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6.27)

2014년 6월 27일 금요일 오늘의 말씀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23b-24절)



묵상

우리가 잘 아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입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미리 달라해서 도시로 나가 허랑방탕하다 재산을 다 탕진해버린 둘째 아들을 아버지는 있는 그대로 받아줍니다.

그냥 받아준 정도가 아니라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 잡게 하는 등 엄청난 환대를 베풉니다.

아버지 생각에 그 돌아온 둘째 아들은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키워보니 알겠습니다. 내 자식을 잃는 일보다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끔찍한 일을 당하고 나서, 그 잃었던 자식을 다시 얻게 된다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그처럼 소중한 존재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 탕자 아버지의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닮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아바 아버지>

https://www.youtube.com/watch?v=SZe2NAyvewI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6.25)

2014년 6월 25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장 25절)

묵상

우리는 이기기를 다투며 살아갑니다.

지금 브라질에서는 월드컵을 목표로 32개 참가팀이 더위를 참아가며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곳 프라하에 있는 여러 회사들은 각기 자신들의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 경쟁에 뛰어든 사람은 누구나 이기기를 바라기에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기기는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미래에 얻을 영예와 유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역시 이기기를 다투며 절제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얻기를 구하는 것은 곧 썩어지거나 사라질 영예와 유익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받고 누릴 영원히 썩지 아니할 상급입니다.

그리스도인 축구선수 역시 다른 선수들처럼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뜁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월드컵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회사원 역시 일터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그저 많이 팔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싸움 혹은 경기는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우리의 초점과 정체성을 흐리게 만드는 방해꾼들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엡6:12).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우리에게 약속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끝까지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4).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상급에 소망을 두고 복음을 위해 오늘도 절제하며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이 땅에 세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상급을 약속해주셔서 오늘을 절제하며 살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우리의 인생이 이 땅의 썩어질 것들에 매여 엉뚱한 곳으로 열심히 달려가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썩지 아니할 상급에 소망을 두고 복음을 위해 절제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조급하지도 나태하지도 않고 성령 안에서 성실히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https://www.youtube.com/watch?v=6QcWnb8VZSI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빕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6.24)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장 19절)


묵상

사람이 무엇을 목표로 사느냐에 따라 똑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을 자신의 분명한 사명으로 인식했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는 일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이 바로 자신의 상급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복음을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는 일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부자유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얽매여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 모든 얽매임에서 점점 자유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은 오직 진리에 의해 판단하고 판단받기에, 다른 사람들의 자의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고전1:15).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가 아니었지만,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였지만, 율법 없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율법 없는 자 같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별로 연연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진리를 따라 거침없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가 복음을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설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스스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계속해서 자유를 갈구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실존의 부자유를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복음인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진정 자유로운 삶으로 초청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1-32)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10:43-44)

이 두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맥락 속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스스로 종이 되어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를 참 자유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섬기고자 하는 마음과 기회를 허락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모든 얽매였던 것들로부터 자유케 하소서.

우리가 주님 주신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게 하소서.

우리가 자유와 기쁨 가운데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시고, 그것이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일이 되게 하소서.

오늘 저녁 귀국길에 오르는 김미향 집사님 가정에 주께서 늘 은혜로 함께해 주소서.

오늘의 찬양

<축복의 사람>

https://www.youtube.com/watch?v=XDvqx5af_lk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초록색 : 성령강림절 이후의 일반 주일에 사용되는 이 예전 색은 영적인 성장, 희망, 성결, 생명을 의미합니다.

사랑하기에 기도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계속 경험합니다.

우리를 떨어져 있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에 기록된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의 관계를 통해 볼 때,

그것은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1. 우리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위해 서로 기도합시다.

2. 우리가 분별과 배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로 기도합시다.

3. 우리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열매가 맺히도록 서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에 또한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기도 가운데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귀한 동역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설교전문 첨부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6.23)

2014년 6월 23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 2장 20절)

묵상

여기서 ‘너희’는 에베소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이방인(비유대인) 성도들을 말합니다.

한때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져 있던 하나님의 약속의 언약들로부터 소외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 안에서 다른 성도들과 동일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의 형성을 건축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성도와 교회의 정체성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foundation) 위에 세워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기초의 처음이자 중심인 모퉁잇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들’이란 베드로나 바울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예수님에 의해 보냄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선지자들’이란 구약의 선지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교회들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해주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정통성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대한 신실성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와 교회의 정체성은 ‘예수님에 의해 보냄받았다는 의식,’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사명’에 기초해 있습니다.

그 시절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에 의해 세워진 전통은 이천 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소중히 전수되어 왔습니다.

우리 역시 한때는 소망 없는 이방인 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원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터가 잡히고, 이후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신앙의 전통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시대 좋은 성도, 좋은 교회의 요건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예수님에 의해 세상에 보냄받았다는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신실하게 증거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주어지기까지 필요한 수고를 묵묵히 감당해준 신앙의 선배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어제 예배와 교제의 시간을 통해 우리 마음을 소망과 기대로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우리의 신앙이 늘 모퉁잇돌 되신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바른 신앙전통 위에 서 있게 하소서.

우리교회를 비롯한 이 땅의 교회들이 예수님에 의해 세상에 보냄받았다는 의식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증거하게 하소서.

이번 주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두 가정이 한국에서 좋은 교회에 속하여 좋은 성도로 살게 하소서.

그분들과 꼬빌리시 교우들이 앞으로도 교제를 이어가며 서로 기도해주는 관계가 되게 하소서.

이 한 주간 꼬빌리시 온 교우가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어디서나 축복의 통로로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다 표현 못해도>

https://www.youtube.com/watch?v=SzRUoCl4SdE


한 주간의 삶을 위한 월요일 전교우 1분 기도운동 – 오늘 낮 12시에 잠시 멈추고 1분간 함께 기도해요!!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