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울 청년 기독교인들의 슬로바키아 여행

한국 서울 청년 기독교인들의 슬로바키아 여행

2003년 2월 6일 \"동안 교회 단기 청년 선교팀은 프라하 꼬빌리시 야곱의 사다리 교회에 도착하였다. 2월 9일 그들 중 일곱 명은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선교일에 대한 새로운 배움을 얻기 위하여 필자와 함께 일주일 동안의 슬로바키아 여행길에 올랐다.

방문하는 교회마다 교회 신자들의 만남으로 가득하였다. 선교팀은 동안 교회와 한국의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다. 한국 전통 한복을 입고 장구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전통 다도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방문 교회 신자들에게 차와 사탕을 대접하였다. 질의 응답시간에는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스삐슈스까 벨라 교회에서는 심지어 한국과 슬로바키아 기독교 신자들의 현상에 대한 대화가 집중적으로 오고 갔었다.) 한국어로는 정용구 전도사가 진행을 하고 김무송 교우가 영어로 통역을 해 주었으며(케쥬마록, 스삐슈스까 벨라), 류지만 교우는 직접 영어로 이야기를 전달하였다.(슈뜨르바, 브라티슬라바-뻬뜨르잘까)

한국 선교팀은 방문지에서 한국인으로는 첫 공식방문이 되곤 하였다. 슈뜨르바에서는 심지어 역사상 첫 한인 방문단으로, 공식적으로 시청에 초대를 받아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고 짧은 문화 프로그램을 -노래와 춤을 추는 지역 어린이 합창단 공연- 보여주기도 하였다. 게다가 지역 방송사에서 녹화도 하였다. 브라티슬라바에서는 반전 평화 콘서트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유명 슬로바키아 연예인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고, 주옥같은 클래식 음악 연주가 울려퍼지기도 하였다. 그 곳에서는 슬로바키아의 복음 교회 (40만명의 신도수를 자랑하는 슬로바키아에서는 제일 큰 신교 교회) 주교와, 동시에 에큐메니컬 연합회장인 율리우스 필로 신학 박사가 나와서 연설을 하였고, 콘서트 후에 필로 박사는 선교팀과 잠시 만남의 자리를 갖기도 하였다.

모든 교회는 선교팀을 위하여 문화 유적 답사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었다. 케쥬마록에서는 희귀본 도서관과 시의 역사 박물관을 비롯한 많은 유적지를 견학하였다. 스삐슈스까 벨라 교회에서는 우리 선교팀을 위하여 벨리안 얼음동굴 구경도 시켜주었다 슈뜨르바에서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의 일반인들의 생활상이 있는 전통 목조 가옥을 방문하고, 비쏘께 따뜨리 산맥 중심 슈뜨릅스께 쁠레쏘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2000미터정도 되는 쏠리스꼬 봉우리에 올라가서 산과 숲이 절경인 전망을 구경하였다. 브라티슬라바에서는 슬로바키아의 중심으로서 있는 많은 문화 유산들 중 몇 개를 보기도 하였다.

케쥬마록은 1269부터 있던 도시였으며 지금은 비쏘께 따뜨리 산맥 아래에 있는 문화 생활과 관광 중심지이다. 개혁 운동 이후 이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신도수가 약 1000명 정도 된다. 포루뵌 목사는 특별히 교회 모임방에서 저녁 만찬을 준비하여주었고 (2003년 2월 9일), 약 70명의 교우들이 참석하였다. 이 만남의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진행이 되었다.

스삐슈스까 벨라는 케쥬마록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1263년부터 스삐쉬 독일인들이 정착을 하게된다. 1545년 이 도시는 개혁을 받아들여 현재 약 400명의 신자들이 있는 교회로 발전한다. 교회는 특별히 저녁 예배를 준비하여주고 (2003년 2월 10일), 예배 집전은 페츠꼬 부목사가 하였으며 설교는 소반스까 목사가 담당하였다. (설교말씀 발췌한 글은 다음 페이지에 있다.) 예배에 이어 40명의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진 만남의 시간은 3시간 30분이상 진행 되었다.

