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체코 한국어 사전을 손에 들던 날

체코 한국어 사전을 손에 들던 날


체코 한국어 사전을 손에 들던 그 날 나는 흥분하였다.

체코 한국어 사전편찬은 2004년을 체코한인이주의 역사의 전환점으로 만들었다. 문자의 사용이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분기점이 되듯이 체코어 한국어 사전의 편찬은 체코한인이주의 새 역사, 새 시대를 가져올 역사적인 사건이다. 한 페이지의 글을 읽기 위해 수없이 체코 영어 사전을 찾고 다시 영어 한국어 사전을 찾으며 앞뒤 단어를 이리 저리 꿰어 맞추어 암호 해독하듯 읽던 시대를 마감하였다.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것도 힘든데 그것을 또 다른 나라 말로 배워야 하는 것은 이중 삼중의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고역을 견디며 좌절감, 모멸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지 않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존경할 일이다. 체코의 한국인들이 두고 두고 기념할 일이다. 사전 머리말에 저자는 이 사전을 “12년 동안 끊임없이 준비하였다”고 밝혔다. 12년의 세월동안 그녀는 아기를 낳아 기르며 또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이 사전을 만들었다. 이 사전은 단지 사전의 의미를 넘어 우리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체코의 이민사회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길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12년간의 노고는 무엇인가 빨리 이루어보려는 우리의 조급성을 타이른다. 아는 것 만큼 보게 되고 일하게 된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결과가 사전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문화와 언어와 사회적 관습이 전혀 다른 체코에서 이주하는 우리 한국인 모두가 깊이 본받아야 할 일이다. 조급히 무엇인가 이루고 성취하기 위해 바늘 허리에 실을 매는 어리석은 시도는 자신을 힘들게 할 뿐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한인사회를 더욱 어지럽히고 고통스럽게 한다.

 사전 편찬을 준비하는 12년의 세월동안 수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을 많은 고초와 난관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때 건강도 잃으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속한 체코의 한인사회에서 사전편찬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다. 체코어를 배우려는 한국인들을 위하여 한국어를 배우려는 체코인들을 위하여 더 나아가 “상호 정확한 의사소통이 양 국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방면에 걸친 공식 비공식의 교류와 왕래를 더 긴밀하게 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어떠한 고초와 난관도 극복하고 결국 사전을 편찬하게 되었다. 우리 체코의 한인사회가 이처럼 자신의 본분과 사명감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모든 분야에 이토록 자신이 이루고 있는 사회에 대한 사회의식과 사명감 더 나아가 철저한 애국 애족의 정신을 가진 이들이 많아져야 우리는 서로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를 그치고 서로 행복을 가꾸며 살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 말미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아직도 미진한 점과 오류가 많다”고 고백하면서 “선후배 여러분들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지도와 편달”을 부탁하였다. 시작은 하였지만 선배와 후배 그리고 독자들에게 사전의 완성은 함께 이루어가자는 겸양의 미덕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감추고 연약한 것 같지만 강함이 그녀와 많지않은 만남에서 늘 느껴졌다.

길 없는 곳에 길을 내나 그 길을 차지하지 않고 밝은 빛을 발하나 스스로 빛남이 없는 흠모할만한 인생을 추구해가는 그녀에게 우리 모두가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사전편찬을 계기로 자신을 내어주고 타인에게 크게 유익을 주는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고싶다. 그래서 그녀와 프라하 하늘을 같이 공유하고 있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목사 이 종 실 (나눔터 발간인, 프라하 꼬빌릿 한인교회)
(Česko-korejský slovník 체코-한국어 사전, 저자 박미영,  출판 Olomoc 2004년, 780쪽)
나눔터 9호(36호) 2004년 10월호 살며생각하며

[살며 생각하며] 블타바는 흐르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고

나눔터 34호 (2004년 2월)

