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예수님

  • 한인 예배 (2002년 12월 08일)
  • 눅 1:26-38
  • 설교자: 다빗 유레흐

021208 (대강절 두번째 주일)
본문: 누가복음 1장 26-35절, 37-38절
설교자: 다빗 유레흐
제목: 거룩하신 예수님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개역한글판 눅 1장)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누가가 우리에게 남겨준 증언에 초점을 맞추어 보십시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깊게 생각하도록 하게 할 만큼 중요한 말씀입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이름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라는 뜻입니다.
이 천사는 이스라엘의 보호자입니다.
그리고 이 천사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남쪽에 있는 조그만 도시 나사렛으로 옵니다.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이곳으로 옵니다.
이스라엘의 보호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로 ,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라고 하는 한 약혼녀에게 다가 가고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로 인해 무엇인가를 알리시려 합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다가와 인사를 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그 상황이 어떠했을지 한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젊은 마리아는, 그녀에게 이렇게 인사하는 이 이름 모를 사람으로 인해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인사말은 그럭저럭 이해는 하지만,  은혜를 받은자여 이 인사는 무슨 뜻입니까?
천사가 설명합니다.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다시말씀드려 하나님이 사랑으로 그녀를 덮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이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입니다.

천사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구약에서 이 비슷한 천사 (여호와의 천사)의 말이 나옵니다. – 하갈의 아들의 탄생 때(창16:11)와 삼손의 탄생 때(삿 13:3) 입니다.
아사야서 에서 이런 약속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라는 뜻입니다) (사 7:14)
이 말씀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메시아는 자신의 힘으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그는 선택된 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리아는 들었습니다.
예수, 히브리어로 여호수와  – Jozue 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라 뜻입니다.
이런 이름을 가시고 있는 사람의 보내심은 인간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메시지에는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은 마리아로부터 메시아 즉  구원자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계속 말을 하였습니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가브리엘의 이 메시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다시 구약성경을 살펴봅시다.

사야서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표준새번역 사 9:6-7)
다윗의 보좌 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들은
사무엘하에서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하신 말씀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표준새번역 삼하 7:12-14)
마리아의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세상의 영원하신 왕이십니다.

마리아는 아마도 이 모든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같은  질문밖에 하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렇습니다. 오늘날 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같은 질문만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남자와 동침을 하지 않은 처녀가 임신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것에 대하여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대답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지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에서 덮으신다는 뜻은 그림자로 가린다 라는 뜻으로 즉 보호한다라는 의미입니다.

편 91편에서 우리는 덮어준다는 의미의 말씀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의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고 너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주의 진실하심이 너를 지켜 주는 방패와 성벽이 될 것이다. (표준새번역 시 91:4)
이곳은 산부인과 의학 연구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우리의 믿음을 위한 곳입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하심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섭리에 대한 믿음을 위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로부터 거룩한 아이가 태어나는 일을 하십니다.
누가 거룩합니까?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시다. (표준새번역 사 6:3)
이것은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고 세상에 뛰어나고 어떤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분 그 분이 거룩합니다.
하나님은 이 처럼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 이름에 절대적인 거룩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신 그 분이 거룩하시며, 오직 거룩하신 한분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고 거룩한 것을 알게하신 것 그것이 거룩합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깨달은 그 분 그가 거룩하십니다.
마리아로부터 태어날 이 아이가 바로 그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구원자이십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드디어 이렇게 마리아는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가 되고 자신의 좋은 평판을 잃을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언자들과 같은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일에 자발적인 결심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누가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씀에서 구약의 말씀이 기다리던 그 분이 탄생할 아기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의미하는 이야기에 집중해 있는 매우 중요한 말씀인 오늘 성경본문을 저희들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간단히 되새겨 보십시다.

먼저 마리아에 대해서 입니다.
우리 개신교인들은 마리아에 대해 잊어버리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마리아를 카톨릭적인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의심의 여지없이 구원의 역사 속에 특별한 사명을 받았고 여인들 가운데 축복을 받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메시야, 구원자를 신비롭게 인류에게 안내한 분으로 기억해야됩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오늘 성경본문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의미있는 길을 인류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주기로 결정한 은혜롭고 사랑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어날 그 분은 교육과 이데올로기를 위한 일반적인 사람, 철학자, 정치가, 인류의 지도자 또는 혁명가가 아닙니다.
태어나신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시고 하나님의 권능을 대신하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된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세상의 구원자가 되시고 영원히 왕이 되십니다.

