교회 아랫 교회”를 꿈꾸겠습니다. 한울타리 안에 남과 북이 “윗 교회 아랫 교회”처럼, 전라도와 경상도가 “윗 교회 아랫 교회”처럼, “한국기독교단”이란 이름 아래 수많은 교파들이 “윗 교회 아랫 교회”처럼 함께 어깨동무하고 살아가는 그날을 꿈꾸겠습니다.”

[살며 생각하며] 1999년의 체코 성탄절 풍경

나눔터 제 2 호 (1999년 12월 5일 발간)
목사  이 종 실
 
[살며 생각하며] 1999년의 체코 성탄절 풍경 소고(小考)

  교회에서는 성탄절기를 대강절이라고 한다. 성탄절인 12월 25일 이전 네 번째 일요일에 시작되는 대강절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를 기다림이다. 상술로 찌든 성탄절기에 익숙한 나에게 기다림과 설레임이 자연스럽게 스며나는 체코 성탄절기의 분위기는 그 날을 기다리는 참맛을 깨우쳐주었다.

  소박하면서도 꾸밈이 없이 모두들 함께 즐거워하는 거리의 문화행사들, 대강절이 시작되면서 검소하게 내걸린 상점들의 성탄장식, 동네 마을 광장에 세워진 조그마한 성탄나무 한 그루, 그 나무를 무대로 성탄노래를 합창하는 동네 초등학교, 유치원 학생들, 그 주위에 옹기종기 모인 성탄선물을 파는 간이 가게들, 그리고 성탄나무를 쌓아 놓고 파는 곳에서 풍기는 향긋한 솔냄새와 잉어장수의 비린내가 어울리는 성탄절기 후각이 한층 성탄절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러한 성탄풍경들은 대강절이 시작될 때 비로소 하나씩 둘씩 거리를 장식하면서 점점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설레임이 느껴진다.

  그러나 1999년은 11월 마지막 주일부터 시작되는 대강절이 이미 11월 초부터 백화점과 상점들에 찾아들었다. 상술의 번뜩이는 재치로 백화점과 상점들은 앞다투어 요란한 성탄장식을 하고 있다. 체코혁명 십년만에 보게되는 체코사회의 또 하나의 변화이다. 천년의 마지막 성탄절을 기해 더 많은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고자 하는 상인들의 “기다림과 설레임”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기다림”에는 고통과 희망이 공존한다. 고통 받는 자들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기독교인이란 아비 친척집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고통을 스스로 원하는자들이다. 세상의 가치관과 대적함으로써 겪게되는 아픔과 시련으로 기뻐하는 자들이다. 이 시련을 겪어야만이 새벽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참된 희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 20일 바츨라프 광장에서 1989년 11월 혁명 1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서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은 10년 전 자신의 구호를 다시 외쳤다.

“진실과 사랑은 반드시 거짓과 증오를 이깁니다.”

  참된 희망을 소유한 사람만이 진실과 사랑의 삶을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마리아처럼 고통 속에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한다”(눅1:46-47)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고향을 떠난 나그네로서, 순례의 길을 떠난 성도들로서 외로움과 고통을 서로 나누며 기다림의 계절에 마리아 처럼 우리 모두 함께 희망을 노래하자.

[살며 생각하며] 나눔터 창간호를 내면서

[살며 생각하며] 나눔터 창간호를 내면서

요즈음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각종 설문과 대담, 그리고 관심들 속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밀레니엄에는 과거보다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시대는 세기가, 그것도 밀레니엄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도적처럼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생관과 생활관의 변화 없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계획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각종 환상과 우상을 타파하고 인생의 행복의 본질과 새로운 시대의 표상을 바라보는 깨어 있는 기독교인들의 사명이 더욱 절실한 때입니다.

