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웃

  • 한인 예배 (2002년 08월 25일)
  • 마 5:43-6:4
  • 설교자: 다빗 유레흐

02/08/25 (열세번째 삼위일체주일)
설교자: 다빗 유레흐 전도사
본문: 마태복음 5장 43절 – 6장 4절
제목: 나의 이웃

<본문>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누가 나의 이웃이며 나는 누구의 이웃입니까?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삶의 각각 다른 구체적인 상황에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2-3세기 전 이해되었던 이웃이라는 단어에 대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모든 해석들을 이 자리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들에게 이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다시말씀드려 누가 우리의 이웃이며, 나는 누구의 이웃이며, 또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이질문의 관심은 내가 이웃을 결정하지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를 필요로하고 내가 도와야 할 사람, 그 사람이 나의 이웃이 됩니다.
사람이 사랑과 도움으로 사람과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그가 누구인가를 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선행과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실천이지 선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순수하고 헌신적인 도움의 예가 됩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들이 긴급한 도움을 어떻게 해야 본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 예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해야 되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곤핍한 사람에게 재정적인 희생을 주저하지않고 그리고 섬기는 것입니다.
비록 자기 자신과는 다를지라도 곤궁한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사람, 그가 바로 이웃입니다.

누가 나의 이웃이고, 누가 나의 이웃이 아닌가라는 질문은 우리의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질문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내가 이웃이 되고있는가 아니면 아닌가가 우리의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이 되는 사람은 성, 인종, 민족, 종교, 세계관, 사회적신분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들이 이웃이 되어야 함을 우리들이 알기 위해서는  편견과 미움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까?
제가 앞에서 말씀 드린 상황에서 이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쉽게 이해 하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들이 편견과 미움을 없애야 합니다.
편견과 미움은 역사적이거나 아니면 다른 원인들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독일인에 대한 체코인, 체코인에 대한 독일인, 헝가리인에 대한 슬로바키아 인, 슬로바키아인에 대한 헝가리인,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편견과 미움을 버리자는 의미가 과거를 잊고, 다시 갈등의 관계가 일어 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을 멈추자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무거운 짐이 되는 관계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체코인, 헝가리인 또는 일본인도 사람입니다. 50년 또는 500년전 민족과 국가가 서로 전쟁을 하였지만 그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거부하지않는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약간 다른 분쟁을 소개합니다.
유럽의 경우입니다.
북 아이랜드에 개신교도들과 카톨릭 교도들 사이에 많은 미움이 있습니다.
텔레비전 이나 신문에 나온 어른들이 이쪽 구역에서 저쪽 구역으로 학교를 가던 어린 아이들에게 침을 뱉는 사진을 보셨을것입니다.
내편이 아니라고 어린 아이들을 비난하는 것을 보고 저는 그들이 이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단지 언제나 열성적으로 자신의 믿음과 신앙고백을 선언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지금 위협하고 있는 사람이 나의 미움의 목표가 되지않도록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24)
왜냐하면 전쟁에서 사람은 사상과 권력의 도구로서 그리고 정복을 위한 무기로서 사람과 마주 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곳에서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그 전쟁에서 자기편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항해서 사람들이 서로 죽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의 두 번째 부분에서 우리들은 선행의 방법에 대해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기독교인들인지 보여주기 위한 동기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행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온전한 사랑도 도움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때문이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사랑이며 위선입니다.
어떤것도 기대하지 않고 기쁨으로 도울 때 진실로 우리들은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선행에는 영광을 받고 그리고 보응을  기대하는 마음이 깃들일 자리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누가복음 14장 12절-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베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J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셔서 차별 없이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고 구원하셨고,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모든 민족을 위해 보내셨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의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을 잊어서 안되고 사람들 사이에 선택적으로 실천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을 위해 우리는 그의 이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들은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필요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사랑과 선행으로 가까이 가도록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친구도 반대자도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자기 자신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는 길만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기독교이며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바른길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2편 5절-9절을 노래한 사람이 우리들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롸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Amen (아멘)

<기도>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함의 온전함을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으로부터 배우고 받은 사랑으로 모든이들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세상은 꼭 필요한 사랑과 선함의 부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힘을 주사 기쁨으로 우리들이 우리의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독생자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시여,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들이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랑의 빚을 주님과 우리의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야 됨을 잊지않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가운데 계시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가운데 현존함을 보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이세상에서 사랑의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느끼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9월 운영위원회

9월 1일 운영위원회 회의 내용입니다.