블타바는 흐르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고

1월 30일 블타바는 220년 동안 감추었던 역사를 드러냈다. 현재 까렐 다리 중간 쯤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루드밀라 복사본의 위치에는 원래 양쪽에 천사상이 있는 바츨라프 동상이 있었다. 그런데 1784년 대홍수 때 다리의 교각이 손상되면서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조각상이 무너져 내렸었다. 강에서 건져올린 이 후 지금까지 그 동상은 라피다리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그 동상의 목과 팔이 없는 오른쪽 천사 진본이다. 이 바츨라프 동상의 현재 양쪽 천사들은 실종된 부분을 당시에 복원시켜 놓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재 작년 블타바 강의 대 홍수가 강바닥을 쓸고 내려가면서 드러난 이 조각상을 까렐 다리 교각 보수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발견하였다. 홍수에 휩쓸려 내려가듯 시간에 밀려 살가고 있음을 느끼는 새해 첫 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체코소식이었다.

아이러니 하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진본을 감추고 흐르던 강물이 스스로 그것을 까렐 다리에게 되돌려준 셈이다.  감추고 드러내며 흐르는 것이 비록 어디 강물뿐인가? 시간 역시 때론 서서히 장강(長江)처럼 흐르며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 때론 폭포처럼 급격하게 흐르며 그것을 드러낸다. 인간을 누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였는가? 인간은 시간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미물일 뿐 이다.

요즈음 시간이 급하게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 흐름을 바라보면 어지러워 구토가 나려고 한다. 인간의 창의적인 스피릿은 우주의 시공간을 비웃으며 화성에 꽂히고, 인터넷은 나라와 민족과 인종과 문화의 벽을 뚫어 시간을 더욱 급격히 흘러가게 한다. 시간의 흐름의 정도와 그 크기는 실로 막대하여 감히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흐름은 소용돌이 되어 인간 존재도 물처럼 허물며 서서히 모든 것을 휩쓸고 있다.
그러나 해산이 가까이 다가 올수록 고통은 점점 빠르고 급하게 나타나듯 시간의 흐름이 급하게 느껴지는 것은 감추어진 그 무엇이 드러나는 때가 가까이 다가 온 것임을 의미한다. 그날은 인간에게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다. 왜냐하면 시간의 흐름은 굽은 것을 곧게 하고 높은 것을 낮게 하고 낮은 곳을 돋아주며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호통을 치던 자, 그가 바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부끄러운 자임을 드러냈다. 우리들의 삶 모두는 우직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드러난다. 그것을 우리 자신은 잘 안다. 양심이 이미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워 하는 이들은 그 흐름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갖은 술수를 부린다. 아무리 그래도 진위를 드러내는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쉼 없이 우직하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무엇이 참이고 허상인지 자기 자신부터 성찰할 일이다. 지금 소중히 여기는 것이 헛된 것은 아닌지, 헛되게 생각하는 것이 혹시 소중한 것이 아닌지 존재의 밑둥부터 철저히 자기 자신을 뒤져볼 일이다. 우리들이 이 멀고 먼 외국 땅에 까지 와서 해야 되는 우리들의 일들이 우리 자신을 왜곡시키고 파멸시키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긴급하고 시급한 일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 참된 자기를 가꾸어가는 일이다. 지체할 일이 아니다. 오늘도 블타바는 흐르며 220년 전의 진실을 드러낸다.

[살며 생각하며] 세드미츠까

2004년 1월 33호

세드미츠까(Sedmicka)


