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09)

2013년 10월 9일 오늘의 말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창세기 50장 20절 상)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장 13절 하)
묵상
요셉이 자신의 형제들을 용서히지 못할 이유를
손가락으로 헤아리자면 수백가지는 될것입니다.
형들 10명 모두가 요셉을 왕따시키고 
그를 죽이는데 마음을 같이하고 알리바이를 만들었습니다.
힘없는 동생 요셉은 아무리 애원을 해도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사랑하던 부모와 생이별을 당해야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행한 삶이 그에게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강제로 해외에 팔려 노예가 되고 남의 집의 종이 되어
온갖 고생을 다해야 했습니다.
원치않는 감옥에도 가고 죽음 직전의 위험도 만났습니다.
이 엄청난 불행한 인생이 바로 자신의 형제들에 의해 벌어지게되었다는 사실로
그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자신의 꿈이 형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알지못하고
고지고때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그가 당해야 할 고초는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고통입니다.
마음의 고통이 너무나 크고
그 상황을 아무리 발버둥치고 벗어나려해도
벗어나지 못하게될 때는 마음의 분노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체념하여 받아들이게됩니다.
약자의 서러움입니다.
강자와 약자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힘 앞에서는 법도 굽어버리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힘이 있어도 불의하게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약자입니다.
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힘없고 연약함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멸시 천대를 당해도 법으로 호소를 해도 소용없고 
모든 권력이 한 통속이 되어 여론을 조작하고 필요한 여론을 만들어 내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웅변하는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아신 우리 주님은 
어린양처럼 조용히 그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약자가 억울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왕 힘으로 안되는것 자포자기 하나님 밖에 의지할 수 없으니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내게 강제되었으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힘이 남아 있다면 그는 약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성취해 가시기 위해 선택한 일꾼들을 위해
만드신 상황이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 성취의 축복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고난의 상황입니다.
내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계신다면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마음으로 용서하십시다.
어차피 내 힘으로 할 수 없는것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믿음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된 상황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연약한 인간의 믿음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도 내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도우셔야 된다고 
우리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셉도 예수님도 그들이 걸어가신 그 길이 
가시밭 길이었지만 받아들였습니다.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약자, 연약한 자만이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의 상황 속에 있다면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십시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내 마음을 느끼는 단 한순간이라도 있으면
그 행복감을 맛본 인생은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설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진실로 약한 자가 복음을 이해하고 전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약한 자가 되게하옵소서.
2.
은과 금은 내게없어도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선교하는 
유럽교회 체코교회와 하나되려고 하는 우리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3.
훈련 중인 류광현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약하자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08)

2013년 10월 8일 오늘의 말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장 31절 상)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1장 17절)
묵상
오늘도 눈을 뜨자말자, 꿈을 꾸어봅니다.
이기주의와 양육강식의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이게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이야”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꿈을 꿉니다.
제 꿈이 허황된 꿈인가요?
이 세상이 어디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 인류가 행복하게 될까요?
현재까지 발전된 과학기술 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융기술이 더 발전되면 세상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있는
재화의 창출과 분배가 이루어질까요?
이미 이 세상의 재화는 인류가 함께 나누어 쓸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지구는 여전히 인류가 함께 살기에 
충분한 재화와 물질과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직 다른 태양계에서 
지구와 같은 아름다운 행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이 지구는 
여전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스스로 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운행되면 이 세상은 여전히 좋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동정녀 마리아의 고백대로 
세상을 위해 자기를 버리라는 말씀에 순종하면
세상은 여전히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리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들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여호와가 주인이심을 잊지말고 그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되돌아 오는 것이 창조질서의 회복과 은혜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버려 하나님의 창조를 회복하여 
모두가 구원을 받으라는 축복의 말씀 조차도 
우리 교회들은 자기 중심의 이기적 축복으로 받아들일만큼 
우리는 타락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맘몬을 신으로 삼으므로써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를 타락시켜 그 안에서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세상 속에서 우리 교회는 맘몬이 아니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선교적 사명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이유입니다.
자기를 버려 하나님이 말씀이 나를 지배하게 하는 성도들이
모이는 모임인 교회가 세상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이것을 잊지않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함께 기도하십시다.
1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전히 좋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욕망과 이기심으로 얼그러진
이 세상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는 교회를 세우게 하옵소서.
2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세계교회협의 총회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로 세워갈 수 있도록 
회심이 일어나는 교회 지도자들의 모임이 되게하옵소서.
이 대회에 참석하는 체코교회 지도자들과 체코형제복음교단의 두 청년들이
큰 변화받는 시간이 되게하옵소서.
GETI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세계 젊은 신학자들과 교류를 하게될 류광현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요.
이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더 귀히 쓰임받는 섬김의 종이 되게하옵소서.
3
카이로스 훈련 중에 있는 류광현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이 훈련 잘 받아 세상에 소망을 주는 체코 슬로바키아 교회들을 세워가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역자 되게하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믿으면 소망인줄 흔들리지 않는 믿게하시니 감사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게하시니 감사
중대한 일들을 맡아 하나님을 의뢰하며 기도하며 그 일을 감당하길 원하는 성도들의 믿음을 보게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05)

