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고글] 땅끝까지이르러 체코편 (3)

기독공보 (www.kidokgongbo.com)
* 호. 발행일:2471. 20040717
땅끝까지이르러/ (21) 선교사와 시행착오 <체코 편(3)>

선임 선교사가 없는 선교현장에 오니 처음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했다. 자신의 일을 찾지못해 길 잃은 양처럼 선교지에서 헤매는 선교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여 두려움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하나님이 일을 보여주실 때까지 묵묵히 공부를 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선교지에서도 적용된다. 내가 선교현장을 공부한 만큼 언제나 그만큼 하나님은 내게 해야 될 일들을 깨우쳐 주셨다.

 처음 해야 될 일을 발견하게 된 그 순간은 선교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존재의미를 느끼게 하는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실천의 단계에 들어가면 그것은 마지막 안방 문을 열기까지 거쳐 가야 할 많은 문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마치 펌프로 우물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미리 부어 주는 물과 같은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선교현장이 앞으로 열어야 할 문이 얼마나 많은 지 상상할 수 없는 구중궁궐과 같은 곳이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물을 부어야 할 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메말라 있는 우물과 같은 곳임을 알게 될 때에 기쁨과 확신에 넘치던 희망이 한 순간에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일로 보였다.

 그 일을 더 이상 진행시킬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될 때 나를 위해 기도와 사랑으로 격려하며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후원교회와 개인들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될지 염려부터 생겼다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를 받아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남긴 종에게는 아직 필적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할 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실패를 두려워하여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만 했다가 후에 꾸지람을 들은 종을 본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시행착오로 손해를 볼 지언정 도전을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더 더욱 안된다고 다짐했다.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시행착오에 대한 반성이 없기에 주인이 돌아왔을 때 나는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판단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나의 희망을 한 순간도 좌절시킨 적이 없다. 왜냐하면 시행착오는 선교현장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하나님의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선교활동의 신학과 실천이 틀을 잡아가고 동시에 선교현장을 깊이 이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다. 아직도 준비되지 않은 선교사를 위해 하나님은 시행착오에 큰 관용을 베풀며 통 크게 투자를 하셨다. 나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투자 고객이다. 투자가라면 누구나 투자의 이익이 발생하는 시점을 학수고대한다. 그러나 그 투자 고객의 기다림에 나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언제나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선교현장에 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있어 언제나 이제 막 선교 일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이 종 실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기독공보 기고글] 땅끝까지이르러 체코편 (2)

기독공보 (www.kidokgongbo.com)
* 호. 발행일:2469. 20040703
땅끝까지이르러/ (20) 배수의 진을 치고 <체코 편(2)>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나뉘어진 1993년에 필자는 체코 프라하에 입국했다.

 당시 체코는 1989년 혁명이후 10년 만에 전체인구의 절반쯤 되던 기독교 인구가 30퍼센트로 줄어들었다. 그 중에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합해서 8~10퍼센트가 실제로 종교활동을 하는 인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머지 인구 70퍼센트 이상이 ‘나는 무신론자’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곳 무신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동기가 나 자신의 계획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확인하려는 하나님과의 배수의 진을 친 씨름을 시작했다.
 
우선 생계의 문제로 하나님과 대면했다. 이 문제는 선교사 파송을 나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파송을 기다리기로 한 나의 결심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파송의 때를 기도와 함께 선교현장 연구를 하면서 기다렸다. 선교를 하겠다고 하면서 총회 파송을 받지않고 더구나 프라하 개혁신학부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시작하니 주위의 도움은 물론이거니와 이해를 받기도 어려웠다. 몇몇 지인들의 도움으로 경제적 불안을 해소하기는 부족했다. 생계의 위기가 지속되면 해외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씨름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인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파송에 대해 점점 확신이 생기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적응의 문제로 하나님과 대면했다. 가족이 적응하지 못하면 해외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현지 적응은 선교의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하여 달리 타협의 길을 스스로 두지않았다. 16년간 중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내가 체코선교를 위해 사직을 하였고 국민학교 5학년을 마친 아들은 체코국민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현재 아들은 프라하 체코국립대학의 정치학도가 되었고, 하나님은 아내에게 프라하 체코국립대학 철학부 한국학과에서 계속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구했던 응답은 구체적으로 해야 될 나의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었다. 성급하게 나의 계획을 추진하려고 하지않았다. 아예 머리 속에서 나의 계획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체코인이든 체코에 사는 한국인이든 그리고 그 누구이든 절대로 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려고 하지 않았다. 언제나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로 생각하고 사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선교현장을 끊임없이 공부했다.

