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를 참관하고

제2차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를 참관하고 (1997년 11월 1일 여전도회보)

체코형제개혁교회 일원으로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를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교회 내적.외적으로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 마다 전체 유럽교회가 함께 모였던 다른 어느 교회 회의 보다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의 교회사적 의미는 앞으로 교회사가들에 의해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질것으로 믿는다.

1차 2차 세계대전, 소위 철의 장막으로 불려진 냉전시대의 유럽의 분열, 그리고 옛 유고연방의 내전등과 같은 현대사의 참혹한 경험들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다.  이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8년전 1989년 스위스 바젤에서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로 분열된 모든 교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유럽 분열의 종식이 역사의 한 흐름이 될것으로 전망하고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교회의 역할을 의논하였다.

그러나 8년후인 금년(1997)에 그들은 “새로운 유럽” 건설을 위해 다시 한번 총회로 모일 수 밖에 없었다.  6월 23일 부터 29일 까지 전 유럽의 160개 이상되는 각기 다른 교회(교파)와 20개 이상의 선교 단체로 부터 약 만명이 오스트리아 그라쯔(Graz)에 모였다.  유럽교회들의 고뇌를 금번 2차 총회의 주제인 “화해 – 하나님의 선물, 새 생명의 근원”에서 읽을 수 있다.  화해는 분열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런뜻에서 옛 유고연방과의 국경부근인 오스트리아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그라쯔는 화해의 대상인 분열과 갈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이다.  정치적
으로 냉전시대에 나토와 바르샤바 양진영의 대표들이 만났던 곳이며 교회적으로는 에큐메니칼 활동 단체들이 일어났던곳이다.  이처럼 그라쯔는 금번 총회가 추구하는 화해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지정학적인 상징성을 갖고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진 지금 유럽의 화두는 “통합”이다.  “철의 장막”으로 나뉘어졌던 동-서유럽의 통합, 시장과 화폐의 통합이다.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있는 각각의 이질적인 민족들이 통합하기위해 유럽을 우선 하나의 시장으로 건설하는것이다.  이 시장의 건설은 “신자유주의 와 세계화 라는 유령”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유럽교회들은 유럽대륙에 이 유령들에 의해 깊고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동-서 유럽으로 갈라놓았던 냉전시대의 “철의 장막”이 “은(silver)의 장막”으로 대치되고 있다고 경고 하였다.  “은의 장막”이란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열을 의미하는 “철의 장막”이 무너진 이후 동서유럽간의 경제적 차이로 인해 분열이 오히려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프랑스 복음주의 교회 엘자베스 팔멘티즈 목사는 이러한 상황의 유럽을 “공포” 와 “희망” 이라는 두 쌍둥이를 갖고있는 임산부에 비유를 하였다.  이 공포와 희망 사이에서 유럽교회는 “화해”로 자신의 역할을 자리매김 하였다.  그리고 이번 총회에서 유럽교회는 그 화해의 길을 유럽의 정신적 토대인 기독교 뿌리에 대한 반성과 그 역사로 부터 배움으로써 찾으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회의의 결과가 정치, 경제, 사회일반에 즉각 반영되기 보다는, 서서히 그리고 교회간의 화해의 노력으로 나타나게될 것이다.  화해의 노력으로써 동서 교회들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것임을 함께 인식하며 동시에 그것을 하나의 행동양식으로 지켜가기로 약속하였다.

회의를 참석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것은 “철의 장막”이 무너지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도 유럽의 거대한 변화의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변화의 방향은 동서유럽의 통합이며, 유럽교회는 그 변화를 단지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경제적인 방법에 맡기지 않고 “평화”라는 정신적 가치의 토대위에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화해”라는 주제가 도출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한국교회는 동유럽 선교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동유럽을 대표할만큼 중요한 위치에서 총회의 회원교회로 참석한 러시아 정교회는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교회의 일치를 한국교회가 파괴하고 있다는 비난을 유럽교회들 만이 모이는 이 회의에서 조차 거론하였다.  물론 러시아 정교회의 일방적인 편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유럽교회의 흐름과 동떨어진 우리의 동유럽 선교는 앞으로 복음주의 계열의 유럽교회들 조차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선교 이제 달라져야한다.

