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진리: 말, 집, 아버지

<요한복음 8장 31-38절>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습니까?
‘자유’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까,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스스로 自’자에 ‘말미암을 由’자, “나의 모든 행동이 나 자신에게서 말미암는 상태”를 일컬어 보통 우리는 ‘자유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법과 질서를 잘 지키고 주위에 피해주지 않으려 늘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칩시다. 그런데 만약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주위의 강제에 의해 억지로 하는 일이거나, 사회에서의 자기 위신이 손상되는 게 두려워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면, 그건 ‘자유로운’ 삶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대로, 주위 사람이나 환경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상상해 봅시다. 그 사람 자신은 본인이 자유롭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으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아무 죄책감 없이 그런 삶을 지속하는 것을 두고 만약 자유로운 삶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러한 자유는 더이상 긍정적인 의미를 갖기 힘들 것입니다. 말하자면, ‘참 자유’는 그 결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속이나 억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자발적인 의지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freedom)’는 그 속에 ‘해방(liberation)’의 의미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나를 구속하거나 얽어매고 있던 부정적인 것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유롭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전엔 해내지 못했고 심지어 바라지도 못했던 긍정적인 일들을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의지로 행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자유롭게 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중에 이런 의미의 ‘자유’를 원치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문제는 ‘이 참 자유의 삶이 우리 인간에게 가능하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하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쉽지만은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이 ‘참 자유’의 삶으로의 이동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을 이 자유의 삶으로 초청하시는 내용입니다. 여기 32절에 우리가 많이 들어온 말씀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진리는 ‘참되신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신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언제나 참되시며 우리에게 참된 것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삶을 위한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자유를 위한 진리’란 무엇이며, 그것(그분)과 나는 어떤 관계 속에 있어야 하는가? 이것을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키워드는 ‘말’입니다. 본문 31-32절 다시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신 것인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바로 앞절 30절에 보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 합니다. 여기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이란 그들을 지칭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혹은, 이미 그 전에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그분을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본문의 뉘앙스로 보건대, 예수님은 그들이 그 상태 그대로 충분하다 생각하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의 열림, 그 ‘믿음’에 이어, 그들에게 더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보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