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섹 오픈 하우스 “벨리바” 문 열다(사진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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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섹 오픈 하우스 “벨리바” 문을 열다.

감회가 깊다.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찻집 “벨리바”(Velryba – “고래”란 뜻의 체코어이다.)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1월 7일 오후 1시에 문을 열었다. 1994년도 어느날 첫만남을 시작으로 동유럽 선교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1999년 “체코-한국 선교센터”를 조직하기까지 수많은 대화와 기도로 함께 하던 나의 동역자이며 동시에 신앙의 선배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파벨 호이까 목사님이 저 하늘나라에서 함께 감격하며 웃고있는 모습이 곳곳에 묻어남을 느꼈다.

삐섹 오픈 하우스 “벨리바”는 청소년, 청년, 어린아이가 있는 주부, 노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찻집이다. 찾아 다니며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대상들이 매우 흥미로운 찻집 “벨리바”로 모이게 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벨리바”는 술과 담배를 팔지도 하지도 않는 찻집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독서와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아늑하고 청결한 공간이며 교양을 고양시키고 건전한 관심을 유도하는 삐섹 시민의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한국기독교인들과 체코기독교인들에 의해 다채롭게 제공될 것이다.

“벨리바”는 고래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를 상징한다. 무신론적인 분위기의 사회에 기독교의 거부감을 최소화 하는데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지혜가 동원된다. 물고기 모양의 로고는 기독교의 복음을 상징한다. 이 찻집은 단순한 찻집이 아니다. 찻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큰 물고기 속에 들어간 요나이다. 거기서 그들은 기독교의 복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것이다. 헌신된 일꾼들을 통해 복음의 가치로 변화 받은 삶의 모습을 눈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사랑과 친교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토록 비판적이던 기독교에 대해 전혀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가 있을 것이다. 이 헌신된 일꾼들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존경하는 파벨 호이까 목사님의 양들이다. 지도자를 잃은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그 목사님의 아들 평신도 지도자 빅토르 호이까를 중심으로 더 훌륭한 일꾼들로 성장했다. 이것으로 우리는 먼저 세상을 떠나신 호이까 목사님을 평가할 수 있다. “벨리바”를 통해 배출되는 새로운 기독교인은 빅토르 호이까의 엘림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양육이될것이다.

이처럼 전도와 복음의 수용 그리고 성장으로 이끄는 새 신자 양육 과정의 경험은 엘림교회만의 소유가 아니다. 이 경험을 기존의 전통교회에 접목시키고 닫힌 교회들이 열려지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토대로 만드는 역할은 나의 몫이다.

1월과 2월은 홍보기간으로 삼고 찻집운영을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2월에 3월 프로그램이 계획된다. 아마 첫 프로그램은 파리장로교회(목사 이극범) 선교부에서 조직한 성악가와 기악가들의 콘서트가 될 예정이다. 성지 사진작가와의 좌담회, 영화 연출가와의 좌담회, 각종 콘서트, 경연대회, 한국음식을 제공하는 한국의 날… 오픈 하우스의 선교 뜻에 공감해서 동참하려고 하는 이들이 줄을 잇고있다. 1월 7일 오픈을 앞두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꾼을 하나님께서 미국에서 보내주셨다. 고등학교 때 미국 유학을 떠나 10여년간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유한승 형제가 선교의 뜻을 가슴에 품고 체코 프라하로 왔다. 그것도 뜻 깊은 날 성탄 전야 저녁 예배를 찾아와 첫만남이 이루어졌다. 1월 7일 그의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백인이 아닌 사람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게다가 전문 음악가이니 체코인들이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호감이 가는 일꾼이다.

당분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오후 8시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 그러나 오후 프로그램이 정착되면 오전에 어린아기가 있는 부인들과 노인들을 위해 문을 열 계획이다.

“벨리바”는 선교 베이스이며 체코의 교회선교의 실험실이다. 정상을 정복하는 산악인들에게 베이스 캠프가 절대로 중요하듯 자신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위해 일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오픈 하우스 “벨리바”는 베이스 캠프로 그들을 섬기길 원한다.