 뒤 돌아 보면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씨름은 그 순간 모두가 하나님께서 직접 나의 손을 붙잡고 체코로 인도하는 과정들이었다.

이 종 실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기독공보 기고글] 땅끝까지이르러 체코편 (1)

기독공보 (www.kidokgongbo.com)
* 호. 발행일:2466. 20040612
땅끝까지이르러/ (19)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체코 편(1)>

선교단체에서 또는 다른 기회로 선교의 소명을 발견하고 헌신하는 복음 전파자들과는 사뭇 다른 선교의 여정으로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셨다.

 1988년 1월 총회 전도부 국제선교위원회부터 세계선교부가 신설된 지 2년 만에 총무를 모시게 된 그 때까지 만 4년이 넘게 우리교단 해외 선교사들을 돕는 행정간사로 일하면서 이해하게 된 선교의 경험들이 현재 나를 선교사로 일하게 하였고 그리고 나의 선교여정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

 여러 선교사들의 현장감 넘치는 선교 보고서를 읽으면서 비록 임기 내내 한번도 방문하지 못하였지만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선교 현장들이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고, 다양한 선교 프로젝트들의 형성과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 어떻게 선교프로젝트가 만들어졌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선교 보고서들을 면밀히 그 행간의 의미까지 읽으면서 선교사님들의 선교 프로젝트는 어느 하나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단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시행착오와 크고 작은 실패의 과정 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이것은 또한 선교사의 현지 적응과정과도 무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교행정을 통하여 후원하는 교회들과 선교사들의 가장 근본적인 선교의 동기가 무엇이며 선교의 과정이 그 동기에 어떻게 충실하고 있는지 그리고 만약 선교의 과정이 선교의 동기와 달라지고 있으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진단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러한 총회의 경험들은 내게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명제를 새롭게 깨우쳐 주었고 그리고 이 명제의 바른 실천으로 하나님은 나를 부르고 계심을 고백하게 되었다.

 선교가 기관으로서의 교회들과 인간들의 욕망의 수단이 되지않고 하나님의 일로서 그 순수성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서구의 선교도 ‘제국주의’라는 세상의 가치관과 ‘기독교 왕국’의 신앙의 가치관과의 혼돈의 역사였다.

 선교를 하는 나 자신도 언제나 선교의 대상임을 잊지않고 선교를 임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총회의 만 4년간의 봉사를 되돌아보면서 선교에 대해 무지했을 뿐 아니라 잘못된 선교에 대해 전혀 자책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에 나는 새 창조와 새 피조물의 희망을 기다려야 하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기도와 더불어 파송의 순간부터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확인하지 않고는 내게 선교사로서의 미래가 없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종 실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동안교회 암미유럽을 다녀와서

동안교회 암미유럽을 다녀와서

덕분에 무리 없이 잘 다녀왔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구요, 떠나기 전부터 했었던 수많은 훈련과 공부가 이번 사역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었음을 가서 직접 부딪히면서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정리작업 중이기에 이 보고서를 통해서 다 알려드릴 수 없는 부분이 있네요. 뭐랄까 단순한 일정상에서 일어났던 일들만 작성되었구요, 구체적으로 청년들을 만나거나 목사님을 만나면서 이루어진 사건 사건들을 모두 기록하기에는 지금 조금 무리가 있는 듯 싶어서 일단 작업된내용만이라도 보여드리는 게 필요하다 싶어서 이렇게 띄웁니다.

