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7)

2013년 1월 7일 오늘의 말씀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수아 5장 14절)

예수님이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다
(누가복음 8장 21절, 표준새번역)
묵상
여호수아가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그토록 민족이 꿈꾸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강둑까지 넘쳐 흐르던 요단강을 마르게 하셔서
여호수와와 백성들은 가나안 거민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관문인 여리고를 향해 갑니다.
그때 길에서 여호수아 앞에 손에 칼을 든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여호수아는 질문합니다. <우리 편 이냐?, 우리의 원수냐?>
손에 칼을 든 사람은 자신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밝힙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의 앞에 엎드려 명령을 듣기를 원합니다.
군대는 지휘자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지휘자가 명령하지 않거나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군대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광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 정복에서는 
눈에 보이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눈을 들어 > (수 5:13) 여호와의 지휘자를 발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 지휘자의 명령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때
하나님의 명령(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할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호수아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내 주여,
오늘 내게 무엇을 명령하려 하시나이까?
당신은 나의 대장입니다.
당신의 명령을 따라 
내가 오늘 하루를 걷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5)

2013년 1월 5일 오늘의 말씀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잠언 20장 12절)

그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누가복음 24장 45절)
묵상
내일은 2013년 첫번째 주일입니다.
주일, 거룩한 주님의 날, 만약 이 날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
…..
우리가 연약하여 세상 속에서 살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듣기가 쉽지않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모두 하나님이 만드셨음에도 불구하구요.
그러나 <그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터치하시면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의 눈과 귀는 마음과 연결됩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내 안을 향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리고 보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우둔해도 너무 우둔하여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물리적으로 <그 때>를 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날, 주일입니다.
이 날은 신비의 날입니다.
이 날이 있음을 감사할 수 있는 성도는 
이 날이 <그 때>가 될 것입니다.
이번 주일은 언어와 문화외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함께 나누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고 우리는 그의 지체임을 
예배 예식을 통해 확인하고 고백합니다.
문화와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생각해 보면 신비입니다.
이 신비를 깨닫게되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나누는 그 모습을 보실때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그 하나님의 감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첫번째 고백이
성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 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를 만족시키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하려는 마음으로 이 예배를 참석하신다면 
또 다른 예배의 축복을 맛볼 것입니다.
마음의 눈과 귀가 열려 하나님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듣고 깨다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내일 예배는 9시 30분, 체코 어린이들과 학생들과 함께하는 어린이 연합예배, 문화교실, 그리고 2013년 집사 봉사직 임명받은 분들의 첫 집사월례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복된 예배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나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옵소서
그래서 당신의 영광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영화롭게하려는 예배자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감사할 수 없는 것조차 감사하게 하시니 감사
거룩한 하나님의 날을 물리적으로 제정해 주신것을 감사
교회를 함께 섬길 수 있는 성도와 봉사자들이 있어서 감사
한국과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우리 교회와 함께 선교를 하기를 원하게 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4)

2013년 1월 4일 오늘의 말씀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이사야 6장 5절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언제나 친절하게 유익한 말을 하고
묻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6절, 공동번역)
묵상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말 – 언어>라는 구조를 통해 전달되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 말(언어)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언어) 속에 계시고 그 <말>로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외모가 닮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말(언어)>입니다.
짐승과 달리 인간의 말은 소통의 수단뿐 아니라
인간의 말은 하나님의 말 처럼 
인간의 마음과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날때부터 앉은뱅이를 치유할때
말로써 하였습니다.
인간은 말로써 심지어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얻지 못한다.>
이토록 인간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인간의 말은 권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는 말은 마치 작은 것으로 모든 것을 태우는 불처럼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인간의 말은 마음 창고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6장에서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창고에서 악한것을 내어놓는다고 하였습니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구강을 통해 나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이고 자신의 미래가 보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자신의 말을 통해서 자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느꼈습니다.
인간사회의 언어습관을 보면서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있습니다.
해외 체류자 생활은 언어와 타문화를 극복하지 않는 한 
더 넓은 세계로 나온것이 아니라 
한국보다 더 좁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무조건적인 Understanding 이해하기 입니다.
내 마음의 부정적인 요소 
즉 열등의식, 자기학대, 교만, 자랑 과 같은 마음 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입장에 서보는 것입니다.
먼저 Under 타인의 아래에 Standing 서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합니다.
이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지 야고보서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다시한번 우리 꼬빌리시 교회가 
첫예배때부터 실천하고 있는 세가지 실천사항을 기억하시면
그 중의 하나가 <덕스러운 언어생활>인것을 아실것입니다.
덕스러운 언어생활은 나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모두를 복되게 하는 
축복의 길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미 우리의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있습니다. 
언제나 친절하고 유익한 말로 모든 삶에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복된 우리 꼬빌리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주님,
우리의 마음을 기경시켜주셔서    
우리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고
입술이 깨끗하지 않는 불신자들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송구영신예배때 교우들이 봉헌한 감사로 인해 큰 은혜 받게하시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3)

