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3.02)

2013년 3월 2일 오늘의 말씀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그늘 아래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편 57편 1절 하반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야고보서 5장 11절)
묵상
1) 다윗이 사울에게 박해를 받으며 부른 노래입니다.
2) 다윗의 상황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인간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인생이 꼬이는 경험입니다.
3) 그리고 여러가지 인생의 풍랑으로 평안이 없는 경험입니다.
4) 우리의 삶을 파괴시키는 모든 불행들이 오늘 우리의 사울입니다.
5) 삶을 파괴시키는 불행은 재앙입니다.
6) 화산, 쓰나미, 태풍, 홍수, 전염병과 같은 재앙을 만나면 도망을 가야합니다.
7) 인생의 재앙을 만났을때 어디로 도망가야 합니까?
8) 하나님께로 도망가야 우리는 견딜수 있고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9) “나는 지금 어디로 도망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성찰해 보십시다.
10) 성도는 재앙으로 부터 하나님을 향해 도망하는 “하나님의 난민”입니다.
기도
주님,
당신은 나의 피난처요, 방패요, 요새요, 반석입니다.
인생의 재앙을 만났을때, 스스로 해결하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날개아래로 들어가는
깨달음과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를 버리고 내 안에 당신이 사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당신의 권능의 팔이 나를 구원하는 일들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게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타문화 선교사로 와서 타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부족한 나를 
깨닫게하심을 감사
선교는 끊임없이 이해심을 넓혀가는 일이고
그것을 체화시켜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
언어와 문화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신비인것을 느낄 수 있게하시니 감사
연합예배를 드릴때 마다 교회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하시니 감사
비판의 마음을 사명의 마음으로 바꿔주신 것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3.01)

2013년 3월 1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수기 6장 2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 지어다.
(빌레몬 1장 25절)
묵상
오늘 본문을 아론의 제사장 축복 
그리고 사도 바울의 축복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축복을 예배가 끝날때 또는 시작할때 듣게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한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 가기위해
이후 부터 39년간 광야의 길을 헤쳐가야 했습니다.
이제 진군을 앞두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복을 주셔서 지키고, 은혜 베풀고, 평강을 비는 아론의 제사장 축복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할 것을 명령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 축복이 필요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불확실성과 불행이 닥치는 광야같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합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체험으로 우리에게 평강이 필요합니다.
광야같은 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두시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은혜베푸시고 평강을 주시며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도록 인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광야같은 세상 속에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존재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축복이 
구름기둥 처럼 불기둥 처럼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합니다.
이 은혜의 날개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않으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나같은 죄인을 위해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대속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나를 향한 사랑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을 우리가 진심으로 깨닫고 고백한다면
모든 두려움과 시기와 질투와 모든 악한 것이 물러갑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비난하고 죽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안에 온전히 머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둘째아들 탕자를 환영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분노하는 큰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지만 
온전히 아버지의 사랑안에 머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로 말씀하신 포도원의 일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고 고백한다면
그 은혜가 우리의 심령을 지키고
그 은혜가 모든 두려움과 악한 것을 물리치고
그 은혜가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하여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주어
우리 눈 앞에 이미 와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며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이 알게 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들의 심령과 함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를 복내 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은혜가
언제나 나와 함께 함을 
늘 생생하게 느끼고 깨달으며
한 순간도 잊지않고
모든 순간에 기억나게 하시어
내가 세상을 이기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달을 주신것을 감사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지 않은 분들이 있어 감사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님을 감사
나라와 민족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감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깊이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
그 은혜가 나에게 능력과 힘이 되는 복이 되게 하시니 감사
우리 성도들과 모든 교회들을 위해 이 은혜를 간절히 간구하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2.28)

2013년 2월 28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이사야 30장 26절)

우리는 여러분 각 사람이 같은 열성을 끝까지 나타내어서
소망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6장 11절, 표준새번역)
묵상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있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향해 질문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정말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이 질문을 달리 표현하면 “나는 하나님이 필요한가?” 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는 죄인을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하나님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신앙의 지식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서도 일어났고
오늘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입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데 더 순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가 메시야인것을 알게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문제가 있었던 가난한자 병든자 죄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들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삶과는 결별하였습니다.
죄악의 삶으로 부터 결별하였고,
질병의 삶으로 부터 결별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상처를 싸매주시고 고쳐주시고
그들의 삶의 아우라가 달라졌습니다.
무모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이 그랬고
질병을 치유받은 이들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에게 참된 복입니다.
내게 아무것도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 이름만으로 기뻐하고
충족감을 느끼게되는 참된 복의 경지입니다.
메시야가 우리를 이렇게 변화시켜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을 하기 위해서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을 즐기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행복한 모습이 드러날때까지
자기성찰의 열성을 끝까지 노력하십시다.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빛이 우리를 향하여
우리를 이미 비추고 있습니다.
기도
주님,
내가 상처난 사람이며
내가 병든 사람이며
내가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며
내가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입니다.
주님,
나는 당신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세상으로 부터 받은 상처를 고쳐주십시오.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로막는 세상이 준 상처를 치유해 주십시오.
세상으로 부터 받은 상처의 모습인
편협한 나의 이해관계, 나의 열등의식, 
돈과 권력과 명예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세상의 가치관들을
말끔히 씻어주셔서
나를 온전한 피조물로 새롭게 창조하여 주십시오.
당신 이름만으로 
내 삶이 충족하고, 흥분되고, 기쁨이 넘치는 
내 생애가 되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얼굴 빛이 
나의 자신감이 되게하시고
내 육신의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치료를 위해 한국을 가신 성도님을 인도해주실 줄 믿고 감사
나의 판단과 결정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
믿음이 약한 성도들에게 믿음을 주실 줄 믿고 감사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치유해 주실 줄 믿고 감사
삶의 고통을 겪는 성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실 줄 믿고 감사
자기성찰의 열성을 끝까지 인내하며 실천할 성도들이 될줄 믿고 감사
참된 믿음의 자신감과 충족감이 넘치는 우리 성도들이 될 줄 믿으니 감사
세상 속에서 빛을 비추는 우리 교회 될 줄 믿고 감사
2월 한달간도 큰 대과없이 지나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2.26)

