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직장여성 가정여성

나눔터 제 9 호 (2000년 09월 03일 발행)

1997년에 교단선교협정 관계로 필자가 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장 및 그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총회장 부인인 즈덴까 스메따노바가 “체코사회의 여성 문제”란 주제로 호남신학대학교 여성지도자반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강의는 학문적인 논리 대신에 공산독재시대와 자유주의 시대를 걸쳐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체코사회의 여성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이야기 식으로 풀어 청강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어난 그녀는 남녀가 평등하고 독립적인 “사회주의 여성관”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탁아소에서 아이를 맡아 길러주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사일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남성들과 평등하게 발휘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는 희망을 소녀시절에 꿈꾸었고 그리고 그 시대가 도래할 것을 믿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직업을 갖고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돈도 벌고 여가를 즐기며 만족한 생활을 하였으나 사회주의 제도는 결혼생활에서 가사의 일들로부터 그녀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지 못하였다.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거리가 멀어 차라리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편하였고 탁아소 제도 역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만큼 도움이 되지 못하여 당시 결혼 여성은 가사일과 직장일 이중고에 시달렸다.”고 그녀는 술회하였다.

“4년간의 육아 휴가 법”이라는 제도적인 장치가 1989년 민주혁명 직후 제정된 것을 미루어 볼 때 사회주의 아래에서의 결혼 여성들의 고충이 컸음을 우리들은 간접적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혁명이후 직장 여성에 대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영 회사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개인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회사들은 언어능력과 컴퓨터 사용 능력이 있는 젊은 여성을 선호하게 되고 반면에 경력이 있는 중년, 장년층 여성들은 직장에서 점점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89년 민주혁명 이후 맞게 된 이러한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최근 정부자료가 공개가 되었다. 1988년에 대학졸업여성은 남성 봉급의 평균 81.4%를 받았으나 10년 후인 1999년에 64.9%로 떨어졌다.

우리 나라와 달리 체코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의 직장문제는 일부 여성의 문제가 아닌 전체사회문제의 긴급한 현안일 수밖에 없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정부의 법 제정 추진이나 법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의들 모두는 직장 내 여성차별을 본질적으로 해결하자는 의견에는 한치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가정과 여성’이라는 가부장적인 인식이 일반적인 우리사회에서는 체코 정부가 추진하는 “직장에서의 남녀평등의 법”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직장 내에서 여성차별의 문제를 제거하려는 체코정부와 사회의 노력을 보면서 체코선교를 위해 7년 전 떠나온 정들었던 총회에서 함께 근무하던 여성직장동료들이 차(茶)심부름과 설거지 사역(?)의 부당함을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하소연하던 그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목사 이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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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목사
● 체코 형제개혁교단 꼬빌리시교회 한인 공동체 목사
 

[살며 생각하며] 체코인들의 여름 휴가

나눔터 제 8 호 (2000년 7월 6일 발행)

7월, 드디어(?) 휴가의 계절이 돌아왔다.

체코 땅을 밟은 뒤 처음 맞이한 7, 8월은 너무나도 생소했었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면 있을 여름성경학교, 중고등부 수련회, 청년부 수련회와 같은 여름행사를 준비하느라 온 교우들이 부산을 떠는 한국교회와는 대조적인 체코 교회의 7월은 내게 불안과 죄스러운 마음을 안겨주었다. 7월에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지내도 되는 것일까? 스스로 죄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체코 목회자들은 경력에 따라 받게 되는 3주에서 5주 정도의 연가를 어김없이, 하루의 착오도 없이 챙긴다. 그래도 교회가 문제가 없을까? 오히려 바라보는 내가 불안하였다. 체코 목회자들은 3-5주의 대부분 휴가를 7,8월에 사용한다. 목회자들의 휴가가 집중되는 여름에 설교자를 구하기 쉬울 리 만무하다. 그래서 장로님들 몇 분이 돌아가면서 목사님 대신 설교를 맡는다. 교단 총회에서 목회자 없는 교회를 위해 설교를 포함한 예배 인도를 안내하는 예배 지침서가 매년 발간된다. 장로님들은 그 지침서에 준해서 예배를 준비하면 된다. 그래서 장로님들의 개성(?)있는 설교로 왈가왈부하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예배에 은혜가 없다느니, 형식적인 예배라는 등의 교인들의 타박도 들을 수 없다. 하기야 교인들도 7, 8월에 2-3주 휴가를 떠나거나, 아니면 신선한 햇볕을 더 따끈하게 맞이하기 위해 여름철에는 주말마다 가족들과 시골 별장에 나가 시간을 보낸다. 이 무렵 주일날 교인들이라 해야 여기 저기 다니시기 불편하신 노인들이 전부이다. 7, 8월 여름철에 교회문이 닫히지 않고 그래도 매년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7, 8월 여름 휴가철의 교회의 풍경은 사회 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화가 우선이냐? 복음이 우선이냐? 열정에 찬 질문은, 휴식을 모르고 그래서 왜곡된 휴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삶을 먼저 생각해본 후에 던지기로 하자.