“벨리바”는 모든 선교 프로그램 실무자 “밀란”과 찻집운영실무자 “밀린다” 두 명의 정식 직원을 두고있다. 위치는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100키로미터 떨어진 인구 3만명의 도시 삐섹(Pisek)이다.

인적인 자원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이곳에서 단기 또는 장기 사역의 뜻이 있는 분들 그리고 물질로 기도로 동참을 원하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린다.

내부수리를 위한 인력봉사와 필요한 물품을 헌금한 엘림교회 교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첫날 첫번째 찻집손님으로 방문한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총무 송종식 집사님과 정남례 집사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이 사역을 위해 익명으로 헌금을 하며 돕는 손길도 있다. 이 모든 분들의 기도와 관심에 감사드린다.

잊을 수 없는 분들은 부족한 사람에게 신뢰를 가지고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는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를 비롯한 교회들이다. 8년이 지나도록 선교의 결과를 재촉하지않고 묵묵히 기도하며 어려울 때 마다 기대이상으로 돕는 분들이다. 이 분들이 없었으면 감히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가지며 이 사역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부족한 사람을 위해 바로 옆에서 함께 기도하며 의논하는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교우들은 나의 동역자, 나의 사역의 반려자이다. 교우들께 마음 깊이 의지하며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1994년부터 이 사역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분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린다.

2002년 1월 7일
삐섹에서 프라하로 돌아와
이 종 실

[펀글] 체코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아래의 글은 사이버미션2001 선교대회에 올린 글을 옮겨 놓은것입니다.
<체코교회와의 협력선교>를 체코선교 정책으로
를 체코 선교방법으로
택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한글입니다.
…………………………………………………………………..
체코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번호: 88 이름: 이종실 날짜: 2001-12-10 조회수: 26

안녕하세요?
저는 체코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종실 목사입니다.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게시판이 열리지 않는다고 진행본부로 메일을 보내면서 제가 관련하는 두개의 홈페이지를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 보내드렸는데 그것을 이 게시판에 올려주신것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파송선교사입니다. 체코에는 1993년 11월에 왔고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것은 1997년입니다. 체코에 오기전에는 저의 교단 총회 세계선교부 간사로 만 4년, 그리고 필리핀에서 반년을 교단본부에서 실무로일할때 느꼇던 선교현장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보구요 그리고 영국에서 1년간 선교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선교와 관련해서 일한 햇수로 15년되었습니다.

체코교회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1985년도였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 이렇게 선교사로 살고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체코교회와의 협력선교\” 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질문을 받는것 가운데 하나가 \”왜 체코에서 체코교회와 협력선교를 해야됩니까?\” 였습니다.
현대선교신학의 경향이니 뭐니 하는 설명은 이미 강의시간에 들으셨으리라 생각되어 그런 이야기는 뒤로 하고 …

이유는 1000년의 역사가 넘는 체코교회가 있기때문이에요.
교회 역사가 1000년이 되었으니 체코는 카톨릭이나 아니면 다른 개신교회의 국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국가 통계로 30% 실제예배 출석교인이 8%도 되지않아요. 카톨릭과 개신교 교회들 모두 합해서요. 금년에 10년마다 열리는 인구조사에서 카톨릭 교인수가 10년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었어요. 그러면 나머지 인구는 아직 종교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나는 무신론자 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에요.

이 무신론자들의 숲속에서 체코교회는 바람앞에 등불같아요. 공산주의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되었으니 체코교회가 발전할수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새로운 변화의 시대가 오히려 체코교회를 더 어렵게하고 있어요. 공산주의 시대의 종교법은 두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교회활동에 대해서 다른하나는 교회재정에 대해서예요. 이제는 교회활동은 교회밖에서도 가능해졌어요. 그러나 교회재정의 법은 지금도 존속하고 있어요. 먼저 교회활동은 자유가 있으면 무엇해요? 교회는 별로 필요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지지않은 상황에서 교회의 자유는 무기력해요.

