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30)

2013년 12월 30일 오늘의 말씀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아모스 6장 6절)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 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장 4절)
묵상
다사다난했던 2013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2013년 올해의 인물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2013년 한해동안 전 세계 약 12억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교황 프란치스코”라고 합니다.
2013년 지구는 지도자 만델라를 잃어버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얻은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않는 거대한 세계 자본의 손에 의해
이 세상은 많이 조작당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눈을 뜬 99% 시민들이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 세계로 순식간에 번졌습니다.
이 시위는 2013년에도 아직 꺼지지않는 불이며,
베트남 전쟁 반대와 프랑스 68년 5월 혁명으로 시작된 
1968년대 사회변혁운동 처럼 사회를 변혁시키는 불씨로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러한 상황때문에 새로선출된지 불과 9개월에 불과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소리는 전 세계적으로 울림이 컸습니다.
그는 부와 빈곤의 세계 문제와 불공정한 경제체제,
탐욕과 권력의 유혹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돈이 왕 노릇을 하는 물질만능의 국제 시스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정심을 잃어가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비정함이
인간사회 속에 만연해지고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적은
오늘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이기도 합니다.
포도주를 포도주잔이 아닌 특별한 그릇인 커다란 대접에 마시고
귀한 기름 즉 값비싼 화장품과 향수로 화장을 하면서
세상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의 빈부의 문제와
불공정한 체제와 권력자들의 탐욕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다고 아모스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의 자리, 우리 교회의 자리는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성도와 교회의 자리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주님을 위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겸손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성도와 교회의 자리는 
종의 자리, 섬김의 자리입니다.
그래야 우리 주님이 그 자리에 임재하실 수 있습니다.
겸손의 자리가 무엇인지 오늘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겸손의 자리는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아니라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것입니다. 
고통받는 이웃과 마음을 같이하고 눈물을 같이 흘리는
겸손의 마음, 주님의 마음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4년도에는 힘써 우리의 것을 기쁨으로 나누며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의 기쁨으로 삼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제목
1. 이웃을 돌보는 동정심과 자비심을 회복하여 주시옵소서.
2. 작은 것일지라도 어려운 이들과 나누고 베풀며 사는 새해가 되게하옵소서.
3. 한해의 마지막 언저리 시간과 새해의 첫 시간을 하나님을 묵상하며 보내는 내일 저녁 11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송구영신 예배를 복되게 하옵소서.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27)

2013년 12월 27일 오늘의 말씀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사사기 5장 31절 일부)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하라
(에베소서 5장 8절)
묵상
요즈음 저는 JTBC 손석희 9시 뉴스를 거의 빼놓지않고 보고있습니다.
뉴스 꼭지에 그 날의 가장 중요한 이슈에 대해 여론조사가 꼭 들어있습니다.
여론조사의 단순한 결과 발표가 아니라 여론조사 응답자의 견해에 대한
내용을 통계조사하는 의미망 분석을 함께 합니다.
그 분석을 보면 여론에 대한 단순한 숫치가 아니라
사회의식 수준을 어느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의미망 분석”으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분석해보면 어떨까?
뉴스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사람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
그 “의미망 분석”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신앙생활이란
마음의 동기를 끊임없이 들여다 보는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회개”라고 합니다.
단 한번의 회개로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아 영생이 잘됨같이 이땅에서도 잘된다는
“기복”을 마음의 동기로 삼는 신앙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 하는 것을 신앙의 전부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죄의 본질, 죄가 있게된 그 근원을 죄라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과 교만이며
그 끝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랑한다면
그의 신앙여정은 지속적인 자기성찰과 회개로 나타날것입니다.
자기성찰과 회개가 없으면 거짓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자신을 성찰하는 그 삶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그 느낌압니다.ㅎㅎㅎ
기도제목
1.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2.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하옵소서.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내 자존감이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옵소서.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25)

2013년 12월 25일 오늘의 말씀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편 66편 12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장 27-28절)
묵상
오늘 시편 본문은 마치 옛날 빛바랜 사진 한장을 보는것 같습니다.
이 시편이 낭독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수백년 동안 고역의 노예생활을 했던 자신의 조상과 역사를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과거 공산독재시대 속에서 자유를 잃고 살아갔던
체코 교회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자유의 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않았을 것입니다.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는 북한에서도
진실한 신앙을 붙잡고 있는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도
아마 이 말씀을 의지하며 자유없는 고통을 견디고 있을 것입니다.
말못할 인생의 환란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이 말씀을 희망으로 삼고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환난과 고통들은
원인과 이유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들어 의사들의 노력에 의해 질병 하나가 퇴치되면
그 결과 많은 새로운 질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인간의 과학과 철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고통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환란과 고통은 무궁무진하고 끝이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해결하시기 위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의 역사를 뚫고 들어오셨습니다.
그 사건이 “아기 예수 탄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의 고통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시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그 분의 음성만을 들으십시요.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믿음은 과학과 이성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하나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다른 세상 가치관의 방식을 통합시킵니다.
인간의 역사 속으로 뚫고 들어오신 하나님의 역사의 신비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여러분 인생을 위한 크리스마스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베셀레 바노체.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24)

2013년 12월 24일 오늘의 말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시편 68편 20절)
홀연히 수 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장 13-14절)
묵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모두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할까요?
우리를 위한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요? 
우리 모두는 누구나 예외없이 각자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있습니다.
악한 생각과 온갖 죄악과 거짓 증언과 비방을
날마다 생산하고 있는 우리 마음 (마 15:19)은 우리 스스로 벗을 수 없는
인생의 무거운 짐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삶의 순간들이 고통과 위기와 염려와 두려움을 수반하고 있어
인생 살이 그 자체가 짐입니다.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짐을 져주시는 분의 탄생입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고단한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인생의 짐이 벗어지고
상상하지 못한 평화를 만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짐을 대신 져 주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축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제목
1. 오직 예수,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인생의 짐을 벗고 하늘의 평화를 맛보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21)

2013년 12월 21일 오늘의 말씀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출애굽기 24장 21절)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니
(마가복음 2장 27절 하반절)
묵상
안식일은 말 그대로 “쉬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날에 복을 주시기 위해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 복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안식일의 기본 정신은 분명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날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먼저 만드신후에
그 인간을 위해 천지를 창조하신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후에 인간을 창조하심으로
인간이 삶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감사하며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안식일” 제정 속에 담으셨습니다.
신명기 16장은 이 날을 “함께” 쉬라고 하였습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쉼은 단순히 육신적 정신적 휴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날입니다.
“관계의 회복” 없이 영혼의 참된 쉼은 없습니다.
인간관계의 깨어짐의 근본적인 원인이 “죄” 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우선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안식일은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회복하는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고 탄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주님의 날과 그 날의 은혜를 진심으로 갈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주님의 날이 “노는 날”이 아니라 모든 것을 회복하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2. 주님의 날과 예배를 진실로 갈망할 수 있는 심령을 허락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