슈뜨르바는 비쏘께 따뜨리 산맥 기슭에 있으며 1280년 이 곳에 대한 첫 기록이 나온다. 우리가 방문한 교회는 개혁 때 지어졌으며 약 1700명의 신도가 있다. 발로츠 목사는 특별 저녁 예배를 준비하고 (2003년 2월 12일 목요일), 한국 선교팀 형제들도 참석한 가운데 성찬의 전례 예식이 거행되었다. 예배에 참석한 150명의 교우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예배 후 그대로 교회에 남아 선교팀과 만남을 시간을 3시간 이상 가졌다.

브라티슬라바에서는 두 교회를 방문하였다. 한 교회는 브라티슬라바 교회로 개혁 때부터 있기 시작하여 현재 약 15000명의 교우가 있는 곳이고, 브라티슬라바 – 뻬뜨르잘까 교회는 아파트 단지 중심에 선교의 일환으로 20세기 말에 지어진 곳이다. 끌라띡 목사의 초청을 받아 주일 예배는 브라티슬라바 – 뻬뜨르잘까 교회(2003년 2월 16일)에서 보았다. 올가 끌라띠꼬바 목사가 설교를 준비하였던 예배를 마치고, 예배를 보았던 250명의 교우들 중에 약 80명이 참석한 가운데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결론을 지어야 할까? 슬로바키아 교회의 교우들에게나, 한국의 청년 선교팀에게도 이번에 이루어진 이번에 이루어진 만남의 자리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슬로바키아인들은 한국의 기독교에 대하여 더 많이 알게 되었을 것이며 한국인들은 슬로바키아 기독교 신자들의 삶을 맛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교회는 어떻게 생겼고, 전례는 어떠하며 교우들은 어떻고, 그들은 어떤 기쁨과 근심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먼 아시아에서 온 청년들은 천 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를 가진 유럽과 슬로바키아에서 교회는 어떻게 지속되는가, 실제로 보고 느끼는 기회를 가졌다. 이는 추억을 남기고 주위 뿐 아니라 우리 자신과 기독교 정신의 이해 그리고 선교활동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만든 값진 경험들이었다. 이번 여행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맺는다.

2003년 2월 11일 동안교회 단기 선교단 방문 예배 중 스삐슈스까 벨라 교회의 루비짜 소반스까 목사 설교 말씀

말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6장 4절, 9절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이름없는 자 같으나 유명합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 11-12절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주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피차의 믿음을 통하여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이 두 말씀은 사도 바울이 신자들을 위해 쓴 것입니다. 다만 차이라면 첫 번째 말씀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보낸 것이고 두 번째는 로마인들에게 보내진 것입니다. 이 곳 교회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우리 각각은 슬로바키아와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자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을 믿는 하느님의 일꾼들의 만남입니다.

\"이름없는 자 같으나 유명합니다.\" 우리의 만남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만남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서로 보지 못하였었고, 알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미 서로 압니다. 그리스도 속에서 서로 압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압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를 매고 죽음으로써 우리 모두의 죄를 똑같이 사하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천년 왕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영원한 지옥의 길로부터 보호받습니다. 슬로바키아 교회와 한국의 교회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고, 구세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식들입니다. 당신도, 우리도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주려는 것입니다.\"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들과 함께 보고, 듣고, 말합니다. 그들과의 상호 동질적인 공동체를 가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또한 이 곳에서 함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영적인 축복을 나눕니다\" 신자 공동체는 단지 말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영적인 축복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서로 말입니다. 이는 곧 모든 이는 주어야 하고 모든 이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로마인들은 바울에게,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우리는 여러분들로부터, 여러분은 우리로부터. 무엇을 받아들일까요? 여러분들과 우리들의 믿음으로서 나오는 영적인 축복, 즉 격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나라에서 사회, 경제, 정치적인 관계 안에서, 그리고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름대로의 관습과 특성을 가진 교회 공동체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의 경험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에서, 사회에서, 경험 속에서 살아 갑니다. 이런 축복과 믿음의 삶, 경험의 나눔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격려하며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하였던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름이 없으나 유명한 공동체와의 만남을 갖게 해 주신데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 및 번역 다빗 유레흐