새해들어 물가가 치솟는다. 체코인들이 유럽 연합인이 되는 길목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이다. 유로를 체코통화로 사용하려면 국가부채가 국내 총생산(GDP)의 3퍼센트 미만이 되어야 하기에 현재 6퍼센트가 넘는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하면서 다른 한편 세금을 높이고 최대한 국민의 사회보장을 줄이는 정책을 정부가 펴고 있다. 그야말로 국민 전체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필자는 정치와 경제에 문외한이어서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형편이 아니지만 작금의 체코 사회를 보면, 고등학교 시절에 도시락도 싸가지고 올 형편이 못될 만큼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담임 선생님이 점심값으로 준 그 돈으로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고 왔다는 한 연예인의 회고담이 머리에 떠오른다.
“희망을 기대할 만한 고통인가?” 체코 국민들은 당연히 불안해 한다. 노바 텔레비전의 인기 있는 정치 토론 일요일 프로그램 세드미츠까가 새해 첫날에 특별히 편성되었다. 수상 슈삐들라와 야당 시민당 당수 또뽈라넥이 토론자로 나왔다. 세드미츠까는 한 주간의 뉴스의 초점을 주제로 설정하여 매주 일요일 선정된 정책 당사자들인 여야 정치인들의 토론 프로그램이다. 토론과 농담을 좋아하는 체코 국민들은 한가한 일요일 오후 소파에 기대어 맥주를 마시며 짜릿한 토론을 즐긴다. 일요일 정규 프로그램도 아닌 새해 첫날에 그것도 정부와 야당의 대표들이 나와 공방을 벌리니 자연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토론 주제의 하나가 당연히 높은 세금과 물가 상승의 경제문제였다. 토론 중에 사회자가 국민들에게 높은 세금의 짐을 맡기면서 의회 의원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정치가들의 윤리의식을 질타하였다. 그 예로 의원 회관에서 부과세 없는 값싼 음식을 먹는 것에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의식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수상 슈삐들라는 의회 의원에 대한 세금부과를 정부가 법안으로 올렸지만 의회 특히 야당인 시민당이 반대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공박을 받으며 쩔쩔매던 사민당 당수 또뽈라넥은 사회자가 제시한 의원 회관의 메뉴판을 보고서야 의원 회관의 밥값을 아는 눈치였다. “하기야 그렇게 지위가 높은 양반이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어 본적이 있겠는가?” 한국인의 경험으로 대충 때려잡아본 필자의 눈치이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이 프로그램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사회적 기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인 본인은 체코 사회와 그 인식의 변화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별로 애정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자국민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의 인식이 저 정도인데 외국인들에게야 하물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외국인의 소외감과 체코인과 그 사회에 대한 애정이 함께 할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인생의 황금시절에 외국인으로 살면서, 냉소주의와 개인주의로 도피하여, 자신의 생이 황폐해 지는 것을 더 더욱 바라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물가가 치솟고 자국민의 사회보장 혜택도 줄이는 마당에 외국인들에 대한 배려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중의 어려움에 시달릴 새해에 체코의 한국인들이 서로를 존중해 주는 마음과 나아가 체코의 다른 외국인들과 뜻 있는 체코인들과 연대를 하며 소외감을 극복하는 것이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며, 동시에 우리들이 살을 맛 대며 살아가는 체코 사회와 그 사람들에 대해 애정을 갖는 길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받으며 인간답게 성장한다.

갑신년 새해 독자들의 가정에 만복을 기원하며, 더 밝고 아름다운 체코의 한인 사회를 기대한다.

이종실 목사 체코 라디오 대담방송 출연

체스까 라디오 1 – 라디오저널 초청손님과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마르띤 펜드리흐와 이종실과의 대화 (2003년 10월 19일 저녁9시)

들어가는 말(펜드리흐)

라디오저널 청취자 여러분께 마르띤 프렌드리흐 인사드립니다. 프라하 야곱의 사다리교회 (얼마전 까지 카리스마가 있는 이지
슈토렉 목사님께서 활동한 교회입니다.)에서 프라하 개혁교인들뿐 아니라 남한의 대한민국 공화국의 기독교인들이 모입니다. 스튜디오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종실 목사님을 초청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목사님.

– 제가 이목사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했나요?

예 정확합니다.

-한국 어떤 도시에서 오셨나요?

수도 서울에서 왔습니다. 저는 광산촌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체코에 어떻게 오셨나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교인들이 무역관계로 먼저 이곳에 오셔서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서 오셨나요?

대한예수교 장로교회는 외국에서 일하는 자신의 교인들을 위해 목회자를 파송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모이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회자를 찾은 뒤 독립교회가 됩니다. 저는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다른 민족들의 교회들의 경험을
교류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프라하에 왔습니다.

