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프라하의 가장 어린 종탑과 종

나눔터 제 14호 (2001/05/06 발간)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일을 마치고 저 멀리 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밀레의 “만종”은 유럽인들에게 교회의 종이 단지 교회당의 예배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울려 퍼지는 경건의 묵상의 기도임을 보여준다.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케하는 27미터 종탑꼭대기에서 “천사”라고 불리우는 크고 작은 두개의 종이 금번 부활주일에 처음 프라하 8구역의 꼬빌리시, 보흐니쩨, 자블리쩨 지역에 아름다운 교회종소리를 울렸다.

두개의 종은 각각 852mm의 336kg 과 655mm의 176kg의 무게로 3년전 우리 한국에도 소개된 종제작 마기스터 “마노우셱”에 의해 만들어지고 종탑은 꼬빌리시 교회 교인인 “야쿱 로스꼬베쯔”가 설계하였다. 야쿱 로스꼬베쯔는 금년 체코국립도서관 설계 경연대회에서 3등을 차지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설계가 이다. 종을 “천사”로 이름 짓고 성경이 쓰여진 언어의 순서대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체코어, 한국어로 종의 겉 표면 위에서 아래로 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종탑과 종은 프라하 시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것으로, 새 밀레니엄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제작된 것으로 그리고 프라하에서 최초의 현대적인 종탑으로 프라하 종탑 문화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4월 14일 토요일은 고난주간의 마지막 날로 “하얀 토요일”이란 교회달력의 이름에 어울리게 아침부터 흰 눈이 내렸다. 오전 9시 30분 “하얀 토요일” 고난주간의 예배를 겸하여 종 봉헌 예배가 드려졌다. 프라하 8 구청장, 경찰서 대표, 전국 디아코니아 회장, 독일-체코 평화기금 회장, 체코형제개혁교회 총회 부총회장, 프라하 8 카톨릭교회 신부, 프라하 8 지역의 각종 사회봉사 단체 관계자들 그리고 교우 해서 모두 100여명 남짓한 인원이 참석하였다. 종탑제작과 종 제작을 위해 헌금한 한국교회의 손님은 그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끝내 참석을 하지 않았다. 예배 후 체코 교우들이 정성껏 준비한 각종 케이크를 맛보며 참석자들은 이리 저리 종들을 두드려도 보고 살짝 손을 안으로 넣어 만져도 보고 주위에서 사진도 찍었다. 사람들 앞에 첫 선을 보이고 잠시 후 27미터 높은 꼭대기에 매달릴 종들은 진한 회색을 띈 고운 살결에 약간 붉은 기가 돌고있어 일시에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부끄러워 얼굴을 돌리며 붉은 홍조를 띈 소녀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저 멀리 저 높은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야곱의 사다리 교회”는 체코 개혁교단의 프라하 8지역 교회이다. 처음 세워진 곳은 현재 지하철 C선의 연장선이 들어올 사거리 교통이 좋은 꼬빌리시 광장이 있는 곳에 있었다. 공산당 정권 시절에 정부는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도로 건너편 숲이 시작하는 길옆으로 교회당을 이전시켰다. 이곳에서 교인들은 형을 속이고 하란으로 도망을 치다가 광야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 야곱을 기억하게 되었다. 야곱은 천사가 하늘로부터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주는  꿈을 꾸었다. 당시 꼬빌리시 교인들에게 이 성경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야기이자 야곱의 꿈은 자신들의 꿈이 되었다. 그 후 세워진 교회당을 “야곱의 사다리 옆에 세워진 교회당”(이것을 필자는 야곱의 사다리 교회로 해석하고 있다.) 이란 별명을 붙였다. 이제 교회당 옆에 세워진 높은 사다리 모습의 종탑은 안개 낀 날 밤에 보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로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 위에 매달릴 종을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는 “천사”로 그래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천사”라는 말의 체코어는 “posel(뽀셀)”이다. “뽀셀” 이란 단어의 의미는 “전하는 자”라는 뜻이다.

슈토렉 목사의 시작하는 말 그리고 손님들 소개에 이어 필자는 “체코 공화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자신의 소유의 집을 가질 수 없지만 꼬빌리시 교회의 한국인들은 야곱의 사다리 교회당이라는 영적인 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집에서 우리들은 체코 형제 자매들의 서로 다른 문화, 언어, 삶의 스타일, 전통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만남은 우리들에게 매일 그리스도인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의 깨달음과 더 넓은 관점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체코-한국 기독교인들의 협력의 상징인 두개의 종이 놓여있습니다. 두개의 종은 하나의 아름다운 종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두 개의 종소리가 함께 울리듯이 체코-한국 기독교인들이 함께 예수의 사랑을 이 지역사회에 전하기를 희망합니다.” 라는 요지의 짧은 연설을 하였고  마지막 축복기도를 끝으로 종 봉헌 예식을 마쳤다.