1. 7-8월 회계보고는 게시판에 게시된 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교회의 선교보고 입니다

1) 체코 한국 기독협회가 시민단체로 정부에 등록되었습니다.

2) 교회란 무엇인가? 와 성만찬 이해의 두 제목의 체코와 한국 양 교회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지상 신학토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3) 한인 소식지 나눔터가 체코 정부에 정기간행물 등록 신청을 하였습니다.

4) 나눔터 플러스(+)가 한국어와 체코어판으로 년간 두차례 발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5) 삐섹 벨리바 찻집이 9월 2일부터 6주간동안 7인 전도팀을 구성하여 그동안 단골 손님을 중심으로 더 깊은 친교와 그리스도를 알리는 작전 “Camp”를 시작합니다.

6) 보흐니쩨 정신병원 사역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사역지원을 한 페이네오바는 자원봉사로 드보작꼬바는 9월부터 정신병원의 직원이 되어 하던 일을 계속 하게 되고 우리 교회는 드로빅 전도사를 부목사로 청빙하여 이 사역을 전담케 하였습니다.

7) 8월 마지막주 수재민을 위한 헌금은 우리 한인공동체에서 약 32000꼬룬, 체코인 공동체에서 약 20000꼬룬 그리고 우리 교회의 디아코니아의 모금이 약 50000꼬룬 모두 10여만 꼬룬입니다. 8월 26일 당회에서 디아코니아 책임자, 체코인 대표1인 그리고 이종실 목사 3인이 헌금 사용처를 제안하면 당회가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3. 결의 사항입니다.

1) 삐섹 수재민을 위한 헌금 10000꼬룬은 삐섹 벨리바 찻집 사역과 관련하여 구제헌금으로 사용키로 하다.

2) 보흐니쩨 정신병원 사역자 지원비 5000꼬룬은 보흐니쩨 정신병원 사역 활동 지원금으로 명목을 변경하여 금년말까지 계속지원하고 년말에 재론키로하다.

3) 드로빅 전도사가 9월 8일 교인의 찬반 투표로 교회 부목사 청빙이 완료되면 9월 14일 토요일에 있을 목사 안수식에 한인 공동체가 음식 한가지를 준비하기로 하고 봉사부에게 일임키로 하다.

500년만의 대홍수로 재난을 겪고있는 체코를 위해 기도합시다.

천년만에 처음으로 많은 물을 담수한 오를릭 댐과 500년만의 대홍수로 완전 무용지물이 된 블타바강의 댐들이 보여주었듯이 이번 홍수는 모든이들의 상상과 예측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래서 그 피해도 복구단계에서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체코형제개혁교단은 세계 형제교회들에게 급히 기도와 도움을 타전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도움을 바랍니다.

Prague, August 20, 2002
Dear friends, dear sisters and brothers,
as the water is going down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find there homes in a very bad shape, in Austria, Germany or here in Czech Republic. There are many tragedies of people who lost everything in the floods. Possibly there house is still standing, but it is in such bad shape, that it has to be torn down. As I wrote you a few days ago, we want to help the victims as much as we can. Please find in the attachment information about the ways our Diakonia is trying to help. Please remember in your prayers the victims of the flood as well as all the people who are helping. And there are so many who are helping.
We think of all the victims of the flood in Austria, Germany and the other countries. When you live in such an area, plase understand this mail as information about the ways we are trying to help.
Financial help can be send to the special floods bank account: Evangelical Church of Czech Brethren, Jungmanova 9, CZ 111 21 Praha 1, Czech Republic
Bank account: 400 573 203 / 0300 at the bank CSOB, Na prikope 14, 115 20 Praha 1. Please note code 628, which means
help from abroad.
Thank you for your prayers and for any help.
With many good wishes for you!
Sincerely yours,

Rev. Gerhard Frey-Reininghaus
Secretary for Ecumenical and International Relations
Evangelical Church of Czech Brethren
P.O.Box 466, Jungmannova 9
CZ 111 21 Praha 1
Czech Republic
Tel: +420-2-24 99 92 -16 (-15)
Fax: +420-2-24 99 92 19
e-mail: Ekumena@srcce.cz
<>