해외선교 이제 달라져야한다. (1996. 9. 7 새누리신문)
    –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체코 프라하 집회 유감

체코 프라하는 1300년대에 이미 성경대로 성찬예식을 실천하여 평신도가 성찬잔(포도주)을 받았던 “벽 속의 성 마르틴 교회”, 루터 보다 1백년 앞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얀 후스가 설교한 교회인 “베들레헴 채플”, 빌라호라(白山)전투에 패배한 개혁파 지도자들의 목을 쳐 20년동안 매달아 놓은 까렐교 교각탑과 같은 개신교회의 역사의 흔적이 담겨있는 많은 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어, “말씀(복음)대로 사는 삶” “진실(진리)을 지키는 삶” “교회의 청빈한 삶”을 노력했던 개신교 조상들의 정신과 신앙을 지금도 엿볼수 있는 곳이다.

체코의 이처럼 뿌리깊은 개신교회는 마치 “예수를 위해 우리는 죽음의 위협을 겪고 있다”고 고백한 초대교회 처럼 중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경이 전하는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아온 교회이다.  체코인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의 시대가 1989년 공산정부의 몰락으로 도래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유의 시대는 체코 전통개신교회들에게 새로운 고난의 시대가 되고 있다.

몇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일부 해외선교사들의 일방적인 선교활동때문이다.  극단적인 신비주의 성령운동의 경향이 연약한 전통개신교회의 분열을 야기시켜 이곳 교회지도자들은 이러한 성령운동을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선교활동에 대해 “쳐들어 온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최된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체코 프라하 집회(8월 13일-14일)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선교를 위해 개인적 소견을 갖게되었다.  물론 조 목사의 집회가 성령운동이 무질서하게 일어나는 이곳 교회들에게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것을 기대하지만, 새누리 신문을 통해 조 목사의 기하성이 교회의 연합을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회원교회로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을 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회가 열리게되어 해외선교와 교회(교단)의 연합운동의 상관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하성이 교회협에 참여함으로써 교회협이 소위 “새틀”을 갖추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데 앞으로 조 목사의 선교활동이 새틀안에서 교회협의의 해외선교방향을 제시하는데 기여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계교회들과도 연대와 일치, 연합과 동역의 정신을 가지고 연약한 교회일지라도 현지교회(교회협)들과 숙의 검토하여 조 목사의 선교활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세계교회와의 연대와 일치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것은 개신교 총10개 교단을 다 합해야 45만명 교인도 채 안되는 체코 개신교회들에 대한 이곳 일간지와 큰 도로 광고보드에 선전된 내용대로 “70만명의 교인을 이룬 세계제일 큰 교회”가 갖추어야할 신앙인의 자세 이자 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선교의 자세를 갖추고 세계교회들과 연대와 일치의 연합정신의 범위안에서 선교활동을 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느 한 개인, 어느 특정한 교회, 어느 교단 하나에 국한되는것은 아니다.  최소한 교회협 참여 교단들만이라도 교회연합의 정신을 함께 구현시켜 나가야 할 곳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곳이 바로 선교사들이 교회들이 각 교단들이 개별적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해외선교현장임을 지적하고 싶다.

이미 몇몇 교단은 유럽에 해외노회까지 설립한 실정이 되었으니 해외선교현장의 무질서와 난맥상을 다시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교회의 교파주의, 개교회 주의에 의한 한국교회의 선교의 문제점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새틀의 교회협”의 참여교단들이 해외선교 현장에서 교파주의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없이 교회연합을 추구하는것은 교회와 사회를 부패시키는 타락한 교회정치의 한 단면을 스스로 보여주는것이다.

