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1.18)

2014년 11월 18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묵상

 

“세상에서 수고하며 무거운 짐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너무 괴롭게 하는 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목회자나 성도들은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참 쉼(안식)의 길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든 힘겨운 일들에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쨌든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짐을 지고가야 하고,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어떤 멍에를 메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신 것은 우리의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새로운 멍에입니다.

 

그것은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서도 우리 마음이 쉼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멍에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쉽게, 우리 위에 얹혀진 짐을 가볍게 지고 갈 수 있게 해주는 멍에입니다.

 

아니, 그런 멍에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해줄 그 멍에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멍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 그분의 인생의 길을 가실 때 지고가셨던 바로 그 멍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그 어떤 세상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을 따라 삶을 살기로 결단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서 예수님 당신께 배우라고 하십니다.

 

멍에 메보지 않은 소를 길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멍에에 대해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실제로 그 멍에를 메고 일하며 살 수 있으려면,

 

예수님과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며 그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계속해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움의 길에서 우리는 마침내 깨닫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을 따르는 길에 참 쉼이 있다는 것과,

 

바로 그것이 우리 인생의 짐을 쉽고 가볍게 지고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살아간다는 건 분명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의 멍에를 메지 않고 살아가는 건 인생을 더 고통스럽게 사는 길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없이 사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거운 것인지 깨닫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배우며 살아가게 하소서.

 

나의 삶이 내 주위 사람들을 주님의 참 안식에로 초대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게으름과 조급함 없이 성실히 감당케 하소서.

 

꼬빌리시교회의 나아갈 길을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소서.

 

오늘의 찬양

 

<예수>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1.14)

2014년
11월 14일 금요일 오늘의 말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장 19,23절)

 

묵상

 

바울은 복음을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종이 된다’는 말은 자기를 낮추어 상대방이 처한 상황 속에 기꺼이 자신을 둔다는 말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자신이 율법 아래에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에 있는 자와 같이 되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자신이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지만 기꺼이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다고
합니다. 

 

모쪼록 그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위한’ 자신의 이러한 행동은 곧 ‘복음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죄인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들을 대신해 고난 받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셨다는 것이 복음이라면,

 

‘복음에 참여’함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구원을 위한 고난과 수고를 감내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단순히 말만으로가 아니라 ‘복음에 참여’하는 삶을 통해 전파됩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종의 모습으로 다가가 그의 입장과 상황 속에 기꺼이 나를 두는 일로부터

 

이 ‘복음에 참여’하는 삶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자기를 낮추어 다가오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우리도 예수님과 바울처럼 기꺼이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으로 섬김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 있을 모든 만남과 교제 가운데 주께서 은혜로 함께해 주소서.

 

오늘부터 주일까지 있을 프라하노회 청년수련회 일정을 선하게 인도해 주시고, 청년들 상호간에 복된 배움과 교제가 있게 하소서. 

 

몸과 마음이 상하고 아픈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허락해 주소서.

 

오늘의 찬양

 

<그 사랑 얼마나>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1.12)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고린도전서 9장 12,18절)

 

묵상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합니다.

 

복음을 위해 예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도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기도,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에서 만큼은 교우들로부터 대접과 섬김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껏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그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텐트 만드는 일) 생활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이제부터라도 자기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뜻도 아니고, 자기의 지나온 삶을 자랑하고자 하는 뜻도
아닙니다.  

 

자신이 지금껏 복음 전하는 일에 그처럼 헌신해왔지만, 그것은 자신이 받은 사명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한 일이지, 누구에게 자랑하거나
보상받고자 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으로부터 혹시 받을 지 모르는 상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았던 것을 주님께서 알아주시는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싶을 만큼 행색이 초라하고 소위 가우가 좀 없었던 사람이었던가 봅니다.

 

멋진 검은색 세단을 타고 다니고, 뒤에 부교역자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다니는 요즘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모습이었겠지요.

 

그래서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은 그를 곧잘 무시하면서 그의 사도권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모든 일에도 흔들림 없이 오직 자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전해지길 바랬습니다.