* 체코어 한국어 잡지 나눔터 + 2호에 실린글

벨리바의 한국의 주간

벨리바의 한국의 주간

2003년 2월 11일부터 14일까지 삐섹 벨리바 찻집에서 „한국의 주간“ 행사를 한국 서울의 동안교회 우리 친구들과 함께 하였다. 우리 친구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였고 몇몇 학교를 방문하여 한국의 다른 생활모습에 대해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였다. 우리들은 한국 전통결혼예복을 입어볼 수 있었고 한국 음식을 요리하고 맛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전통한국차와 다기 그리고 DVD를 가지고와서 우리들이 현재 프로그램을 위해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은 체코 공화국에서 없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한국문화를 가지고 왔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앞으로 많은 교제가 이어지게 될것이다. 이번 방문은 우리들에게 축복이며 한국의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사역의 다양성안에서 그 한주간이 커다란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이어지는 글은 벨리바의 한국의 주간에 참석하였던 사람이 쓴 글이며 그 한 주간이 그의 삶의 큰 변화를 일으켰다.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 얻을 수 있을 한국문화를 다 알아버렸다.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길…

내 이름은 토니입니다. 2월 7일 무렵주일 벨리바 찻집에서 한국의 주간이 열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땐 그것이 나의 관심을 그렇게 끌지 못했던 것은 „한국“ 이란 개념이 나에게 전혀 없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준비된 프로그램에 참석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벨리바에 가서 찻집 출입문에 들어서면서 멋진 장식과 동양의 문화에 그냥 넋을 놓게되었습니다. 벨리바에서 그만 하루를 보내며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습니다.

그 주간에 시간에 쫒겨 모든 활동을 참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권도 시범도 사물놀이도 보지 못하였지만 예를 들어 전통한국춤 또는 전통한국놀이 와 같은 다른 프로그램들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하였습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한국글자의 두 종류가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동양의 춤과 전통적인 그리고 현대적인 음악에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색깔이 있는 큰 부채를 가지고 꽃 모양을 만들고 그 중앙에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는 모양으로 추는 춤은 나를 황홀하게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닭싸움 또는 바둑 놀이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도 모자란나머지 우리 한국 친구들은 금요일 엘림 청년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래서 다행히 우리들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체코 문화를 보여주었고 우리들은 함께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 중 몇몇과는 인터넷을 통해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이 친구들과 다시만나 올해 짧은 기간동안 다 하지 못하고 모자랐던 점들을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토니
* 이 글은 체코 한국어 잡지 나눔터 + 2호에 실린글입니다.

꼬빌리시 야곱의 사다리교회 한국인 공동체의 설교

꼬빌리시 야곱의 사다리교회 한국인 공동체의 설교

에큐메니칼 운동의 나 자신의 일로 특별히 제네바에서 자주 한국의 기독교 형제 자매들과 만났다. 심지어 복음의 해석에 관한 나의 책이 한국어로 발간되었다. 이종실 목사가 한국의 기독교인들과의 직접적인 협력을 내게 제공하고 설교를 요청하였던 것이 매우 기뻣다. 처음에는 가끔 초대 받던 설교가 최근에는 정기적으로 초대받아 설교를 하게되어 내게는 축복이되는 그런 특권을 누리고있다.

이종실 목사가 설교는 „이방나라에서 한국교회의 급성장의 중심이었다“고 설명한 대로 한국개혁교회의 전통에 설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달에 한번 아내와 함께 한국 공동체를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찬양대의 기쁨에 찬 찬송으로 그리고 전교인들의 찬송으로 여호와를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경의 말씀을 함께 상고하였다. 매번 우리들은 기대에 가득차다. 한가지 애석한 것은 우리들이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영어로 설교를 하며 한 자매가 통역을 한다. 주일 전에 매우 진지하게 설교의 번역원고를 준비한다. 예배 참석자들은 기도와 설교의 내용이 그들의 마음에 감동이 되면 „아멘“ 하는 소리로 기도와 설교에 동참한다.