2013년 10월 5일 오늘의 말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편 5절)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로새서 1장 12절)
묵상
시편 23편 기자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라고 고백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따르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원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은 우리 성도의 삶은 
혈과 육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씨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원수”는 개인의 원한이 아니라 
우리를 “흑암의 세상”에 묶어두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하는 
악한 영들의 도전입니다.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를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람의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들 조차도 이 원수와의 씨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원수인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도 우리의 이웃에게 원수가 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때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분열시키는 그 모든 배후에는 진짜 “원수”가 있기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원수”를 볼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성도의 아름다운 기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순간마다 죄 사함의 은총을 누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원수”는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생과 감사와 기쁨만이 있습니다.
여행을 가서 좋은 풍경을 보면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감탄을 합니다.
감동적인 스토리를 들으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이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감사와 기쁨을 주는 
“성도의 기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누리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탄성과 감격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환경에 눌리지 맙시다.
내가 내일 세상의 실패자로 서게되고 
그리고 모든 사람의 비웃음을 받게될지라도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영생의 하늘 나라 기업을 주신
그 하나님의 은총이 나의 성공이며 기쁨임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성도의 믿음을 회복하십시다.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진실된 감사는 하늘 영광과 축복으로 들어가는 
“내려놓음” “자기 비움”입니다.
할렐루야~~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나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는 상속자임을 진실로 깨닫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2
내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영혼을 잠시 순간이라도 맛보기를 원합니다.
내일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오전 9시 30분 모든 열방이 모여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모든 열방이 모여 예배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하옵소서.
기도하십시다.
3
설교하실 일본공동체 손신일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알지 못하는 위험 속에서 눈썹하나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시니 감사
우리 자녀들 체코 자녀들과 함께 교리공부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04)

2013년 10월 4일 오늘의 말씀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잠언 12장 20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장 14절)
묵상
“화평함”과 “거룩함”의 주제는 하나님을 보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화평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화평은 사람과의 관계와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성경은 화평한 관계, 사랑의 관계를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평과 사랑이 외에 선택할 다른 길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또 다른 단어 하나가 등장합니다.
“거룩함”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평과 사랑을 하되 
동시에 <거룩함>도 공존해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씀은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가 분별해야할 기준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지 않은 모든 것은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 사랑이 있는한 우리의 화해와 사랑도 자기를 위한 것이지 
거룩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사랑이 동기가 되는 모든 것은 죄악입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잡고 정쟁을 벌립니다.
야당이었을때와 여당이었을때 
같은 사안을 놓고 다른 주장이 나옵니다.
심지어 야당일 때 만들어놓은 법이 여당의 입장에서 불편하다고 
그 법을 없앨려고 합니다.
법을 만들었던 이유도 그리고 법을 없애려는 이유도 모두
국민과 민생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도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정당성을 이야기해도 그 동기가 자기사랑이면 이미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자기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교리를 율법처럼 들이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이와같은 이전투구가 교회를 분열시켰고
한국 교회를 흑백논리만 있는 매우 저급한 공동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성도의 개인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그대로 실천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기 사랑>의 자기 중심을 성찰하고
날마다 그것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사랑이어야 하고 
우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이 성찰이 있을때 우리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게되고
그 거룩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깨닫고 볼 수 있습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사랑>으로 가득찬 나를 
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주옵소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화평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바른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 형제 자매들을 축복하옵소서
3
체코와 다른 민족들이 함께 바른 교회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증언하는 우리교회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체코 자녀들과 우리 한국 자녀들이 오늘 부터 교리공부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
2년동안 교리공부를 통해 비전을 갖는 좋은 성도로 성장할 줄 믿고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03)

2013년 10월 3일 오늘의 말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장 24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 21절)
묵상
“진리는 승리한다.” 
중세교회가 절대권력이 되어 타락하고 있을때
로마 바티칸에 비해 한줌의 먼지에 불과한 
체코의 개혁교도들이 내건 구호였습니다.
그들은 바티칸에 의해 이단으로 내몰리고 
거대한 연합군인 십자군에 의해 “청소”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절대권력으로 부터 이단으로 규정 당하고 
거대한 군대앞에 오합지졸로 서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볼때
그들은 자기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주장이 복음앞에서 진리임을 확인하고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곳곳에서 “악인의 형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편 37편은 49편, 73편과 함께 주제는 
“의인은 고난을 받은데 왜 악인은 형통하는가?”입니다.
오늘날 여전히 소수자로 사회로 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체코 개혁교도들의 후손들을 보면 저절로 나오는 질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지만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우리들의 입술에서도 나오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다고해서 분을 내고 불평하는 것이 
오히려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속임수에 환호하고
잔머리를 굴려 돈을 벌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득의양양하고
분수와 체면을 헌신짝처럼 버리며 성공한 이기적 삶을 우러러보는
세상 속에서 “여호와를 의뢰하고 여호와께 맡기고 여호와를 기뻐하며
여호와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삶”을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의를 빛같이 나타내실 그날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길이 참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성품을 믿음의 인내를 통해
우리는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과정 자체가 축복입니다.
다같이 기도 하십시다
1
믿음으로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고 
믿음의 인내로 복음의 진리에 순종하며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가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2
경제적 위기와 관계의 위기로 고통을 당하고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있는 형제와 자매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3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형제 자매들이 이 해외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초청하는 친구가 있어 감사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서로 네트워크 되기를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하나님의 생각과 그 길이 나의 것과 다름을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