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4.30)

2013년 4월 30일 오늘의 말씀

너희 먼 데에 있는 자들아 내가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에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이사야 33장 13절)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장 4-5절)
묵상
복음이 만약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의한 종교적 논리인 말이라면
사도들과 순교자들과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을 통하여
2천년이 넘도록 전해져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과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기독교 2천년 역사동안 
복음은 수 많은 스토리를 생산하였습니다.
복음은 역사와 시대를 따라 바르지 못한 세상 권력과 가치관들과 싸워
하나님의 뜻을 세상 속에 세우며 나왔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도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기관으로 변할때
마치 시들어진 낙엽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듯이 그렇게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나뭇잎들이 돋아났습니다.
지구가 하루 한바퀴 자전하면서 내는 소음이 너무나 커서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듯이
복음의 이 흐름이 너무나 거대하여 우리의 눈과 귀로 인지하지 못할뿐입니다.
더구나 세속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세상의 눈과 귀는 복음을 복음으로 
바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영적 불능상태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 조차도 복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크리스천을 Craig 라는 신학자는 “크리스천 무신론자”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들으면서도 복음에 주목하지 못하는 신자들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들으면 하나님의 소망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들으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복음을 제대로 들으면 바른 분별력이 생겨납니다.
복음을 제대로 들으면 회개와 용서와 사랑으로 인생이 재창조됩니다.
복음을 제대로 들으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에 늘 감격하게 됩니다.
복음을 제대로 들으면 하나님의 이름만으로도 감사하게 됩니다.
기도
주님,
헛된 지식이 내 눈과 귀를 멀게하였습니다.
내가 죽어야 복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헛된 지식은 자꾸 나를 살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의 초점을 흐리게 합니다.
나의 이름을 내려는 마음을 부추깁니다.
복음에 순종하기보다 이용을 하게합니다.
복음을 제대로 듣는 일이 쉽지않습니다.
만약 내가 복음을 제대로 듣는 자라면
나는 사랑과 덕을 가진 자가 될것입니다.
나 자신이 작게 보일 것입니다.
모든 존귀한 명예가 덧없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 기쁨에
세상의 모든 것이 거름같이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 자신의 뜻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국가관과 가치관이 무너진 사회 지도층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성직자로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게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교회를 세속화 시키는 크리스천 무신론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복음의 능력이 크게 드러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허술해도 위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에 대한 반응입니다.
교회는 복음이 약동하는 용서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는 복음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허술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위대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삶으로 증거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 설교 전문 첨부.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4.27)

2013년 4월 27일 오늘의 말씀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이사야 55장 3절)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6장 12절)
묵상
개성공단에서 남한 인력 모두가 철수하였습니다.
남북간의 긴장에 의한 국가 브랜드 마이너스 영향은
무역에 절대의존적인 남한의 입장에서는 풀어야할 숙제인데
오히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타격을 받을 것같습니다. 
해외언론들은 앞다투며 한반도 위기 기사를 쏟아내겠지요.
남북간의 합의는 휴지조각에 불과하게되었고
신뢰를 쌓아가는 일은 더욱더 어렵게되었습니다.
인류역사에서도 국가간의 합의와 협약이 “영원한 언약”으로 
지켜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인간들의 합의와 협약은 힘의 균형을 이루는 추를 발견하는 과정이어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추는 기울어질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합의와 협약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일방적인 사랑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언약”이 됩니다.
“영원한 언약”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일회적인 찰나의 시간이 아니라 신뢰의 지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믿기위해서 게으르지않음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도
주님,
당신의 일방적인 사랑의 은혜와
그 은혜를 “영원한 언약”으로 만드는
당신의 신실함이 두렵게 느낄정도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국가와 국가간의 약속도
하나님앞에서한 거룩한 혼인서약도
오랫동안 쌓아온 인간적 교제도
휴지조각처럼 만들어버리는
이기심이 가득한 가벼운 존재들입니다.
이처럼 가벼운 존재가
어떻게 당신의 “영원한 언약”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4.26)

2013년 4월 26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시편 145편 17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장 6절)
묵상
교회재산반환과 보상법 통과 이 후
체코교회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국가의 재정적 지원아래 교회들이 있었지만
새로운 법이 통과 된 이후에 현재 지원금 (목회자 사례비)은
매년 5%씩 삭감되어 지급되다가 2030년에 국가 지원은 
완전히 없어지게됩니다.
국가의 지원이 없어지면 경제적으로 교회들은 완전히 
스스로 자립해야되는 상황에 직면하게됩니다.
경제적 환경의 변화는 단순하지 않고 그동안 세워진
교회간의 연대와 전통을 근본적으로 바뀌게 만들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교단들의 대처는 신학적이거나
신앙적인 논의가 아니라 조직과 돈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단 지도자들의 대처가 교회의 위기입니다.
4월 23일 체코 목회자 몇사람들과 만나는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의 말미에 저희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가 6월 5일 
이 문제에 대해 컨퍼런스를 열어 공개적으로 논의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대화가 끝날무렵 한 목회자가 제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목사, 당신이 보기에 체코교회의 운명이 어떻게 될것 같소?”
저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체코교회는 이 보다 더 어려운 종교개혁의 시기를 견디지 않았소?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경제적 위기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위기는 
돈, 권력과 같은 세상의 보장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뒤섞여 버린 현대인의 삶을 정화시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이것을 믿음의 희망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도
주님,
이 새벽 당신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입장에서 절망의 자리이며 순종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새로운 희망의 자리입니다.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절망한 사람입니다.
자신에대해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참된 희망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자신에 대해 절망함이 없는 순종은
아직도 불순물이 끼어있는 믿음입니다.
철저히 절망하고 
철저히 순종하여
영원한 희망을 누리는 기쁨을 
간절히 간절히 간구합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04.25)

2013년 4월 25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편 1절 하반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태복음 8장 26절 상반절)
묵상
“말”은 단지 소리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을 믿지 않는 것은 말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을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나의 조그마한 뇌의 활동은 아는 것을
믿는 것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1400그램의 작은 나의 뇌의 활동이
우주만물보다 더 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온갖 방법으로 방해합니다.
내 마음의 의지가 
내 머리의 활동을 이겨
어린아이 마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