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본문: 사도행전 14장 8-17절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  지난 주, 체코공화국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로부터의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였습니다. 비록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체코 땅에 사는 자로서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독립’이라는 말은 국가 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우에도 쓰입니다. 어른이 되는 일은 ‘독립한 인간’이 됨을 뜻하며, 자기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을 독립, 혹은 자립한 사람으로 봅니다.  거기에는 경제적인 자립도 포함됩니다. 다만, 인간은 사회에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자립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함께 하며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이나 자립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각기 책임을 지는 개인이 모여야만 건전하게 더불어 사는 사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겠습니다.

2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사도 바울이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 건넨 말입니다. 이 사람은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사람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됩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이를 보고 놀랐습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바울을 ‘헤르메스’, 바나바를 ‘제우스’라, 그들의 신들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기적을 일으킨 두 사람을 신들로 보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제우스 신전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을 가지고 와서, 무리와 함께 두 사람에게 제사를 올리고자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를 알고 심하게 분하여 옷을 찢고는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 그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이르기를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똑같은 인간이니 결코 신으로 숭배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삼는 일은 참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의 죄가 됩니다. 우리는 오히려 여러분이 우상숭배를 떠나서 참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도록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큰 소리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3  이어서 둘은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숭배받으시기에 합당한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지음 받은 것을 신으로 숭배하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일이 되며 우상숭배의 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16-17절에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렇다고 자기를 증언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을 가게 방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자기들의 길’이란 각 민족이 행해 왔던 우상숭배라 볼 수 있겠습니다. 우상숭배의 관습은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의 우상을 만들기 쉬운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묵인하고 계시는 것만은 아니라 합니다. 오히려 늘 자기를 증언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 사실은 창조된 세계를 통해 베푸는 은혜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비, 계절의 결실, 필요한 음식을 허락하심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만족케 하시는데, 바로 그 일로 말미암아 자기를 계시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오는 은혜는 다 참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창조된 세계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각기 멋대로 우상을 만들고 숭배해 왔습니다. 출애굽 때에 금 송아지에게 제사드린 것도 그렇고, 오늘 말씀 속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신들로 간주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상숭배란, 자기들에게 편리한 신을 멋대로 만들어 섬기는 일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우상에 의존하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기도 한데, 말하자면 ‘영적인 의존증’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4  ‘의존증’에 대한 어떤 정의에 의하면, 의존증이란 본래 사람이 서로 의존하면서 살 때 얻을 수 있는 만족을 사람 사이에서 받지 못하여 대신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면서 거기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됨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 의존하는 것에 따라 의존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물질 의존’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 의존’입니다. 물질 의존에는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행위 의존에는 도박이나 온라인 게임, 인터넷 의존증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으면 의존증이라 부르게 됩니다. 병적인 의존증이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바람직하지 못한 일에 빠지는 상황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존증을 끊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할 필요가 있습니다. 셀프컨트롤, 곧 절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거기에는 인간으로서의 자립이 크게 연관됩니다. 즉, 자기 스스로 바로 설 수 있을 때, 어떤 것에 의존하는 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의존증이 유아적인 증상이라 한다면, 자립한 어른이란 의존관계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할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은 확실합니다. 문제는 내가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으며, 그 ‘무엇’은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상’과 다름없습니다.

5  우상숭배는 영적인 의존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 사람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그 우상이 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물질 의존이나 행위 의존도 우상숭배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만일 우리가 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상숭배에 빠질 염려도 없고, 의존증과도 무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존증의 행위 의존에는 컬트(cult)종교도 포함된다고 하는데, 사실 어떤 사이비종교에 세뇌되었다면, 의존증 증세와 비슷한 상태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참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결코 의존증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하나님께 의존함으로써 다른 모든 병적인 의존을 끊게 되어 참된 자립에 이르는 은혜를 가져다 줍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언급된 성령의 9가지 열매의 마지막 하나로 절제/셀프컨트롤이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에 의한 절제의 은사를 받고, 모든 우상에의 의존으로부터 자유케 되어, 하나님 안에서 자립하는 자로 서게 됩니다.

6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 발로 서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신체적인 면에서의 자립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어진 것입니다만, 영적인 자립을 말할 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시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참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이 세상에서 주님의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서라는 부르심이 되겠습니다. 그것은 참 하나님께만 의존하고,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서는 일이며, 영적인 의미에서의 자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자립입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참된 하나님을 향한 믿음 위에 자립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