 

우리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 일에 대한 보상을 상대방에게서 금전적으로 받을 때 그 일에 대한 선의와 가치가 퇴색되기 쉬운
것처럼,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가 그 일에 대한 보상을 이 세상에서 다 받으려 할 때 복음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복음전파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음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 일에 대한 대가나 보상을 그는 의식적으로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이러한 태도가 그의 속에 끊임없이 복음에 대한 열정과 활력을 불어넣었는지 모릅니다.

 

바울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다 따를 수 있다고 자신할 순 없지만, 그를 이러한 삶으로 이끌어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복음에 온전히 헌신했던 믿음의 선배를 통해 귀한 영적인 가르침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주시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가 충분히 배부르게 하소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 가운데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무언가를 절제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우리의 삶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여러 어수선하고 문제많은 상황 속에서 마음을 잘 지키며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은혜로다>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1.11)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8장 1-3절)

 

묵상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관한 문제를 다룹니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신전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이 많았고,

 

이때 제물로 바쳐진 고기는 이후 시장으로 유통되어 사람들에게 팔렸습니다.

 

그리고 이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를 놓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우상이란 것은 실로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안 계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물 먹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기존에 갖고 있던 우상에 대한 습관 때문에 그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그리스도인 형제가 그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보게 되면 그로 인해 시험에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 중 믿음이 약한 자가 그 우상의 제물 먹는 문제로 양심이 상하거나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절제하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9)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13)

 

이런 맥락에서 1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이들은 자기가 가진 지식을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데 씁니다.

 

또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 지식을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하지만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 지식을 사랑에 종속시키고 공동체에 덕을 세웁니다.

 

여러 지식들 가운데 가장 고귀한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한 사람은 그 사랑에 반응하여 다른 형제자매들을 사랑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그래서 지식이 있지만 때로는 지식이 없는 사람처럼, 기꺼이 자기를 낮추고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의 눈높이에서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 사람의 그 성숙한 행동에 대해 오해하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3)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믿음이 약한 나를 위해 기꺼이 사랑의 배려를 해주었던 이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내게 있는 지식으로 교만해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데 사용하게 하소서.

 

나의 일상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진실한 반응이 되게 하시고, 일평생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삶 살게 하소서.

 

오늘 예정된 꼬빌리시 교우들의 모든 모임과 일정 가운데 주께서 함께해 주소서.

 

몸과 마음이 지치고 상한 교우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내려 주소서.

 

하나님의 선교적 공동체로 부름받은 꼬빌리시교회의 나아갈 길을 주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소서.

 

오늘의

 

<사랑하며 섬기겠어요>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1.10)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고린도전서 7장 23-24절)

 

묵상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결혼은 의무가 아니며, 바울 자신처럼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 수 있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삶으로 부르심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고 합니다.

 

서로에게서 갈라서지 않고 한 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신앙이 없는 남편이나 아내가 신앙이 있는 아내나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배우자를 버리지 말라 합니다.  

 

그 신앙의 아내나 남편을 통해 신앙 없는 남편이나 아내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를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남편이나 아내가 신앙이 있는 아내나 남편과 갈라서 떠나고자 하거든,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해도 괜찮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평안 가운데 살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결혼과 관련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다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고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본질적인 것들을 들먹이며 타인을 평가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을 따라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직하게 하나님만 바라보며 각자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삶을 옳게 평가해주실 분은 나에 대해 고작 조금밖에 모르는 어떤 누군가가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힘을 내어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우리 각 사람을 참 자유와 평안의 삶으로 부르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믿음의 가정들을 주님의 은혜로 굳게 세워 주소서.

 

믿지 않는 가족의 구원을 위한 믿음의 형제자매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소서.

 

우리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나 평가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와 평안 가운데 믿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가 ‘자기 의’에 사로잡혀 내 이웃을 성급히 평가하거나 정죄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사랑스런 임재가 꼬빌리시 교우들의 삶 가운데 늘 머물게 하소서.

 

오늘 예정된 체코공동체 당회를 주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소서.

 

오늘의 찬양

 

<주님 보좌 앞에 나아가>

 

 

한 주간의 선교적 삶을 위한 월요일 전교우 1분
기도운동 – 오늘 낮 12시에 잠시 멈추고 1분간 함께 기도해요!!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