Help for floods victims organized by the Diaconia of the Evangelical Church of Czech Brethren (ECCB)

The catastrophical floods started 7th August in Southern Bohemia. From the first days the ECCB Diaconia started helping the people affected by floods. From the beginning, the ECCB Diaconia was in touch with the regional and local crisis’ operation staff workers in the scope of the Czech Republic Integral Emergency System; ECCB Diaconia mobilized its centres involved its volunteers into teams of ADRA humanitarian organization which took up in the first phase of damages clearance.

As the water was going on, and a new flood wave appeared, it turned out that the extent of the catastrophe exceeded and exceeds the regional dimension, as biggest as never in the last 150 years in Czech Republic. The floods gradually reached also western, central and northern Bohemia in the basin of the rivers Vltava, Berounka, Ohre, Luznice, and their tributaries; and later the floods also arrived to the central flow of Labe river.

The Flood co-ordination centre was created at the ECCB Diakonia headquarters, where together with the workers of headquarters the volunteers are constantly working. The ECCB Diaconia, in co-operation with Flood Commission of Synod Council, organizes help in the following projects:

1. Organizing of volunteers
In co-operation with the youth department of ECCB, young people in church and also outside the church were addressed via Internet, phone and some mass-media. We are also creating the database of volunteers who are sent out for various works organized by ECCB Diaconia or another partner organizations. Flood co-ordination centre also addressed gradually all the congregations of ECCB from the seniorates afflicted by floods, and all the centres of ECCB Diaconia and appeal to them for co-operation.

2. The bases for teams
The centres of ECCB Diaconia that are located directly in flood areas or close to this areas were transformed into bases from where the help for the people from closest neighbourhoods is organized (sometimes also in more extensive region dimension). A part of providing accommodation to evacuated persons, these bases are focused on creating necessary background for volunteers who are sent there by Prague Flood co-ordination centre. Their task is to participate especially in flood consequences eliminating, in process of cleaning and clearing out of flooded objects, and in another helping works based on requirements of local crisis operation staffs. The centres provide to the volunteers accommodation, board and all the needed services, including the work aids, means of protection, hygiene and infection of prevention. The material is either bought or collected at the place from donations, or in case of need the material is ensured from Prague center. The concrete work activities of the teams are operated by experienced chief instructors who participated in rescues during several last floods in Moravia or in Eastern Bohemia. In the beginning the volunteers are getting acquainted with basic rules and warned of prospective dangers. They also have the disposal of various sources of information for persons affected by floods. The volunteers stay approximately for 4-5 days.

3. Mediating of the volunteers to other institutions
Another function of Flood co-ordination Centre of ECCB Diaconia is to mediate the volunteers to other institutions. Beside the above-mentioned ADRA humanitarian organization, which operates in rescues mainly in Southern Bohemia, is especially going on requirements of various local crisis operation staffs, municipalities and various institutions. The biggest partner on this field is the crisis staff of city council of the capital city of Prague. ECCB Diaconia also co-operates with other churches and brother organizations, Czech Catholic Caritas, YMCA, Scout Organization Junak, voluntary fireworkers staffs, etc.

4. Material help
The CEC Diakonia is not widerly involved in gathering, transport and distribution of material help for people affected by floods; (for example supplying of flooded areas of drinking water, food, sanitary means and detergents, etc.) ECCB Diaconia passed this task to the big humanitarian organization, which are except the other tasks concentrated also on this field, mainly to Czech Red Cross, Czech Catholic Charity, and to the others. However, the ECCB Diaconia did not refuse the direct offers of material help in individual cases. ECCB Diaconia is also trying to comply with concrete requirements of material help, especially in cases where is not possible the help from elsewhere. In the field of material help, the ECCB Diaconia concentrates on supplying volunteers organized by Prague Flood Co-ordination Centre.

