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10)

2013년 1월 10일 오늘의 말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역대하 19장 7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누가복음 15장 1-2절)
묵상
유대왕 여호사밧은 마치 바다의 파도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왕 아합과 동맹을 맺어 백성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사법제도개혁을 시도하여 국정의 안정을 꾀하였습니다.
사법제도는 사회의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것이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크고 작은 모든 판단과 결정이 
오늘 말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판단과 결정은 불의함과 치우침과 
뇌물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와 <뇌물>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의 역사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뇌물>을 받고 성직을 주는 <성직매매>와 같은 
교회 타락이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뇌물>을 받으면 판단의 <불의함>과 <치우침>이 
있을 수 박에 없습니다.
공의롭지 못한 교회 재판 때문에 
교회의 분규가 법정 재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들은 많이 보고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사법 시스템으로서의 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의 판단력은 바로 우리 성도들의 판단력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의 욕망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교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만큼 열심있는 신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력은 하나님의 통치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렇게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았던 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꼬빌리시 성도 여러분,
우리의 판단력이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신앙이해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인정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부족하고 결함과 한계가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신앙의 왕초보 처럼
언제나 우리는 스스로 믿음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잃지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들을 
당신의 오른손으로 붙잡으셔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펼쳐나가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쓰임받는 우리와 우리 교회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 성도들의 판단과 결정이
하나님의 통치행위와 관련있음을
알게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흐려진 판단력
우리들의 욕망에 이끌린 결정들
우리들의 이기적인 당파심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앞에서 불의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장신대 신대원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방문을 감사
방문자들 모두 프로그램을 만족할 수 있어서 감사.
이를 위해 뒤에서 도운 손길들로 인하여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8)

2013년 1월 8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예레미야 14장 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묵상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으 절규를 듣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유다가 멸망하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굳게 믿고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의 파괴는 충격이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의 절규 가운데
<그래도>라는 단어가 우리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신실하신 우리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한 일들의 실패와 좌절을 경험
하였다면,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예레미야 선지자 처럼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마치 
젖먹는 아기를 어미가 돌보듯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시고 택하여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성장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자기의 계획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한 일들이
나의 생애 가운데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철저한 회개를 피해갔던 때까 얼마나 많았습니까?
주님,
이러한 나의 모습은
내 뼛 속, 세포 속 까지
당신에 대한 교만과 거부로 가득채워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
내 뼛 속, 세포 속 까지 
당신의 사랑이 스며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합니까?
그러나 당신의 사랑이 죄악으로 가득찬 내 골수 세포 속
곳곳까지 스며들기까지 내 생애 모든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도
<그래도 당신은 내 안에 계신다>는 고백으로 
끝까지 당신을 의지하고 신뢰하겠습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받들려는 봉사자가 있음을 감사
구역성경공부로 다시 모이게 하신것 감사
구역성경공부를 통해 부흥을 체험하는 우리교회될 것을 믿으며 감사
구역성경공부 인도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실것을 믿으며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7)

2013년 1월 7일 오늘의 말씀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수아 5장 14절)

예수님이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다
(누가복음 8장 21절, 표준새번역)
묵상
여호수아가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그토록 민족이 꿈꾸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강둑까지 넘쳐 흐르던 요단강을 마르게 하셔서
여호수와와 백성들은 가나안 거민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관문인 여리고를 향해 갑니다.
그때 길에서 여호수아 앞에 손에 칼을 든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여호수아는 질문합니다. <우리 편 이냐?, 우리의 원수냐?>
손에 칼을 든 사람은 자신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밝힙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의 앞에 엎드려 명령을 듣기를 원합니다.
군대는 지휘자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지휘자가 명령하지 않거나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군대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광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 정복에서는 
눈에 보이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눈을 들어 > (수 5:13) 여호와의 지휘자를 발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 지휘자의 명령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때
하나님의 명령(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할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호수아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내 주여,
오늘 내게 무엇을 명령하려 하시나이까?
당신은 나의 대장입니다.
당신의 명령을 따라 
내가 오늘 하루를 걷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5)

