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Ondřej Kolář

Lukáš 1,26-38

Když byla Alžběta v šestém měsíci, byl anděl Gabriel poslán od Boha do Galilejského města, které se jmenuje Nazaret, k panně zasnoubené muži jménem Josef, z rodu Davidova; jméno té panny bylo Maria. Přistoupil k ní a řekl: “Buď zdráva, milostí zahrnutá, Pán s tebou.” Ona se nad těmi slovy velmi zarazila a uvažovala, co ten pozdrav znamená. Anděl jí řekl: “Neboj se, Maria, vždyť jsi nalezla milost u Boha. Hle, počneš a porodíš syna a dáš mu jméno Ježíš. Ten bude veliký a bude nazván synem Nejvyššího a Pán Bůh mu dá trůn jeho otce Davida. Na věky bude kralovat nad rodem Jákobovým a jeho království nebude konce.” Maria řekla andělovi: “Jak se to může stát, vždyť nežiji s mužem?” Anděl jí odpověděl: “Sestoupí na tebe Duch svatý a moc Nejvyššího tě zastíní; proto i tvé dítě bude svaté a bude nazváno Syn Boží. Hle, i tvá příbuzná Alžběta počala ve svém stáří syna a již je v šestém měsíci, ač se o ní říkalo, že je neplodná. Neboť ‘u Boha není nic nemožného’.”

1:26-38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서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Milé sestry, milí bratři, 

Do vánočních svátků zbývají ještě tři týdny. Biblický text, který jsme právě slyšeli, můžeme označit jako adventní, ale klidně už i jako vánoční. Příchod Božího syna na tento svět anděl Gabriel sice teprve ohlašuje. Avšak ve skutečnosti ten příchod právě začíná. Ježíš zahajuje svou pozemskou pouť prozatím ve skrytosti, v Mariině těle, ale přece skutečně. Ne až potom v Betlémě, ale už tady, v Nazaretu mezi nás sestupuje Bůh. Už od samotného počátku – od samotného početí – jde stejnou cestou jako my všichni ostatní. A půjde jí spolu s námi až do konce.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성탄절까지 아직 3주가 남았습니다. 우리가 방금 전에 들은 성경 본문은 대림절 본문으로도 또는 성탄절 본문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가브리엘 천사가 선포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도래가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 속에 숨겨져 이 땅의 순례를 시작하시지만 그럼에도 그 순례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나중에 베들레헴에서가 아니라, 이미 여기 나사렛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 땅에 오시는 그 순간부터,우리 모두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이 땅을 떠나실 때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떠나실 것입니다.

 

Jeho příchod se ale něčím důležitým liší. Zatím o tom kromě Marie nikdo neví. I pro ni to ovšem zůstává tajemstvím. Nerozumí tomu, je překvapená a o všem vtichosti rozjímá. Boží tajemství tu nejsou od toho, aby se vysvětlovala, ale aby se súžasem, vděčností a radostí přijímala, tak jak to učinila i Marie. Není to hádanka, kterou máme vyřešit, ale je to dobrá zpráva o Božím mocném jednání s člověkem. A když Bůh jedná s člověkem, vždycky je to tajemství – vždy je to pro nás překvapivé a nepochopitelné.

그러나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중요한 점에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과 다릅니다. 처음에 예수님의 오심은 마리아 외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마리아에게도 예수님의 오심은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해하지 못하고, 놀라고, 조용히 그녀에게 되어진 일을 깊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신비는 설명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경이로움과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하심에 대한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행하신 모든 역사하심은 언제나 신비이고, 놀라운 것이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Marie byla dívka asi ve věku dnešních mládežnic, která ovšem byla již ženou na vdávání. Nic pozoruhodného na ní nebylo. Nic zvláštního nebylo ani na Galileji, ani na Nazaretu. Do očí bijící je právě ta obyčejnost, pro mnohé až pohoršlivá. Stejná, jaké bude jednou vBetlémě. Kam přichází anděl? A ke komu promlouvá? Proč ne třeba kněkomu z náboženských představitelů Izraele, kteří jsou přece kompetentní ve věcech proroctví, mesiášů, andělů a podobných záležitostí? Proč se celá scéna neodehrává třeba v paláci židovského krále Heroda? Bůh na naší straně nepotřebuje žádné zvláštní předpoklady pro svůj příchod. Nevyžaduje královský palác, červený kobereček a uvítací výbor. Bůh neobdarovává ty, kdo si to zaslouží nebo k tomu mají zvláštní dispozice, ale ty, kdo to právě nečekají, protože si jako obdarování hodní vůbec nepřipadají. Jako třeba právě Marie.