5. Psychosocial help
The workers of Flood Co-ordination Centre, together with specialists from the local SOS centre of Prague Diakonia looked out among its cooperators trained specialists who are sent out together with ADRA teams or work together with volunteers sent out from the Diakonia bases. Besides of demanding work with people who experience the traumas caused by losses of their homes and by shocks because of tragedy extent, is the work of psychosocial teams also focused on help to those who are helping. Taking into account that the groups of volunteers consist mainly of young people, the pastoral workers are sent out with them to help to manage the psychic burden. In addition, the Prague SOS Centre of Diaconia works constantly with help phone line.

6. Post-floods help

Having experiences with floods in the last years, CEC together with another churches wants to focus its attention also on help to the individuals. There are a lot of families or individuals who have lost their homes or whose equipment is destroyed. The insurance companies (in the case that the property was insured) cannot cover all the damage compensates. Also another state grants are not high enough so that the families would be able to deal with the damages from these resources. However, monitoring of the concrete situation of individuals demands enourmous efforts of many volunteers and perfect co-ordination with other organizations. The co-operation with the Catholic Caritas and another church organizations acquited oneself well. Except the other things, we co-operate also in processing the identical formularies for damages monitoring and also our negotiations with local authorities during verifying of social situation of affected families.

The workers of Flood Co-ordination Center are seeking out for volunteers who will commit themselves to damages monitoring and to following processing of indemnity requirements. All of them will be immediately trained for first-quality processing of information and for communication with people in post-traumatic state.

7. Flood co-ordination center of ECCB Diaconia serves also as an information center which communicates with other crisis operation teams from partner organizations and mediate the help where is it necessary – first of all information about the free capacities of volunteers, about material equipment, accommodation for evacuated people etc. The team also communicates with mass-medias and prepares the bases for fund-raising in Czech republic and abroad.

Financial help is needed in these areas:

A. Enabling the teams of volunteers

For the volunteer teams it is very important to have good equipment, which is bought be the centers or by the headquarters of Diakonia.
It is necessary to finance the meals for the volunteers.
Besides this transport of the volunteers to the various places and back home is quite a big amount of money.
It is not possible yet to say how mach money we will need for the volunteers, but we have already more than 450 volunteers, who are already in the flood areas or are preparing their work there.

B. Purchase of technical equipment
Most important for the work of the volunteers is technical equipment to get the water our of the basements and to dry the houses and apartments. For this it is planned to purchase pumps and drying machines. We do not have a budget yet, but in these hours we try to find effective and not expensive machines.

C. Humanitarian financial help
We assume, that it is not possible to raise so much money as it would be needed to help the victims of this floods, because there are hundred thousands, who were very much affected. The Diakonia wants to concentrate mainly on old people and young families with children, because for them it is most difficult, to cope with all the losses.

D. Financial help to social institutions like homes for the elderly, nurseries and schools
If there will be finances, we would like to support such institutions, which care for people, who are socially in a more difficult situation.

Please indicate, if you wish, the task you would like to support. In the other cases the money is used where it is most needed.

Prague, August 20, 2002

Diakonia of the ECCB

 