 

이날 우리들이 함께 드린 기도이다.

이 종소리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의 안전과 죄 용서와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소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우리 도시 사람들이 나그네, 집없는 이들, 나찌의 테러의 희생자들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 주옵소서.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받을 길이 없어 혼자 살아가는 독거 노인들에게 힘을 주시고 보흐니쩨 병원, 불로바 병원의 입원환자와 정신병자들을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들과 함께 살고 있는 타 민족들에게 복을 내려주시고 평화와 협력의 삶을 배울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선물됨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한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평화와 정의와 평안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희생적으로 봉사하며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국의 형제 자매들을 복 내려 주시옵소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삶의 좋은 조건의 창조와 정의로운 사회의 건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희생적으로 살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의 교회가 하나되어 진리의 말씀이 전파되게 하시며 주님의 사랑을 뒤따르게 하옵소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목사 이종실
                                          ●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 체코 형제개혁교단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 교회 목사 

[살며 생각하며] 광우병, 구제역 그리고 가축 학살

나눔터 제 13 호 (2001/04/08 발간), 여전도 회보에 기고

요즈음 유럽신문과 방송의 머릿기사는 도축 되고 불태워지는 가축들의 처참한 사진들을 곁들인 광우병, 구제역 이야기이다.
재산을 잃은 축산 농부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먹이 사슬로 인한 질병의 감염경로를 막기위해 식탁에서 사라져가는 쇠고기 이야기,
육식에서 채식으로 바뀌어가는 유럽인들의 식생활 이야기, 쇠고기 대신 닭고기 소비가 증대하자 성장 촉진 호르몬과 유전공학으로 재배된
곡식을 사료로 키운 닭고기의 안정성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인간을 위하는 이야기뿐 이다.

가축의 전염병을 막는 오직 유일한 방법은 가축 학살 밖에 없는 듯 전염된 가축들을 도살하고 불태우고 있다. 전염병이 더
번지지 않도록 가축을 대량, 집단으로 도축하는 것이 어쩌면 옳다. 그러나 가축을 집단으로 학살함으로 이런 유사한 재앙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인간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이어지는 냉전시대에 인간은 공기와 물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많은 숲들을 파괴하였으며 야생동물의 수백 종을 멸종 시켰다. 오늘날 인간은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병든 먹거리를 대량 학살하여 폐기처분하고 있다.그래도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다음은 어떤 재앙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방자한 인간, 애굽 왕 바로를
설득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길은 재앙밖에 없었던 것처럼 인간의 먹거리에 질병을 보내 인간을 설득하여 오늘날
깨어진 창조질서를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아닐까?

가축의 전염병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성찰 없이 가축부터 죽이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영원에 대한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단지
순간을 사는 인간풍조가 느껴진다. 내일과 10년 20년 그리고 죽음까지를 바라보는 인내심이 상실되었음을 느낀다. 오늘날 인간은
먹기를 탐하고 쾌락을 원한다. 수많은 디지털 위성 방송들, 언론 매체들, 인터넷 방송들 그리고 정보들이 인간이 먹고 즐기는 쾌락을
자극하고 그것을 가십으로 다루고 있다. 수치심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경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자신의 삶에 대해
존경을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들이다. 우리가 이것을 죄라고 하지 않는다면 달리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우리들의 선한 목자이듯이 우리들은 피조물의 목자이다. 이것이 성서가 이해하고 있는 인간 이해이다. 우리 피조물의
목자는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키도록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명을 받았다.(창세기 2장 15절)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안다.(요한복음10장 14절) 축산농부는 가축들을 어떻게 기를지 안다. 농부는 곡식을 심을 때와 거둘 때를 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의 재능과 능력을 안다. 그러나 우리 피조물의 목자들은 더 이상 목자가 아니라 피조물의 소비자가 되었다. 왜 우리 인간은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켜야 되는지 소비자는 질문 할 필요가 없다.

소비자는 삶을 사상과 실천에 대한 씨름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웃보다 더 좋은 지위, 더 좋은 자동차, 더 넓은 집, 더
멋진 여행을 차지하기 위한 경주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인간의 이기심이 가축을 원인 모를 질병과 고통과 학살로 내몰고 있음을
소비자는 인식하지 못한다.