마리아는 오늘날에 비춰보면 결혼할 수 있는 젊은 나이의 소녀였을 듯 합니다. 그녀는 눈에 띄는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갈릴리나 나사렛 또한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평범했으며, 많은 것들이 평범함 이하였습니다. 나중에 베들레헴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천사가 어디로 오나요? 그리고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왜 모든 예언이나, 메시아나, 천사들이나, 이와 유사한 문제에 있어서 능력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 중 한 사람과 관련하여 행해지지 않을까요? 왜 이 모든 일이 예를들어, 유대 왕 헤롯의 궁전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있어 하나님은 우리 편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 어떤 특별한 전제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왕궁도, 레드카펫도, 환영단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거나,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 마리아 같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Dívka milosti plná má přivést na svět Mesiáše. Ten měl podle starých proroctví pocházet zkrálovského rodu. Kdo jiný než potomek dávného krále Davida by mohl zasednout na Davidův trůn. Josef, Mariin snoubenec, skutečně zdavidovského rodu pocházel. Takže to vypadá, že se proroctví přesně plní. Jenže něco je tu v nepořádku. Marie má počít syna už teď – i když zatím s Josefem nežije. Slavný davidovský rodokmen je tedy jaksi vyřazen ze hry. Protože do hry vstupuje Bůh sám. Opět vidíme, že Bůh tu buduje něco velkého, aniž by k tomu potřeboval lidskou pomoc. Sám se stává pánem situace. Když Duch zavěje, dějí se velké věci – i uprostřed lidské bezradnosti a bezmoci. Poznala to Mariina příbuzná Alžběta, která počala ve svém stáří syna, ač se o ní říkalo, že je neplodná. Nyní to má poznat také Marie.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한 은혜를 받은 소녀에 의해 메시야가 세상에 태어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하면 메시야는 다윗왕의 혈통을 통해 태어납니다. 고대 다윗왕의 후손 외에 누가 다윗왕가의 보좌에 앉겠습니까..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은 실제로 다윗왕가 출신입니다. 이로 인해 선지자의 예언은 정확히 실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마리아가 요셉과 살기 전에 잉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다윗의 가계도에 기이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그 가계도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께서 인간의 도움 없이도 여기 무엇인가 엄청난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상황의 주권자가 되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인간의 당혹함과 무력함에 상관없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사실은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이 나이 많아 잉태치 못한다고 하였는데 아들을 잉태한 것으로부터 엿볼 수 있는데, 이제 마리아도 이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Davidovská dynastie v minulosti mnohokrát žalostně selhala. David sám byl slavným králem, stejně tak jeho syn Šalomoun, ale další následovníci na trůnu už tak slavní nebyli. Mnozí králové přímo sesílali na Izrael pohromu. VJežíšově době od Davidových potomků málokdo něco převratného očekával. Byl to bezvýznamný rod, jeho zlatá éra byla dávno pryč. Na trůnu tehdy seděl Herodes, krutý vladař, ale byl to vlastně cizinec, Idumejec, s Davidovci neměl nic společného. A také on byl malý pán proti římskému císaři, což byl vládce celého tehdejšího světa. Bůh si ovšem dobře vystačí i bez davidovských, herodovských, římských či jiných mocipánů. Dějiny spásy začínají někde jinde.

과거 다윗왕조는 여러 번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과 함께 위대한 왕이었지만, 다음 왕위 계승자들은 그다지 훌륭한 왕들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왕들이 이스라엘에 직접 재앙을 초래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소수의 사람들만이 다윗왕의 후손들로부터 무언가 혁명적인 일을 기대했습니다. 다윗왕가는 보잘것없는 왕가가 되었고, 황금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잔혹한 통치자 헤롯이 왕좌에 앉아 있었지만,  사실 그는 이방땅 이두메 사람이었고, 다윗왕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그 당시 전 세계의 통치자였던 로마 황제에 맞서는 작은 군주에 불과하였습니다. 물론 다윗왕조, 헤롯왕조, 로마제국의 통치자들 없이도 하나님은 스스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구원역사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Co to tedy znamená, že Marie počala jako panna? Co znamená, že na ni sestoupil Duch svatý a moc Nejvyššího ji zastínila? Dnes to vnímáme především jako porušení přírodních zákonů. Tehdy to lidé vnímali jinak. Přijímali to jako zprávu o tom, že Bůh snámi dokáže něco nového začít i od úplné nuly. Počítá snámi a jedná s námi, i když my mu nic dobrého nabídnout nedokážeme. Muž – tehdy a do jisté míry i dnes symbol moci, zvládání, ovládání – je tu odstaven na vedlejší kolej. Muž – ztělesnění všeho velkolepého i strašlivého, co člověk vlastními silami dokáže – nemá v tomto Božím ději místo. Selhávající lidskou moc tu nahrazuje moc Boží – stvořitelská a zachraňující.

