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믿음

  • 연합 예배 (2002년 10월 06일)
  • 욥 11:1-3
  • 설교자: 이지 슈토렉

021006ek
설교: 슈토렉
제목: 욥의 믿음

<본문>
Job 11,1-3  +  12,1-4  +  13,2-3+14-15  +  19,25-27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개역한글판 욥 11장)

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3 나도 너희 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4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개역한글판 욥 12장)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개역한글판 욥 13장)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개역한글판 욥 13장)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 (개역한글판 욥 19장)

<설교>
왜 이들 종교지도자들이 이처럼 분노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욥의 대답에 불쾌해서 이토록 심한 말을 뱉습니다: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욥의 대답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하나님을 비웃는 것 처럼 들려 이와 같은 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왜 성경에 이런 욥기서가 들어있습니까?
욥기서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입니까?
믿음과 신에 대한 모독이 뒤섞여 있습니다..
욥의 세친구는 문화의 세가지 영적인 전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각의 전통은 고난에 대해 각 각의 자신의 해결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전통들은 경륜이 있고 그 전통들의 대표들은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았고 그리고 그들은 존경 받는 유대 신앙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욥을 도우려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 받는 욥을 도우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욥이 그들의 도움을 원치 않고 있는것입니다.
정말 욥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격한 말로 무엇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습니까?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다. 12:2-3a)
그렇습니다, 욥기서는 믿음에 대해 매우 개인적이고 극단적인 논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종교적으로 그리고 교회 생활적으로 교리교육적으로 배우는 것이 그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생각을 주장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13:2)
욥은 그의 논쟁이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욥은 친구들, 종교 지도자들의 신앙심 깊은 말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너희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의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13:12)
무엇을 누가 힘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할것인가!
누가 감히 불의와 고통과 우겨쌈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가!
우리들은 왜 욥이 그렇게 말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은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임하든지 내가 당하리라.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그는 나의 구원이 되리라(13:13-16)
욥은 말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욥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이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욥의 문제이고 하나님의 문제인것입니다.
그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욥의 문제이며 놀라운 비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제이자 이것은 곧 동시에 하나님의 문제인 것입니다.
달리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욥기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마지막 고통의 종지부를 찍으실때 드러날 큰 비밀에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물론 그 비밀 가까이에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도 있어야 합니다.
그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사람의 종교전통 가운데 가장 좋은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기위해 큰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멀어지게 될 때 어떤 것도 마지막까지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을 돕지 못합니다.
어떤 신학적인 논쟁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종교적 전통의 역사적 위기까지 견디는 것을 돕지못합니다.
영적 전문가들이 남용하는 언어들을 참는 것 또는 참지않는 것을 돕지못합니다.
그것을 포기하는것과 지속하는 것을 돕지못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돕지못합니다.
새로운 시작과 갱신과 부활의 선물을 받는 것을 돕지못합니다.

바닥까지의 추락과 폐허의 고통과 방황하는 의식이  살을 째는 듯한 고통을 일으키고 억눌림을 당하는 것같습니다.
욥은 그의 친구들과 다르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19:25)
때론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생명 위에, 우리들의 사명 위에, 우리들의 존재 위에, 우리들의  모든 선행들 위에 서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잿더미 위에 서 계십니다.
거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생명력 없는 교훈과 가르침과 달리, 유럽과 미국 기독교 전통과 달리 우리들은 지금 이시간에 체코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잿더미로 그리고 처음 출발로 내려가고있습니다.
우리는 잿더미-상실을 겪는 것을 감행하여야 하며 그리고 많은 것을 잃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욥이 : 구원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재 위에 서실 것이라 한 것을 욥처럼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위기는 우리들에게 축복입니다.
모든 위기와 함께 위기를 겪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시대의 마지막 때 까지 말입니다.

나의 이 가죽 이 살덩이가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19:26-27)

가죽과 살이 없는 사람은 이미 지옥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여기서 오직 성령의 기적만이 도울 수 있습니다.
이 소망이 때의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이 고통 받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인간 존재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저항으로 동시에 어린이 같은 순전한 믿음으로 욥은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인간 존재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비밀이 밝혀지는 그 자리까지 성숙하고 성장하는 것이 곧 삶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원래 누구에 의해 결정됩니까?
고통이 없는 성공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래되고 좋고 잘 아는 사람도 아닙니다.
현재의 그분이 미래의 그분이고
미래의 그분이 현재의 그분입니다.
유명하지 않고 그러나 동일하신, 우리들이 들었고 그리고 살아계시고 그리고 스스로 있는 분이며 결국 우리들의 유일한 이야기인 우리 각자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욥의 믿음은 그의 저항으로 널리 전파되고있습니다.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 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19:27)“ 이러한 개인적인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생생하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야 합니다.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19:27): 삶에 대한 갈망의 작은 불꽃이 우리 안에서 연기를 내고 큰 불을 일으키게 합시다:

적들이 정의로운 종교의 이름으로 욥을 반대하고 예수를 반대할 것이며 어떤 잘못을 찾으려고 할것입니다.
그리고 잘못을 그에게 전가시키려고 할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자신들의 종교적인 견해를 폐기하지 않기 위하여 (잘못을 욥에게 전가시키려고 할것입니다.)
외견상의 종교적인 안정과 기관과 그들의 대표자들의 존경 위에 자신들의 정당함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욥은 예수님처럼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찌니라(19:29)
욥은 우리들에게 새롭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강한 담대함과 소망으로 예수를 발견하도록 돕습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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