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5.3.18)

2015년
3월 18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에베소서 1장 11-18절)


묵상


얀 후스 사제는 자신의 “평화에 관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두 개의 평화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입니다…”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요14:27)…하나님의 평화는 덕행들에 뿌리내린 마음들의 고요함입니다…이 평화는 세 가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 자기 자신과의 평화 그리고 이웃과의 평화입니다. 이러한 모든 평화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의 평화, 즉 하나님과의 평화 없이 다른 모든 평화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두 평화에
도달하게 됩니다. 죄처럼 하나님과의 평화를 좌절시키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탄의 질서, 죄의 권세를 무력화시키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의 길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을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세상이 약속하는 거짓 평화를 거부하고 이 하나님의 평화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더럽고 냄새나는 사탄의 질서 안에 그대로 주저앉아 떨어지는 도토리 열매만 주워먹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 속으로
들어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그분만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평화의 실현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고 지켜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더이상 우리는 사탄의 질서 아래에서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하나님과의 평화에 기반하여 또한 우리는 나 자신과의 평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곧 육신을 영혼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더이상
우리는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되고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이웃과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평화를 따라 편견없이 서로
사랑하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평화적인 관계를 만들고 우리의 이웃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의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이제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을 따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고 그 평화를 세상에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참 평화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소서.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매순간 성령을 좇아 행하게 하소서.


편견없이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하셔서, 우리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주는 평화>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5.3.17)

2015년
3월 17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이사야 46장 22-25절)


묵상


1408년의 설교에서 얀 후스 사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마치 진흙탕의 돼지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 도토리 열매가 그들에게 떨어지면 게으르게 거기 누워서 그걸 받아먹는 돼지처럼.
도토리가 더이상 떨어지지 않는 순간에도 그들은 머리를 들어올려 참나무를 올려다볼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더럽고 냄새나는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내가 좋아하는 도토리 열매를 받아먹으며 그것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을 들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 열매나 그것을 약속하는 거짓된 우상들을 섬기지 않고, 그 진흙탕에서 걸어나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이미 그분의 공의로운 말씀이 나갔습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할 일은 그 신실하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후에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으며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더럽고 치욕스런 현실의 질서 속에서 그저 안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거짓된 질서를 빠져나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를 참 믿음, 참 구원의 삶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오직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삶의 구체적인 영역 속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하소서.


삶에 어려운 일을 만나 힘들어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그 고난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5.3.12)

2015년
3월 12일 목요일 오늘의 말씀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마태복음 8장
23-27절)


묵상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배에 올랐는데 그 배에 풍랑이 닥친다.


제자들 중 다수가 뱃사람이었는데 그들이 이러다 죽겠다 생각했을 정도면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신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인생 여정에도 이런 위기와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때 주님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계신 듯, 내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으신 듯 느껴질 때가 있다.


제자들은 다급히 예수님을 깨우며, 어서 일어나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이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다. 예수님만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이셨다.


다만 문제는 그들의 믿음이 너무 작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 강해 보이는 바람과 바다보다 더 능력있는 분이요,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그들은 온전히 믿지 못했다.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곧바로 모든 것이 평온을 되찾았다.


그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비로소 제자들의 눈엔 오직 한 분만이 보였다. 예수 그리스도!


이 일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일으키셨다. 보이는 것 너머에서 그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 주님을 믿음으로 보게 하셨다.


인생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보다 더 지혜로운 길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신 분임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장 내가 생각하는 방법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드리는 기도를 그 숨소리 하나까지 하나님이 다 들으시고 그분의 방법대로 일하시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신뢰하자!


믿음은 하나님이 내가 생각한대로 일하시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우리를 믿음의 삶으로 격려하시고 이끄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언제나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5.3.11)

2015년
3월 11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2-23절)


묵상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그분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우리를 다시 그 십자가 지는 삶으로 부르신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이 죄악된 세상에서 진정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욕망의 목소리와 싸워야 하고,


또한 그렇게 하나님께 보냄받은 경건한 자들을 향해 늘 적대적이었던 세상이 그에게 부과하는 부당한 고난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고난의 스케줄을 완전히 가져가버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승리하신 바로 그 고난의 길을 따라 우리 역시 믿음 가운데 “날마다” 담대히 걸어가라고 격려하시고 초청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면 모든 고난이 비껴가리라고 기대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분명 신앙의 길을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제자의 신앙은 그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진리와 함께 고난받는 삶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9:24)


무슨 뜻인가? 그분을 온전히 따르는 일을 위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목숨까지 걸라 하신다. 거기서 우리가 구원을 경험하리라 하신다.


나는 진정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가? 진리와 생명이 예수 안에 있고, 그의 길을 따르는 데 나의 구원이 있음을 믿는가?


어정쩡한 자리에 서서 그저 내 한 목숨 편하게 유지하며 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그가 걸어간 삶 속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이 있고, 그가 전파했던 하나님 나라 비전 속에 우리가 품어야 할 꿈이 있다!


그가 내어놓은 생명 속에 우리가 취해야 할 영생이 있고, 그가 누렸던 비밀한 행복 속에 우리가 구해야 할 참 행복이 있다!


어제는 실패했을지라도 오늘 다시 시작하자!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예수님이 우리 속에서 그분의 삶을 사시게 하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감사합니다


우리를 참 구원의 길로 부르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주님 말씀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잠자는 우리의 영혼을 깨우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생명의 능력이 우리를 주장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다시 복음 앞에>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5.3.10)

2015년 3월 10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는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장
1-13절)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을 겉모습에 따라 판단하고 대하는 일이 많지만, 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막10:25)


하나님은 오히려 가난한 자들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므로, 거기서는 세상적인 가치관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동등하고 존귀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대하실 지를 늘 염두에 두고 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섬기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차별하거나 쉽게 판단하지 말고, 언제나 귀히 여기며 섬기길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하나님의 최고 계명을 실천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순간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뜻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처럼, 우리도 긍휼의 마음으로 내 앞에 있는 그 한 사람을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맑히시고 바른 삶의 길로 이끄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대하는 우리 각자의 마음과 태도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사람을 겉모습을 따라 차별하지 않게 하소서.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그 사랑의 눈빛과 마음을 저희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내 형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았을 때 그것을 정죄하기보다 긍휼히 여기며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마음이 정처없이 떠돌며 방황하는 지체들이 영혼의 닻이 되시는 하나님께 다시 마음을 열고 돌아오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각자 해야 할 일 지혜롭게 감당하며 매순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약한 나로 강하게>


https://www.youtube.com/watch?v=qylyU0xkru8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