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랑

처음에 이 부분을 읽었을 땐, 뭐 이런 시덥잖은 얘기를 덧붙여놓았나 생각했었습니다. 아니, 자신의 사도성을 피력하기 위해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려면, 그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걸 각인시킬 만한 어떤 뽀대나는 체험을 얘기해야지, 고작 한다는 얘기가,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몰래 도망쳐나온 그 일이란 말인가? 여러분, 바울이 할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십사 년 전 낙원에 이끌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런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기들은 그의 자랑목록에서 제해집니다.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 들은 이 말씀 때문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강함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약함 속에서 온전히 드러나리라 하신 그 말씀에 근거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9)

바울이 말하는 ‘약함’ 혹은 ‘약한 것들’이란, 단순히 그가 앓고 있던 질병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한없이 나약하고 없어 보이는 그 모습들을 포괄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닮은 그런 연약함입니다. 거기에 무슨 자랑할 것이 있단 말인가? 있지요! 그 십자가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능력이 된다는 사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바로 그 고난과 약함의 실존 속에서 역사한다는 사실!

바울이 자랑하려는 것은 ‘그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가 겪는 고난 속에서, 그의 그 약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공의와 사랑과 정의를 행하며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그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바울이 자랑하려는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는 비록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그가 기꺼이 깨어질 때 그 안에서 쏟아져나올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입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4:7)

이런 맥락에서 바울이 다메섹의 경험을 언급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의 일이 그에겐 그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경험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가려 했던 그곳에,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 복음을 전하는 자로 다시 서게 됐던 그 경험, 거기서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고 예수님 때문에 위기 맞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손길을 느끼며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그 스릴넘치던 경험, 남들이 와! 하고 탄성을 지를만한 대단한 경험은 아닐지 몰라도, 그 순간이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울이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그의 그 고난과 약함 뒤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었다는 사실!

여러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맞기도 하지요. 하나님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늘 해주시면 좋을텐데 늘 그러지는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늘 되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겠지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없이 우릴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길을 늘 걸어갈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가 복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언제 가장 생생히 느끼십니까? 어떤 이가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셔서 바라는 대로 잘 되게 하셨다는 얘기, 물론 좋은 일이긴 한데, 그런 얘기 들을 땐 별 느낌이 없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지요.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인내하는 분을 볼 때, 순종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순종하려 애쓰는 분을 볼 때, 손해와 희생이 예상됨에도 담대히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뛰어드는 분을 볼 때, 그런 신앙인의 모습을 볼 때면, 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가장 생생히 느끼고, 때때로 그 모습에 혼자 감격하여 울컥하기도 합니다. 그건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뜻이잖아요! 그의 그 약함 속에서 하나님이 강하게 그를 붙들고 계시다는 증거잖아요! 그리스도인의 성공과 자랑은 내가 하는 일이 남보다 잘 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내가 주님 안에서 주님 기뻐하시는 길로 걸어간다는 그 자부심일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가장 잘 증거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무엇을 어떻게 자랑하며 사시겠습니까?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그 예수님의 길을 따라 늘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영원히 찬송받으실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자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