이천년 전에 태어나셨던 예수님 그리고 저희들이 두 주이상 그의 탄생을 기억하고 축하할  예수님, 그 분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고 사랑과 영원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과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저희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님 없이 우리들의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저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신 그 사랑을 여호와께 찬양돌립시다.
아멘

2002년 12월 1일

대강절 첫째주일이 시작되는 주일이다. 오늘 교회당엔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다른때 보다 많은 숫자가 예배를 드린것은 율리에의 유아세례때문이다. 태어날때 너무작게 태어나 모두들 염려하고 기도하던 아이가 이제 정상이 되었다. 교우들 모두가 이날을 축하하였다. 율리에의 가족들 친지들 외에 오늘 유달리 처음 보는 체코인들이 많았다. 일일이 인사도 그리고 확인을 하지 못하였다. 많은 분들이 떠나면서 오늘 설교를 한 이종실 목사에게 설교에 대해 나름대로 은혜받은 감사를 전하면서 잘 전달되지 않은 부분을 다시 질문하였다. 그날 슈토렉 목사의 사모님이 생일이라 온가족이 모여 나름대로 이종실 목사의 설교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오늘 성령세례와 관련해서 성령세례를 오순절 사건이 아닌 예수님의 고난과 결부시킨 부분이었다. 반면에 한국인들의 참석율은 저조하였다. 예배만으로 끝나지 않고 체코교우들과 한인교우들이 함께 교류가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매번 남는 부분이다. 이 예배를 선교적인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죄 용서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탄생

  • 연합 예배 (2002년 12월 01일)
  • 막 1:1-8
  • 설교자: 이종실

02/12/01 (대강절 첫번째 주일)
본문: 막 1:1-8
설교: 이 종 실 목사
제목:

<본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설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헬라어 에반겔리온을 체코어 성경은 에반겔리움 그리고 한국어 성경은 복음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체코어 에반겔리움는 헬라어 단어의 의미에서 그리 거리가 멀지않지만 한국어 번역은 원래의 뜻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을 복음이라고 하는 헬라어 에반겔리온은 행복한 소식 또는 기쁜소식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에반겔리온은 복된 소식 또는 기쁜 소식보다 더 깊은 뜻을 갖고있습니다.
에반겔리온은 중요한 전쟁에서 승리한 후 들려오는 낭보와 관련되어있습니다.
에반겔리온 단어는 적들을 패배시키고 승전가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위대한 황제와 장군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주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는 마가의 서두는 승리의 팡파르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이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기때문입니다.
어떻게 예수의 죽음이 승리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이 이 복음서를 읽을 때 마가가 우리에게 도전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이 승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주의 길을 평탄케함을 의미합니다.
마가는 이사야 40장에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사 40:3-4)

이사야 40장에 주의 길을 예비하는 곳은 광야입니다.
광야는 인간 소외의 상징입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서로 교통 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불안 갈등 분노 잔인 혼란 테러 전쟁은 사람이 서로 교통하는 길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광야의 주의 길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로 나아가고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입니다.
건설되고 있는 이 길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이 불안 갈등 분노 잔인 혼란 전쟁의 인간관계가 단절된 세상으로 들어가심을 의미합니다.
그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로 부터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렇게 거칠고 그렇게 황량하고 그렇게 무서운 광야를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통과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단지 오신 것 만이 아닙니다.
그는 목적과 함께 왔습니다.
죄의 용서가 그 목적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 소통하지 못함으로써 인간세상이 길 없는 광야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마다 신 같은 존재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 되려고 하고 자신이 스스로 법이 되려고 합니다.
죄는 인간을 자기 중심의 독재체재를 만들고 군림하게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인간이 자신의 법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법을 폐기시키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우상, 자신의 법을 추구하면서 결국 자신을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킵니다.

죄는 우리를 속여서 심지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한 말과 잘못된 행위를 하게합니다.
승리의 선포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죄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구약에 따르면 피의 대가 없이 용서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성서의 예언이 성취됨을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행위 안에서 발견합니다.