2013년 2월 26일 오늘의 말씀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 6장 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장 5절)
묵상
오늘 본문의 제목을 정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개교회 교회성장 주의”에 매몰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조직의 확대를 목표로하는 많은 신앙생활에 대해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가?” 성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성장주의는 지속적으로 교인숫자와 재정의 규모가 확대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주의는 전도를 교회 규모의 계량으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 영향력으로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가 되었지만
전혀 사회적 변혁에 영향을 주지못하고 오히려 사회를 부패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정치가와 공직자 그리고 경제인들과 같은 사회지도자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지만 부정부패에 얼룩져 사회적 지탄을 받고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회 지도자들은 세습, 탐욕, 권력지향주의, 거짓, 학위논문 표절 등과 같은 태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볼때, 이렇게 기독교회가 부패하여 사회와 유리될 수록
내부적으로 점점 폐쇄적인 개인화된 신앙공동체의 성격을 더 강화하게됩니다.
성경의 미가 선지자의 상황이 바로 오늘과 같았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오늘 저희들에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높으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좋은 번제물이냐? 수천마리의 양이냐?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이냐?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내 죄악을 벗겨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을 주님께 바치면 될까?
내 지은 죄를용서해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치면 될까?
미가 선지자의 답은
“공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입니다.
신앙을 개인의 범주에 제한 시키지말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 하라는 뜻입니다.
나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 시키라는 뜻입니다.
순종과 복종을 위한 몸부림치는 노력이 없는 신앙행위가 교회의 세속화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복종을 위한 노력없는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모임은 클럽 활동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안모이는 것 보다는 낫다는 논리로 합리화하기에는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은 너무나 위중합니다.
뜨겁든지 차든지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너무나 거짓된 신앙생활의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우리 모두가 죽는 길로 지금 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다른 모든 소리에 귀를 막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만을 바라보면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와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와 마음을 본받기 위해
뼈를 깍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이제는 말보다 조그마한 실천입니다.
무릎꿇고 기도하며 조그마한 한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복종하는 실천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선지자는 오늘 우리에게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셨으니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할때 하나님이 도우실 줄 또한 믿습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태도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새롭게 하여주시옵소서.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판단하고
바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위해
나를 쳐 복종시키는 
뼈를 깍는 믿음의 실천이 
매일의 삶을 채워갈 수 있도록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또 걸어가야할 새로운 길을 보여주신 것 감사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인줄 믿어지니 감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니 감사
주일 예배에 참석하시지 못하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2.25)

2013년 2월 25일 오늘의 말씀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시편 30편 4절)

제자들아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누가복음 8장 24절)
묵상
오늘 본문 시편 30편 1-3절을 읽어보시면
4절을 노래한 시편 기자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방이 적이었고, 질병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영혼이 지옥에 내려갔었고
자신의 육체는 무덤에 내려갔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억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삶을 고통과 저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의 결과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임신의 고통, 남녀관계의 부조화, 땅과 인간의 부조화,
저주 받은 땅으로 부터 소득을 얻어야 하는 고통, 노동의 고통,
죽을때까지 떠나지 않을 삶의 불안, 그 불안을 끊어내기 위한 인간의 노력,
그러나 그 노력은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그림자,
등 입니다.
고통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고통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그곳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우리는 노래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 속에 빠진 우리를 건져내주시는
우리 인생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오늘 누가복음은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성령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우리 주님을 알지 못하고
제자들 처럼 우리는 자신들의 힘으로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를 벗어나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만,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을 인생의 한가운데서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는 오늘 본문의 제자들 처럼 우리 가운데 이미 오신 성령님을 깨워야 합니다.
찾는 자에게 찾아지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이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를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에서 건져내주십니다.
이 극적인 체험을 우리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 진리입니다.
기독교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골짜기 한 가운데서 하나님은 건져내 주셨습니다.
죽음의 권세 아래 우리를 결코 두시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를 위해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종교행위는 거룩한 의식이 아니라 
인생의 고통의 한복판에서 구원을 부르짖는 희망을 찬양하고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종교는 고통을 감소시키는 위안과 평안을 주는 아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이며 승리의 노래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순절의 감사의 간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주여, 주여,
내가 죽게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얀눈으로 덮힌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하시니 감사
(어떤 대기업이, 어떤 과학자가 이 세상을 이렇게 하얀눈으로 덮을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분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니 감사
(서로 가치관과 생각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병든 이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한국에서 치아 치료를 받게되실 교우를 생각하며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중보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감사의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릴 수있다는 말씀에 감사
낙심되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것들이 생각나는 성도의 모습을 보며 감사 
주차장의 눈을 치워주신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계셔서 편안하게 주차할 수 있게 하신것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