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7)

 


2014년 1월 27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시편 24편 3-6절)

 

묵상


 

주일에 우리는 예배당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모두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 예배의 자리에 마치 극장에서 공연 관람하듯 앉아 있을 때가 있는데,

이 경우 은연중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려 준다”는 메시지를 흘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의 본문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의 관점에서 예배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의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누가 예배당에 가서 예배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즉 이 시편의 맥락 속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려 준다”는 건 말도 안 되고,

“하나님께서 나의 예배를 받아 주시는” 것이며,

그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자격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절은 그 자격이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새번역)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그러한 마음과 행동이야말로 그들이 정말 하나님을 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오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배당으로 나아온 사람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느냐 못 드리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시편 본문이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는 마음으로 깨끗하고 참되게 살고자 노력한 사람이

주일에 예배당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가능성이 높다!

 

히브리 전통 속에서 예배는 하나님을 최대로 높이고 자신은 최대로 낮추는 마음으로 넙죽 엎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주일에 예배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 우리 생활 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주일의 예배를 하나님 받으실 영과 진리의 예배로 드릴 수 있을 때, 우리는 평일의 삶의 예배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평일의 삶을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는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친밀함과 간절함 속에서, 주일의 예배도 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해야할 일을 마치고 편히 쉴 수 있는 주일 저녁 시간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주일에 고기 써는 수고를 감당해주신 분들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교우들과 더불어 나누는 격려와 웃음, 신뢰와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우리 꼬빌리시 교우들의 한 주간의 삶에 주께서 늘 동행하여 주옵소서.

 

우리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임을 잊지 않고, 매순간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며 살게 하소서.

 

금주에 중요한 시험이나 일정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평안과 담대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내일 프라하로 들어오는 암미유럽팀의 여정을 지켜주시고, 앞으로 일정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일상사역을 위한 월요일 정오 1분 기도 (샘플)

 

“사랑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당신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당신의 사랑과 선하심과 다스리심을 의지하고 인정합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고 믿음을 붙들어 주소서. 모든 날을 만드시고 인생의 모든 날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만 당신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에 충실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보내시는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고 당신의 나라를 구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월요일입니다. 억지로 살아내는 시간이 아니라, 지루하고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일만 처리하는 삶이 아니라 당신의 나라 안에서 감사하며 열매맺는 매일이 되게 하여 주소서. 모든 시간의 주인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모든 다양한 피조물들이 서로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들을 우리 인간들이 소중히 돌보며 사는 모습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 세상을 위한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나만 생각하지 않고 배려와 돌봄을 실천하는 신실한 청지기로 살아갑시다!
* 설교전문 첨부.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5)

 


2014년 1월 25일 오늘의 말씀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장 26b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편 4-5절) 

 

묵상


 

저 자신도 사람이지만, 때로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너무 실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지능이 뛰어나다 하지만, 때로는 그래서 더 큰 일이다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말은 듣기에 따라선 매우 우려스런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얘기입니다.

지식도 힘도 바른 방향으로 쓰여질 때 긍정적 의미를 띨 수 있는 것이지, 틀린 방향으로 쓰여질 때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다른 생물들을 다스릴 권한을 주십니다.

시편 기자가 말하듯,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

사람에게 그럴 만한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람 역시 하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실 만한 어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온 세상을 향한 그분의 계획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그 창조된 목적대로 살게 하려는 계획 말입니다.

 

사람이 진정 사람다울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관심이 오직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온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며, 그분 눈에는 모든 피조물이 다 귀합니다.

사람이 중요한 것은, 그가 모든 피조물의 well-being을 위한 하나님의 전략을 성공시킬 key-player이기 때문입니다.

끝임없이 당신을 실망시키는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늘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너무 많이 훼손시켰습니다.

오늘날 지구는 너무 아파하고 있고, 기후변화와 생태계파괴 등 이상징후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피조세계의 고통은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 인간의 well-being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게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은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을 

나 자신 만큼이나 귀히 여기고 돌보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늘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감사합니다.

 

늘 하나님을 실망시키곤 하는 나를 변함없이 생각해주시고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내게 더불어 살아갈 사람들과 자연을 허락하시고 그들을 사랑하고픈 마음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내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 돌보는 삶이 더 깊어져가게 하소서.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고 돌보는 삶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주일에 우리 공동체에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준비하게 하소서.

 

암미유럽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 마음 속에 주의 은혜와 평강을 허락해 주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4)

 








2014년 1월 24일 오늘의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장 26a절)

 

그(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로새서 1장 15절) 

 

 

묵상


 

태초에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로,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둘째로, (나타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사람 속에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우리 안에 이 하나님의 형상이 많이 퇴색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남편에게서, 혹은 아내에게서 하나님과 닮은 모습을 자주 보십니까?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서 하나님 닮은 모습을 경험하며 안식과 평안을 느끼십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게 되면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주게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악한 사람도 많지만, 하나님 닮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도 적잖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런 사람에게서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고나면 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가 더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비록 퇴색했다해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안에 얼마나 놀라운 잠재력이 있는지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용서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 안에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죄악으로 일그러진 형상을 드러내며 나를 아프게 했을 때,

그것을 그대로 다른 이에게 반사하지 않고, 예수님의 모습을 반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나기를 소망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별이가 매일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오늘 하루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게 하소서.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들을 치유하시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오늘 예정된 우리 교회 청소년 및 청년 교육 프로그램들에 함께해 주옵소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우리 교우들의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늘 지켜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3)

 








2014년 1월 23일 오늘의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장 26a절)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태복음 22장 17-21절) 

  

묵상


 


옛날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 땅에서 통용되던 동전에는 로마 황제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골탕먹이려고 질문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은 민족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고, 아니라고 하면 로마제국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될 판입니다.

예수님은 동전 하나를 가져와보라 하시고 그들에게 되물으십니다.

“이 동전에 새겨진 형상이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대답하길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여기서 ‘가이사의 것’이란 가이사가 부과하는 세금을 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헌금(물)을 의미하는 걸까요?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화폐는 가이사의 것이고, 따라서 가이사가 그것을 거둘 권한을 갖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두실 권한을 갖는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요지 아니겠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고귀하게 창조하셨지만, 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타락으로 퇴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인간 안에서 희미해져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채로 창조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다!

아무리 그 형상이 퇴색되어 있다 해도, 그 어떤 사람도 쉽게 버려지거나 다른 곳에 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를 거두실 권한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그를 찾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볼 때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6-17)

 

아무리 세상에서 쓰레기처럼 하찮게 취급되는 사람, 심지어 ‘인간말종’이라 평가되는 비열한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한 나의 시각과 마음을 온전히 바꿔주시기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사람을 볼 때마다 그들 안에 있는 본래의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님을 통해 회복되게 해달라고,

또한 바로 그 일을 위해 부족하지만 나를 사용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계속해서 회복되어가고 있는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심으로 인해, 우리를 향한 무한한 소망의 원천이 되심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사람을 향한 나의 시각과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꿔 주소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일을 삶의 매순간에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가게 하소서.

 

이번 주일예배 때 꼬빌리시 교우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하여 전하게 하소서.

 

2월 5일 체코-한국의 날을 준비하는 체코와 한국 청년들 마음 안에 열정과 기대감을 허락하소서.

  

알려드립니다

 

목요일인 오늘 오전 11-12시에 여러분의 자율기도를 위해 예배당을 개방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