[프라하 종교개혁 유적지 순례] 6. 스따레 미에스또의 성 미할 옛 교회당

6. 스따레 미에스또(Staré Město 주: 번역하면 구 도시)의 성 미할(sv. Michal) 옛 교회당

마당의 왼쪽(북쪽)에 있는 오늘날 식당으로 바뀐 신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정면을 보면서 얀 후스 선생 시대부터 이미 유명해진 이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후스(Hus)는 베들레헴 채플에서 일하기 전인 1311년부터 원래 고딕양식의 성 미할 교회당인 여기서 자주 초빙받아 설교를 하였다. 당시 주임신부는 즈데라즈의 베르나르드(Bernard ze Zderazu) 였다. 후스와 예로님(Jeronym) 두 사람은 이 교회에서 대학의 다른 선생들과 만나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에 대해 토론을 하였다. 1399년 여기서 후스는 위클리프의 몇몇 논문에 대해 폭 넓은 대화를 나누었다.
1406년부터 성 미할 교회에서 후스와 같은 고향이자 신실한 친구 프라하띠쩨 크지슈땬선생(M. Křišt´an z Prachatic +1439)이 활동하였다. 그는 1411년 3월 15일 자신의 교회에서 열린 후스 파문에 대한 논의를 용감하게 거부하여 프라하 시민들의 커다란 신망을 받았다. 후스파 혁명이후 양종 성찬 지지자들의 프라하 꼰지스또즈의 초대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1412년에 후스에 이어 교수회의에서 총장에 선출된 까렐 대학에서 가르쳤다. 총장으로 재직 중에 성 미할 교회와 대학에서 특별히 면죄부 판매 반대를 목표로 하는 학구적인 토론을 계속하였다. 벽 속의 마르틴 교회(kostel u Martina ve zdi)에서 양종 성찬의 성만찬 시행 직후 1414년 가을에 이 교회에서 같은 성만찬이 시행되었다. 양종 성찬의 주요 창시자 야꼬우벡 선생(M. Jakoubek)이 그 당시 여기서 자주 설교를 하였다.
1415년 봄에 성 미할 교회의 크지슈땬은 콘스탄츠(Constance 번역자 주: 후스의 종교재판이 열린 도시이며 독일남부의 스위스 국경을 접하는 도시)로 체포된 친구 후스를 만나러 떠났으나 일정기간 수감되었다가 후스가 사형되기 직전 풀려나 프라하로 돌아왔다. 크지슈땬이 죽은 뒤에 성 미할 교회에서 12년간 사제로 믈라도뇨비쩨(또는 믈라데노비쩨)의 뻬뜨르 선생(M. Petr z Mladoňovic 또는 Mladenovic +1451)이 활동을 하였다. 대학에서 후스의 유능한 제자인 그는 1414년 가을에 콘스탄츠 공의회의 후스 동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그리고 그는 까렐 대학의 동행 대표단 대표 흘룸의 얀(Jan z Chlumu) 귀족의 비서 였다. 대표단은 기록자로 외교관으로 그리고 많은 편지를 대필하는 자로 일하였다. 콘스탄츠에서 후스가 체코직후 처형되지않도록 도왔으나 어떠한 공개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감옥에서 자신의 선생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다방면으로 도움을 호소하여 결국 콘스탄츠 화형장까지 그를 동행하였다.

콘스탄츠에서 프라하로 돌아온 후 믈라도뇨비쩨의 뻬뜨르는 목격자로서 후스에게서 일어난 사소한 모든 사건들을 „콘스탄츠에서의 얀 후스 선생 소식(Zpráva o M. Janu Husovi v Kostnici)“ 체코어 제목 아래 라틴어 연대기를 발간하였다. 그것의 마지막 부분은 선별된 후스의 편지들과 함께 프라하 후스 교회들이 얀 후스 화형 기념일마다 읽는 „후스의 고난“이 사본으로 첨가되어 있다.

후스파의 혁명의 시대에 뻬뜨르는 대학 선생으로 임명된 이후 온건파 양종 성찬 지지자들의 입장에 섰다. 1420년 말 급진주의적인 따보르파 대표들과의 신학적 논쟁에 참석하였으며 1426-1427년에 철학부 학장이 되었고 1440-1441년까지 크지슈땬 선생의 후임으로 총장이 되었다. 후에 얀 로키차나(M. Jan Rokzcana) 선생의 후스파 노선에 접근하였으며 로키차나의 프라하 대주교 승인에 대한 로마 교황청과의 협상을 위한 외교관으로 등장하였다.(II/5).

후스파 시대 초기에 미할 교회에 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비뜨고바 산(Vítková hora 주: 프라하 까를린에 있는 말 동상이 있는 산) 에서 지그문드의 십자군을 물리치면서 이른 첫번째 대승리 직전에 일어났다. 1420년 7월 15일 공포로 뒤덮여 있을 때 따보르파의 귀족 바츨라브 꼬란다(Václav Koranda St.)가 교회당 둥근 아치 천장 아래로 말을 타고 들어와 교회당의 긴 좌석의자를 떼어 적군의 공격에 대항하던 비뜨고바 산에 튼튼한 바리케이트를 쳤다.