떠나기 전에 했던 수많은 훈련과 공부, 정말 학교 다니는 것보다 더 심한 강도로 행하지 않았나 싶구요, 그 공부 덕분에 순간순간 맞닥뜨린 질문들에 지혜롭게 대답할 수도 있었고, 체코와 슬로바키아, 폴란드 청년들과 마음을 함께 공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더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는데, 우리가 방문하는 이것들이 체코와 슬로바키아 목사님들, 그리고 교역자들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갔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현재 너무나 위축되어 있는 사람들, 무엇보다 공산권 하에 있으면서 위축당했던 그 감정이 아직 그대로 살아 있으며, “기독인”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들” 취급받고 아직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기독인”이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에서의 요청은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쓰고 싶다구요…. 무엇보다 한 번 기독교가 휩쓸고 갔기에 너무나 조심스럽게 한발짝씩 떼려고 하며, 지금 당장엔 “교회”란 존재가 생존한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곳도 상당합니다. 아니,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사상 기반에 있었던 것은 바로 “세속적인 가치관이 교회 가운데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교회가 선택했을 때, 그 부흥했던 유럽교회가 무너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강조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즐거움”에 탐닉해 있었을 때 교회는 일시에 무너지고 분열되는 현상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지 교회 목사님들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오가는 과정 가운데에서 그들은 우리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답니다. ; 기독교역사 100년밖에 안된 곳에서 이토록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 모습이 충격적이라네요. 제 생각엔 “열심”은 전해주되, 한 번 부흥했다 사라진 그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우리 한국 교회 현실 가운데에서는 필요한 듯 싶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만 전하려고 했는데 길어졌네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생각을 실천하는 그 곳에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다는 사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이기심” 혹은 “집단 이기주의” 그리고 “세속적 가치관”이 나에게 없는지 매일 매일, 매 순간마다 돌아보는 내가 그리고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이만 줄일께요.

손 은 진 (편집 주: 서울 동안교회 청년 12명이 프라하 꼬빌리시교회 이종실 목사의 지도아래 체코와 슬로바키아 교회 청년들과 2월에 약 두주간의 교류활동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리스도안에서 함께하는 우리들

그리스도안에서 함께하는 우리들

모든것은 신학적인 대화로 시작하였다. 신학은 풍부한 유대경전과 기독교 성경의 전통에 서 있기 때문에, 신학적인 대화는 전통으로부터 비롯되어야만 한다. 2천년간의 교회의 대화와 논쟁의 모든 전통들과 그리고 종교개혁의 전통을 덧붙이면 우리는 현재의 문제들과 희망, 과제들을 얻게 된다.

처음에 나는 구체적인 일들을 이슈니 미에스또(프라하 4지역)에서 시작하려고 생각했었는데, 교회구조가 이 작업을 뒷받침 해줄 수 없었다. 꼬빌리시에서 우리는 근 30여년간의 외국교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이종실 목사가 „왜 꼬빌리시에서는 안되는가?“ 라는 질문으로 내 생각을 전환시켜 주셨을때 나는 이미 모든 해답을 얻었다.

에큐메니칼 경험은 우리가 단순히 교회당을 예배를 위해 다른 교회에 세를 주는 형식의 그런 방식의 협력을 따르지 않도록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교회기관의 헌법에 기대지 않고 에큐메니칼 예배를 시작하겠노라고 분명히 이야기 했다. 그래서 성만찬을 함께 하였다. 이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들이 하나되게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며 우리 체코-한국의 관계를 가장 높으신 분 앞에서 평등하게 하는 것이지 어떤 흥미로운 활동을 통해 유발시키는 그런 동정이나 관심이 아니다. 분명 체코 – 한국 두공동체간의 언어차이는 함께하는 공동의 성찬예배에서 극복되고, 그리고 우리의 공동의 목표를 보여준다.