교회협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새롭게 이루어가는 교회(교단)들의 노력에 끝없는 애정과 사랑을 보낸다.

척박한 선교현장

척박한 선교현장 (1996. 8. 31 기독공보)
    – 체코형제개혁교회와의 선교협정서 체결의 81회 총회헌의 소식을 듣고

기독공보를 통해 체코형제개혁교회와의 선교협력과 협정서 체결을 위한 헌의가 81회 총회에 상정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현지 선교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본인으로써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이 앞으로 우리교회가 체코선교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근 체코교회의 형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체코교회의 현황

체코의 개신교는 약 10개의 교파가 있고 전체인구의 3퍼센트, 약 45만명에 불과하다. 약 10개 개신교 교파가운데 가장 전통적, 중심적 교회가 우리 교단과 동역할 교단이 “체코형제개혁교회”(이하 형제교회)이다.

“형제교회”는 2백 64개의 교회에 15만 3백 71명의 교인이 있다.  이 교회의 뿌리를 얀 후스(Jan Hus, 1419년 화형)로 부터 한다면 5백년의 역사이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로 부터 공식 인정을 받은 때로부터 그시작을 본다 하여도 2백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이다.  긴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소수교회인 까닭은 교회역사 자체가 고나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카톨릭의 박해와 공산당의 박해속에서 교회를 지키고 신학을 발전시켜 헝가리 개혁교회, 슬로바키아 루터교회와 함께 “형제교회”는 매우 귀중한 개혁교회의 유산을 지금까지 잘 간직하고 있는 뿌리깊은 교회이다.

체코의 기독교 분포가 카톨릭 45퍼센트, 개신교 3퍼센트 그리고 불신자가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그리고 공식적 통계로 절반 가까이 되는 기독교 인구 가운데 실제 출석 교인은 약 10퍼센트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체코 전체인구의 약 95퍼센트를 복음화해야 하는 선교적 과제를 “형제교회”는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교회의 생존”을 위해 모든역량을 모으며 인고의 세월을 살았고 지금부터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뿌리깊은 반감

1989년 이후 체코 정부가 이전에 국유로 몰수했던 재산을 원 소유자에게 반환을 하고 있고, 최근 교회재산을 반환하기 위해 정부가 법제정을 추진하자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반대를 제기해서 좌절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체코 개신교의 사황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정부가 “교회재산반환의 법”을 추진하자, TV장송이 이법에 대한 국민 여론을 직접 취재하여 방송을 한적이 있다.  이때 국민의 10명중 10명이 모두 반대의사를 표현하였고 심지어 “왜 정부가 교회 목회자(신부, 목사)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봉금을 지불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정도였다. (체코에서는 각각의 교파가 정부로 부터 예산을 받아 소속 목사 또는 신부에게 사례비를 지급하고 있음)

척박한 선교현장

체코 인구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불신자들은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분명히 취하고 있어 목회자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목회자는 일(노동)하지 않고 책 읽고, 노래(찬송)부르고, 일요일에 몇사람 앞에서 10-20분 정도 연설(설교)하고 정부로 부터 돈을 받는 사람들이다”라고 비판한다.  1989년 이후 체코사회는 바뀌었지만 체코교회는 여전히 공산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특히 불신자들이 이해하는 교회는 카톨릭 교회이며 전체 국민의 3퍼센트에 불과하는 개신교회는 소수종파로 생각하여 개신교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체코는 선교의 황금어장이 아니다.  우리 교회의 눈물의 기도를 요구하는 척박한 선교현장인 것이다.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노력하는 “형제교회”형제 자매들에게 한국교회가 동역교회가 되어 함께 관심을 가지고 서로 기도하는것이 말할 수 없는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것이다.