믈라도뇨비쩨 이후 미할 교회의 책임자는 종교개혁 발전을 위해 커다란 의미가 없는 대체로 온건한 구 우트라퀴스트 였다. 그러나 이 교회는 200년이 넘게 후스파 개혁과 관련이 있었다. 빌라 호라(Bílá hora 번역자 주: 번역하면 백산, 여기서 백산에서 벌어진 카톨릭파와 개혁파간의 전쟁을 의미함) 이후 아일랜드 수도회로 넘겨져 교회 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을 하여 수도원으로 운영하였다. 요세핀의 개혁 시대인 1789년에 수도원은 폐쇄되고 교회당은 창고로 변경되었다. 그 후 200년간 두 건물들은 완전히 황폐화되어 옛날 종이 창고로 사용되었다. 최근 1990년대에 많은 비용을 들여 프라하시가 문화적인 목적을 위해 교회당을 식당으로 개조하였다. (그 공간에서 카프카의 개념에서 프라하 역사를 설명하는 „성 미할의 비밀“ 문화 시청각 프로그램이 상영된다.)

미할 교회당 마당에서 (북쪽 골목길이 다시 멜란트리호바 거리로 다시 나오는) 다시 미할 교회로 돌아간다. 여기서 왼쪽(남쪽 방향)으로 20 미터쯤 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우 줼레즈 드베지(U železných dveří 번역자 주: 번역하면 초록색 대문들 곁에 있는) 19/436호 집 골목길로 나온다. 마당을 가로질러서 옛날 주인들의 이름들이 있는 커다란 문화재 기념판 곁에 잠시 멈춘다. 그 이름들 가운데 종교개혁시대에 살았던 두개의 이름이 있다. „시와 종교 권리 변호사“였던 (루터 종교개혁의 영향이 미치던 당시 프라하 신 우트라퀴스트 대변인이었다) 리보슬라브의 얀 흘라브사(Jan Hlavsa z Liboslavě +1534)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체코 반 합스부르크 혁명에 참가한 프라하 우트라퀴스트의 유명한 교인인 얀 슈짜스뜨니 골리아쉬(Jan Št´astný Goliáš)으로 그는 „명예와 재산의 손실에 대한 언도“를 받았으나 사형 전에 외국으로 도망하였다.
„우 젤레즈니흐 드베지“(주: 초록색 대문들 곁에 있는) 집 안마당에서 일스께 거리(Jilské ulice)로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약 50미터쯤 가서 왼쪽으로 돌아 야로브초바(Jarovcová) 좁은 골목길을 만난다. 여기서 도미니카 수도원의 높은 벽을 따라(왼쪽편에 있는) 걸어서 왼쪽코너까지 가서 후소바 거리(Husová ulice)를 가로질러 (여기서 후스파 시대인 1448년에 뽀제브라디의 이지(Jiří z Poděbrad)가 국내 통치자로 불안한 프라하를 통치했을 때 첫번째 프라하 거주지로 구입한 거대한 집 „우 펠리카나(U Pelikána)“가 서있었다. 5년뒤 그러나 이 집은 파괴되고 멀지않은 제띠에조바 거리(Řetězová ulice)에 있는 상속받은 군슈따드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IV/1a)) 반대편 모퉁이집(후소바 거리 10호)에 체코 캠페인(이라섹(Jirásek) 소설 비엑(F.L. Věk)의 소재로 등장한, 번역자주: 체코 문화 전통 정신 등을 보호하고 알리는 일)을 위해 그 집을 두 번째 거주지로 삼았던 바츨라브 마뗴이 크라메리우스(Václav Matěj Kramerius) 문화재 기념판이 있다.

바츨라브 마뗴이 크라메리우스(Václav Matěj Kramerius +1808)은 프라하 기자이며 민속잡지와 책 발간자이며 체코 종교개혁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체코 애국과 개몽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요셉 2세(Josef II)의 관용의 칙령에 관한 서적 발간(요셉의 책, 관용의 달력)을 좋아하였으며 개혁교도에 대한 관용에 공개적인 공감을 표현하였다. 개혁교도들의 책들을 매우 높이 평가하였으며 특별히 끄랄리츠까 성경(Kralická Bible)를 더 높이 평가하였다. 체코 관용의 교회로 파송한 헝가리 출신의 개혁교도의 설교자들의 설교 통역을 돕고 그들을 위해 기도문, 예배순서 그리고 심지어 칼빈의 신앙고백 번역서를 출판하였다.