비록 분명하지 않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테마는 오늘 복음서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에 대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오순절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연상합니다.
성령이 임하자 사람들이 술에 취한듯 황홀경에 빠져 방언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이 언급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세례는 그의 고난과 죽음과 관련되어있습니다.

10장에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간청을 합니다.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받게될 세례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경험입니다.

승리의 선언인 에반겔리온은 이와 같은 성령 세례의 토대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서로 다가가도록 준비하기위해 건설되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신 같은 존재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으로 자신의 길들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죄 용서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이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것 이것보다 더 분명히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단을 체코형제 개혁(또는 복음) 교회라고 부릅니다.
체코어로 에반겔리츠까 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복음 중심의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초점이 맞추어진 의미로 이해되고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에반겔리츠까 즉 복음적인 이란 말이 신학 성향의 특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어 저는 한국교회에 우리 교회를 프로테스탄트 즉 개혁교회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개혁교회란 타락한 교회에서 에반겔리온(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교회를 에반겔리츠까 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에반겔리츠까 교회는 단지 기쁘고 복된 소식만을 전하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 관계가 단절된 삭막한 광야 같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기쁜 소식 – 에반겔리온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로서의 우리의 사명은 단지 좋은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긴 성도들의 승리의 소식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길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죄의 용서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며 그리고 마지막입니다.
아멘

12. 쁠라띠스 – 전 후스 개혁 시대의 과거가 깃든 공간

12. 쁠라띠스 – 전 후스 개혁 시대의 과거가 깃든 공간
(Platýz – areál s předhusitskou minulostí)

17세기 루돌프 2세의 궁정원이었던 플라텐슈타인의 플라타이스(Plateise z Platteneteinu)가 건물을 기초한 이후, 또한 나중에 앙피르 양식(프랑스 제정 양식:역자 주)과 고전주의 양식으로 재시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앞 건물 안 안뜰 공간 속에 본래의 르네상스 양식은 잘 보존되어있다. 그리고 몇몇 창고 안에는 오래 전의 구시가 성벽 기초석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있다. 그 당시 프라하 지형도에 의하면 중세 그 장소에 고딕식 집이 있었다. 그 집 주인들은 후스 개혁 시대의 멀지 않은 벽 속의 마르띤 교회와 또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양종 성찬 교회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체코 개혁의 과정들을 암시하는 또 다른 묻혀있던 기념물들을 상기시킬 수 있다. 첫번째 지역 여행에서 이미 여섯번째 순서이다. (2, 5, 7, 9, 10회)

15세기 초에 오래된 고딕식 집 주인은 구시가 시장(市長)이자 엿기름 만드는 이였던 스트지브로의 얀 브라다띠(Jan Bradatý ze Stříbra)였다. 이 사람은 1419년 후스주의자들 리스트에 등록한다. 반 후스개혁 전쟁 때에는 프라하의 성배 주의자들 편에서 싸운다. 1426년에는 우스띠 나드 라벰 전투에서 십자군에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 때에는 이 집에서 두 후스개혁파의 우두머리가 모여 주요한 회의를 연다. 온건파를 이끈 사람은 성 일리 교회의 프지브람의 얀(M. Jan z Příbramě)이고, 급진파 주동자는 영국 옥스포드 뿌리를 따라 ‘파인 잉글리쉬’라 불리우는 뻬뜨르 빠이네(M. Petr Payne) 였다. 리빠니 전투 패배 (30.5.1434) 이 후에는 벽 속의 마르띤 교회의 행정원까지에게도 신뢰를 얻었던 끄볘뜨니체의 홀레츠(Holec z Květnice)가 집을 소유한다. (교회 천정 아치 부분의 그림 비교) 쁠라따이스 기사는 1586년 집을 매입하여 르네상스 양식으로 집을 개축한다. (그의 이름으로부터 연유하여 나중에 사람들은 이 건물을 쁠라띠스라 부른다.)

쁠라띠스로 프라하 개혁 유적지 여행 첫 부분을 마감하도록 하자. 쁠라띠스 벽으로부터 나로드니 트지다(Národní třída)를 지나 10월 28일 거리(ulice 28. října)로 가서 바츨라프 광장의 무스텍 역으로 가자.

(첫 부분을 모두 돌아보는 데에는 25-35분 정도 소요된다.)