체코개신교회는 루터와 칼빈의 개혁교회보다 100년이 앞서서 시작되었어요. 그러니까 1400년대 부터 신앙의 자유를 위해 카톨릭과 오랜전쟁을 하고 완전한 자유가 1차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독립이 되는 1918년에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얼마후에 나찌의 통치 그리고 공산통치 그러니 체코의 개혁교회가 언제 자유롭게 교회다운 교회로 한번 살아본적이 없는거예요. 그냥 생존을 위해서만 살았지요. 그러니 오늘날 체코교회는 마치 제가 잘 쓰는 표현으로 \”체코개혁가문의 종친회\”같아요. 교회일은 디아코니아(개신교회의 사회봉사조직)가 하고 교회는 그냥 모이는거예요. 전도해서 외부에서 새로운 신자가 들어오는 구조가 되질 못해요.

조금전에 공산통치때 종교법 가운데 교회재정법이 있다고 했지요? 이 법은 교회재산을 국유화 하는 대신 정부가 교회에 재정을 지원하는거예요. 목회자 사례비는 국가가 정한 봉급기준표에 의해 문화부 예산에서 집행되고 있어요. 여기에 복잡한 이야기 많아요. 생략하기로 하구요. 지금도 이법이 계속 존속하거든요. 그런데 문화부에서 \”우리는 이제 교회에게 줄 돈이 없다. 너희들 아라서 해라\” 그러니 교회가 돈이 있어야지요. 목회자 사례할 수 있는 교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정부 바지가랑이 붙잡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계속 지원해 줘야된다고 매달리고 있지요.

물론 제가 극단적인 표현을 쓴 부분도 있지만 이것이 체코교회의 현실이에요. 이 어려운 교회가 우리들의 지체라면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체코선교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가 기도하고 도와야되고 우리의 경험을 전해줘야되는 책임이 형제교회에 있는것이지요.

그리고 체코에 종교법이 있는한 별도로 교회를 개척해서 교단을 세워 선교의 지속성을 갖는다는것은 현실성이 없는 선교전략이예요. 현지교회가 바뀌면 그것이 곧 선교로 연결되고 1000년의 교회의 역사의 깊이가 완전히 새로운 선교자원으로 변모될거예요. 이것이 지속성있는 체코선교의 방법이예요. 그래서 저는 저의 선교전략을 \”체코교회와의 협력선교\”로 택한것이예요.

앞에서 제가 체코개신(개혁)교회를 체코개혁 가문들의 종친회로 묘사를 한것 기억나시지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가는 구조가 아닌 거의 폐쇄된 공간이예요. 그래서 저의 선교 프로그램은 체코교회를 상징하는 close house 의 대칭개념으로 open house 라 해요.

이교회 저교회에서 오픈 하우스 선교프로그램을 시도했지만 변변한 결과가 아직도 없네요. 그냥 폐쇄된 교회 구조들에 부딪혀 고전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언젠가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고 서두르지 않으면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여러분 기도해주세요.

프라하에서 체코-한인들이 함께 모이는 꼬빌리시 교회에서의 경험은 아직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이교회는 일반적인 이민교회가 아니라 체코에 거주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기존의 체코교회에 들어가 체코교회를 오픈 하우스로 만들고 있어요. 처음에 체코-한국 기독교인들의 연합예배를 추진하면서 체코교회의 교인가운데 두가정이 \”예배는 체코어로 드려야됩니다.\” 하면서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 주장이 우리들에게는 어거지 같이 들리지만 체코인들 입장에서는 가능해요. 중세시대때 기독교는 무슨언어로 예배를 드렸는지 아시지요? 예, 라틴어였어요. 성경도 라틴어 성경이었구요. 체코 개혁파들이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예배를 체코어로 들이자! 그리고 성경을 체코어로 번역하자!\” 주장하고 \”성만찬은 성서대로 하자!\” 해서 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1400년 부터 1918년까지 투쟁을 했던거예요. 그러니 한국사람들이 들어와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니 혹시 이상한 나라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예배를 드릴까봐 반발이 있었던거예요. 그래도 이해하기 힘드세요? :-)

여러분들에게 생소한 나라 체코에 살아가는 체코교회 우리들의 형제 자매들의 상황을 장구하게 말씀드린것은 여러분들의 기도와 체코선교 비전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예요.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하구요.

1년에 짧은 기간도 괜찮아요. 그러나 매년 정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단기선교팀이 올 수 있다면 대 환영을 할께요.
우선 우리 문화를 소개할 수있는 분들이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요리 탈춤 태권도 같은거요.