[프라하 종교개혁 유적지 순례] 5. 성 미꿀라쉬 교회당과 구 시가지

5. 성 미꿀라쉬 교회당(Kostel sv. Mikuláše)과 그 교회주변의 구 시가지

구시가 광장의 북동쪽에 마찬가지로 유명한 종교개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웅장한 바로크 건물 성 미꿀라쉬 교회당(구시가지의 이 교회당은 말로스트란스카의 같은 이름의 교회당과는 다르다 –IV/8)이 눈길을 끈다.
이 이름의 초기 고딕양식의 교회당은 상인들의 거주 지역이었던 뽀지츠(Poříč)에서 스따레 미에스또(Staré Město)로 1230년에 이주한 독일 상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14세기에 교회당은 정면의 탑과 함께 세 줄로된 좌석으로 재건축되었으며 그리고 띤 앞에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건축이 완성될 때까지 스따레 미에스또의 사제관 교회당으로 사용되었다(II/5). 까렐 4세 시대인 1364년 이후 성 일리(Jiljí) 교회의 얀 밀리츠(Jan Milič)가 여기서 자주 설교하였으며 그리고 그것은 대학 교구를 위해 그리고 체코와 독일 두 민족의 프라하 지식인을 위해 선포되었던 라틴어 설교(베들레헴 채플이 세워지기전)였다. 그러나 특별히 여기에 1381년부터 계속해서 체코 종교 개혁적인 설교가와 신학자이면서 끄로미에지쉐의 얀 밀리츠(Jan Milič z kroměříže)의 충실한 학생이자 추종자인 야노보의 마뗴이(Matěj z Janova +1389)가 활동하였다.

야노보의 마뎨이는 따보르 지역의 신자였으며 9년간 학업 후 대학의 마기스터 학위를 수여하는 파리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때부터 그의 별명은 „파리 선생“). 프라하에서 그는 교회의 직책을 맡지 못하였으나 겸손하고 매우 학식있는 신학자로서 까렐 시대때 유명한 개혁주의적인 설교가이면서 소설가인 예쇼보의 보이떼흐 란느꼬바(M. Vojtěcha Raňkova z Ježova +1388)의 물질적인 지원을 많이 받았다. 성 미꿀라쉬 교회의 설교가로서 마뗴이는 – 많은 신부와 수사들의 반대자들을 비판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저항을 받으면서도 성경에 의한 하나님 말씀의 순복과 성만찬의 거룩한 공동체를 위해 완강한 십자군이 되었다. „신 구약 성경의 법칙에 대하여 (O pravidelech Starého a Nobého zakona)“라는 라틴어 작품들에 그의 열성어린 성경공부의 결과들이 들어있다. 신학적으로 그는 미스뜨르 후스(mistr Hus)와 야꼬우백(Jakoubek)의 후대 종교개혁의 노력을 위한 토대 마련을 도울 수 있었다. (그의 구호는 : „선한 삶을 위해 기독교인이 필요한 모든 것은 성경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상화된 성화와 성골을 거부하였으며 이로 인해 교회 지도층은 그를 싫어하게 되었다.)

종교개혁 시대에 미꿀라쉬 교회당을 1415년부터 후스파 양종성찬지지자들이 사용하였다. 1537-1552년까지 양종 성찬 지지자들의 돌르니 꼰지스또즈(dolní konzistoř – 번역자 주: 교회를 지원하던 제도)의 책임자가된 얀 미스또폴(Jan Mystopol)이후에 신부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양종 성찬 지지자들의 교회의 마지막 목회자인 빅토린 브르벤스끼(Vikorin Vrbenský)가 스따로미에스께(번역자 주: 번역하면 구시가) 광장에서 사형집행(번역자 주: 1621년 빌라호라 전투이후 개혁교도처형을 말함) 전에 시 감옥에서 사형수에게 성만찬 집례를 허락한 신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잠시 후 그는 다른 개혁파들의 설교가로서 프라하로부터 추방되었다. 반 종교개혁 시대 때 교회당은 엠마오 베네딕트에게 넘겨졌고 그들은 그 교회당을 자신들의 새로운 수도원으로 개축하였다. 1650 – 1660년에 교회당은 바로크 양식화되었고 1732년에 파괴되었다가 1735년까지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바로크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 미꿀라쉬 교회당의 다양한 재난은 이외에도 많았다. 요셉 2세(Josef II)의 개혁시대 동안 다른 교회당들과 수도원들처럼 폐쇄되었고 1865년부터 콘서트 홀로 사용되고있다. 1914-1916년까지 식당으로 사용되었으며 동방정교회에게 사용권이 넘겨졌었다. 1920년부터 체코슬로바키아 후스파 교회(Církev československé husitské)가 프라하와 전국교회의 본부 교회로 사용하고 있다.

