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되어야 할 성도의 교제

  • 한인 예배 (2011년 07월 31일)
  • 딤후 1장 3-5절
  • 설교자: 이종실

제목: 회복되어야 할 성도의 교제
본문: 디모데후서 1장 3-5절

3절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 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절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1
디모데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 서두 3절에 <너를 생각하여> 4절에 <네 눈물을 생각하여> 5절에 <거짓없는 믿음을 생각하여> 라며 디모데를 애뜻하게 그리워하는 바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편지가 보여주는 바울과 디모데 두 분의 모습 속에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형제 자매로 살아가는 오늘 현대교회들이 회복되야할 성도의 교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시고 하나님 백성들로 삼으시고 교회로 불러모아 주셨습니다.
함께 모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서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며 닮아가면서 영적인 성장을 하게됩니다.
이러한 성도의 교제는 궁극적으로 세상 모두가 하나님을 알게하고 믿게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0절에서 예수님께서 잡하시기전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에 그 내용이 잘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는 그 자체가 사회에 교회의 신뢰를 세워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하는 전도행위입니다.
체코 한국 일본 몽골 아프리카 그리고 다른 모든 민족 크리스천들이 함께 예배하고 교회로 모여 여러모양으로 교제하는 것이 곧 전도실천인것입니다.

3.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성도의 교제를 위해 필요한 믿음의 교제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첫째 성도는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않고 서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3절)

바울은 기도할때 마다 쉬지않고 디모데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다른사람은 기도를 하지 못해도 자녀들을 위한 기도는 빠트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의 아들들이 되어 기도 가운데 늘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시 가운데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에서 나오듯이
만리 길 떠날때 처자를 마음놓고 맡길만한 그 사람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나를 믿어주는 그 사람이 있는 인생은 행복하듯이
우리 성도들은 나를 기억하고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는 친구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러한 기도는 서로를 서로가 세워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 만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믿음이 크던지 작든지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로 참된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둘째, 성도는 서로 흘리는 눈물을 생각합니다. (4절)

우리들 주위에 고소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 조국을 위해 세상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2-4절에 보면 마지막 종말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돈을 자랑하고 교만하고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무정하고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우며 선한것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며 조급하며 하나님 보다 쾌락을 좋아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눈물이 필요한 때입니다.
눈물은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인것을 증명합니다.
시편 84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은혜를 베푸셨습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는 여러분들에게 다윗에게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시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눈물을 서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회복되는 교회되길 소원합니다.

세째, 성도는 거짓없는 믿음을 서로 생각합니다 (5절)

그레고리 교황 이후 2백여년간 세속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믿음을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중세교회는 총체적인 부패와 세속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중세교회의 타락과 세속화는 7-8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유럽교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믿음을 자기의 성공과 출세의 기반으로 삼고 생계수단으로 삼는 경우들을 보게됩니다.
한국교회 기독교인 숫자는 정체되거나 감소되고 있고, 대형교회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지탄을 받고 있음에도 대형교회들로 사람들은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분들 가운데 믿지않는 분들이 많으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많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모습을 다시 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모데의 믿음은 거짓없는 순결함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성도는 서로 사모해야합니다.
저는 우리 꼬빌리시 성도들이 거짓없는 순결한 믿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누군가를 기도로 세워주는 성도, 눈물이 있는 성도, 거짓없는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기도 가운데 서로를 생각하고, 성도의 눈물을 서로 생각하고, 거짓없는 순수한 믿음을 서로 사모함으로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선으로 악을 이기라

  • 연합 예배 (2011년 01월 02일)
  • 롬12:21
  • 설교자: 에르딘게르 (통역: 김영만 선교사)

로마서 12장 21절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체코교회 금년 한해 표어요절이 로마서 12장 21절입니다.
이 말씀으로 에르딘게르 목사님은
우리교회가 한해동안 사랑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경계없이 실천할 수 있기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과 악에 대한 윤리적 규정을 신학자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의 정의에 따르면
생명을 유지하고 지탱하고 더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선이고
반대로 생명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것이 악입니다.
 
생명을 존엄하게 대하는 문제와
오늘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라>는 가르침은
일맥 상통합니다.
선을 베푸는 대상은 <모든 사람>이어야 합니다.
선을 베푸는데 조건과 경계가 있어서 안됩니다.
 
이와같이 선을 베푼다는 것은
곧 크리스천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랑의 법은 율법의 기초이면서 율법의 완성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구체적인 상황 속에 누룩처럼 소금처럼 스며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랑은 구체적이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찾아냅니다.
 