그리고 여름에 전도캠핑 같은 프로그램이 가능한 미국쪽에 계신 영어구사가 능숙한 젊은 분들도 오셨으면 좋겠어요.

혹시 한국영화필름을 제공해 주실 수 있는 분 계시면 체코어 자막을 처리해서 소개하고 싶어요. – 이런 프로그램이 왜 필요하냐구요? – 체코 사람들은 문화적인 욕구가 엄청나거든요. 그들과 접촉하는 매개체로 문화를 생각하기때문이예요. 지역교회가 주민들에게 이런 공간을 제공하면서 서서히 서서히 접근해 가는것이지요.

이제는 선교를 목사 혼자서 하는 시대가 아닌것 같아요. 많은 기도와 다양한 동역자들이 필요해요.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다시한번 더 저의 연락처를 남기는 의미에서 교회 홈페이지를 남깁니다.
http://praguechurch.kr

주의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길 빕니다.

이 종 실 올림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선교목사
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담임 목사

구 교회당 부지 활용방안 최종결정

꼬빌리시 광장 사거리 꼬빌리시 전차 종점방향으로 전차길을 따라 10여 미터 따라 올라 가면 현재 중고품 가게로 임대를 둔 허룸한 창고집이 나온다. 1970년에 강제로 현재 교회터로 이주하기전 40여년간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당이 있었던 자리이다. 그동안 교회당이 여러번 용도변경이 되면서 현재 창고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1989년 이후 이 땅을 되돌려 받게되었다. 당장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낡고, 전기 수도 난방등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어 교회가 활용을 할 수 없자 그대로 버려둘 수 없어 창고로 그리고 현재 중고품 가게로 임대를 두어 어려운 교회살림에 조금씩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전 이 교회터가 프라하 지하철 C선 연장선 건설계획에 편입이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보상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프라하시에서 계획을 변경하여 교회터를 부분 구입하기로 하였다.

그 후 당회에서 남은 약 3백 평방미터 정도의 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숙의를 거듭하였다. 숙의의 원칙은 부지를 모두 매각했을 경우 매각대금은 교회의 선교활동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터를 모두 정리해서 아직 완성되지 못한 현재 교회당 증축(현재 지하 방4개인데 설계에 따르면 방이 모두 8개가 된다. 이 방들은 교회의 치유목회를 위한 프로그램의 용도이다.) 에 투자하는 방법, 교회당 옆 자투리땅을 내무부로 부터 구입해서 어린이 놀이터를 건립해서 옆 숲길과 연계하여 교회 주변을 공원화하여 지역주민이 이용하도록 하는 방법…을 의논하였다.

그러나 10월 15일 월요일에 현재 부지를 교회의 다목적 선교를 위해 활용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현재 지하철 건설 설계대로면 구 교회터 부지는 지하철 출입구 바로 옆에 위치하게 된다. 그곳에 선교적인 목회, 봉사활동(디아코니아), 문화센터를 내용으로 하는 비영리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꼬빌리시 광장에 새로 건설될 지하철 역을 중심으로 길 한 쪽에 현재 위치하고 있는 카톨릭 교회의 어린이를 위한 대규모의 프로그램 장소 그리고 맞은편 윗쪽으로 체코 성서공회 건물 골조가 거의 완성이 되었고 그 맞은편에 우리 교회의 선교프로그램 건물이 위치하게 될것이다. 새롭게 건설될 지하철 역사 주위는 교회들의 지역사회 활동 프로그램들로 둘러싸이게 된것이다.

그래서 지하철역 부근에서 교회의 이와같은 계획에 대해 프라하시 교통 건설 관계부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교회가 지역 사회를 위한 비영리 사업을 계획할 경우 앞으로 지하철 건설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지하철 건설은 3년 후에 완성이 된다. 부지의 활용은 지하철 건설이 완공되면 시작할 수 있다. 3년동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기도로 준비 그리고 실천 가능한 일들 부터 하나 하나 축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체코교회의 입장을 어느정도 이해한다면 슈토렉 목사님과 당회원들이 그렇게 결정하기가 그리 쉬운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역사회와 교회가 어느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선교적인 목회 프로그램, 디아코니아(봉사) 활동, 문화교류 라는 큰 밑그림은 그려졌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는 일에 우리 한인교우들의 관심과 역할이 있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은 앞으로 체코선교의 개념과 방법론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Open House

프로젝트 Otevreny dum (Open House, 열린 집)

1. “열린 집” 프로젝트란?