[살며 생각하며] 2001년 2월 인구 조사

나눔터 제 12 호 (2001/03/04 발간)

    10년마다 시행되는 “인구조사” 문제로 찬반토론이 사회일각에서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이번 인구조사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어 “개인정보 보호법”에 저촉의 여지가 있기에 논쟁이 촉발이 되었다.
이러한 인구조사를 준비하고 있는 정부는 낡은 통계의 갱신과 올바른 국가정책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조처라고 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 조사에 의한 정보들이 상업적으로 남용될 가능성과 지나친 사생활의 간섭을 우려하고 있다.

    “체크 통계기관 (Cesky statisticky urad – CSU)” 이 수많은 조사요원을 동원하여 수집한
자료들은 6천4백만 꼬룬(한화 약 21억 7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개인 회사인 델탁스(Deltax)로 보내져 전산작업과 분석을
의뢰하였다. 문제점은 인구조사의 위탁 회사가 개인회사라는 점 그리고 위탁을 의뢰한 “체크통계기관”이 “국가안전기관”에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의뢰한 회사가 인구조사 사업에 타당한지 여부를 묻는 승인을 요청하지 않은 점이다. 위탁 받은 델탁스
회사의 입장에서는 법조문을 문자 그대로 따르면 어떠한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개인 정보 보호법”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국민의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체크의
법과 제도 사이의 이러한 모순들은 새로운 법이 제정될 때마다 이와 비슷한 혼선을 빚었다.  얼마 전 새로운 교통법이 제정되고,
외국인에 대한 비자 법이 변화 되었을 때 우리 모두들이 경험하고 있고 경험했던 혼란스럽던 일들을 체크 국민들도 늘 상 그렇게
겪으면서 사는 것 같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어디에서나 국민을 위한다는 “인구조사”가 오히려 민초들을 괴롭히고 불안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인구조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출애굽기 1장에서 애굽 왕 바로가 인구조사의 결과로
애굽인과 히브리인들을 비교할 수 있게 되어 결국 점점 번성하고 강해지는 히브리인들을 탄압하게 되었다. 사무엘하 24장은 다윗
왕의 인구조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을 도모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진노케하여 애매한 백성들이 재앙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이야기에 헤롯의 통치수단으로 호구조사가 있다. 해산을 코앞에 둔 마리아 같은 산모들에게 조차 예외가 없었을
만큼 강압적이고 권위적이었다. 국민의 사생활이 침해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는 뒷전으로 하고 인구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벌금 일만
꼬룬을 물어야 하는 제도에서 우리 한국인에게 그리 낯설지않는 사회곳곳에 스며있는 관료적인 사회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인구조사의 개인정보 남용의 염려로 일어난 비등한 여론에 대해 금번 인구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교회재산반환 협상과 교회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을 둘러싼 교회와 국가간의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교회들의 의도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 추호도 아님을 필자는 믿고싶다. 인구조사의 과정에서 나타난 사람과 사람간의 세워진 높은 불신의 장벽과  관료적인 사회의
그늘진 인권에 대해 성경에 의해 흘러나오는 한줄기의 목소리가 못내 아쉽다.

                                                                        목사 이종실

                                                          ●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 체코 형제개혁교단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 교회 목사

[살며 생각하며] 2000년 체코 성탄절기의 소고

나눔터 제 11 호 (2001년 01월 07일 발간)

    체코 성탄절기 풍경에 관해 글을 쓰면서 앞에 2000년을 의도적으로 붙여본다. 필자가 체코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93년도 11월 24일 부터이지만 그보다 한해 전인 1992년 겨울 성탄절인 12월 25일 직전에 프라하를 일시 방문한적이
있었다. 냉전시대에 직접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저 “철의 장막” 뒷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새벽에 도착한 프라하 중앙역은 중심지인 바츨라프 광장과 멀리 떨어져 있지않아 쉰 새벽 푸른 빛을 띈 잿빛 겨울 속의
중세도시를 만끽하였다. 바츨라프 광장, 무스텍(Mustek) 지하철 역 입구쪽에 간이 무대와 함께 하늘을 찌를듯한 키 큰 소나무
한그루를 세워놓고 거기에 커다란 종이 상자들을 별로 화려하지 않는 포장지로 싸서 군데군데 매달아 놓은 것이 프라하의 얼굴
바츨라프 광장의 성탄절 장식 모두였다.