이와같이 선을 행하는 것은
병든자에게 사랑의 투약을 투입시켜
치유되고 회복되게하는 능력이있습니다. 
 
금년 한해 아무 조건없이
성령의 감동을 따라
배고픈 자에게 먹이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우고
헐벗은 자에게 입히고
슬픔을 당한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 찾아가보고
외로운 이들과 마음을 함께하는
조그마한 실천이라도 우리 성도들이 실천할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곳에 구체적으로 충만하게 드러날것 입니다.
 

하나님 나라

  • 한인 예배 (2010년 12월 31일)
  • 마6:33
  • 설교자: 이종실
  • 참고: 2010-2011 송구영신

마태복음 6장 33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새해 2011년 우리 모든 교우님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드리는 새해 화두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세상을 초월하지만 세상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나라입니다.
사도행전 4장의 초대교회가
바로 이 세상안에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4장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속에서
세상의 가치관 즉 인간의 욕심과 욕망과 소유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성령의 감화 감동에 의해 움직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자신, 가정 그리고 우리교회는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악한 마귀와 영적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해야 합니다.
영적전쟁의 승리의 길은

첫째, 날마다 순간마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힘으로 이루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회개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한계와 부족함과 연약함을 늘 고백하는
<겸손>한 삶입니다.

세째,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2011년 새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오늘의 말씀이
2011년 새해 꼬빌리시 온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와 삶의 현장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 한인 예배 (2010년 12월 26일)
  • 마1:18-25
  • 설교자: 이종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기억해야될 성탄의 진리를
잊어버리고 단순히 성탄을 행사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 놀라운 사건이 의미하는 진리를
다시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탄의 진리는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 (요14:8)고 요청한 것 처럼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주 안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마치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듯이 그렇게 절대자 하나님을 알고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빌립의 질문에 예수님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요14:9)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우리곁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 그 영광과 은혜와 진리를 드러내신 분(요1:14) 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66권의 주제는 동일하게 한가지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만날 수 있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바로 그 예수님을 만나시길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입니다.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가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1:21)
하나님은 천국 높은 자리에 앉아서
죽은 다음에 오게될 우리를 기다리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오늘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자리에 오셔서
목자처럼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보호하시고 먹여주시고
치유해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일에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언제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삶 속에서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롬8:6)
하였습니다.
영의 생각은 구원자 예수님에 대한 생각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들의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과 상상이
여러분들의 믿음의 언어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방법을
누가복음의 첫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낮은 자리 비천한 자리 가난한 자리 병약한 자리 멸시받는 자리에
처해본 예수 그리스도시기에 우리 인생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인도할 수 있습니다 (사53:2-3)
<임마누엘>은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자 능력입니다.
골리앗 앞에서 다윗도 가나안의 거민들에 비해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유하여
두려워 떠는 정탐자들에 대해 분노하는 갈렙과 같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선조들이 가졌던 믿음의 용기와 능력은
바로 <임마누엘>에서 비롯된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임마누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때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넷째,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 길로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과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실제로 살아내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자신을 따르는 모든 이들이 걸어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축하하고 감사한다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 길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2010년 한해동안 우리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십시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 보십시다.
그 분을 주님을 믿고 따랐다면,
우리의 삶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걸으셨던 예수님의 그 길을
우리들도 당연히 걷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 한인 예배 (2010년 12월 19일)
  • 눅1:26-55
  • 설교자: 이종실

마리아는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는 신약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시는 분으로서 또는 하나님을 심판자로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에 대해 반응없는 우리를 향해
열렬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과 대화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우리에게 길을 제시하시고
그 길을 때로는 열어주시면서
우리가 그 길을 선택하도록 배려하시고 간청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알고 반응하는 것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둘째, <순종의 삶>입니다.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요청은 즉
어린 처녀의 태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그녀의 인생 전체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자신을 희생해야하는 위험과 고난과 고통이 수반됩니다.
순종이란 내가 힘들더라도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내가 쓰리고 아프더라도 의미있는 것을 받아들여 나의 삶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째, <사명감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1장 46절 47절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다 바치면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기쁨이 인생의 가장 벅찬 감격임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존재들입니다.
그 존재의 목적에 바로 사용될때 우리 인생은 참된 감격과 기쁨으로 채워집니다.
 
네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집중하는 삶>입니다.
누가복음 1장 마리아 찬가는 어린 처녀 마리아가 꿈꾸고 갈망하는 믿음의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고 그 갈망을 믿음의 내용으로 가지고 있는 성도를 통해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향한 비범한 정렬, 애타는 갈망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그 소망을 둔 믿음을 통해 능력있는 분이 큰 일을 행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