그렇다면 여기서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강림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녀를 덮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우선 자연법칙을 위반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다르게 인식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완전히 영우로부터, 완전히 제로로부터 새 일을 시작하실 수 있으심으로 인식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선한 것도 드릴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를 감안하시고 우리와 함께 행하시는 것입니다. 남자 즉, 여기서는 요셉을 가리키는 것이 되겠습니다마는, 예수님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정도 오늘날까지도 남자는 권력, 지배, 통치의 상징인데,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갓길로 벗어나 있습니다. 위대한 일이든지 또는 끔찍한 일이든지,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와 구원의 능력인 하나님의 능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U Boha není nic nemožného, ujišťuje Gabriel Marii na závěr. Toto zaslíbení by mohlo být dobrým závěrem i dnešní adventní zvěsti. U Boha není nic ztraceno a prohráno, i když se to tak zlidského pohledu může jevit. Můžeme dokonce říci: Právě tam, kde jsme my prohráli a zakopali všechny šance, začíná Bůh jednat. Jenže tím bychom cosi důležitého zdnešního příběhu vynechali. Zatím ke slovu nepřišel další důležitý aktér toho dění. Mužský prvek je vyřazen, ale ten ženský zůstává. Celou dobu je tu přece Marie. Záleží teď na ní, jak se k tomu všemu postaví. Pokud by na ní nezáleželo, nemusel by jí to Gabriel vůbec zvěstovat. Bůh by ve své všemohoucnosti a suverenitě mohl jistě jednat i bez jejího souhlasu. Ale nejedná tak. Čeká na její odpověď.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음을 확신시킵니다. 이 말씀은 대림절을 맞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다시 오심을 확신케 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실패한 것 같고 패배한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는 실패나 패배가 없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패배하고 모든 기회를 잃어버린 바로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 이야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전한 말씀 속에 아직 중요한 배우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속에 남성적인 요소는 주변으로 물러나 있지만 여성적인 요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본문 이야가 속에 마리아가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는 이제 마리아에게 달려 있는 것이 됩니다. 만약 이 이야기의 결론이 마리아에게 달려있지 않다면,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수태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분명 마리아의 동의 없이도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마리아의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A Marie skutečně odpovídá, jakmile se vzpamatuje zprvotního šoku: Hle, jsem služebnice Páně. Staň se mi podle tvého slova. Můžeme její postoj porovnat stím, jak na podobnou zvěst odpověděl kněz Zachariáš, manžel Alžběty. Zachariáš namítá, že on i jeho žena jsou pokročilého věku, a navíc se dožaduje nějakého znamení. Marie žádné znamení nežádá. Věří i bez vnějších opor. Říká své malé „ano“ tomu velikému Božímu „ano“ k nám.

마리아도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충격에서 회복되자마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이 대답을 엘리사벳의 남편, 대제사장 사가랴가 비슷한 수태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사가랴는 그와 그의 아내가 나이가 많음을 들어 수태소식에 이의를 제기하였으며, 게다가 수태소식에 대한 표적을 구했습니다. 이에 비해 마리아는 아무런 표적도 구하지 않았고, 단지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 „예“에 그녀의 작은 „예“로 응답하였습니다.

 

Bůh sestupuje mezi nás. Ale nevtrhává knám bez ptaní. Nevlamuje se do našich dveří, aby si prostě prosadil svou vůli. Přichází tiše. A ptá se nás. Oslovuje nás, bídné, a přece milostí zahrnuté. Nečeká od nás jistě žádnou předepsanou zbožnost a mravnost. Ale čeká na naši odpověď. Čeká, že se k jeho pozvání neotočíme zády. Že se otevřeme tomu velkému Božímu dění, i když mu plně nerozumíme. A hlavně: že se přestaneme spoléhat jen na to, co umíme a dokážeme, a necháme Boha jednat.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지도 않으시고 우리 삶에 막 난입해 들어오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을 깨부수고 들어오셔서 그분의 뜻을 관철시키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조용히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비천하지만 그러나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명문화된 경건함이나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초대에 등을 돌리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에 우리 자신을 열어두는 것을 원하십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에 의지하는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Pro všechny sebejisté a silné je to ovšem kámen úrazu. Je těžké přestat být pány situace a vlastního života a stát se Božími služebníky. Pro slabé, bezvýznamné, kteří už nic moc od sebe nečekají a vidí jen svoje omezené možnosti – pro ty je to naopak veliké zaslíbení. Radujme se, neboť jsme – spolu sMarií – u Boha nalezli milost. Amen.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은 특히 자신감이 넘치고 자아가 강한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그들의 삶의 주인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은 연약하고, 보잘 것 없어서 스스로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큰 약속이 됩니다. 기뻐합시다. 왜냐하면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