당시 나는 야고보의 말씀과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된다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어진 약속으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성서에 셀 수 없이 많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성취가 나온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체코인과 한국인들의 협력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성서의 약속의 말씀과 구체적인 교회들의 국제적인 경험의 바탕과 예배 예전의 갱신의 노력의 과정에서 우리 체코-한국 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여정이 모색되었다. 이 여정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 안에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위에서 성취되는 그 동안 이 여정은 옳았으며 안전한 것이 입증되었다. 우리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고, 교회당 사용을 한국인 교회라는 하나의 별도의 교회에게 세를 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다양한 민족과 언어와 인종이 함께 섬겨가는 하나의 교회를 만들었다. 요한 계시록은 이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희생양을 찬송한다.(계 5,9-14) 찬송과 존귀를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이 협력은 동시에 몇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 이외에 체코 한국 공동체로부터 인새심있고 중요한 교회의 사회봉사가 발전되고 있다. 성만찬에 고통 받는이 들과 아픈이들이 참여하지못한다. 댜블리쩨의 우리교회의 디아코니아의 봉사와 보흐니쩨 정신 병원에서 그리고 역시 보흐니쩨의 슈뜨라스부르크 호스피체에서의 목회 차원의 우리들의 사역의 의미있는 봉사는 프라하 꼬빌리시의 야곱의 사다리 교회에서 함께 하는 체코 한국의 실존에서 분리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한국인들은 독창적인 방법으로 우리 기독교 공동체가 사회를 섬겨가는 일을 깨우쳐주고있다. 이런 섬김은 말로 떠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침묵의 실천의 연대를 이해하는 우리들이 세속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증언이다.

두번째로 중요한 부분은 양 문화의 접촉이다. 한국인들은 교회당에서 뿐 아니라 정신병원에서 호스피체에서 아름다운 찬송을 부른다. 우리들은 한인학교의 설립을 도왔다. 새롭게 형성된 체코 – 한국공동체를 통해 그리고 나눔터와 같은 이러한 잡지를 통해서 민족들의 평화로운 만남의 이러한 선물을 깊게하고 확장하게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문화의 영역에서 전통의 교환, 두 국가간의 과거 종교에 대한 이해, 요리법의 교환 그리고 다른 형태의 공동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를 잘 알게 해 줄 뿐만이 아니라 풍요롭게 해주고 기쁘게 해줄것이다. 이러한 기쁨은 여호와의 약속의 성취이다. 기독교인이 아닌사람도 이세상에서 민족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야 하며 약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함께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함을 알것이다.

한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자신들의 삶을 위한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함께 공유하는 다른공간이 있다. 한국인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초청을 알리는 종탑을 세울 수있었다. 종은 잘 움직이고 있고 이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리듬을 주고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리 교회당 장소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민족들이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앞에 몇가지 일이 남아있고 두 공동체가 한곳에서 모일 공간을 필요로 하고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종실 목사의 사역을 매우 존경한다. 이목사는 한인 공동체를 인자하고 목적성있게 아주 다방면으로 목양하고 있으며, 우리들이 문화적인 장애로 어려움을 겪을 때 체코의 전통도 한국공동체에 알리는 일도 한다. 열린마음으로 체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있으며 우리의 종교개혁의 과거와 현재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고 동시에 우리들에게 한국의 전통과 가까워지게 한다. 우리는 이 길을 함께 걸어가길 희망한다. 우리들에게 어떻게 예배예전을 발전시켜 사회를 위해 새로운 활동을 할것인지 등의 많은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잡지 발간이 결실이 있고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 다른 민족들, 다른 언어들 그리고 인종들을 향해 열려지는 것을 도울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지 슈토렉

* 나눔터 플러스 창간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