  공산 동구권과 구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지금 세계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긴장에서 “지구화” 또는 “세계화”의 긴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긴장을 세계 교회들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면을 평가하면서 아울러 3분의 2의 세계를 소외시키고 문화를 자본과 정보에 의해 창출하는 부정적인 측면의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교회들은 연대를 하며 세계 기독교인들의 사명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세상의 가치관에 대한 교회의 대응과 이를 위한 세계교회의 연대는 선교 역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소위 서구 기독교 문명 국가들의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배치되는 식민지 팽창에 기반을 둔 제국 건설로 상호 경쟁국들을 구축해 내려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제국주의의 시대적인 조류에 편승한 복음 확산과 그리고 그들 국가들 간의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류 최악의 재앙은 필연적으로 세계 교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선교를 재 숙고케 하고 선교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케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계교회의 일치와 연대가 선교를 위한 전략적인 필요가 아니라 교회들의 본질적인 사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들이 “개인의 회심과 교회 성장”을 토대로 전세계적으로 일치해서 하나님의 선교의 대행자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인류와 창조세계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 한국교회의 교파주의 개 교회주의는 아직 세계교회의 세계화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신앙의 독특성(은사)을 세계 교회들과 함께 나누지 않는 것은 마치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성서에 나오는 무익한 종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독특성과 신앙 전통을 다른 신앙 전통을 가진 사람들과 “나눔”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세계교회와 함께 나눌 수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은사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아울러 우리들의 부족한 모습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넓은 의미의 선교입니다. 선교역사는 자기 갱신과 복음의 확산이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이 해외에 살면서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들과 신앙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됩니다. 특히 체코는 세계종교개혁의 출발지로 체코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개혁교회의 신앙 유산들은 가히 개혁교회의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혁교회의 성지에서 체코 기독교인들과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나눔을 위해 지난 10월 3일부터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체코-한국 에큐메니컬 예배”는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신앙의 나눔이라는 이 예배의 취지를 활성화하고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예배의 소식지를 월보로 발간하여 체코개혁교회의 신앙의 유산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이 소식지가 가족 같은 작은 공동체인 체코의 한인가족들을 위해 조그마한 섬김이 되었으면 합니다. 언어 장애와 극심한 문화의 차이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생활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체코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인가족들을 위해 개인 개인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생활정보를 수집해서 함께 나누는 일,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 간에 서로 따뜻한 마음이 흐를 수 있는 한인가족들의 소식도 함께 나누는 일에 이 소식지가 조그마한 보탬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일을 이해하고 자원하는 자매들과 형제들이 없었더라면 소식지 발간의 계획은 마음 속에 접어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체코와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나눔과 한인들의 따뜻한 마음의 나눔을 위한 섬김”이라는 이 소식지의 본래의 취지에 따라 더 뜻 있고 예쁜 이름이 정해질 때까지 소식지의 이름을 [나눔터]라고 결정했습니다.

  지면으로나 내용 면에 있어 부족하기 짝이 없고, 앞으로 체코어판이 발간되기까지는 절름발이에 불과합니다만 나눔의 섬김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한결같은 지도와 편달, 그리고 격려와 후원을 바랍니다.
 
나눔터 제 1 호 (1999년 11월 07일 발간)

목사 이 종 실

반감(反感)을 일으킨 기독교 선전.

반감(反感)을 일으킨 기독교 선전.

체코언론은 최근 인구조사가 보여준 감소된 기독교 인구 10% 즉 백만명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토론을 시작하였다. 1990년 불신자가 전인구의 39.9%였던것이 현재 58%이된 원인이 많으나 누구도 이렇게 큰폭으로 기독교인구가 감소한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언론이 이 토론에 참여하게 된것같다.

명백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다. 1989년 보도자료들이 무리지어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선전 하였던 것 처럼 혁명이후 그 자료의 주요한 내용이 변화하였고 기독교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었다. 심지어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많은 프라하 기자들이 공산주의에서 기독교인으로 날마다 변하고 있다.

그러한 체코 엘리트의 내적인 사상의 변화의 동기는 사회학적인 연구를 포기케 하였다. 체코인은 10여년간 방어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한것에 반대하는 가르침의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주요 뉴스 즉 공중파 텔레비전 뉴스의 사회자가 교황을 “성부”로 표현할 때 절대다수의 국민(불신자와 개혁교도)들에게 요한 바울 2세 교황이 김정일 보다 더 거룩한 아버지가 아님을 숙고하지않았다.

부활절기나 성탄절기에 공공언론은 기독교 풍습을 기껏해야 소수의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성경 이야기를 각색한다. 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방영은 대다수의 비신자 국민들에게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방송은 사상적으로 중립을 지켜야한다. PD들은 이러한 점에서 방송 자질이 없다.

몇몇 “비좌파” 체코신문들이 조직적인 기독교선전에 점점 더 많은 면을 할애하고 있다. 첫눈에 하나님 또는 창조주 단어가 많은 기사의 제목이 들어온다. 한 신문이 톱기사로 “신자수 감소…” 제하의 최근 인구조사 결과를 다루었다. 왜 중복어를 사용하는가?(번역자 주 –체코어에서 ‘신자’는 영어식 표현을 빌려 바꾸자면 ‘believer in God’이 된다. Believer로 충분하지않고 in God을 덧붙인다. 이것이 저자가 의미하는 ‘중복어’(pleonasm) 이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믿는 신자들(“성삼위일체”-맑스, 엥겔스, 레닌/스탈린을 믿는 사람)이 있기때문인가? 톱기사는 어울리지않게 넓은 지면에 신앙과 관련된 제목을 달았다.

기독교 도덕에 대해 숙고하고 십계명을 분석하고 인터뷰로 정치인들의 신앙에 대해 조사를 한다. 신문기사들은 체코 기독교 전통과 현재 그리고 (특별히 카톨릭)교회 간의 짧은 연합을 대중적으로 형성하였다. 이들 신문들은 모든 일반적인 언론의 중립성과 신앙에 대한 질문이 공개적으로 토론이 되지않는 사람의 개인의 문제라는 원칙에 대한 프랑스의 좋은 규칙을 배우려하지 않는다.

모든 노력에서 우리의 언론의 종교 선전이 국민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기독교 선전을 외면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금번 인구조사에 반영되었다. 혁명이후 공산주의 세뇌를 싫어하는 사람들 가운데 신앙인이 되었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적지않은 비율이 “종교 없음” 항목에 기쁘게 표시를 하였다.

마르틴 다녜스 / 소설가, 정치학자
(200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