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고글] 땅끝까지이르러 체코편 (4)

기독공보 (www.kidokgongbo.com)
* 호. 발행일:2472. 20040724
땅끝까지이르러/ (22) ‘이해’하니 ‘사랑’이 싹트네 <체코편(4)>
‘이해’하니 ‘사랑’이 싹트네

1415년에 시작된 소위 ‘후스파’ 또는 ‘양종성찬주의자’라 불리우는 체코 종교 개혁파는 오늘날 개신교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이들이 18세기 말에 비록 제한적이지만 종교의 자유를 허락 받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가 신생 독립국이 되어 체코 종교개혁파들이 1918년에 ‘체코형제개혁교회(교단)’로 공식적인 조직 교회의 모습을 갖추면서 드디어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자유도 잠시 뿐 체코교회는 1948년부터 1989년 공산정부의 통치 아래서 다시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현재 체코형제개혁교단은 전국 2백64개 개교회에 약 15만 명의 교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예배에 참석하고 활동하는 교인 숫자는 넉넉하게 잡아서 1만 5천 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2백여 명의 목회자들이 있으며 이 가운데 10퍼센트가 넘는 30여 명이 목회자 숫자의 부족으로 은퇴 이후에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체코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시무교회가 아닌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고 있기에 계속 활동 중인 30여 명의 은퇴 교역자들은 국가 연금을 받으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셈이 된다.

 이러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교회의 조직에 영향을 끼쳐 교회는 예배 모임 조직체와 교회 활동 조직체인 ‘디아코니아’로 양분되어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교회의 선교사명은 교회가 하는 일이 아니라 교회의 봉사단체인 ‘디아코니아’의 일이 된다. 심지어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개 교회와 목회자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고있다.

 그리고 오랜 박해와 탄압을 견뎌내면서 교회는 매우 폐쇄적이 되었다. 지금도 전인구의 70퍼센트가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체코 사회에서 전 인구의 1천분의 일에 불과한 체코개혁교회는 그야말로 미비한 존재에 불과하다. 생존 그 자체가 최고의 목표일 수 밖에 없었던 박해의 시대를 살면서 그들은 대부분 서로 혼인을 하여 지금은 거대한 하나의 친인척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는 마치 집안 식구들 모임 같고, 성만찬 예식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자신들의 조상들을 기념하는 추도식과 같은 분위기를 가끔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체코개혁교회의 신학과 신앙 안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중한 개혁전통의 흐름이 있다. 교회권력이 독점하던 성경을 평신도에게 돌려주고, 교회의 타락이 전통을 강조하는 교회의 구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여 교회를 성경의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체코개혁신앙의 전통의 흔적이 오늘날의 예배와 교인들의 신앙생활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직 무엇을 해야될지 모르고 언어를 익히며 선교현장을 연구하던 초기에 이들 교회들을 끊임없이 방문했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는 시골에서 이방나라의 목사가 어줍지 않은 체코어로 동방의 조그만 나라의 문화와 기독교에 대해 소개를 한다고 하니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한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그 교회를 시무하고 있는 목회자의 최근의 글들과 그의 학위 논문과 졸업논문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고 그리고 그와 그 교회에 대한 정보들을 최대한 얻어 연구를 했다.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체코교회를 이해해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한 교회탐방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체코교회의 연약함과 아픔을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교회를 새롭게 고쳐 교회사명을 감당하려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들의 교회가 곧 나의 교회라 생각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민족과 전통과 문화가 다른 교회일지라도 세상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는 교회론이 이 땅에서 선교사로 살아가는 나의 삶 속에 형성되고 있었다.

이 종 실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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