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를 통해 전해지는 기쁜 소식

  • 한인 예배 (2011년 12월 25일)
  • 누가복음 2:8-21
  • 설교자: 이종실

2011년 12월 25일 성탄주일 예배
목자를 통해 전해지는 기쁜소식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다시 믿음을 생각하며

  • 한인 예배 (2011년 12월 18일)
  • 여호수아 5:1-12
  • 설교자: 이종실

2011년 12월 18일

본문: 여호수아 5장 1-12절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1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와 약속의 땅을 얻기위한 가나안 정복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잔인한 전쟁의 신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가나안 거민들이나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편을 들어 승리하게하는 편협한 하나님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쟁은 잔인한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비밀이 숨겨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하나님의 전쟁이 단순한 전쟁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속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첫째,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릅니다.

요간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격적인 전쟁준비를 먼저한 것이 아니라 할례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넜다는 소문이 가나안 땅 모든 왕들에게 전해지자 가나안 사람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 때에 하나님은 돌격앞으로 전투를 명령하시지 않고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적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을 때에 전투가 아닌 할례를 하나님은 명령하였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구축한 강대한 적을 목전에 두고 정상적인 공격으로 점령하기 불가능한데 현재 적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을때 그나마 공격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이 있었을때였습니다. 인간의 경험으로 볼때 가장 공격하기 적절한 때에 공격의 때를 놓치는것도 위험한데 심지어 한주 또는 몇주가 되어야 상처가 아물 수 있는 할례를 명령하신 것은 자칫 역공격의 빌미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우리의 생각과 계획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단순히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 이상을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전쟁으로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것 이상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나의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고계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살전 5:18)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할때 우리는 우리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011년 한해 일어난 모든 일들을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두번째로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고백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시대부터 생겼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니까 의로 여겼습니다 (창15:6) 그러나 그 약속의 확정을 위해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징표가 할례였습니다. 진정한 언약의 효력은 믿음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믿음을 확증하는 언약의 표징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전투를 해야되는 이 절호의 기회에 고통스러운 절차를 지금 꼭 밟아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니다. 전투가 다 끝나고 정복을 하고 난뒤 해도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절호의 기회를 살려 전쟁을 유리하게 끝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나안 정복을 하기전에 믿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왜 가나낭 정복 전쟁을 해야하며, 그 모티베이션이 무엇인지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명하였을때 갈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던것 처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믿습니다>하고 응답하였습니다.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마음으로 믿지만 동시에 입으로 믿어야 합니다 (롬 10:9-10) 입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신앙고백은 교리를 단순히 암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체코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입니다> <주님의 진리는 승리한다>였습니다. 이 두개의 슬로건은 그들의 상황 속에서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입니다>라는 슬로건은 교황제도를 반대하고 교황 제도에서 빚어진 반복음적인 전통을 비판하는 그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주님의 진리는 승리한다>는 슬로건은 개혁파의 세력은 당시 중세 카톨릭 교회에 비해 조족지혈과 같았지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승리한다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의 고백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것을 이성으로 판단해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이지 않지만, 현재에 실현되지 못했지만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일때 그것을 오늘 나의 삶의 상황 속에서 믿고 더 나아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닥쳐도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고 그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믿음의 확정인 할례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너무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익숙해져서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는 복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듣지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실에 집착한 나머지 마음으로 믿기는하는데 입으로 시인하지 못하고 믿음의 모험을 하지못하며 내 뜻대로 하는 믿음생활을 우리는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세번째로 믿음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눈앞에 둔 긴박한 시점에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40년만에 할례의식과 유월절의식을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전쟁준비보다 더 중요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복전쟁을 시작하기전 광야세대들에게 출애굽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시키시길 원하셨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왔는데 그것 역시 모세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시키셨습니다. 이제 새 땅 가나안에서도 역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월절을 회복시켜 이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이스라엘 자손들은 잊지않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예배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인하여 구원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우리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거룩한 주일에 드리는 예배입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복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을 다시 생각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이 더 잘 풀려나갈때, 건강할때, 더 분주해질때 먼저 조용하게 믿음을 다시 생각하는 여러분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바르지 못한 믿음을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성탄계절에 믿음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바른 믿음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 한인 예배 (2011년 12월 11일)
  • 여호수아 1:1-5
  • 설교자: 이종실
2011년 12월 11일
설교본문: 여호수아 1장 1-5절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1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여호수아)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5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한방울 풀한포기 나지 않는 광야생활 40년 동안 모세라는 한 지도자에 의지하며 생존하였다고 말하여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광야세대들에게 모세는 엄청나고 거대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능력은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십니다.
출애굽과 40년간의 광야 인도는 모세가 한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가르쳐 우리를 행복한 성도, 능력있는 성도로 이끌어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에게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2
첫째로 하나님의 선물이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은 뼛속까지 모세의 영향을 받은 광야세대들이 새 시대 새 땅 가나안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모세의 환상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선물이며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 즉 신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떡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그 떡이 하나님께서 하늘로 부터 주신것임을 몰랐습니다 (요 6장)
놋뱀 사건도 하나님의 선물을 우상으로 만든 실례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을 섬겼습니다 (왕상 18장)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바로 오늘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과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없애고 하나님을 보지못하게하여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이 되게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6절 말씀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우리들의 마음의 탐심과 탐욕이 그 원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탐심과 탐욕으로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를 우상으로 만드는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우리들은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 꺼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금년 한 해가 다 가기전에 그 마음 청소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마음 공부를 해야합니다.
이 공부는 치열한 자기싸움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스스로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내가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고 검증하고 스스로 자신을 확증하여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길을 걸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두번째 문제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연약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고 우리는 파워를 가질려고 노력합니다.
출애굽기 3장과 4장에 나오는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전에서 왕자로 살때가 아니라 미디안 광야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목동생활을 할때 하나님이 그에게 소명을 주신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시고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기도를 하다가 응답을 받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나의 능력은 너의 약함에서 온전하기 때문이다> (고후 12:9)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여러가지 약한 것들을 자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의 약함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약함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르는 장소이자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입니다.
예수님도 약하고 작은 것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 예입니다.
우리의 보잘것 없다고 여기는 자기모습, 나의 작은것, 부족한것, 부끄러운 최선, 나의 약함, 나의 한계를 원하십니다.
천국은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기의 파워를 키우고, 자기의 부족을 채운후 그 파워로 주님을 섬기려고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 비록 겨자씨 한 알처럼 보잘것 없어 보이는 것을 원하십니다.
4
이 성탄 계절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나를 지배하고 나의 우상이 된 모든 것드을 내 마음에서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부족하고 연약할때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무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족하고 연약함을 스스로 알때 그 모습 그대로 주님의 손에 겸손히 내어드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기싸움을 시작하십시요.
2012년 집사직으로, 찬양대로, 교사로, 구역장으로, 소식지 편집위원으로, 교회 도서관 봉사자로 임명받아 한해동안 교회를 섬기는 봉사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권면합니다.
여러분들의 연약함으로 늘 겸손히 섬기십시요.
연약함으로 섬기는 섬김이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씨앗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족하고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겨자씨의 기적의 시작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겸손의 길로 오시는 메시야