– 체코의 한국인들이 모국어 예배를 원합니까?

한국인들은 모국어로 예배드리기를 원합니다. 가족들이 외국생활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있어 교회에서 고향 같은 느낌을 받고싶어 합니다.

– 우리나라에서 한국인들이 대체로 어떤 사업을 하십니까?

다양한 상품의 수입과 수출을 합니다.

– 이목사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목사로서 일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직업이 있습니까?

예, 목사로만 일하고 있습니다.

– 남한에 개신교회 교세가 두 번째로 강하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불교가 28%이고 개신교가 18% 카톨릭이 6%
비종교인들이 절반이 조금 못된다(46%)고 하는데 남한에서 개신교회가 그렇게 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교사들의 활동의
결과입니까?

선교사들의 희생을 언급하지 않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첫번째 순교자가 영국 선교사였고 몇몇 미국 선교사들이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외국 선교사들의 2, 3세대 후손들이 지금도 한국의 생활 습관으로 일하면서 살고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한국에서 개신교회가 매우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요인은 당시 민족의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던 18, 19세기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과 사상이 쇠약해져 세계의 변화를 이해할 수도
그리고 그것에 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국가종교였던 유교 역시 이러한 문제들에 응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기독교를 민족의 구원자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원래 한국인들은 불교신자들이 대부분이지 않았습니까?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불교신자들과 어떻게 관계합니까? 유럽 에큐메니칼과 같은 그런 노력이 있습니까? 아니면 두 종교간의 차이로 적대적입니까?

관용이 없는 신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체코인들이 공산독재를 겪고 있을 때 남한사람들은 군사독재를 경험하였습니다.
당시 불교신자들과 기독교 신자들이 함께 인권을 위해 독재자와 싸웠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인권을 위한 종교간의 연대와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협력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북한에 기독교 신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에 대한 뉴스가 있습니까? 친척이나 아니면 아는 분이 북한에 계십니까?

죄송한데 정확한 뉴스가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아는 분도 친척도 계시지 않습니다.

– 꼬빌리시의 프라하 한인 공동체 교인 수는 얼마나 됩니까?

50여명 재직 인원에 40여명이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합니다.

– 꼬빌리시 교회에 함께 모이는 것이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저와 가족이 꼬빌리시 교회에 나간 것은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공동체가 그 교회에 생겨난 것은 2000년도 였습니다.

– 한국 기독교인들이 프라하에서 다른 예배 장소를 찾고 있고 그리고 다른 도시에도 아마 있는 것 같은데, 그 분들 가운데 오순절 교인들도 있다고 알고있는데요. 그들과 만나거나 아니면 관계가 있습니까?

제가 개혁신학부 박사과정 학생으로 공부하기 위해1993년에 프라하에 왔을 때 20여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목회자 없이 매주
모였습니다. 녹음테이프로 설교를 듣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로 회피할 수 없어 목회자를 찾을 때 까지 설교를 하기로
그분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1년 만에 체코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길 원하는 오순절 교회의 목회자를 찾았습니다. 이때 교인들은 우리들의
관계를 끝내지 않고 저를 선교사로 체코 교회에 파송하는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교회의 거의 모든 교인들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프라하로 왔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들의 관계는 점점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끄는 말 (펜드리흐)

라디오 저널 청취자 여러분, 초대손님 프로그램 입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교회 이종실 목사님과 체코 꼬빌리시교회의 한국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 얼마전에 꼬빌리시 교회 이지 슈토렉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분은 구약성경의 야곱의 이야기에 매우 영향을 받은 분입니다. 그것이 이 목사님에게 상상력을 줍니까?