예배는 매우 기쁨이 넘친다. 기쁨은 예배 후에 차를 함께 마시는 모임에서도 기쁨이 넘친다. 그 모임은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의 공동체이다. 동시에 내가 늘 친구, 이지 슈토렉 목사의 투병생활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 그를 만날 수 있는 것도 나에게 축복이다.

대화들을 통해 나는 한국 공동체가 단지 꼬빌리시 교회의 통합된 한 부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백성의 지체로서 전체 체코형제 개혁교회와의 통합이며, 개혁교회는 그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강하게 갖고있다.

나의 나이와 시간이 나를 한국인들의 신앙 공동체에 적극적인 참여를 허락해 주기를 소원한다. 야곱의 사다리 교회에서의 만남은 성령의 능력안에서 나의 믿음에 힘이 되고있다. 성령은 주목할 만한 기적을 일으키시어 언어의 장벽, 문화차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우리들의 한국 형제 자매들의 고국으로부터 수천 키로미터 떨어진 거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를 만나게 하고 믿음의 깊이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성령은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큰 기쁨의 근원인 오직 복음만을 선포하자.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기뻐하십시오. ……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 (표준새번역 빌 4:4-5)

요셉 스몰릭
* 나눔터 + 2호에 기고한 글
요셉 스몰릭 교수는 까렐대학 개혁신학부 은퇴교수, 수차례 학장을 역임하였고, 브라티슬라바와 부다페스트 대학의 명예박사, WCC 신앙과 직제 위원회 역임, WCC 중앙위원을 역임, 에어랑엔 튀빙겐 교환교수역임,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라인홀드 니버의 제자이다. 많은 저술들을 하였고 한국에 제4의 인간의 제목의 그의 책이 1970년대에 번역되었다. 현재 꼬빌리시 교회의 한인공동체에서 정기적으로 설교를 하고있다.

5월 한국여전도회 성가단 방문

우리는 교회를 하나의 교회라고 고백을 한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의 지체이다. 이러한 교회의 이해를 바탕으로 에큐메니칼 라인에서 교회의 일치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있다.

냉전의 시대이후 세계는 경제적으로 자본이 더 이상 국경에 제한을 받지않는 광범위한 소통이 일어나고 이에 따른 변화가 무섭게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는 단지 국가와 국가의 교류를 넘어 이제는 지역사회와 개인의 일상의 생활 속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세계교회가 그동안 발전시켜온 교회일치의 경험과 노력을 바탕으로 개 교회의 차원에서 교회의 일치문제를 숙고할 때가 되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체코와 한국 기독교인들의 꼬빌리시에서의 실험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예배와 성만찬과 세례를 함께하는 것은 영적인 교류이며 기독교회의 교류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다른 교류 프로그램이 단지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영적교류를 강화시키게 된다.

우리들의 실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한 예수교장로교단의 소속 지역교회들의 여성신도 전국 조직인 전국여전도회연합이 있다. 회원은 백만명이 넘는다. 이 단체안에 많은 부서조직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가단이다. 40여명의 회원들이 있으며 이들은 전국 30여개 교회에서 모였다. 이들이 5월 마지막주에 야곱의 사다리 교회의 “수도원”과 “봉사관”에서 생활하면서 한국문화도 소개하고 찬양으로 영적인 교제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체코교회의 신앙전통을 이해하고 꼬빌리시에서의 우리들의 삶을 견학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전국여전도회연합의 회장이자 한국기독여성과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연옥 박사가 작년에 설교로 우리들의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체코 한국 기독교인들이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의 바른 사명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귀국하였다. 야곱의 사다리옆 교회당에서 우리들의 교제가 체코와 한국교회 전체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5월 26일 월요일에 프라하에 도착
27일 화요일 오후에 부채춤, 사물놀이, 한국차, 한국문화소개, 한국음식 한가지가 준비된다.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이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28일 오후 7시 살바도르 교회당에서 디아코니아 활동을 돕는 목적으로 음악회
29일은 하루 종교개혁의 역사가 숨쉬는 아름다운 프라하를 돌아보고
30일 올로모쯔에서 우리 교우의 협력으로 올로모쯔 필하모닉 극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까를린 수해 봉사 활동을 다녀와서

