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보내신 곳에서

빌립보의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그의 겸손하고 열린 마음입니다. 어떻게 그는 그 성문 밖 강가에 모인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생각을 했을까? 그는 드로아에서 보았던 환상 속에 하나님을 가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에서의 첫 결신자는 반드시 마게도냐인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처럼 화려하고 부유한 여성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받는 일을 경험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은 끝내 공허하고 답답하고 추울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날 루디아의 마음밭이 그렇게 준비되어 있었을 줄… 그처럼 아무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여인이 그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었을 줄…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어떠합니까? 내가 가진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에, 혹은 미움이나 교만이나 아집 때문에… 나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일이 막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물건 파는 일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질의 이동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 사이의 영적인 교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마치 내 소중한 옥합을 깨는 일과 같습니다. 복음의 향기는 먼저 나를 깨뜨리지 않고는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연약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온전히 치유하셔서 복음이 우리 자신을 깨고 밖으로 퍼져나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앙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그 뒤에 신비하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느껴지는 이가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려 하는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깨뜨려 주위에 복음의 향기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반면, 어떤 신앙인의 경우는,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그 사람 자신부터가 하나님을 작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 말씀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자기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할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 내게는 없고 저 사람에게는 있는 그것이 뭔지 묻고 싶게 만들 것입니다. 전도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온유하고 신실한 대답이 아니겠습니까?

매년 7월 초에 이 나라 체코는 중요한 두 날을 기념합니다. 먼저 7월 5일은 씨릴과 메또데이 선교 기념일입니다. 9세기에 그리스 교회로부터 파송되어 슬라브 민족들 속에서 함께 살아가며, 그들에게 문자를 만들어주고 성경을 번역해주고 복음을 전해주었던 두 형제 선교사 씨릴과 메또데이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1세기 바울을 통해 유럽 대륙에 처음 복음이 전해진 후 약 800년이 더 흘러서야, 이 체코 땅에 그 두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가 전파된 셈입니다. 다음으로, 7월 6일은 얀 후스 순교 기념일이지요. 15세기 초 부패한 교회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이르길 소망하며 말씀을 전하고 개혁을 시도하다 공의회에 소환되어 화형 당한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 사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미 복음이 전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복음이 왜곡되고 독점된 현실 속에서 다시 그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제대로 들려지고 체험되게 하려는 선교적 노력이 그처럼 15-16세기 이 체코 땅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시 시간이 흘러 21세기 지금 이 곳의 영적인 현실은 더욱 암울합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곳으로 휴가를 떠나며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이 아직 그 마음에 와닿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아시아에서 온 이주민 그리스도인으로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나라 안에서 힘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하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을 바꾼다느니, 체코를 복음화한다느니, 그런 거창한 얘기 대신에, 앞서 바울이 했던 작지만 실제적이고 위대한 일들을 함께 해나가면 어떨까요? 정해진 시간에 늘 하던 대로 성실하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일, 그리고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위에서 성령을 좇아 말과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 크신 하나님을 내 좁은 틀 속에 가두지 않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며 대하고, 그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용납하고 사랑하고 섬기려 노력하는 일… 그렇게 내 뒤에 있는 신비하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무언가, 구원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를 겸손하고 신실하게 나타내며 사는 일…

우리가 하나님 보내신 이 곳에서 그렇게 작지만 위대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놀랍게 일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