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터 34호 (2004년 2월)
블타바는 흐르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고
1월 30일 블타바는 220년 동안 감추었던 역사를 드러냈다. 현재 까렐 다리 중간 쯤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루드밀라 복사본의 위치에는 원래 양쪽에 천사상이 있는 바츨라프 동상이 있었다. 그런데 1784년 대홍수 때 다리의 교각이 손상되면서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조각상이 무너져 내렸었다. 강에서 건져올린 이 후 지금까지 그 동상은 라피다리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그 동상의 목과 팔이 없는 오른쪽 천사 진본이다. 이 바츨라프 동상의 현재 양쪽 천사들은 실종된 부분을 당시에 복원시켜 놓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재 작년 블타바 강의 대 홍수가 강바닥을 쓸고 내려가면서 드러난 이 조각상을 까렐 다리 교각 보수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발견하였다. 홍수에 휩쓸려 내려가듯 시간에 밀려 살가고 있음을 느끼는 새해 첫 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체코소식이었다.
아이러니 하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진본을 감추고 흐르던 강물이 스스로 그것을 까렐 다리에게 되돌려준 셈이다. 감추고 드러내며 흐르는 것이 비록 어디 강물뿐인가? 시간 역시 때론 서서히 장강(長江)처럼 흐르며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 때론 폭포처럼 급격하게 흐르며 그것을 드러낸다. 인간을 누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였는가? 인간은 시간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미물일 뿐 이다.
요즈음 시간이 급하게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 흐름을 바라보면 어지러워 구토가 나려고 한다. 인간의 창의적인 스피릿은 우주의 시공간을 비웃으며 화성에 꽂히고, 인터넷은 나라와 민족과 인종과 문화의 벽을 뚫어 시간을 더욱 급격히 흘러가게 한다. 시간의 흐름의 정도와 그 크기는 실로 막대하여 감히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흐름은 소용돌이 되어 인간 존재도 물처럼 허물며 서서히 모든 것을 휩쓸고 있다.
그러나 해산이 가까이 다가 올수록 고통은 점점 빠르고 급하게 나타나듯 시간의 흐름이 급하게 느껴지는 것은 감추어진 그 무엇이 드러나는 때가 가까이 다가 온 것임을 의미한다. 그날은 인간에게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다. 왜냐하면 시간의 흐름은 굽은 것을 곧게 하고 높은 것을 낮게 하고 낮은 곳을 돋아주며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호통을 치던 자, 그가 바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부끄러운 자임을 드러냈다. 우리들의 삶 모두는 우직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드러난다. 그것을 우리 자신은 잘 안다. 양심이 이미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워 하는 이들은 그 흐름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갖은 술수를 부린다. 아무리 그래도 진위를 드러내는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쉼 없이 우직하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무엇이 참이고 허상인지 자기 자신부터 성찰할 일이다. 지금 소중히 여기는 것이 헛된 것은 아닌지, 헛되게 생각하는 것이 혹시 소중한 것이 아닌지 존재의 밑둥부터 철저히 자기 자신을 뒤져볼 일이다. 우리들이 이 멀고 먼 외국 땅에 까지 와서 해야 되는 우리들의 일들이 우리 자신을 왜곡시키고 파멸시키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긴급하고 시급한 일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 참된 자기를 가꾸어가는 일이다. 지체할 일이 아니다. 오늘도 블타바는 흐르며 220년 전의 진실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