<프로젝트의 개념과 목적>
체코형제개혁교단(CCE)과 대한 예수교 장로회(PCK)간의 연합 프로젝트로서 구체적으로 쁠젠의 CCE 의 “꼬란두프 교회”에서 시행된다. 이 프로젝트는 교회가 단지 어떤 필요를 도와주는 차원에 만족하지 않고 교회주변의 매우 다른 사람들과 단체들에 대해 열린 공간이 되어 그들이 교회 안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그들 역시 사회에 열린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 선교이다.

체코교회는 무신론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들을 한국교회와 나누며, 한국교회 역시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양 교회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다.

이 프로젝트는 체코교회의 미래를 위한 모델과 동시에 교회의 경험과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공유하며 하나님의 선교를 이룩하는 선교 모델을 모색하는 실험이다.

<프로젝트 “열린 집”의 신학적인 토대>
….2001년 1월말 꼬란두프 교회 공동의회에 제출한 내용이다. ….

프로젝트 “열린 집”은 특별히 기독교의 증언 가운데 하나인 “섬김”을 표현하길 원한다. 그리고 교회 밖의 사람들과 교회 안의 사람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중간장소”가 되길 원한다. 특별히 가난한 계층(소비 또는 문화 생활 등의 다른 삶의 출구가 없는 이들)들에게 교회가 삶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사역은 교회가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고 자기만족에서 벗어나 게토화 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 말로 “선교적인 목회” 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선교적인 목회“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부터 시작된다. 모든 면에서 기독교에 대해 넘쳐나는 정보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교회로부터 어떤 기본적인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교회는 그들을 무관심 속에 버려두었다. 교회가 무관심속에 버려두었던 사람들을 만나 “복음(기쁜소식)”을 나누는 희망은 그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지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고백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도움을 세상에 육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집으로서 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져야 한다. 선교적인 목회의 중요한 모습은 강의나 설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 형식 없는 만남이다. 프로젝트 “열린 집”은 이러한 만남의 모든 기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변호할 필요가 없다. “증언자”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교회당과 기도실의 지붕아래 증언자의 보물을 감추지 않아야한다. 욕심 없는 섬김으로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을 이루어야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열린 집”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인포메이션의 차원을 갖는다.

2. 프로젝트 논의 과정
1999년 6월 노아 방주 프로젝트로 논의 – 당시 상담실을 사회선교 프로그램으로 개편
1999 년 9월 전국연합 여전도회 총회에서 프로젝트비 지원키로
1999년 11월 프로젝트의 개념 변화 – “열린 집”으로 프로젝트명 변경
2000년 02월 27일 양교단(CCE, PCK) 대표들의 방문과 예배
2001년 01월 쁠젠 꼬란두브 교회가 프로젝트를 위해 Prokopova 17번 건물제공

3. 지난 1년간 프로젝트 경과 보고
1) 상담실 운영자의 활동이 상담에서 끝나지 않고 치유의 과정으로 목회자와의 연계
2) 상담사례별로 예방차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강좌 개최
3) 목회자 및 사역자들의 독일과 네덜란드 교회의 사회봉사 프로그램 견학
4) 상담자중 무숙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할 공간확보와 수리
5) 교회의 활동을 대 사회를 향한 열린 프로그램으로의 모색