체코인들의 평균 연간 휴가 일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70 년대에 16.2일, 80 년대에 17.1일, 90 년대에 17.7일 그리고 새로운 노동법에 따르면 2001년부터 평균 25일의 연간 휴가를 즐기게 된다. 휴가 일수는 서유럽 국가들의 수준에 육박해 가지만, 89년 이후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면서 예전처럼 휴가 날짜를 임의대로 정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체코인들 대부분은 방학 기간에 자녀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길 원하고 있으나, 고용자들은 피고용인들의 휴가가 7, 8월에 집중되어 회사 또는 공장 운영에 차질을 빚는 것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체코 사회의 하나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온 가족이 함께 보내는 7, 8월 휴가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체코인들의 여름 휴가는 진정 재충전(recreation)의 기간이다. 천식과 알레르기를 예방하기 위해 바다를 찾기도 하고, 식견을 넓히는 해외여행을 한다. 아니면 시골 별장과 주말 농장에서 그 동안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서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식물과 꽃을 가꾸며, 가까운 연못에서 멱을 감고, 자전거를 타거나 숲 속을 거닌다. 자연 속에서 여유를 찾는 체코인들의 휴가와 휴식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며, 이제는 체코 사회의 큰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쯤에서 한번 우리의 휴가 문화를 생각해 보자. 휴식 없이 일하는 부지런함만을 미덕이라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잃어 버린 것은 무엇일까?

며칠 전 한국에서 항공 우편으로 배달된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이만재 카피라이터의 ‘풍경’이란 글을 보았다. ‘먹고 마시고 놀자’는 간판으로 뒤덮인 산하(山河)의 풍경을 보면서, 소비적, 낭비적, 향락적으로 변질되고 왜곡된 우리의 휴식 문화에 대해 그는 예언자(預言者)적인 일성(一聲)을 발(發)하였다.

“그렇게 많이들 먹고, 그렇게 많이들 마시고, 그렇게 많이들 자빠져 놀아도 그 삶이 내내 온전할까?”

목사 이종실(체코형제개혁교단 총회 목사 겸 꼬빌리시 교회 한인 공동체 목사)
 

[살며 생각하며] 루치에 빌라(Lucie Bila)의 이혼

나눔터 제 7 호 (2000년 6월 4일 발행)
[살며 생각하며] 루치에 빌라(Lucie Bila)의 이혼과 창세기(創世記)의 남자와 여자

사민당(ODS) 당수이자 이전 수상이었던 클라우스의 친구로 그리고 체코의 유명한 가수로 이름이 난 루찌에 빌라의 이혼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세간(世間)의 관심은 이혼 후 그녀의 삶이 아니라 그녀가 살고 있는 예바니(Jevany)에 있는 호화빌라의 소유문제이다.