  • 연합 예배 (2011년 12월 04일)
  • 이사야 40:1-5
  • 설교자: 이종실
2011년 12월 4일 연합예배
설교 본문
 
이사야서 40:1-5 :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노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1
성경에 메시야는 밤에 도적처럼 오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치 몸의 질병이 오는것 처럼 그 징후를 알지못할뿐 사실 이미 징조는 있었던것 처럼 메시야의 오심도 그 징조를 알지 못할뿐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기때문에 성경은 메시야는 밤에 도적처럼 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없느냐> ( 16:2-3)
징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의 징조를 구분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메사야가 오시는 때의 징조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2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백성에게 위로를 베푸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위로라는 말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이 포로가 되어버린 상황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위로라는 말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현실적 변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받습니까?
오늘 본문은 위로받기 원한다면 길을 닦으라고 (예비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이것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니다.
 
3
주님을 기다리던 한 여인이 노래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는 교만한자를 흩으시고 평화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오만한 부유한 자들이 99%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고, 오만한권력자들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Advent 메시지는 교만하면 창조주와 대화할 없다는 것입니다.
교만이 우리 인간세상의 막힌 담이 됩니다.
재물과 권력의 차이만이 인간과 인간을 가로막는 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와 인종과 지역과 학문 그리고 심지어 종교에서 조차도 모든 차별과 우월이 존재하며, 그것은 인간의 교만으로 나타나 인간 세상의 높은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Advent의 계절에 교만에 대한 회개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겸손을 회복하여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주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4
십자가의 죽음과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새로운 생명이 잉태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하나님의 복음의 약속은 유대인의 장벽을 헐어 이방인으로, 할례의 골짜기를 메워 세례로 퍼져나갔습니다.
오늘날 복음전파의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하나님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당신의 백성을 동서남북으로 부터 이 꼬빌리시로 불러 모아주셨습니다.
 
백짓장도 마주들면 낫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서로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위로가 오실 길을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은 우리 꼬빌리시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영적축복 입니다.
이 영적축복으로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발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는 사람

메시지: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는 사람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서고, 실패와 좌절을 통해 내려놓음을 배우며, 거룩하신 하나님께 삶의 주권을 내어드린 사람이다.  
 
1. 믿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서는 사람
2. 실패와 좌절을 통해 내려놓음을 배우는 사람
3. 거룩하신 하나님께 삶의 주권을 내어드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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