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8년 9월 9일)
- 마가복음 5장 22절 - 6장 6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할 수 없음’의 의미 - 마가복음 5장 22절 - 6장 6절.docx
그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 믿음 안에서 예수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그녀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고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할 수 없음’이 이 하나님의 ‘할 수 있음’에 자리를 내준 그 순간, 이제 예수님께서 그녀의 인생에 개입하십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은 그것이 무리들 사이에서의 의미없는 부딪힘이었을 거라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빠져나간 줄 아시고 한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우리 역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그 중에 의미없는 부딪힘과 의미있는 접촉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대수롭지 않게 가던 길을 가야할 때와, 바로 멈춰서야 할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십니다. 결국 그 여인은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가 뭘 잘못했다고 추궁하시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그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녀의 믿음에 강조점을 두십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구원이 그녀의 탁월한 행동의 결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그녀의 믿음도, 예수님을 통한 치유도, 모두 하나님에게서 발원한 것임을 알려 주시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셨고, 또한 친히 그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치유받는 일도 중요합니다. 당사자에게 그것은 절박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녀의 인생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버려진 인생이 아니라는 것, 그녀의 믿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녀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증거라는 것, 그녀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을 깨닫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사역은 그분 혼자 독자적으로 하신 사역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감지하시고, 그것은 어느 한 사람에게서 믿음이 발휘된 결과임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 사람 안에서 새 일을 시작하셨고, 이제 그 일이 예수님을 통해 진전되길 바라신다는 싸인으로 이해했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6장 5절에서, 매우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합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
다른 곳에서 그토록 많은 권능을 행하셨던 예수님이 그분의 고향 마을에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고,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잔뜩 기대했던 그 순간에, 예수님은 대단한 무언가를 행하지 않으셨고, 심지어 ‘할 수도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6절에,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즉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시지 않은 곳에서, 예수님은 그처럼 ‘할 수 없는’ 존재로 그냥 계셨던 것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회당에서 그분이 가르치실 때, 그 지혜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는 전부터 알던 그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의 동생들이 여기 우리와 함께 평범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는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일 수 없고, 구원하는 능력이 그의 속에서 나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생각이 이런 식으로 뻗어가며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인간에 관한 두 가지 함정… 하나는, 인간을 실재보다 너무 높여 보고, 그 능력의 한계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인간을 실재보다 너무 낮춰 보고, 그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은 답답해 죽을 것 같았을 것입니다. 제발 좀 뭐라도 하시지…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지 않으실 때, 억지로 뭔가를 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5:19)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5:30)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6:37)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