까를린 수해 봉사 활동을 다녀와서…

이번 홍수가 100년만의 홍수라고 들었다. 다른 시각에선 800년만의 대홍수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들은 바 있지만 솔직히 나에겐 그리 큰 관심은 없었다. 더 그런 것이 그 때 나는 여기에 없었고 이웃나라인 폴란드에 있었을 때였다. 폴란드 경우는 비로인한 아무런 피해가 없었고 텔레비전과 신문지상으로만 체코와 독일쪽에 큰 홍수가 났다고 연일 기사화가 되긴 했는데 나로선 단지 그 순간만 남의 일인양 혀를 찼을 뿐 단지 일상의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후에 내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왔을때는 이미 비는 다 멎은 상태고 남은 건 그로인한 많은 재산피해와 아픈 상처들… 듣기로는 인명피해도 있었다고 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는데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순간 생각한 것은 수해를 당한 그들을 생각하기 전에 단지 나의 불편함을 먼저 떠올렸다는 것에 수해지역을 다녀온 뒤 필자는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내가 수해복구 봉사활동에 참여한 계기는 자발적이였으면 좋으련만 부끄럽게도… 목사님을 비롯 체코인 봉사자들과 한국인 4분이 승합차를 타고 수해 입은 한 마을로 진입했을 때 그 거리의 광경만 보고도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다. 정말 없는 것 조금 더해서 전쟁터의 뒷모습을 보는 듯했다. 수해를 입은 지역을 한국에서도 본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도착해서 도울 장소는 주택가의 아파트 단지였는데 1층 모두가 천정까지 물에 잠겼던 흔적이 보였다. 우린 장화를 신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갑을 끼고 망치와 정과 곡괭이로 온 벽들을 뜯어내는 일. 그대로 두면 집이 썩어간다니… 내가 도왔던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사시던 곳이었는데 그 분들과 함께 종일 벽을 때리고 깨고 하는 일의 연속. 솔직히 나는 오후 정도에는 집에 가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 두 분은 몇 날 몇 일을 계속 일하였고 또 앞으로도 계속 해야 되는데 그러면서도 놀라웠던 것은 그 노부부의 얼굴에는 짜증이나 걱정스러움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에 나로서는 또 한번의 충격이었고 그들의 마음과 표정이 나에게 귀중한 가르침과 교훈을 주었다는 거. 예상치 못했던 변화와 두려움을 맞아 어떤 이는 주저 앉아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변화와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 결국엔 다시 일어난다. 후의 일들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노부부는 잘 참아내고 이겨내어 다시 안락한 보금자리를 찾을 거라 믿는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노부부가 우리에게 “감사하다.” “고맙다.”고 했다. 나도 “당신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했다. 더 열심히 도왔어야 했는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그렇게 떠나오는 나의 마지막 심정은 타국의 남의 민족이 아닌 바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어 죄송하고 가슴 한 켠으로 마음이 저려왔다. 어느 평범한 농사꾼이 책을 펴낸 적이 있었다. 제목이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요즈음 우리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 필자는 주제 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만 잘 살면 되지 하며 살아가는게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고 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권력과 금력과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나눔이고 또 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길고 짧고 잘나고 못난이들이 나누며 어우러져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살아갔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역시 나눔을 정을 모르며 살아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부끄럽고 더욱 더 나를 되돌아보며 숙연하게 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부디 많은 수재민들이 하루 빨리 그들의 온전한 삶 속으로 되돌아 가길 진심으로 빌며…

부끄러운 봉사자 유 수 영 <찬양대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