4. 현재 요청되는 상황
1) 실무간사 채용
가. 지난 1년간 프로젝트의 개념을 구체화 시켜가는 과정으로 꼬르빠 목사와
이종실 목사가 일을 주도하였다.
나. 이제 프로젝트를 확산시켜가는 단계로 풀 타임 직원(가칭 실무간사)이 필요.
다. 실무간사의 일
가) 프로젝트 홍보 – 팜플렛, 홈페이지, 잡지 발간
나)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위한 네트웍 구축 – 방송, 잡지, 신문
인터뷰 및 광고, 사회봉사단체들과의 협력체계 구성
다) 프로젝트 기획 운영 관리 – 노인클럽(매주 월), 청소년 예배(월 1회),
어린이 영어교실(기회중),
라) “열린 집” 공간 개보수와 관리 – 자원봉사자, 기금마련…..
마) 건물 보수후 목회 인포메이션을 위한 시설(찻집, 도서실, 어린이 놀이터) 관리
라. 사례비 책정금 월 10,000꼬룬(실 수령금 7 000꼬룬)
마. 까렐 쉬므르 (남)
1975년 9월 30일 생, 김나지움 졸업후 개혁교회 아카데미 사회복지과 졸, 호스피체 또는 사회보호시설에서 활동을 하면서 long term 과정 찰스대학 개혁신학부에서 공부 현재 4학년이며 신학부 재학중 1년간 찰스대학 의학부에서 1년간 심리치료법 수학.
2) 긴급히 필요한 사무용품 – 컴퓨터와 프린터

4. 프로젝트 맡은이들
이 종실 목사, 루덱 꼬르빠 목사, 까렐 쉬므르 전도사

작성일 2001/2/24
* 이 프로그램은 현재 꾸란두브 교회의 내부사정으로 의견 조정을 하고 있는 중이다.

디아코니아 자동차 구입

자동차 구입 재정 보고

우리 디아코니아의 지역인 프라하 북부지역에서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꼭 필요합니다. 매일 점심을 배달하고 병원에서 진찰이 필요한 환자들 수송, 장애인을 도울 때 그리고 그 환자들이 콘서트나 전시회를 가고 싶을때, 또는 그들의 힘으로 도저히 갈 수 없는 경우와 그 외 여러가지 봉사를 위해 자동차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금년 5월 말까지 사용했던 자동차는 1995년 중고시장에서 구입한것입니다. 이 차는 처음부터 잔고장이 많았습니다. 새 자동차 구입을 위한 재정 문제의 해결의 발판은 \"디보께 후시\"였습니다. 디보께 후시가 인터넷 사이트에 우리 활동을 위한 헌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금운동만으로는 차를 살만큼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Kvetnovy den 과는 경쟁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선 공연을 구상하게 되었으나 댜브릴쩨 에는 자선 공연을 위한 마땅한 장소가 없었고 그 당시 우리 교회당은 저희에겐 그다지 큰 장소라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공연 장소의 렌트비용 문제 때문에 자선공연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지만 고맙게도 살바또르 교회는 우리에게 자선 공연을 위한 장소를 렌트비없이 빌려주었습니다.

장소는 해결되었으나 출연자 섭외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아는 사람 중에 출연자들을 섭외하였습니다. 특히 제가 이 일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도록 힘을 얻은 것은 음악가 야나 브라호바와 마이클 에릭슨 두분이셨습니다. 제가 이분들과 전화를 했을때 이 분들은 한마디 거절없이 제청을 들어 주셨고 출연비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초청장 인쇄 및 발송 그리고 전화비 외에 별로 들어가는 경비없이 자선 공연을 열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큰 도움과 희망을 우리 교회와 이지 슈토렉 목사님과 디보께 후시 재단에서 얻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했던 것은 자동차 판매회사 츄미에베스 사장님 보우라씨의 약속이었습니다. 그 분은 16만 꼬룬이 모이면 편한 차를 책임 지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모금은 우리 기대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큰 도움은 우리교회의 한국분들이십니다. 이종실 목사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셨을 뿐아니라, 여러 한인교우들과 함께 콘서트에도 참여하셨고 게다가 스톡홀룸의 한국 형제들에게 부탁을 하여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국제적인 도움으로 우리는 새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하였습니다.

우리의 은색 빛 펠리치아 콤비는 파란색 디아코니아 로고가 있고 그리고 어떻게 이 자동차를 구입했는지에 관해 간단한 문구를 새겼습니다.

\" 이 자동차는 디아코니아 친구들의 헌금으로 구입되었습니다. \"

보고자: 리디에 베셀라
(우리 교회 소식지 Terasa 22호에 게제된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