미꿀라쉬 교회당으로 들어가는 중앙문은 다른 쪽(서쪽)에 있다.(왼쪽으로 돌아가자.) 그 뒤편에 교회당이 후에 시민들의 거주 주택으로 변경된 베니딕트 수도원 건물들과 연결되어있다. 소위 „탑 옆에“로 불리우는 그 건물의 끝에 독일출신의 유명한 유대인 소설가 프란쯔 카프카(Franz Kafka +1924)가 태어났다. 그 집은 1902년에 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유명한 소설가의 흉상이 있는 문화재 표시판이 그 집을 장식하고있다.

스따로미에스께(구시가) 광장으로부터 성 미꿀라쉬 교회당을 따라 프라하 성 방향으로 말레(작은) 광장(Malé náměstí)을 거쳐 까렐 다리쪽으로 끄랄로브스까 체스따(Královská cesta 번역자 주: 번역하면 왕의 길) 거리가 있다.우리들의 첫번째 도보 코스는 그러나 여기서부터 300미터도 떨어져 있지않은 베들렘스까 까펠(Betlémská kapel 번역자 주: 베들레헴 교회 또는 채플)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그 쪽으로 가면서 몇 군데 들러야 할 곳이 있는 매우 흥미 있는 오래된 샛길과 골목길들을 거쳐가게 된다.

우 라드니쩨(U Radnice) 거리쪽 남쪽방향으로 돌아들어가면 프라하의 가장 오래된 장터 말레 광장(번역자 주: 번역하면 작은 광장)을 통과하게 된다. 광장 중앙에 16세기 중엽의 녹색 르네상스 철망이 있는 오래된 우물이 있다. 그 주변의 집들은 아직도 로마네스크 양식의 지하실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 „조그마한 광장“에서 우리의 도보 코스 방향으로 오른편에 특별한 문화재 주택 우 빌레호 르바(U Bílého lva 번역자 주: 번역하면 흰 사자 곁에) 2/145호를 볼 수 있다. 모로코양식의 외관에 후기 고딕양식 문 입구 위에서 사자가 보호하고 있다. 이 집에서 후스파 시대에 1487년 프라하에서 첫 번째 체코 책 – „다윗의 시편(Žaltář Davidův)“이 인쇄되었고 1488년에 소위 프라하 성경(Bible pražská)이 출판된 캄파(J. Kampa) 인쇄소가 있었다. 그 출판자들은 두 명의 열심있는 양종성찬 지지자들이었다.: 그 두 명은 이 집의 주인인 마뗴이 상인(kupec Matěj)과 옆 집 주인인 얀 삐뜰릭(Jan Pytlík)이다. 다른 두 명의 후스파 지지자들이 출판을 지원하였다. (프라하의 첫번째 체코어 성경 출판에 반세기 뒤에 얀 멜란트리흐(Jan Melantrich)과 그의 동업자들이 참가하였다. –I/2 참고). 16세기에 „우 빌레호 르바“ 집은 유명한 후스파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책출판업자 호디슈뜨꼬보의 미꿀라쉬 꼬나체(Mikuláš Konáče z Hodištkova +1546)의 소유가되었다.
말레 광장 에서 계속해서 남쪽으로 11/459호 건물의 샛길로 걸어가면 입구에 두개의 기둥을 따라 „리흐뜨로비 부부의 나다츠니 둠“(번역자 주: 번역하면 복지사회단체의 집이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집이 복지사회를 위해 기부 된 집인지 아니면 복지사회단체의 사무실이었는지 확인을 못하였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공간의 낮은 마당을 가로질러 미할스까 거리(Michalská ulice)를 만나는 출구로 나온다. 여기서 바로 왼쪽으로 돌아가면 종교개혁의 역사가 있는 유명한 유적지 앞마당으로 통하는 짧은 샛길을 통과하게 된다.