그녀의 호화빌라 소유 문제에 쏠린 세간의 관심은 단지 “선데이 서울” 수준이 아니다. 1989년 체코민주혁명 이후 10년 사이에 나타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가 “이혼 후 부부재산 분배 문제”이다. 다시 말해 루찌에 빌라의 호화빌라에 쏠린 관심은 1989년 이후 대체로 사회의 부유한 사업가 계층들이 이혼으로 인한 부부 재산 분배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이혼 부부의 재산 분배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8년 가족법을 손질하여 결혼할 때 ‘재산분배협정’에 대해 법으로 규정하였다. 법문의 자의(字意)에 따르면 부부 각각은 생활 가구를 비롯한 모든 재산을 절반씩 나누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법 적용의 실제는 불가능하고 대체로 부부가 이혼할 때 주로 자녀양육의 문제와 결부하여 재산분배를 협의해서 결정을 한다. 그러나 이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몇 년씩 논쟁이 지속되기도 한다. 부동산뿐 아니라 자동차, 가전제품, 가구의 분배문제는 실제로 더욱 어렵다. 실례로 심지어 침대 하나를 놓고 심각하게 논쟁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오랫동안 이혼 논쟁이 지속되면 동산(動産) 배분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가족법의 실제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불행한 부부관계가 발생할 경우 다른 가족들을 보호하고, 특히 이혼 전에 의도적으로 재산을 몰래 빼돌리는 경우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족상담 전문가들은 결혼할 때 재산분배협정을 권면하고 있다.

법 제정으로 부부문제를 대응하는 방식은 마치 환부를 도려내어 고통을 없애려는 서양의술의 사공방식에 준 한다. 결혼할 때 재산분배협정을 하는 법은 체코의 전통도 아니고 인류 문명의 전통도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회현상을 “돈이 삶의 가치에 첫 번째 자리에 차지한 결과”라고 설명해 버리기는 삭막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창세기가 묘사하는 남자와 여자는 둘이면서도 하나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다. 둘은 분명히 구별되면서도 남자와 여자의 근원에는 구분이 없다. 이것을 창세기는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남자 없는 여자, 여자 없는 남자를 언급할 수 없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고,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존재할 수 없게 빛과 어둠은 구별이 되지만, 빛 없이 어둠이 어둠 없이 빛 또한 존재할 수 없다. 빛과 어둠은 둥근 지구의 절반씩 번갈아 교대로 차지하며 공존하고 있듯이 창세기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그렇다. 충돌과 대립과 정복이 아닌 공존과 조화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동족상잔의 잔인한 전쟁의 기억으로 얼룩진 우리들의 6월에 아이러니하게 남북정상들의 만남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다. 공존과 조화로 ‘한 몸’을 이루는 창세기의 남자와 여자처럼, 대립과 경쟁과 정복이 아니라 상호 보충과 조화의 길을 열어 가는 통일운동이 우리들의 가슴에 우리들의 삶에 뿌리 내리길 간절히 기도한다. 

[살며 생각하며] 체코 히틀러, 서울 신촌 히틀러

나눔터 제 6 호 (2000년 5월 7일 발행)

    최근 체코 국민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히틀러와 관련된 몇 가지 소식이다. 그 중 하나가 전쟁보상금 문제이다. 냉전종식 후 체코를 포함한 동유럽국가들이 독일과 전쟁보상문제 중 하나에 합의하였다.

    전쟁포로들의 강제노역에 대한 배상금의 합의이다. 1인당 보상금 1,500마르크로 계산해서 체코에 지불될 배상금은 4억 2천 3백만 마르크라고 한다. 이 보상금을 둘러싸고 일부에서는 물의까지 빚어지고 있고 인간의 고통을 보상금으로 해결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다른 하나는 체코어판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 출판에 대한 문제이다. 초판 6천권이 서점가에 배포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이 팔렸고 다시 이판 인쇄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이 책에 대한 판매 금지와 찬성에 대한 진지하고 뜨거운 논쟁이 신문지상과 방송을 통해 계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하나의 주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마지막 하나는 “존재의 무거움”을 느끼게 하는 히틀러와 관련된 체코 국내 소식을 비집고 대한민국 서울 신촌의 한 레스토랑이 나찌의 상징물들로 내부를 장식했다는 보도가 경박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이 보도가 전해지자마자 항의성(?)을 담은 한국 뉴스 전달자들(체코 친구들)이 어김없이 찾아오거나 안부를 묻는 핑계로 전화를 해서 정중히 뉴스를 내게 전해 주었다.

    가십 기사와도 같은 하나의 소식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산 자여 따르라!”는 죽은 자들의 외침이 더욱 생생해지는 이 5월에 우리들의 자신의 역사에 대해 진지하지 못한 자세가 결국 남의 역사까지도 함부로 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성을 해 본 것이다.