2013년 1월 3일 오늘의 말씀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장 34절)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서 13장 2절)
묵상
우리나라는 OECD 국가중에 수출의존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국제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록 
우리나라의 수출의존 경제체제는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인적자원의 국제화 고급화를 의미합니다.
자원이 절대 부족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필연적인 선택입니다.
이를 감지하고 계신 부모들이 
자녀들의 영어교육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다른 의미로 우리나라의 이민자가 북미주 중심에서
전세계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가 
그 숫자가 더 크게 늘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도 이민자들 고급인력들 이주노동자들 난민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계가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록 
국가간의 자본이동과 노동력이동은 더 확대될 것입니다.
이미 그 이동은 시작되었고 돌이킬 수 없이 정착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세계 인류사회의 참된 리더쉽은 
언어문제가 아니라 거류민을 같은 가족으로 여기며 
자기 몸 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전세계는 경제논리에 의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인간의 삶은 더 고통스러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세상의 희망이 세계의 시스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 자녀됨의 의식이 새벽별 처럼 더욱 빛나야 할때입니다.
사랑하는 꼬빌리시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객으로 살아가는 우리 한국이민자들
우리 민족들끼리 먼저 자기 가족처럼 사랑하십시다.
이 땅에서 객으로 살아가는 다른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십시다.
서로 손님이 되어 서로 대접하기를 힘쓰십시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기도
주님,
당신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에게 손님 대접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타민족을 자기 가족처럼 사랑할 수 있는
문화적 수용력을 우리 자녀들이 가져
국제적인 리더쉽들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같은 민족들을 
먼저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교회 체코 한국달력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
이웃으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
나 혼자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타인에 대해 마음이 열리니 감사
귀국한 가족으로 부터 연락이 오니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1.02)

2013년 1월 2일 오늘의 말씀
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잠언 1장 7절)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는 분이시고
그 분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4-35절)
묵상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을 체코어 성경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은 깨달음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더 이해가 잘 되시지요?
그런데 성경은 사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형벌과 맞물려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성경은 <두려워 하지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대해서 한국어 성경은 번역을 잘하였습니다.
두려움과 경외함을 구분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두려움이 아닌 경외함의 대상입니다.
경외함이란 두려워하는 존경심입니다. 예배하는 것입니다.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의가 있는 유일한 심판자 판단자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외하는 것은 곧 신뢰하고 믿는 것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 성찰할때 경외함이 판단의 기준이됩니다.
경외함이 있으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꼬빌리시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내 마음에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따져 보십시오> 
믿음, 은혜는 <경외심>에서 시작되는 <깨달음> 입니다.
깨달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믿음과 은혜를 체험하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
당신은 나의 보호자이시며 반석입니다.
나와 우리 성도들의 새해의 삶을 
당신의 전능의 손에 위탁합니다.
친히 다스려 주시옵소서.
이 해외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에
우리를 지켜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우리 모두에게 알게하여 주사
믿음생활을 습관처럼 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 살피고 따져서
내게 믿음이 있는지 질문하고
그 믿음을 모든 순간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 속에 드러내는 
우리 성도 우리 교회 되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해관계가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이 있는 것이 신비라는 생각이들만큼  귀하게 생각하게 되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