    저 멀리 마주 보이게 서있는 바츨라프 말 동상과 균형을 잡고 서있는 성탄절 나무와 장식 그리고 주위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잔뜩 찌프린 안개 낀 잿빛 겨울날씨,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다가 갈수록 스믈스믈 뼈속이 시려오는 추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담요로 둘둘 말 듯 추위를 막기위해 투박스럽게 옷을 입고 거리를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무표정한 사람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없어도
간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들… 이처럼 꾸밈이 없는 거리의 풍경들로 자연스럽게 성탄절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에
그때 그 광경들은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아직 나의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체코 성탄절을 일곱 번 경험하면서 하나 특징적인 것은 점점 빨라지는 성탄절 분위기이다. 체코 성탄절 분위기는 주로
12월 25일 4주전부터 시작된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 두세 주 앞당겨 상점에서 성탄절 장식을 하더니 금년에는 한 주가 빨라진 한
달 전인 11월 초부터 백화점들이 앞다투며 성탄절 장식을 하였다. 성탄절 대목을 노리는 상술을 체코라고 피해갈 수 없다. 어쩌면
체코인들에겐 상술(商術)의 성탄절은 이전에 맛보지 못하던 새로운 성탄절 분위기일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변화의 성탄절
속에서 체코인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그 득실을 따져보게 된다.

    금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체코인들의 생활의 새로운 경향하나가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일년간 꼬기꼬기
모은 돈을 가족들을 위해 성탄 선물을 사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성탄절 이브때 몇번 체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가족간의 사랑과 인간미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성탄절 절기내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선물을 개별적으로 준비하여 집안에 놓여있는 성탄절 장식나무 밑에 갖다 놓는다. 그리고 성탄절 전날밤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수북이 쌓인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성탄 선물은 주로 선물을 받는 대상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입한다. 노트 몇 권, 책 몇
권, 장난감, 찻잔, 양초와 같은 값비싼 물건들이 아닐지라도 모든 가족들 개별 선물을 사려고 하면 한 사람에게 적은 부담은
아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최소한 휴가를 다녀온 여름이후부터는 성탄절 선물을 사기위해 각자 조금씩 조금씩 저축을 한다. 그런데
이제는 전체인구의 약 삼분의 일이 신용카드를 이용해서 성탄선물을 산다는 통계가 나왔다.

    의미와 상징으로 마음을 담았던 성탄절 선물도 이제는 퇴색되었다. 아이들이 제일 선호하는 성탄절 선물은 모바일
전화기라는 통계가 나왔다. 이동통신 전화상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양도 기능도 구형이된 전화기들을 이용한 값싼 상품들을 성탄절기를
앞두고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이처럼 성탄선물도 그 가격이나 종류가 예전같이 않다. 성탄절 선물은 신화와 꿈을 대신해서 인간의
욕구와 소비로 그 내용을 채워가고 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 계절이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가감없이 드러나게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부추기는 상술의 성탄절을 거부해 보자. 그리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야
할 주위의 정겨운 성탄절 행사들을 찾아보자.

목사 이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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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 체코 형제개혁교단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 교회 목사 

[살며 생각하며] 나눔터 한 돌을 맞이하며…

나눔터 제 10 호 (2000년 11월 11일 발행)

다른 편집진들의 작업 일정에 지장을 주지않기 위해 밀린 숙제 하듯 매월 나눔터 원고 쓰는 일이 벌써 한해가 되었다. 부족한 내용 이지만 함께 읽어준 독자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그 동안 지면을 통해 여러 가지 경험을 나누어주신 분들에게, 특별히 물심양면으로 격려와 지원을 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지난 한해 동안 나눔터에 대한 분에 넘치는 관심과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에 마음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 일은 몇몇 사람의 공명심에서, 그렇다고 체코의 한인사회를 위한다는 사명의식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또 필자가 목사이기에 전도의 열정에 넘쳐 한 사람의 교인 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하는 목회 사업(?)으로 시작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물 설고 낯선 타국살이를 자신의 실존에 접붙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해외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고국을 떠난 타국살이는 단지 고향을 떠난 타향살이의 설움의 감정뿐 아니라 삶의 존재방식에 대한 변화까지도 겪어야만 한다. 마치 한국과 같이 소수 민족의 작은 나라, 소수 민족의 독특한 언어와 문화와 역사가 있는 나라 체코는 대부분 교민들이 떠나는 날을 내다보며 살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체코는 대부분의 체코의 한국인들에게 목적지를 향하여 그냥 지나 가야만 되는 간이역과 같은 곳이다. 떠날 날이 기약된 체코의 타국살이를 자신의 실존에 접붙히는 방법은 결국 치열한 자기싸움밖에 없다. 이 싸움은 매 순간 삶의 방식에 대한 고뇌와 결단을 요구한다.
나눔터 발간으로 필자는 체코의 체류기간을 단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려는 인생의 동반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눔터는 이 인생의 동반자들의 조그마한 몸짓에 불과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내고 자신들의 생활비와 용돈을 쓰면서 간이역 같은 체코의 삶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보듬어 보려는 몸짓이다.

때론 허물과 실수도 있지만 나눔터로 삶을 나누려고 몸부림치는 모든 분들을 위해 이시간 사도의 기도로 기도를 올리고 싶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서 1장 9-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