이지 슈토렉 목사님은 제게 자주 „꼬빌리시 교회의 한국인들은 우리들의 천사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
마다 저는 „꼬빌리시 교회의 체코인들은 우리들의 천사들이며 야곱의 돌베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개방적이고
관용적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서로 열린 마음을 볼 때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을
전해주는 천사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코 교우들과 한국 교우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꼬빌리시의 한국인들만을 보더라도
그들은 다양한 개신교회, 오순절 교회, 카톨릭의 여러 다른 교회들로부터 모였고 그리고 신학적인 사고도 다양합니다. 일터에서는
그들은 서로 경쟁자로 만나야 하기에 그들 사이에 갈등이 쉽게 일어 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천사를 발견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 한국인들은 다양한 활동이 있는 교회에 속하여 있습니다. 그 활동들에 참여합니까? 예를 들어 게이와 레스비언 기독교 모임인 로고스에 방문을 하거나 지원을 합니까?

현재 저는 한인 공동체가 잘 뿌리를 내리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고 이 일이 꼬빌리시에서 저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에 교회는 게이와 레스비언들의 삶에 대해 응답을 회피할 수도 그리고 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남한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한국에서 차별을 받거나 거부를 당합니까? 아니면 받아들입니까?

우리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성을 타부시 합니다. 거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키스를 할 수
없습니다. 혼전동거도 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을 사회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성에 대한 사고와
태도가 매우 개방적입니다. 한 젊은 한국 배우가 공개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입을 밝혔습니다. 그의 발표는 사회에서 토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 토론이 아직 동성애자들의 파트너 입법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 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 꼬빌리시 교회는 지역사회에 대해 의미있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디아스포라 개념입니다. 원래 그 말은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목사님께 이 디아스포라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저는 디아스포라 개념을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의미로 이해합니다. 우리들에게 디아스포라는 외국에 이주하거나 살고있는 작은 (한인)공동체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 꼬빌리시의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이해합니다. 제가 인용해서 읽어드립니다. „디아스포라 상황은 교회의 토대이며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징표이다“. 이 목사님, 청취자들에게 이것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러한 교회의 입장에 동의 하십니까? 교회가 세상에서
해야 될 역할에 대한 이러한 전망에 동의 하십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것을(말씀하신 질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들을 찾으셨고 죄인들을 방문하셨고 그리고 그들과 먹고 마셨고 병든자들과 가난한자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연약한 자
어린이들을 환영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 주위에서 꼬빌리시 교회를 인용해서 말씀드리면 „섬김과 증언의 장소“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꼬빌시 사람들은
다시 인용해서 말씀드리면 „교회에 경계심, 염려, 두려움이 가득하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교회를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데 모든
관심을 기울이게 하여 자발적으로 „게토화“(자신을 폐쇄화)하게 하고  그 결과 사회에서 교회의 신뢰를 상실하게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꼬빌리시 교회에서 그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게 체코교회의 폐쇄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 한국에도 기독교인들의 이와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까?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잘 억제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교회가 사회와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꼬빌리시의 한국인들과 체코인들이 얼마나 깊이 만나고 교제하고 친구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 체코 자매와 형제들이 예배 외에 더 많은 만남을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도 함께 하길 원하고 산보도 같이
가고 맥주 한 잔 하러 가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잘 응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27명의 교인들이
떠나고 21명이 새로 교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년 또는 이년 동안 이곳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익숙해 지면 벌써
체코를 떠날 시간이 됩니다. 그러나 물론 개인적인 만남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 언어 문제 이 외에 우리 체코인들이 한국인들과 무엇이 가장 다릅니까?

유럽의 개인주의와 아시아의 공동체입니다. 유럽의 개인주의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지만 아시아의 공동체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 꼬빌리시 교회 밖에서 본 체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 외국인을 싫어하고 인종차별을 하는 것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없습니다.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 한국인들은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인종차별이 한국에 있습니까?

아직 인종차별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유럽인들 보다 미국인들을 더 잘 압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유럽보다 미국을 이해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 목사님은 자신을 디아스포라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늘 고향에 가기 전 까지 저는 제 자신을 디아스포라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목사님이 „믿음의 결과는 우리들이 기다리던 만족과 기쁨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에게 불평을 합니다.“라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 목사님이 불평을 하십니까? 아니면 목사님의 한국 형제들이 불평을 하십니까?

제가 불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말 한마디 해보겠습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입니까?