총회 해외선교 정책을 위한 제언

총회 해외선교 정책을 위한 제언 (1993년 10월 30일 기독공보)

우리 총회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는 모슬렘 국가를 제와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현지인 교회(교단)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과 직접적으로 선교협정을 맺거나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 교회협의회(CCA), 세계선교협의회(CWM) 등 에큐메니칼 기구를 통해 직접, 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와같이 에큐메니칼 관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그들과 관계없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우리 총회는 펴왔다.  하나의 예가 독일이다.  우리 총회는 EMS와 선교협정을 체결하고 EMS의 요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EMS와 협의 없이 우리 임의대로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에큐메니칼 관계 따로, 해외선교 따로 시행되었던 “세계선교부” 이전의 이야기아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세계선교부”가 신설되었다.

세계선교부 발족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총회 파송선교사의 양적인 증가이다.  세계선교부가 여러면에서 점점 전문성을 갖게되어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을 교회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아울러 그 관심들을 집중하여 매년 수십명의 선교사가 새롭게 파송되고, 선교비 예산도 수억원씩 늘어나고 있다.  특별히 옛 소련과 베트남 등 공산국가에 선교사 파송이 많아졌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관계와 해외선교는 세계선교부 발족이전의 총회해외선교와 큰차이가 없어 세계선교부 신설의 뜻이 빛바래가는 안타까움이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총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은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식민주의적 모델이다.  복음이 필요한 곳에 자발적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방적 선교형태이다.  두번째는 동역 선교모델이다.  즉 현지 교회의 요청에 의해 필요한 인적자원을 파송하는 경우이다.  이때 원칙은 선 선교협정 후 선교사 파송이며 세계에큐메니칼 회원교회들이 동역 가능한 교회이다.  다른 하나는 나눔의 모델이다.  세계선교협의회를 축으로 하여 회원국간의 인적 물적 경험의 나눔으로서 선교를 한다.  여기서 해외선교의 용어는 나눔으로 대신하며 나눔은 일방통해이아닌 쌍방통행의 선교형태이다.  이것은 서구 제국주의 선교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것이다.

이와같이 상호모순을 갖는 모델들이 세계선교부 설립 이후에도 계속 공존하거나 확대되고있다.  이로 인해 세계 선교부는 교회, 선교사 그리고 해외교회들에게 선교활동은 있지만 선교정책과 선교행정의 원칙이 없다고 비판을 받게되었다.  따지고 보면 해외선교에 대한 많은 비판들 – 원칙 없는 선교사 파송, 동역교회를 배제한 현지 선교부 설립, 선교활동에 대한 사전 조율없이 선교사들을 같은 국가, 같은 지역에 파송하는 일, 선교사들 사이에 있는 불협화음, 주먹구구식의 선교행정, 선교사 개인의 판단과 절차에 따라 결정되는 세례식, 성만찬, 목사 안수, 장로 장립의 문제, 선교사의 안식년 문제 등 – 은 모순을 갖는 세계선교부의 활동에서 기인되고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순의 본질적인 해결이 없는 세계선교부의 선교정책은 한국교회의 기형적인 선교모습을 초래하게될것이다.

선교현지교회와의 관련성을 갖는 해외선교모델 개발은 세계선교부의 긴급한 선교정책 가운데 하나이다.  분산된 빛들을 한곳에 모아 강력한 열에너지로 바꾸는 렌즈와 같이 파송 선교사들의 다양한 해외선교 모델들과 독자적이며 동시에 역동적인 개교회의 해외선교 열기를 하나의 촛점으로 집중하게 하는 세계선교부의 해외선교모델이 존재할때 비로소 총회의 해외선교의 방향성이 정
립될것이고, 지금까지 진행된 선교활동, 교회(후원교회), 총회 그리고 해외교회들과의 정당하고 일관성있는 협력이 이루어지게 될것이다.

이 뼈대가 구축되면 선교사의 후생복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자연스럽게 제시될 수 있을 뿐아니라 선교정책을 포함한 제반의 문제들이 점점 발전적 지향을 갖는 대안을 창출하는 토론의 장을 확보하게될것이다.