11. 벽 속의 성 마르띤 교회

11. 벽 속의 성 마르띤 교회 (Kostel sv.Martina ve zdi)

교회의 이 독특한 이름은 중세 교회 형태와는 다른 모습과 관련이 있다.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던 성 마르띤 채플은 예전의 성 마르띤 우예즈드 (움푹 파인 길이라는 뜻:역자주) 지역에 있었다. 바츨라프 1세 집권 시절인 1232년 구시가 성벽이 완공된 이후 채플의 남쪽 벽이 성벽에 포함된다. 1350년 고딕 양식으로의 재건축이 끝난 이후에도 신 교회는 계속 성벽의 일부로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후스개혁 시대에는 양종성찬 교회로 흡수된다. 이 곳에서 얀 후스(Ja Hus)는 사제 서품 이후 첫 설교를 하게 된다. 지역 교회의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베들레헴 채플의 완공 후 마르띤 교회는 베들레헴 채플과 \"동등한\" 지역 교회가 된다. 그래서 1414년 가을, 당시 신부였던 흐라데츠의 얀(Jan z Hradce)은 후스 이후 베들레헴 채플을 담당하던 야꼬우벡(Jakoubek)의 부름을 받아 일반 신도들에게도 성배가 주어지는 양종 성찬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이 성찬 방법(라틴어로 sub utraque parte – 양종 성찬법)은 야꼬우벡(Jakoubek)에게 1415년 봄 콘스탄츠 감옥에서 보낸 응답으로 후스가 승인 한 것이다. 베들레헴 설교관에서 나온 이 개혁적인 소식은 성찬식에서 성배를 모든 이가 함께 공유한다는 의견에 대한 큰 강조였다. \"평신도 성배\"는 일찌기 다른 교회에서도 이루어졌다. 후스의 순교 이후 바츨라프 4세는 프라하 사람들에게 프라하의 8개 다른 교회에서도 양종 성찬을 허락하도록 하였다.

벽 속의 마르띤 교회는 베들레헴 채플의 지역 교회로 반 개혁 초기시절, 즉 양종 성찬의 마지막 목사였던 야꿉 야꼬비데스(Jakub Jakobides)가 1621년 프라하를 추방 당했을 때까지 역할을 다하였다. 1678년 교회는 차츰 화재를 당하였지만, 약 100년 후 바로크 양식으로 조금씩 바뀔 즈음 재건될 수 있었다.

바로크 시대 교회 옆에 그의 조각으로 프라하를 장식하였던 조각가 가족인 브로꼬프家(rodina Brokoffů)의 사체가 안장되어있다. (교회의 북쪽 측면에는 F.M. 브로꼬프 초상이 부조되어있는 현판이 잘 보존되어있다.)

요제프 개혁시대인 1784년 마르띤 교회는 없어지고, 계속 가게 창고로 쓰여지다가 나중에는 야간 카페로도 쓰인다. 1904년 프라하 자치 당국은 낡은 교회 건물을 사들여 1905-6년까지 건축 공사를 하게 한다. 그 당시 내부 공간 안에 있던 성물 안치소가 발견 되어 원래의 로마네스크 양식대로 복원된다.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이 세워지고 프라하 시는 영어 예배를 위하여 감리교단에 이 교회를 대여한다. 나중에 교회는 저녁 학생 청년 예배를 위하여 체코 형제개혁교단에 위탁된다. 체코 형제개혁교단은 1975년 교회 공사에 관여하게 되는데, 몇 번의 공사를 더 거친 후에는 교회 내부에 오르간도 설치한다.

교회 재단 뒤 반원형으로 된 부분에 펼쳐진 성서와 함께 있는 성배상은 체코 개혁의 기본적인 상징이다. (상징은 이 책 표지에 나와있다.) 지붕 아치에 있는 두 문장은 중요한 두 후스파 시대의 가문의 문장을 의미한다: 블까노프家(Vlkanov, 반은 개, 반 늑대 – 오른편)와 끄볘뜨니쩨의 홀레츠家 (Holec z Květnice, 왼편의 백합 문장).

벽 속의 마르띤 교회 뒷편 연와조 건물안에 나로드니 트지다(Národní třída)로 통하는 복도가 두 개 나 있다. 이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20m정도 넓은 복도와 쁠라띠스 마당까지 올라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