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평화의 왕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사람들이 환영합니다. 그 중에는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열성적인 시골 사람들도 있었고, 예수님이 베다니 나사로를 살리셨단 소문을 듣고 나온 예루살렘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왕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마 대부분은 예수님이 그들의 욕망과 바람을 성취해주리라는 기대로 그분을 환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 아셨음에도, 그들의 환영과 찬양을 그대로 기뻐 받으십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눅19:40)

마찬가지로,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며, 그 모습 속에서 주님께 드리는 찬양을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그들의 욕망과 바람을 그대로 만족시켜 주신 것은 아니며,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란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뜻과 마음에로 점점 옮겨가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도 그 옛날 예수님께 실망하여 등돌렸던 사람들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성을 보시고 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눅19:42)

평화에 관한 일… 본인들의 바람과 욕망에만 사로잡혀 그들이 보지 못하고 있던 더 좋은 하나님의 계획… 다른 이에 대한 미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그들이 결코 소망할 수 없었던 온전한 평화…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평화의 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그분의 몸을 헐어 서로 원수되었던 사람들 사이에 화평의 길을 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 하반절에 보니, 사람들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예수님,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왜 그들은 ‘가장 높은 곳’을 말하였을까? 그래야 저 로마 녀석들을 위에서 밟을 수 있으니까… 그래야 저 콧대높은 예루살렘 녀석들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물론 예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가장 높은 곳에서 그분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까지 다 끌어안고, 다시 십자가 저 높은 곳으로 들려 올려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2:9-1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본문에 사람들처럼 내 삶의 현실 속에 우리 왕이 오시길 기다립니다. 그분이 오셔서 뭔가를 해주시길 기다립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어떤 왕을 기다리는가? 예수님은 겸손한 평화의 왕이시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기다리고 있는 분도 바로 그런 분입니까? 아니, 그런 모습으로 오시는 왕을 과연 우리는 알아보고 환영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베다니 마을에 한 어린 나귀를 생각합니다. 묶여 있던 그를 어느날 그분이 풀어 데려오라 하십니다. “주가 쓰시겠다” 그 한 마디에 그는 풀려나 새로운 주인 앞에 섭니다. 이어 그분이 그 어린 나귀를 타고 그분의 길을 가십니다. 아직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일이 없는 그는 두렵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옆에 어미 나귀가 동행합니다. 그렇게 어린 나귀는 마침내 목적지에 이릅니다. 알고 보니 그가 태웠던 그분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큰 일을 생각하다가 이처럼 작지만 위대한 일을 소홀히 여깁니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지금 이 순간의 겸손한 순종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어딘가에 매여 있는 우리들를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 겸손한 평화의 일에 우리가 작게나마 쓰임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어서 두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옆에는 우리의 걸음에 늘 동행하며 돕는 분이 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마침내 예수님 눈길 머문 그곳에 이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겸손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우리 주심을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