체코 사회의 여성의 문제

체코 사회의 여성의 문제
강연자: 즈덴까 스메따노바(총회장 스메따나의 부인)
호남신학대학교 여성지도자반 개강 세미나 강연, 1997. 3. 10.

사랑하는 자매들 그리고 형제여러분
우리 나라 체코공화국으로 부터 진실한 인사를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립니다. 체코는 유럽중앙에 있는 작은 나라이며, 여러분의 나라에서 수천 킬로미터떨어져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멀리 떨어져 살지만 같은 믿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서로 연합하고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분들과 만나서, 우리자신들의 경험을 서로이야기 나누고 믿음 안에서 서로격려하기위해 우리들을 여러분의 나라로 초청해주신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은 이 만남을 무척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에게 고백해야되는것이 있는데, 여러분들께서 제가 무슨 말인가를 해주기를 기대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주저함이 없이 무대에 서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이야기하는 여성에 속하지 못합니다. 제 남편은 언제나 이야기를 하고 나는 조용히 듣는 것에 익숙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릴 때 혹시 떨거나 불명확한 것이 있더라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 무엇을 말씀드려야할지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엄마! 지금까지 살아온 엄마자신의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세요. 틀림없이 모두들 좋아하실 거예요.\"하고 저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의 이야기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저의 이야기여서 죄송합니다.

저는 2차세계대전 당시 태어났습니다. 공산주의 시대에 저는 어린 시절 그리고 사춘기를 보냈습
니다. 학교에서는 아직도 어린 우리들에게 우리들은 우리부모님이나 조상들의 생활보다 더나은 \"새로운 청소년\"이라고 주입을 시켰습니다. 우리 소녀들은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남자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들은 남자들과 평등해야 하며 독립적이어야 하며, 각각 자신의 할 일과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우리를 위해 우리의 사회주의 국가가 모든 우리의 가정일을 맡게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부엌주방을 빙빙 돌지 않을 것이며 대신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탁아소가 우리 아이들을 돌보아주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이들 주위를 뛰어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할수있다는것입니다. 그것은 희소식이었고 우리들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화학과를 졸업하고 직업을 가졌습니다. 저는 매우 하고싶었던 직업을 가졌고 돈도 벌고 여가도 즐길 수 있어서 나는 만족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남편이 목사로 일하는 시골로 이사를 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첫딸이 생겼고 6개월 후에 저는 다시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무엇이 노예인지 알았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12 킬로미터 떨어진 시내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돌보는 유아원이 단지 시내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쉬는 시간 정오때 아이들을 찾으러 가야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제일먼저 음식 장만하는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약속한 식당 역시 시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다른 모든 집안일 들을 했습니다. 정말 저는 노예였습니다. 남편의 노예가 아니라 사회주의 제도의 노예였습니다.

둘째 딸 그리고 셋째 딸이 생겼을 때 더 이상 직장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11년간 아이들과 집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직장다닐때 처럼 노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집안일 하는 여자들은 마치 아주 이상한(이국적인)동물처럼 바라보았습니다. 전혀 일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막내딸 아이에게 부모님이 어디에서 일하는지 질문을 하면 딸아이는 얼굴만 빨개져서 한마디 말도 못했습니다. 엄마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집에 계시며, 아버지는 목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 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놀림감으로 취급되는 것은 우리들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989년 우리 나라에 찾아온 자유와 민주주의로 많은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주 하나님께 매우 감사하며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4살될때 까지 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수 있게되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전 세계에서 4년간의 육아 휴가가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혁명 직후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할 것으로 희망적인 기대를 했습니다. 우리의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은 우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인도주의적인 활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활동들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전혀 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자 어린이들을 돕는 Vybor dobr v le 와 같은 재단이 등장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의 첫 번째 부인이 그 재단의 설립자였습니다. 그녀는 어떤 교회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우리 교인들 보다더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주 하나님은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 교인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제 기독교인들이 설립하는 재단들이 생겨났습니다. 몇년전에 우리기독교에 Sdru en na podporu Domova Sue Ryder 가 설립되었습니다. 영국 국적의 카톨릭 교인이 설립자인 Sue Ryder 재단은 동역자들에의해 1953년부터 전 세계에 90여 개의 시설(집)을 건축하였습니다. 그것은 죽어 가는 사람들을 돌봐주는 사랑의 집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에 이들 희생적인 사람들은 이해부족과 재정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았다 매일 그 일을 위해 기도모임을 갖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합니다.