예, 맞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프렌드리흐)

라디오 저널 청취자 여러분께 우리들의 대화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이종실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마이크로 마르띤 프렌드리흐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출애굽 강해설교집 서문

이종실 목사 강해 설교집 발간

이종실 목사의 <우리가 주일을 지키면 주일이 우리를 지킨다>의 출애굽 강해 설교집이 발간되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외생활에서 다가오는 실존적 문제들과 직면하여 믿음 안에서 그 문제들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체코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교인들의 삶과 그 고민이 담겨있다. 여기에 이종실 목사의 설교집 머리말을 옮겨놓는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다.

이 명제와 더불어 씨름하길 10년이 흘렀다.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특히 한국 기독교인으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죽을 때 까지 씨름 할 존재론적인 고백이다.

선교가 하나님의 일이 되지않고 자주 교회의, 목사의 그리고 교인들의 욕망의 수단이 된다. 그래서 선교의 역사는 <서구 제국주의>라는 세상의 가치관과 <기독교 왕국>이라는 신앙의 가치관과의 혼돈 속에서 그 뜻이 훼절되기도 했다.
아니 그 혼돈의 용광로에서 선교는 정제되어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뜻이 세속의 가치관 속에서 혼돈 되고 왜곡되었던 그 역사로부터 배우려 하지않는다. 십자군의 승리의 부활의 깃발을 여기 저기에 꽂으며 기독교 왕국을 세우는 일에 정신이 없어 인간의 모든 장벽을 넘어간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십자가의 복음은 자기를 비우고 버리는 것이다. 목사가, 선교사가, 교회가 그리고 교인이 우선 해야 될 일들이 자비우고
버리는 자기 정진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를 버리고 비운만큼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하신다. 그러므로 선교를 하나님의 일로 고백하는 삶은 결국 참 신자, 올바른 교회가 되는 길이다.

이 설교집은 프라하 꼬빌리시에서 교회로 모이는 모든 선교 동역자들과 더불어 함께 <선교를 하나님의 일로 고백하고
실천하는 참 신자와 참 교회의 삶>을 고민하며 선포한 설교이다. 출애굽기를 통해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이 맡기신 양무리이자 동시에 선교의 동역자들인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매주 설교의 주제와 그 본문을 달리 정하여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체코어 책 읽기는 아직 사전에 의지해야 될 형편이어서 체코어 책을 참고하여 설교 준비를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그렇다고 한국 책을 구해 읽는 것이 해외에서 쉽지않아 본의 아니게 늘 설교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과 설교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강해 설교를 시작하였다.

참고서적은 한국 목회자들의 출애굽기 설교집(박동현 교수, 이현주 목사)과 목회자 없는 예배를 인도하는 평신도들을 위해 체코형제개혁교단이 매년 발간하는 설교집들에 나오는 출애굽기 설교들이었다. 이들 설교로부터 주석과 본문 해석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체코어와 영어 주석들을 구해 볼 수 있었고, 보관하고 있는 몇 권의 성서신학 개론서들과 출애굽기 관련 신학서적들을 참고하였다.

출애굽기 1장 1절부터 마지막 장 마지막 절까지 빠짐없이 강해 설교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자료를 접하는 대로 그리고 묵상이 되는 대로 열세번에 걸쳐서 40장의 출애굽기를 한번 훑어보았다. 그러나 대체로 출애굽기의 맥들은 언급되었다고 생각되어 추후 증보판을 내더라도 일단 설교를 한곳에 묶어 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성수주일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교우들을 위해 비록 활자이지만 선포된 메시지를 함께 나눌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는 과정을 설교의 구성에 그대로 옮겼기에 교우들이 설교의 내용보다 성경을 읽는 방법을 설교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면 설교집 발간의 가장 큰 보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 프라하 꼬빌리시의 신자들이무엇을 고민하고 노력하는지 프라하의 다른 이웃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민과 노력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의 소원이 있다. 이 고민과 노력이 해외에서 황금 같은 인생의 시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가꾸는 일에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