2013년 1월 5일 오늘의 말씀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잠언 20장 12절)

그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누가복음 24장 45절)
묵상
내일은 2013년 첫번째 주일입니다.
주일, 거룩한 주님의 날, 만약 이 날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
…..
우리가 연약하여 세상 속에서 살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듣기가 쉽지않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모두 하나님이 만드셨음에도 불구하구요.
그러나 <그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터치하시면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의 눈과 귀는 마음과 연결됩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내 안을 향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리고 보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우둔해도 너무 우둔하여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물리적으로 <그 때>를 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날, 주일입니다.
이 날은 신비의 날입니다.
이 날이 있음을 감사할 수 있는 성도는 
이 날이 <그 때>가 될 것입니다.
이번 주일은 언어와 문화외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함께 나누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고 우리는 그의 지체임을 
예배 예식을 통해 확인하고 고백합니다.
문화와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생각해 보면 신비입니다.
이 신비를 깨닫게되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나누는 그 모습을 보실때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그 하나님의 감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첫번째 고백이
성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 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를 만족시키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하려는 마음으로 이 예배를 참석하신다면 
또 다른 예배의 축복을 맛볼 것입니다.
마음의 눈과 귀가 열려 하나님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듣고 깨다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내일 예배는 9시 30분, 체코 어린이들과 학생들과 함께하는 어린이 연합예배, 문화교실, 그리고 2013년 집사 봉사직 임명받은 분들의 첫 집사월례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복된 예배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나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옵소서
그래서 당신의 영광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영화롭게하려는 예배자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감사할 수 없는 것조차 감사하게 하시니 감사
거룩한 하나님의 날을 물리적으로 제정해 주신것을 감사
교회를 함께 섬길 수 있는 성도와 봉사자들이 있어서 감사
한국과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우리 교회와 함께 선교를 하기를 원하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4)

2013년 1월 4일 오늘의 말씀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이사야 6장 5절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언제나 친절하게 유익한 말을 하고
묻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6절, 공동번역)
묵상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말 – 언어>라는 구조를 통해 전달되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 말(언어)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언어) 속에 계시고 그 <말>로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외모가 닮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말(언어)>입니다.
짐승과 달리 인간의 말은 소통의 수단뿐 아니라
인간의 말은 하나님의 말 처럼 
인간의 마음과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날때부터 앉은뱅이를 치유할때
말로써 하였습니다.
인간은 말로써 심지어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얻지 못한다.>
이토록 인간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인간의 말은 권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는 말은 마치 작은 것으로 모든 것을 태우는 불처럼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인간의 말은 마음 창고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6장에서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창고에서 악한것을 내어놓는다고 하였습니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구강을 통해 나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이고 자신의 미래가 보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자신의 말을 통해서 자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느꼈습니다.
인간사회의 언어습관을 보면서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있습니다.
해외 체류자 생활은 언어와 타문화를 극복하지 않는 한 
더 넓은 세계로 나온것이 아니라 
한국보다 더 좁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무조건적인 Understanding 이해하기 입니다.
내 마음의 부정적인 요소 
즉 열등의식, 자기학대, 교만, 자랑 과 같은 마음 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입장에 서보는 것입니다.
먼저 Under 타인의 아래에 Standing 서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합니다.
이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지 야고보서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다시한번 우리 꼬빌리시 교회가 
첫예배때부터 실천하고 있는 세가지 실천사항을 기억하시면
그 중의 하나가 <덕스러운 언어생활>인것을 아실것입니다.
덕스러운 언어생활은 나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모두를 복되게 하는 
축복의 길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미 우리의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있습니다. 
언제나 친절하고 유익한 말로 모든 삶에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복된 우리 꼬빌리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주님,
우리의 마음을 기경시켜주셔서    
우리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고
입술이 깨끗하지 않는 불신자들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송구영신예배때 교우들이 봉헌한 감사로 인해 큰 은혜 받게하시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