혁명이후 그러나 더 나쁘게 변화된 것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영향들 역시 우리 나라에 침투하였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이 독주를 마시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어른들뿐 아니라 청소년들 결국 최근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까지 널리퍼져버렸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너무 많이 일터에 있어 어디서 어떻게 자신의 아이들이 방과 이후의 시간을 보내는지 지켜볼 시간이 없습니다.

다음은 매춘문제 입니다.
젊은 처녀아이들 어떤 경우에는 아직 어린 아들인 그들이 빨리 그리고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현재 우리 나라 시장에 홍수처럼 밀려오는 비싼 수입품들을 구입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돈벌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입니다. 서유럽으로 가는 우리 나라 국경부근의 도로 가에 그렇게 돈벌려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얼마전 자기 남편의 동의로 집 장만을 위해 매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중년부인과의 텔레비전 대담방송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여성들을 위해 계속적인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절감하게되었습니다. 어떤 한 지역에서는 이미 에큐메니칼한 기도 모임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그런 불행한 여성들을 위한 기도를 규칙적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다음 문제는 혼자 사는 여성들 즉 과부나 이혼한 여성들의 문제입니다.
이미 어린아이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특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아이들이 엄마의 양육아래 두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의 의무는 아버지에게 있지만 거의 대부분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어머니들은 생활비와 자녀양육을 하는데 필요한 돈을벌기위해 직장에 다녀야만합니다. 대부분 커다란 재정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주 아프면 좋은 직장을 떠나야하는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직장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고용자들은 아직 어린아이가 있는 혼자 사는 여성을 채용하기를 꺼려합니다. 그것은 중년 또는 장년 층의 여성들에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1989년 혁명이후 몇몇 국영회사들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잃게되었습니다. 새로운 회사들이 생겨났지만 대부분 개인회사여서 그들은 외국어와 컴퓨터 사용법을 배울 수 있고 많은 다른 능력이 있는 젊은 여성들을 선호합니다. 그들의 나이로 하기 힘든 매우 피곤한 일들만을 그들은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많은 여성들은 이미 그런 것을 배우고 익힐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찾지못하게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나라에서는 남자들 보다 더 나이든 여성들이 힘든 일로 하루를 마치게됩니다.

그리고 나이 많아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자녀가 없거나 자녀들이 있다하더라도 그들이 어머니를 모실만한 거처도 없고 또 어머니를 돌볼만한 시간도 없어서 양로원으로 들어갑니다. 체코에 있는 양로원들은 대체로 좋습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방하나에 침대 하나에서 세 개까지 있고 음식도 맛깔스럽습니다. 시골에도 모두 그런 대로 괜찮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 양로원은 본질적인 인간존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의사들과 간호원들은 노인 분들에게 인간적인 말들을 나누는 분위기나 시간이 없는 일에 눌려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들로 부터 경시 경멸 때론 무자비함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양로원 노인들/솔직히 말씀드려 노인여성들 – 대부분이 여성/은 서로 사랑과 존경을 나누는 삶을 볼 수가 없습니다. 모든 종류의 질병들 육신의 고통, 나쁜 기분, 걱정, 세상에 대한 비통함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그들을 힘들게 합니다. 이처럼 노인여성들은 결국 품위가 없고 창피스러운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보내게되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매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들을 만나서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위해 여러분들께서 기도해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공허하고 죄 많은 삶을 이긴 왕이심을 알게된것을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의 피가 아주 이기적인 마음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한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주님께서 십자가의 능력아래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순수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허락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