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진리: 말, 집, 아버지

충격이지요… 그들의 아비는 마귀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그들이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실제로 속하여 영향받고 있는 세계가 그 마귀의 세계란 뜻입니다. 그 마귀의 세계에 속해 사는 사람들은 그 아비 마귀의 욕심대로 행하며 산다 하십니다. 이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 합니다. 그는 폭력의 아비입니다. 이 마귀는 그 속에 진리가 없기에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한다 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 합니다.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것을 풀어 얘기하면, 그의 Language는 거짓말이라는 뜻입니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의 언어, 그 나라의 Language가 있듯이, 그 마귀가 지배하는 세계의 언어는 ‘거짓말’이란 얘깁니다. 따라서, 그 마귀의 세계에 속해 사는 사람들끼리는 ‘거짓말’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반면 그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의 의사소통에는 심각한 장애가 초래됩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3)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요점은 분명합니다. 두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거짓과 폭력과 욕심이 지배하는 세계와, 의와 기쁨과 평화가 지배하는 세계. 우리는 이 두 세계 중 하나에 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둘러싼 그 세계 속에서, 그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그 세계의 특성과 영향력을 따라 형성되며 행동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우리의 우주를 바꿔주러 오셨습니다!
저 세계에서 이 세계로, 옛 질서에 속한 삶에서 새 질서에 속한 삶으로 우리를 해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살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주의할 것은, 마귀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이 두 세계 사이의 경계선은 어딘가에 눈에 보이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악하고 저 하늘의 것들은 모두 선하다 말하면 안 됩니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은 모두 악하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들은 모두 선하다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 세계를 어떻게 알아보고 거기 속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분의 영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 그 길 위에서 그 세계는 모습을 드러내고,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예수님 같은 모습으로 형성해갑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느 세계, 어느 우주에 속하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느 아버지의 권위 아래서 보고 들으며 사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거짓과 폭력의 아비 아래 사는 삶 속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이 거짓의 아비는 언제나 자유를 약속하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에 우릴 배반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거짓 아비를 따라 인간이 만든 좁은 세계 속에 자기를 가두고, 자기의 자유를 그 거짓 아비에게 스스로 헌납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며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집중하여 바라보고 오직 그분만을 예배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마귀의 나라는 점점 멸망해가는 나라, 결국 사라질 나라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승리하여 영광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낼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은 그 속에 거하는 우리들을 참 자유로 인도하시는 능력의 아버지십니다. 이처럼 자유의 삶을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랑스럽고 담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참된 아버지는 곧 온 우주의 주권자 우리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자유로운 삶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진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떤 상황에도, 진리 안에 거하려 애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십시오. 영원히 우리가 하나님의 집 아들, 딸임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길을 따라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세계 속에 거하십시오. 자유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