    5.18 광주항쟁을 비롯해서 가까운 우리의 현대사를 둘러볼 때 일제의 식민지 통치, 미군정 3년, 신탁논쟁, 남북분단, 한국전쟁, 4.19 혁명에 이르기까지 어느 역사를 우리는 국민의 공감대 속에서 히틀러의 역사를 끝까지 규명하고 진실을 세우는 유대인들처럼 노력을 하였는가?

    히틀러가 죽은 지 55년이 되었지만 히틀러로 대변되는 파시즘과 대량학살이 세속사회뿐 아니라 유럽 기독교회에 던진 정신적인 충격은 아직도 지대하다. 세속사회는 파시즘에 의한 전쟁과 대량학살의 비극을 히틀러 개인이 아니라 인류의 문명화 과정이 내포한 허구성에까지 그 원인을 추적하므로써 히틀러의 재앙을 영원히 인류역사에서 추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회 역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졌고 심지어 체코 신학자 요셉 흐로마드까(J. L. Hromadka 1889 -1969)는 파시즘과 대량학살을 탄생시킨 서구 기독교 문명의 토대인 서구기독교의 반기독교성과 그 원인을 분석하고 올바른 기독교 문명이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에서 건설될 수 있다고 믿고 그리고 실천하였다.

    히틀러로 인한 재앙의 진실을 끝까지 밝히려는 유대인들의 집념과 유럽  지성인들의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의 탐구와 대안을 위한 끈질긴 노력에 대해 우리들도 평가와 비판으로 동참을 해야지, 어떠한 이유로도 그것을 희화화(戱畵化) 하거나 폄하(貶下)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히틀러의 문제는 곧 인류 역사와 문명을 바로 세우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사 이종실

[살며 생각하며] 마사릭(T.G Masaryk) 신드롬

나눔터 제 5 호 (2000년 4월 2일 발행)
[살며 생각하며] 마사릭(Thomas Garrigu Masaryk) 신드롬

마사릭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지난 3월 8일 전후로 체코 전국이 마사릭 이야기로 가득찼다. 마사릭은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1차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매우 실천적이고 폭넓은 학문을 겸비한 정치가이자 철학자이다. 마사릭과 그의 가족 묘지가 있는 란스끼 자멕(Lansky zamek)에서 그의 150주년 행사가 열렸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이 자멕을 보기 위해 행사가 시작되는 9시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이미 군중들이 운집하였다. 이날 행사를 기해 란스끼 자멕에 마사릭의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그 첫 손님이 하벨 대통령이었다. 10월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이 박물관과 자멕은 아마 앞으로 프라하의 명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 같다.

3월 8일 프라하뿐 아니라 부르노(Brno), 프제로프(Prerov), 미에르닉(Melnik) 그리고 쁘로스띠에요프(Prostejov)등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곳곳에 마사릭의 동상과 흉상이 세워졌다. 뿐만 아니라 마사릭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에 대한 연구 발표,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사릭 탄생 150주년 기념일을 기해 정치가들은 저마다 마사릭의 유산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민당(KDU-CSL)과 시민당(ODS)은 마사릭을 비판하고 있으나 기민당은 마사릭의 반카톨릭주의로 마사릭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고, 마사릭의 인간과 고립된 활동에 대해 시민당의 비판은 하벨을 비판하기 위한 마사릭 비판으로 들린다. 과거에 마사릭에 대한 역사를 교과서에서 지워버린 적이 있는 공산당(KSCM)이 사민당(CSSD)과 마사릭 후예 경합이 붙는가 하면 자유연합(US)은 “나의 신앙고백은 마사릭의 신앙고백”이라고 주장할 만큼 마사릭을 존경하는 사람을 자신의 당수로 선출하였다. 또 하벨은 자주 비정당 인물이었던 마사릭과 비교되고 있다. 정치가들은 의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사릭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그의 이야기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인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체코 정치인들의 마사릭 신드롬은 자신들의 정치철학의 부재를 감추어 보려는 안간힘으로 이 이방인에게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제 몇 해를 이땅에서 살면서 아직도 이 사회의 속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필자가 결코 남의 집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들을 등에 업으려는 우리 정치가들과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비록 아전인수일지라도 전직 대통령의 철학과 정치사상을 인용하는 체코 정치가들이 좀더 순진하고 애교가 있어 보인다. 그 또한 마사릭 덕분이라면 체코 정치인들은 참으로 복있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