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인간소통의 언어>
이세상에 그토록 다양한 언어들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한번쯤 스스로 질문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 성경의 창세기 저자도 아마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고 그 대답을 하고있다. 그것이 바벨탑 이야기이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이 세상에 서로 다른 말이 생겨난 까닭을 설명하고있다. 처음에 언어가 하나뿐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힘을 합해 도시 문명을 건설하였다. 하늘 위에서 신이 의사소통을 하며 힘을 합하면 못할 일이 없을 인간의 능력에 놀라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계획을 저지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인간의 의사소통 장애의 원인이 다른 언어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저자는 인간의 의사소통 장애의 원인을 신의 개입으로 묘사하고있기 때문이다. 단지 언어가 의사소통의 문제라면 굳이 신의 간섭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신의 개입은 인간사회의 소통의 장애를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이 깔려있음을 의미한다.
인류역사상 인간사회에서의 소통 장애는 늘 존재하였다. 그리고 인류는 인간사회의 소통의 제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회적으로 민주사회를 발전 시키고 기술적으로 통신을 발달시켰다. 현대사회는 신분과 계급보다 소통에 의해 그 사회의 성격과 질이 결정된다고 한다. 소통 장애는 소외를 낳고 소외는 불법과 폭력으로 나타난다.
인간과 인간 그리고 집단과 집단 사이의 소통을 위해 그 제도와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열린 마음과 관심이다. 이것을 기독교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사랑이다. 마음이 통하는 체코친구와 이야기하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필자의 어눌한 체코어도 잘 이해하여 더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는 틀림없이 전혀 다른 한국음식도 맛있게 먹는다. 반대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 체코인과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쉬운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들을 경험한다. 그래서 주눅이 들어 대화를 더 이상 할 수 없다. 물론 그는 타문화와 습관도 이해를 못하고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놀라운 것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같은 언어의 말도 알아듣지 못한다. 심지어 왜곡되어 전달되고 전혀 달리 이해하여 완전히 반대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사회적으로 기술적으로 소통의 제도와 기능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마음 안에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나눔터 플러스를 통한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체코와 한국 두 사회의 만남이 서로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관심이 우리들 마음에 사랑을 풍성하게 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 종 실
* 나눔터 플러스 2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