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음’의 의미

<마가복음 5장 22절 ~ 6장 6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할 수 없음’의 순간을 만납니다. 마음 먹고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공부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왜 그걸 해야 하지, 앞으로 나아갈 의욕 자체를 상실한 젊은이에게 공부란 그저 ‘할 수 없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또 우리 모두는 건강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식습관도 조절하고, 좋은 약도 챙겨먹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분들이라고 다 병에 안 걸리고 오래 사는 건 아니더라구요.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이 어느 순간 병석에 누워 꼼짝하지 못하는 때, 기어이 더이상 낫거나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될 때, 우리 인생에 적어도 몇 번은 그럴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맞게 될 것이고, 그때를 정확히 예측하고 맞이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 순간은 우리 모두의 인생에 찾아올 ‘할 수 없음’의 순간이 되겠지요.

어제 옛 교우로부터 기도 부탁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이사야26:4)


이 말씀을 보내주고, 잠시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주께 받은 계명이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정의롭게 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삶을 잘 살아보려 의식적으로 더 노력하면 할수록, 어쩌면 우리는 ‘할 수 없음’의 순간에 더 빨리 이르게 될 지 모릅니다. 그 순간을 맞이하면, 보통 우리는 불행하다 느끼고, 이제 끝이라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