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21)

2013년 10월 21일 오늘의 말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장 27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 상반절)
묵상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의 마음을 바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을 두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되고, 
그 뜻을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갖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 약속에 집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자신의 영을 넣어 두려는 많은 시도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하나님의 시도에 
신실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될 것입니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아프고 불편하고 신경이 쓰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에 박히면 
자신의 뜻대로 살던 습성이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순종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늘 꾸준히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고 배반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결국 인간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가 2천년을 흐르게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하나님의 영에 귀를 기울이고
그 영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숙고를 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을 열고 내 안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영의 실체를 
깊이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가을의 정취가 더욱 심오하게 될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우리 인간의 삶을 참되게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더 깊이 깨닫는 하루가 되게하옵소서.
2.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3. 이 대회 개회예배에 맞추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도하며 베를린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북한을 통과해서 부산까지 운행하는 평화열차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4. 이종실 손신일 류광현 세분 목회자들의 출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5. 다음 주 예배와 설교하실 파루쉬 학장님(국제침례신학대학) 설교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6. 청년들의 학교생활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9월 감사기도에 동참하게 해주셔서 감사
우리교회가 체코교회와 체코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해주셔서 감사
짧은 체류기간이지만 진지한 청년들을 많이 보내주셔서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18)

2013년 10월 18일 오늘의 말씀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편 139편 3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장 6절)
묵상
신앙생활은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의미를 어제 “꼬빌리시 새벽묵상”에서
말씀드렸습니다.기억하시나요? ㅎㅎㅎ
“자신의 죄로 부터 구원을 찾는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살아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각자 저마다 자기 자신의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립니다.
일제 시대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독립투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이처럼  늘 언제나 선과 악이 뚜렷한 상황이 아니어서
각자의 삶의 의미와 노력들이 존중받으며 지켜지는 것이 쉽지않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의 뜻과 노력들은 소중하게 여기면서
타인의 삶과 노력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주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더 나아가 배우고 본받고 함께 이루어보려는 마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로 부터 침해와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심하면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가까운 예로는 친구관계, 부부관계 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상의 경험은 
절대 가치관의 파괴의 포스트모던 사회의 경향과
물질주의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족과 지역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반사회적 경향은 안타깝게도 교회 공동체에도 영향을 주고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물결은 오히려 우리에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깊은 영적교제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있습니다.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스스로 찌르는 무기가 되고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영혼들이 됩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연약하여 상처를 받아야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탕자인것을 깨닫게되고
다시 아버지를 생각하게됩니다.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시고
나의 모든 행위를 잘알아 나를 권면하시는 아버지를 보게됩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음성을 듣게됩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은혜로 충족한 인생이 되게하옵소서.
2.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되게하옵소서.
3. 우리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염려를 잊으라고 하시지않고 감사함으로 간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힘을 얻으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17)

2013년 10월 17일 오늘의 말씀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시편 130편 8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장 4-5절)
묵상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찾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행복과 안정과 건강과 축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생활에 따라오는 선물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바라보아야할 달을 보지않고 
손가락 끝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은 자신의 죄로 부터 구원을 찾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안에 있는 죄가 모두 사라져 
다시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아는 그 순간 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신 무한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깨닫는 순간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두개의 법이 내 안에서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 싸움의 과정에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줄까”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죄의 법에 늘 굴복을 하지만 패해하지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 죄의 법에 굴복한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들여
우리는 날마다 오뚝이처럼 새롭게 일어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서의 우리의 삶이 끝이 아닌것을 알기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오늘 이 하루를 바라보는 오늘이 아니라 
다가올 마지막 심판의 날을 바라보는 오늘을 삽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중요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의 날이 되며, 
하루의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하나님을 바르게 믿어 오늘 하루를 구원의 날, 은혜의 날이 되게하옵소서. 우리가 매일 찾고 갈망해야 하는 것이 구원의 은혜임을 알게해 주옵소서
2. 우리 형제 자매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삶의 위기의 고통을 겪는 형제와 자매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우리 형제 자매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를 한번 방문하고 우리 교회의 사역을 소중히 여겨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16)

2013년 10월 16일 오늘의 말씀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사야 38장 17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도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장 10-11절)
묵상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죄인”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인간타락이야기는
인간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원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죄인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 말씀하십니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왔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심판하시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부터 해방과 자유함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신다는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미가 7장)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구원에 관한 종교이지 선행을 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의 은혜의 상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을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일곱번이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 질문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일곱번을 일흔번까지 할지니라.”
우리 인간은 죄를 용서하는 일에 인내할 수 없어도 
우리 주님은 끝까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 죄의 정도도 구별하지 않으십니다.
그 어떤 죄인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용납하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 매달린 “행악자(강도)”도 용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용서의 은혜는
스스로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의인들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히스기야 처럼 질병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리고 간음한 여인처럼 은밀한 죄가 발각되어 만천하에 드러나
수치를 당할때, 우리 인간은 스스로 죄인임을 알게됩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아는 것은 구원의 문을 여는 참된 평안이며 축복입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성경 지식이 가득하고 그 지식대로 지켜 사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향하여 죄인이라고 
말하는 스스로 경건한 의인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자비의 용서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실된 그 깨달음과 고백이 축복의 하늘 문을 엽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주님,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서 내가 죄인됨을 알게하옵소서.
2. 성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세상에 드러내는 교회의 모습으로 복음을 증언을 노력하는 우리 꼬빌리시 교회의 선교를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각과 사상이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관심을 잃지 않게 하시니 감사
악인들의 형통함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더욱 갈망하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0.15)

2013년 10월 15일 오늘의 말씀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장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장 20절)
묵상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인간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인간에 하나님의 DNA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사랑”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악한 사람들도 자기 자식을 사랑할 줄 압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것을 기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도 우리 인간처럼 염려가 있으십니다.
우리 인간이 현재 처해있는 자신의 삶의 위기와 
자기 자식과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염려하듯이
우리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염려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염려와 근심은 곧 하나님의 염려와 근심입니다.
자기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는 
마치 “창자가 들끓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긴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위기와 염려에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십니다.
우리를 안아주시고 입을 맞추어 주십니다.
함께 눈물을 흘리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아들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의 확증이었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이 사랑의 확증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기억시키십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1. 주님, 당신은 사랑이십니다.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 
당신의 사랑을 신실하게 의지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2. 우리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맡겨주신 사명 감당하게 하옵소서
3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일에 온 성도들이 한 마음 되게 하옵소서
4. 질병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신실한 믿음의 선조들이 남긴 믿음의 발자취를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